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영 Oct 22. 2023

학부모 민원

“박이경 선생님, 학부모 민원 전화인데, 받아 보시겠어요?”

느닷없는 전화에 행정 실무사로부터 수화기를 넘겨받은 박이경은 약간 당황한 감정으로 임했다.

“네, 전화 바꾸었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박이경은 수화기 너머로 들여오는 첫 음성에 상당한 노여움이 담겨 있음을 직감했다. 

“아니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은 것으로 시험을 보시면 어떻게 하세요?”

“네? 어머니 2학기 지필고사는 아직 3주가 남았는데, 무슨 시험을 말씀하시는지?”

“아니 수행평가라나 뭔가 아이가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고 평가 문제 내서 성적이 안 나왔다고 전화 왔는데 아닌가요?”

“무슨 과목을 말씀하시는지?”

“2학년 문학이요”

“문학 수행평가는 이미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는데” 

“문학 시험에 배우지 않은 것에서 나왔다는데, 가르치지 않고 문제를 내면 어떻게 하나요?”

앞뒤 없이 따지시는 학부모님의 태도에 약간 무례함을 느꼈다. 하지만 왜 이런 전화를 하시나 생각해 보니, 경석이 담당한 문학 교과에서는 다음 주 다시 원격 수업을 들어가는 것 때문에 이미 시행한 수행평가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을 각 반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아마도 어느 반에서 자신의 수행평가 점수를 확인하고 불만을 품은 학생이 엄마에게 전화한 탓인 듯했다. 

박이경은 우선 자초지종을 밝혀야 하겠기에 설명하기 시작했다.

“수행평가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이번 문학 2학기 수행평가는 소설 이론을 배운 후 그 이론을 낯선 작품에 적용할 수 있는가를 물어보는 평가입니다. 평가를 위해서 먼저 일반 소설 이론과 고전소설 구성을 학기 초에 학습했고, 낯선 작품을 가지고 배운 이론을 적용하는 수행평가를 하였습니다. 평가 내용 자체가 낯선 작품을 분석하는 것이라 배운 소설로 할 수는 없었고 수행평가 방법을 학생들이 미리 연습해 볼 수 있도록 구글 클래스룸에 안내문도 올렸고, 심지어 수행평가 예시 활동도 진행했습니다. 확인해 보고 싶으시면 아이의 수업 방에 접속해 보시면 활동 내용이 다 등록된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럼 아이가 이유 없이 항의한다는 것인가요?”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어머님 혹시 몇 반이신가요?”

“그런 것은 말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자신은 항의해도 되지만 조금이라도 피해를 받기 싫어, 아이의 신분은 안 밝히고 싶은 모양인 듯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문학교과의 경우 여러 선생님이 가르치시다 보니 자세한 설명은 해당 선생님이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누구신데요.” 

”저는 2학년 5반과 8반 수업하는 박이경이라고 합니다.”

 “그럼 아이가 없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인가요?”

자신은 신분을 밝히지 않는 학부모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이야기한다는 것이 기분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학부모를 이해시키는 일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반을 말씀 안 하셔서 확실히 확인해 드릴 수는 없지만, 제가 수업 들어가는 반의 경우 평가를 진행한 후, 그 평가 문제에 대한 채점 기준과 정답을 알려 줬고 학생 확인 작업을 거친 후, 그 결과에 대한 성적을 아이들에게 통보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이의 여부를 물었을 때, 문제를 제기한 아이가 없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전화를 건 학부모는 박이경의 설명을 이해하고 수용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처음보다 다소 목소리 톤이 낮아진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박이경은 수행평가 진행과정과 확인 과정에 자신이 있었기에 자세한 상황은 아이가 귀가한 후 확인하시고 그래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시면 정식으로 문제 제기하시기 바란다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쉰 박이경이 고개를 들자 선생님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고 있음이 느껴졌다. 마치 커다란 실수를 범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먼저 눈이 마주친 수학과 박인수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학부모에게 했던 설명을 반복하기 싫었지만, 다시 반복해 설명했다. 그러고 나니 황당한 느낌이 더 크게 다가왔다. 

“이제 별 민원 전화도 다 받아야 하나 봐요. 수능 문제 같은 경우 배우지 않은 작품에서 문제가 나온다는 기본 상식도 없는 학부모는 아닌지?”

윤지수도 마시던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거들었다. 

“학교를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아니 아까 옆에서 듣자 하니 자기 신분은 밝히지 않으면서 선생님 이름은 묻던 데 맞죠? 참 황당하지 않아요?” 

“구글 클래스룸에 평가 내용 안내 미리 올려놓지 않으셨으면 크게 항의받을 수 있었겠어요. 참”

주변의 선생님들이 너도나도 한 마디씩 거들고 있었지만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학교에 대한 부모님의 신뢰와 믿음이 없다는 증거란 생각에 이경의 입맛은 썼다. 박이경이 교직을 시작하던 시기 부모들은 아이가 문제를 제기하면 우선 자신의 아이가 부족한 점을 먼저 찾았지만, 요즘은 오히려 자녀의 잘못을 보기에 앞서 학교 탓부터 하는 경향이 많았다. 더구나 한동안 학생 인권만 강조된 탓인지 아이들은 자신의 권리 찾는 일에는 민감하지만, 자신이 갖추어야 하는 스승에 대한 기본예절은 너무 안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배경에 이런 학부모님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박인수가 기분 풀라고 건네준 커피를 받았지만 금방 입에 넣기 힘들었다. 수행평가 점수 1~2점에 목숨 걸기보다는 삶을 사는 참 지혜를 갖추어 나가라고 늘 말하고 있었지만, 학부모나 아이들이 어디로 향해 달려가려고 저러고 있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얼마 전 수업 시간에 소설 '나상'을 수업하면서 ‘모자란 사람’이 과연 누군가에 대해 나눴던 일이 떠올랐다. 그 소설에는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모자란 형'이 나온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모자란 사람 취급받던 형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의 동생에게 밥을 먹이려고 애쓴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동생을 살릴 것을 생각하는 형의 최후를 함께 읽으며 아이들에게 형이 과연 모자란 사람인가 생각해 보자고 했었다. 

세상의 잣대만을 쫓아가는 상황이 아니라 인간답게 사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자고 강조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박이경이 강조하는 내용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시험 문제가 어떻게 출제되냐는 질문을 했었다. 그 순간에 답답함이 밀려왔었다. 그때도 오늘도 박이경은 자신이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 것을 잘 가르치기 쉽지 않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그래도 그 길을 포기하고 물러날 수 없기에 힘겨워도 버티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을 맞이하고 보니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이놈의 수행평가 만든 놈이 누구인지? 자기가 와서 해 보라고 해야 한다니까요. 교사들에게 성적 부여에 대한 완전한 권한도 주지 않으면서 자꾸 제도만 만들면 무슨 소용이에요? 결국 시작도 끝도 수능 입시 위주로 가는 상황에…….”     

같이 문학을 가르치는 김현희가 소식을 전해 듣고 와서 자신이 당한 일처럼 열을 내었다. 평소 쌓인 것이 많아 보였다. 

“지필 평가처럼 일률적으로 나올 수 없는 성적에 어떻게 객관성을 확보하나요? 교사를 믿고 맡겨줄 분위기 마련은 안 해주면서 문제만 생기면 다 교사 탓이니 뭔가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해도 다 소용없다니까요.”

김현희는 성적에 대한 민원이 발생하면 학생의 과제 수행 과정에 평가를 한다는 본래의 취지는 잊어버리고 성적 산출의 객관성과 공정성만 강조하는 행정처리 방식에 대한 문제를 말하고 있었다. 

“제가 지난번에 건의드렸잖아요? 선생님 방식의 새로운 시도에 아이들이 잘 따라올 수 없을 것 같다고.”

위로해 주려고 던진 말이겠지만 스스로 판 무덤에 빠진 사람 취급당하는 기분이 들어 박이경은 더욱 가슴이 아팠다. 

박이경은 작품을 스스로 읽는 눈을 키워주고 싶었다. 교과서나 자습서에 담겨 있는 해석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배운 이론을 바탕으로 낯선 작품에서 학생이 느끼고 의미를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란 것이다. 독자의 수준에 따라 같은 책에서도 얻을 수 있는 감동의 차이가 있음을 몸소 느껴보길 바란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으면 뭐 해요?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걸어주는 꼴이라니까요.”

“선생님 말씀 듣고 보니 선생님도 저 때문에 많이 힘드셨을 것 같네요. 미안해요. 제가 고집을 피워서…….”

박이경의 말에 김현희는 순간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 

“아니 선생님 저는 그냥 선생님이 힘드실 것 같아서 해 본 말인데…….”

박이경은 이 상황을 빨리 정리하고 싶었다. 

“아니에요. 이번 수행평가는 설계가 잘못된 면이 있었던 것 같네요. 충분한 준비도 부족한 것 같고 다음에는 우리 같이 보완하죠.” 

김현희는 다음 말을 잇기가 머쓱해졌는지 우물쭈물한 태도를 보였다.

“선생님 제가 3학년 수업 들어가야 해서 이 문제는 다음에 더 이야기하죠.”

상황 정리를 위해 급히 교무실을 벗어나 3학년 교실로 향하는 박이경의 발걸음은 고뇌의 무게가 더해져서 인지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전 08화 시험불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