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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Oct 22. 2023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지원자 현황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 지원자 수 때문에 교무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사람들끼리도 신입생 홍보의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만 오갈 뿐 뾰족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입시를 총괄하는 홍보부장의 말수가 부쩍 줄어드는 것에서 상황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었다. 

출산인구 저하가 초래한 학생 수 감소는 단위 학교에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일 수 있었다. 줄어든 학생 수만큼의 학급 수 감축이나 학급 정원 축소가 없이 해마다 같은 인원의 신입생을 모집해야 하기에 어려움은 계속 가중되고 있었다.

더구나 Hn 고는 여학교이다. 특성화를 지망하는 한정된 자원 속에서 또 여학생만을 모아야 하기에 더 큰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는 손 놓고 있을 수가 없어서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홍보를 위해 홍보부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해 왔다. 홍보 안내서 제작을 시작으로 입학 전용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학교 소개 동영상을 제작하여 배포하였다. 줌을 통한 1대 1일 개인별 맞춤형 온라인 상담, ‘360도 VR 학교 탐방 시스템 구축을 통해 학교 실습실 소개’, 4회에 걸친 온라인 입학 설명회와 오프라인 입학 설명회 2회 등등, 짜낼 수 있는 아이디어와 쏟아부을 수 있는 예산을 집중하여 홍보에 매진했다. 하지만 마감일을 3일 앞둔 현재 학교 전체 모집 정원 마이너스 98인 것이다. 

 현실은 냉정했다. 학교 밖 외부환경에 대해 학교가 아무리 항변한다 해도 학생 모집 정원에서 단 한 명이 부족하면 미달 학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미달 학교가 되는 순간 그동안 쌓아온 학교의 명성은 물론 향후 학교 활동에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었다. 사실 학교 구성원의 눈으로 보면 물리적인 충격보다 정신적 충격의 여파는 상상 이상일 수 있기에 모두가 긴장을 안 할 수 없는 것이다.


“박이경 선생님 수확이 좀 있었나요?”

B 중학교 홍보를 마치고 들어온 박이경에게 교무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었다. 

“네, 교감 선생님 고민하던 공공과 한 명은 확정 지었고, 거리 때문에 고민하는 호텔과 한 명 50% 지원 가능성 상태로 만들고 왔습니다. 워낙 소규모 학교라 전체 여학생 수가 12명뿐이라 더 늘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교감 선생님의 표정은 경찰과 한 명을 확정 지었다는 말에 다소 안도의 모습을 보였으나, 추가 지원자를 기대할 수 없다는 말에는 실망이 묻어나는 눈빛을 보였다. 이처럼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수고하셨어요. 그 학생까지 확정 지었으면 좋을 것이지만 얼마나 힘드셨을 것인지 예상이 됩니다. 식사도 제대로 못 했을 것인데……. 어서 점심부터 드세요.”

“아직 많이 상황이 안 좋은 것이죠?”

“네, 조금 힘드네요. 박이경 선생님처럼 중학교에 나가 계신 선생님이 열심히 해주실 거라 믿고 기다려야지요.”

출장 결과를 보고하고 자리로 돌아오는 경석의 마음도 아주 무거웠다. 자신이 맡은 학교의 상황이나 다른 홍보 조가 맡은 학교의 상황이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메신저에는 입시 홍보와 관련한 교직원 회의 시간이 오후 5시에 식음료 실습에서 열린다는 내용이 공지되어 있었다. 이경은 오늘 회의가 아주 길어질 수밖에 없음을 예감했다. 

“박이경 선생님 저 안미연입니다. R 중학교 홍보 지원 좀 가능하시겠어요? 중 학교 3학년 부장님이 홍보할 기회를 주신다고 해서 급하게 나가는 길인데, 아무래도 대학과 공무원 관련 상담은 선생님이 잘해주실 것 같아서 부탁드려요.”

“네 가야죠. 조금이라도 도움 된다면 얼마든지 갈 수 있어요. 언제 출발하실래요?”

“1시 30분에 운동장으로 오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급하게 출장 나온 R 중학교는 어수선함 그 자체였다. 이 학교 홍보 담당인 안미연 선생님에 의하면 홍보에 제약이 많았던 학교다. 그동안 코로나 상황이라는 이유로 또 그다음에는 희망자가 없다는 이유로 홍보할 기회를 주지 않은 학교였다. 어제 힘들어진 상황에 이사장님과 교장님께서 방문 기회를 열어주지 않은 학교를 찾아다니신 결과 덕분인지 홍보의 문을 열어주기는 했지만, 특성화고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학교라는 느낌이 분명했다. 

그동안 홍보를 해 보면 중학교 3학년 부장님의 특성화고에 대한 인식에 따라 많은 홍보 기회 여부가 좌우되고 있었다. 

부모님 세대에 있어 아직 특성화고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은 탓에 자신의 자녀가 인문계 진학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에 관심이 적었다. 아니 오히려 자기 자녀에게 쓸모없는 길로 유도한다고 민원을 넣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그런 민원을 듣기 싫어서라도 특성화고에 대한 접근을 원천 차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모두 인문계 진학만 고집하는 것도 진로지도에는 분명 문제가 있음을 중학교 3학년 부장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인문계에 진학해서 상위권 아이들의 바닥을 만들어 주는 들러리 3년을 보내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중학교에서 특성화고 진학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극소수인 경우가 많아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R 중학교가 경석 팀에게 허락한 것은 쉬는 시간에 교실 홍보를 할 수 있도록 해 준 것이다. 

 박이경은 우선 허용해 준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생각했다. 쉬는 시간인 탓에 교실은 학생들이 제자리에 앉아 있지도 않고 정돈되지 않은 분위기라 말을 선뜻 꺼내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기에 목소리 톤을 높여 학교 홍보를 시작했다.

“여러분 고등학교 진학에 대해 나름대로 결정하셨죠? 다들 어디로 진학하나요?”

아이들은 반응을 보이기는커녕 관심도 주지 않은 채 자기들끼리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목소리를 한 톤 더 높여 시작했다.

“대부분 인문계로 마음 정하셨죠? 맞아요. 대다수가 그렇게 하는 것이니까, 또 친구들도 그렇게 한다고 하니 그 결정이 옳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인문계 진학이 무엇을 위한 결정인지 한 번쯤은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특히 내신 130점, 140점 아니 160점대 친구들 밤에 혼자 있을 때 고민해 보지 않았나요? 내가 중학교에서 공부하던 대로 그냥 그냥 시간을 보내면 고등학교 졸업할 때 나의 미래가 보장될까? 내가 잘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까? 두렵지 않던가요? 그래요. 고등학교는 새로운 곳이니까 중학교에서 하던 것과는 달리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자신의 미래를 바꿀 수 있어요. 그리고 여러분은 그렇게 하실 것이에요.”

경석은 학생들의 관심을 조금이나 더 붙들고 싶어 잠시 기다린 뒤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하실 노력을 조금 다른 방법의 길을 선택하면 조금 쉽게 그리고 한 단계 위의 삶을 열어갈 수 있는 선택지도 있다는 것을 고민해 보라고, 그리고 여러분의 꿈을 이루어줄 수 있는 확신이 있기에 우리 학교를 소개하러 왔어요. 

우리 학교는 VJ를 꿈꾸는 미디어 콘텐츠과, 코로나 상황 속에 더 가치를 인정받은 간호조무사를 양성하는 보건간호과, 은행원이나 기업의 심장인 금융 분야 사무원을 배출하는 금융 비즈니스과, 호텔리어나 항공 승무원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모인 호텔 관광비즈니스과, 그리고 우리 학교의 자랑인 고졸 9급 공무원과 공사 공기업의 역량 있는 일꾼을 배출해 내는 공공행정과로 이루어져 있어요. 시간이 제약되어 있어서 자세한 설명하기 힘들지만, 친구 따라 자신의 진로 정하지 말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진학 결정하길 권해요. 

여러분 대학 가는 이유 결국 취업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미래에 꿈꾸는 취업 분야가 우리 학교에 개설된 학과와 일치하는 친구들은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이 자신에게 손해는 아니겠죠? 우리 학교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친구는 담임 선생님께 의사 표현해 주면 학과 소개를 비롯한 특성화고에서 어떻게 자신의 꿈을 만들어 갈 수 있는지 안내해 드릴게요. 쉬는 시간 뺏어서 미안해요.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특성화고에서 진로 찾기 행사에 신청하고 관심 가져줘요. 부탁해.”

급하게 핵심만 전달하려고 했지만 쉬는 시간에 아이들을 집중시키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찬밥 더운밥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에 한 반을 끝내고 옆 반으로 이어가서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과 함께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선생님 힘드셨죠? 담당 학교도 아니신데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른 반 홍보를 하고 나오는 안미연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아니에요. 이렇게 이야기라도 할 수 있는 상황이 더 고맙죠.”

“하지만 이렇게 쉬는 시간에 관심도 안 보이는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해서는 홍보 효과가 있을지…….”

말끝을 흐리는 안 선생의 마음을 박이경도 읽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방법을 10번 정도 해야 한 명의 지원자를 만들 수 있음도 현실이었다.

“안 선생님 일단 3학년 부장님께 감사 인사드리고 다음 약속받아 내죠.”

“다음 약속이요?”

“그래요. 오늘 이렇게 홍보는 했으니 이 핑계로 다음 기회를 만들어야죠. 특별전형 3일 전이지만 일반전형까지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여기 3학년 부장님은 늘 없다는 말씀만 하시는 분이시라 다음 기회를 주실지 의문이에요.”

“그러니 더 필요하죠. 지나가는 말이라도 약속을 얻어내야 다음에 또 방문할 기회가 주어져요. 끝이 아닌 다음을 기약하는 방식이 홍보에도 필요해요.”

안 선생은 홍보의 문을 열어 준 3학년 부장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관심을 보이는 학생이 있을 수 있음을 강조해 희망자를 대상으로 내일 점심시간에 다시 추가 설명하기로 약속받았다.

“이런 방법은 어떻게 배우셨나요? 아니면 경험의 산물인가요?”

“딱히 어디서 배운 것은 아니고요. 예전에 ‘설득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이른바 판매왕들이 마지막에 하는 방식이 다음을 기약하는 모습이었어요. 그리고 관계라는 것이 작은 허용을 시작하면 더 큰 허용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았죠. 더구나 올해 홍보만 하고 끝낼 일이 아니니 내년을 위해서라도 관계의 지속성은 유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 이제 학교로 갑시다. 다른 조가 많이 늘려 왔으면 좋겠네요.” 

고개를 끄덕이며 발길을 돌리는 안미연과 그녀의 다소 축 처진 어깨를 바라보며 주차장을 향해 걷고 있는 박이경 두 사람 다 생각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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