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어쩌면 좋아요? 너무 힘들어요. 잠도 잘 오지 않고 뭘 해도 손에 잡히질 않아요.”
눈이 심하게 충혈된 가희는 어깨까지 들썩이면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박이경은 역사 교사 지은의 손에 이끌려 온 가희가 한동안 울도록 가만히 기다려줬다. 국가직 지역인재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가희가 2주 앞으로 다가온 시험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남들이 흔히 말하듯이 열아홉의 나이에 맞이해야 하는 큰 시험 앞에 떨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야 또 성공할 수 있다. 이렇게 쉽게 말할 수도 있지만 몇 년간 공무원반 지도를 해온 박이경은 가희가 느끼고 있을 압박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가희의 어깨 떨림이 어느 정도 잦아들었을 때 박이경은 말문을 열었다.
“가희야, 괜찮아. 네가 너무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떨리는 거야. 네 선배도 다 그랬어.”
가희가 느끼고 있는 불안감이 당연함을 강조해 주는 말로 시작했지만, 지금 가희는 그런 위로가 가슴으로 와닿지 않는 것 같았다.
“너무 불안해요. 책을 읽어도 집중도 안 되고 자꾸 부정적인 생각만 들어요. 지금 어떤 공부를 해야 하나요?”
가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책 한 권이 아니었다. 시험 날짜가 다가오고 있는 그 상황 자체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박이경은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스스로 극복해 내야 하는 문제이다. 하지만 우선 마음을 못 잡고 2주를 흘려보내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기에 가지고 있던 책 중 한 권을 주었다. 학습용이라기보다는 마음 안정제용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었다.
“가희야. 이 책을 볼 때, 새로운 내용을 공부해 가기보다는 그동안 내가 해 온 것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봐. 그리고 혹여 모르고 있는 사실이 나온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마. 네가 모르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야. 그러니 시험에 안 나오겠지? 그러니 그 문제 잡고 절대 고민을 하지 마.”
박이경은 뭐라 대답도 하지 않는 가희의 눈망울 너머 불안을 잠재울 특효약이 있다면 빨리 사서 먹이고 싶었다.
“또, 선생님과 약속하자. 긍정적인 생각만 하기로.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이 다짐으로 하루를 시작하기로. 예전에도 내가 많이 말했었지. 말에는 힘이 있다고. 그러니 꼭 스스로 말해. 할 수 있다고. 그리도 힘들면 카톡 해. 너 전용 과외 선생님 있으니까.”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올 때보다는 많이 진정된 것인지 가희의 목소리의 톤이 약간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박이경은 자신이 준 책을 받아 가슴에 품고 가는 가희의 뒷모습이 안쓰럽기만 했다. 해마다 마음 여린 아이들이 있었다. 학교에서 본 모의고사 성적은 최상위권이었지만 시험장에 가서는 그동안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성적을 내는 아이들이 있었다. 결과로 말해야 하는 시험 앞에 무너지는 아이들, 그들에게는 열아홉의 나이에 너무 힘든 시련의 시간이다.
“가희 저 녀석 실수할 것 같아 많이 걱정이에요. 그렇죠?”
말없이 박이경과 가희의 모습을 지켜보던 지은이 말을 이었다.
“네, 유난히 마음이 여린 녀석이라 시험장에 보내기 제일 불안한 녀석이에요. 어쩌면 올해 아이들 모두가 불쌍해요. 다른 해에 비해 학교에 나온 시간 자체가 부족해서 돌봄을 더 못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코로나 19로 인해 1학기 방과 후 수업도 시행되지 못했고 야간에 공무원반 아이들 대상의 자기 주도 학습 시간 확보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하긴 그렇기도 하겠네요. 하지만 이 상황이 우리 아이들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모두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거고. 오히려 자기 주도력이 있는 아이들 같은 경우, 학습할 시간 확보가 더 많이 되었을 것도 같고, 결국 공부는 자기 혼자 하는 거니까”
지은의 말이 틀린 것은 없다. 하지만 늘 무언가 한 가지 부족한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고 있기에 느끼는 안타까움인 것이다.
지역인재 9급 시험이 도입된 후 학생들과 만나면서 계속해온 고민이기도 했다. 공무원반 운영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었고 교사들이 좀 더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혼자서만 모든 문제를 풀어 갈 수 없는 일이고 그러기에 학교 상황은 너무 많은 것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가희가 그래도 지은 선생님을 잘 따르니, 잘 다독여 주셔야 할 듯해요,”
“그렇죠. 안 그래도 저랑 만나서 30분 정도 이미 울었어요. 국어 공부가 너무 안 된다고 해서 선생님께 데리고 온 것이에요.”
지은의 표정에도 가희에 대한 걱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도 가희 녀석은 복이 있네요. 선생님처럼 아이의 고민 함께해주시는 선생님을 만났으니까요. 힘드시겠지만 함께 2주 견디어 주셔야겠어요.”
“제가 뭐 할 것이 있나요? 저 녀석이 이겨내야 할 일인 것이죠.”
지은은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늘 아이들 옆에서 고민 상담사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기에 박이경은 지은의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자기와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 주는 것도 큰 힘인 것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그 부분이 선생님의 큰 장점인 것, 잘 알고 있어요.”
“제가 뭘요. 그냥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있을 뿐이에요.”
하지만 그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온전히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이경은 잘 알고 있었다.
두려움 앞에서 콩닥콩닥 뛰는 아이들의 심장을 가슴으로 안아 다독여 줄 수 있는 교사, 정에 굶주린 아이들과 함께하며, 관심과 격려로 정을 나누어주는 지은과 같은 선생님이 학교에는 소중한 사람인 것이다. 시험장에 가는 아이들의 콩닥거리는 심장보다도 더 크게 시험장 밖에서 콩닥거리는 가슴을 지닌 그런 교사를 우리는 필요로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