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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Oct 22. 2023

홍보 시작

“부장님 안녕하세요? 괜찮으시면 학교 방문해서 학교 홍보물과 학과 안내 책자 좀 전달해드리고 싶습니다.”

S 중학교 3학년 부장과 통화를 한 박이경은 그래도 방문 허락을 해준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 코로나 상황은 학교 홍보에도 여파가 왔다. 대면 접촉이 제한되는 상황에다가 중 3의 경우 매일 등교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만남 자체가 너무 힘든 상황이었다. 

파트너인 이 선생에게 메신저부터 날렸다. 홍보 출장 시간 확보를 위해 수업 교환을 하려면 서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다른 홍보 조와 시간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한 시간에 출장을 못 나갈 수도 있었다.

수업계에 수업 교환을 요구하기에 앞서 이경은 자신의 수업 일정도 살폈다. 다행인 것은 출장 일은 수행평가가 없어서 약간의 유동성은 있는 편이었다.  

“오 선생님 부탁 하나 하죠. 다음 주 월요일 오전 2교시 수업 교환해야 할 것 같아서”

“왜요? 홍보 가시나요?”

“네, 미안하지만 바꿔주시면 목요일 2교시 제가 하죠.”

언제나 반갑게 응대해 주는 오 선생은 고마운 사람이다. 사실 수업 시간 하나 바뀌는 것에도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많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정해진 수업 시간표대로 계획을 세우고 있다 보니, 예외 상황에 대한 거부감은 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출장이 유난히 많은 2학기에 안 된다는 답변을 받으면 인간인지라 서운함을 느낀다. 

새로 부임한 이 선생과는 처음 홍보를 하기에 먼저 챙길 것이 많았다.     

“이 선생님은 이런 업무가 낯설지요?”

“예, 제가 예전에 근무한 학교에서도 입시홍보 업무가 있기는 했으나 이곳처럼 학교 전체 선생님이 움직이지는 않았어요. 더구나 이렇게 먼 거리까지 홍보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S 중학교가 좀 멀긴 하죠? 학생들이 버스로 1시간에서 1시간 30분까지 걸리니 힘든 거리인 것은 분명한데, 학생들이 오고 있기도 한 상황이니 안 갈 수도 없는 곳이죠.”

출근 시간을 피한 탓인지 S 중학교로 가는 길은 막힘이 없었다. 하지만 자가용으로도 거의 50분이 넘어서 도착한 S 중학교는 학급 수가 많지 않아서 그런지 참 아담하다는 느낌이었다. 

미리 연락하고 온 탓에 3학년 부장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3학년 부장 교사는 하던 컴퓨터 작업을 멈추고 이경 일행을 교무실 옆 상담실로 안내했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전화로 연락드린 Hn 고 홍보 담당 교사 박이경입니다.” 

박이경은 인사와 함께 명함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유영석입니다. 먼 거리까지 오셔서 힘드시겠어요?” 하지만 워낙 소규모 학교라 지원자가 많이 없어 괜한 걸음 하신 것 아닌지. “

 순간적인 반응이고 형식적인 인사말일 수도 있지만 3학년 부장과 맺는 첫 관계가 중요하기에 박이경은 최대한 신경을 썼다. 

“아닙니다. 부장님 이렇게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3학년 부장의 협조 여부가 홍보 결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에 조심스럽기도 했다. 

홍보 다니다 보면 늘 맞이하는 형식적인 응대에 가까운 반응이었지만 박이경은 애써 감정을 숨긴 채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 그러시죠? 저도 중학교에 근무했었기에 부장님 마음 잘 압니다. 특성화고에 대한 부모님들의 이해도가 많이 없으시다 보니, 권해드리기도 힘드시겠어요.

더구나 올해 상황이 너무 어려워 학생이나 학부모 대상 진학 설명회 마련도 힘드시죠?”

박이경은 소극적으로 응대하는 3학년 부장의 호응을 얻어내고자 약간 톤을 높여 말을 이었다. 그리고 들고 간 홍보 안내서를 펼치면서 예년에 하던 중학생 초청 입학 설명회를 진행하기 어려운 점을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 방문의 목적인 온라인 입시 설명회와 중학생 대상 학과 행사에 대한 소개를 이어갔다.

“본교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홍보할 기회를 마련하고자 온라인 진학 상담과 홍보 전용 홈페이지, 그리고 상담 카톡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와 관련한 내용이 담긴 학과 홍보 책자와 기념품 등을 마련해 왔습니다. 학생에게 잘 전달 부탁드립니다.” 

박이경은 준비해 간 홍보 책자와 중학생 참여를 높이기 위해 마련한 대회 요강이 담긴 포스터, 그리고 기념품 등을 건넸다. 하지만 3학년 부장은 내용물을 살펴볼 의향이 거의 없어 보였다. 그저 빨리 상황을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네, 두고 가시면 담임 선생님들을 통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박이경은 홍보 책자에 실린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싶었으나 상대의 반응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으로 느껴졌다.

“부장님 다른 많은 일로 바쁘시겠지만, 학생들이 조금 더 생각하고 자기 진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한 번 더 권해주기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언제라도 연락을 주시면 저희가 방문해서 상담도 해드리겠습니다.”

“네네, 그러세요.”

조금 성의 없어 보이는 응대에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다음 기회를 위해서라도 만남의 여지를 두어야 했다. 

“원서 쓸 무렵 다시 방문할 수 있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학교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아이가 있으면 메신저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불과 10분도 머물지 못하고 밖으로 나온 박이경은 동행한 이 선생에게 멋쩍은 웃음을 건넸다. 

“애쓰셨습니다. 이런 분위기인지 몰랐네요.”

다음 학교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이 선생은 약간 어두운 표정의 경석이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이 선생은 운전하면서도 박이경에게 안쓰러운 눈빛을 건넸다. 자신을 바라보는 이 선생의 시선을 인지한 박이경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괜찮아요. 저도 처음에는 마치 물건 팔러 간 외판원이 문전박대당하는 기분이 들어 힘들었지만, 지금은 익숙해져 그러려니 하니까 마음이 아주 괴롭지는 않아요.”

박이경이 신경 쓰인 것은 오히려 같이 홍보 간 이 선생이었다. 중학교 3학년 부장 입장에 서 보면 희망 학생이 없는 특성화고를 상대하는 일이 귀찮은 업무일 수 있다. 그러기에 조금 전과 같은 응대가 자연스러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응대를 처음 겪을 때 받는 기분은 결코 좋을 수가 없었다. 이런 대우받으려고 교사가 된 것은 아니니 말이다. 학교생활하면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모든 학교가 다 이런 것은 아니에요. 다음에 방문할 학교는 3학년 부장님이 희망 학생들을 모아준다고 했으니, 조금 다른 분위기를 느낄 거예요.”     

학생들 점심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M 중학교는 S 중학교보다는 규모가 조금 더 큰 학교였다. 시끌벅적한 급식실을 지나 진로상담실에 들어섰다. 주차하면서 전화 연락을 했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아 박이경은 약간 당황했다. 휴대폰을 꺼내 다시 전화해야 하나 생각할 때, 한 학생과 함께 3학년 부장이 들어섰다.

“죄송해요. 밥 먹는 아이 데리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이 아이가 Hn고에 관심 있는 아이예요. 안내 부탁드립니다.”

3학년 부장은 격식을 차리기보다는 학생상담을 실질적으로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3학년 부장이 나간 후 아이와 마주한 이경은 우선 홍보용 선물로 아이와 교감을 시작했다. 재학생들이 디자인한 그립톡과 키링을 건네주었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이는 기분 좋은 반응을 보였다. 

“우리 학교에 대해서 들어 본 적 있니?”

“네. 친구 언니가 거기 다녀요.”

박이경은 학교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아이를 만나서 너무 반가웠다. 더구나 M 중학교는 거리에 대한 부담감이 앞서는데, 이미 다니고 있는 사람을 알고 있다는 말에 그에 대한 걱정도 다소 덜어낼 수 있었다. 홍보하다 보면 성적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특성화고를 찾거나 친구 따라가고자 한다고 할 때, 제일 답답하다. 하지만 이렇게 스스로 찾아주는 아이와 이야기하는 것은 편했다.

“그럼 우리 학교에 무슨 과가 있는지도 잘 알겠구나. 혹시 마음에 두고 있는 과가 있니?” 

“네, 저는 미디어콘텐츠과에 관심 있어요. 유튜버가 제 꿈이라서요.”

“그렇구나. 경기도에서 그 분야가 특화된 학교는 우리 학교뿐이지. 우리 학교는 AF TV와 업무협약을 맺고 다양한 현장 체험 행사를 운영하고 있어. 이 자료가 올해 학생들이 참여한 프로그램 내용이야.” 

학교 안내서와 학과 홍보지에 나온 행사를 소개하는 내내 아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혹시 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해 줄래? 더 설명해 줄게.”

“사실 대충 학교 홍보영상 홈페이지에서 봐서 알아요. 근데, 엄마가 멀리 있는 학교 가는 것에 대해 반대하셔서…….”

설명을 들을 때와는 달리 아이의 목소리에 약간 힘이 없어 보였다.

“그렇구나. 너의 어머니는 네가 먼 거리를 통학하는 것에 대해 걱정이 많으실 수밖에 없어. 그 마음을 네가 이해해야지.”

고개는 끄덕였지만 아이는 고민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어머니랑 학교 한번 방문해 보지 않겠니? 아무래도 어머니가 학교에 오셔서 거리도 확인해 보시고 이것저것 궁금하거나 걱정되시는 부분에 대해 이해를 하시면 네가 설득하기 편할 것 같구나.”

“그런데 엄마가 일하셔서 평일에 시간이 안 되셔요.”

“괜찮아. 주말이나 일요일에도 네가 방문한다고 먼저 약속하면 선생님이 안내해 드릴 수 있어. 그리고 정말 시간이 안 되시면 전화로 상담하셔도 되고. 오늘 집에 가서 학교 소개 자료 먼저 보여드리고 관심을 조금 가지시면 연락해 주렴. 너도 네가 선택한 학교가 어떤 모습인지 미리 한번 와 보는 것이 좋겠지?”

아이는 처음보다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네, 말씀드려 볼게요.”

“아 참, 네가 학교와 보란 것은 너의 결심도 한 번 확실히 다지라는 의미도 있어. 멀리 다닐 학교에서 네가 어떤 꿈을 꾸고 무엇을 실천해 갈지 말이다. 학교생활이 다 재미있는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이렇게 또 한 아이와 상담을 마쳤다. 

“박 선생님 애 많이 쓰셨습니다. 그 학생 우리 학교에 지원할까요?”

“그야 확신할 수 없지만, 아이가 오고 싶어 하니 가능성은 있어 보이네요. 부모 입장에서는 멀리 있는 학교를 보내기가 싶지 않지만 요즘 아이 이기는 부모는 많지 않아서 …….”

이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렇게 한 명씩 모은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니 반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달리 보이네요.”

“그렇죠. 다른 선생님 말씀으로는 학생과 상담 전화 주고받을 때, 자기의 모습이 연애 시절 아내 대할 때보다 더 신경 쓴다는 말도 하더라고요.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는 것이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 선생은 말없이 운전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음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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