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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Oct 22. 2023

업무분장

 교무부장 박이경은 점심 식사 후 잠시 시간을 내어 운동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운동장 한편으로 길게 늘어선 은행나무들은 잎들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하늘을 향해 뻗치고 있었다. 그동안 자신이 무심히 잊어왔을 뿐, 나무는 나름의 일정에 맞추어 뜨거운 여름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리고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열매에 이어 노랗게 물든 나뭇잎을 떠나보내며 저렇게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벤치에 홀로 앉아 운동장을 둘러보는 박이경에게 이 교정은 스산한 바람과 함께 휑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매년 그랬지만 올해는 차분히 가을을 느낄 여력도 없었고 상황도 아니었다. 교무부장이라는 직책의 무게 때문인지 박이경은 한해를 마감하는 12월을 준비하는 이 시점에 자신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버려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신입생 모집이라는 것에 모든 것을 집중했던 10월과 11월이 너무 힘들게 지나갔기 때문이지만 꼭 그것 때문만인 것 같지는 않았다. 다 늦게 가을을 타는 것일까? 그저 혼자 쓴웃음도 지어봤지만, 왠지 뻥 뚫린 것 가슴이 아프게 느껴질 뿐이었다.

학교는 학기말 고사 준비를 위한 출제와 수행평가 결과 처리로 분주함이 이어지며, 어김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생활기록부 3차 연수 준비와 학교 자체평가 설문지 작성, 3차 추경 예산 심의 준비와 학교 운영위원회 준비 등 할 일은 넘쳐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움직여주지 않고 있었다.

“박 부장님 여기서 혼자 뭐 하세요?”

생활 인권부장 김경하가 말을 걸어왔다. 박이경은 그냥 혼자 있고 싶었다. 누군가와 말을 걸기 싫어 이렇게 외떨어져 나온 것인데, 이 순간도 방해받고 말았다.  

“아, 뭐 그냥 밥 먹고 바람 좀 쐬고 있었어요. 어디 가시나요?”

“아뇨. 가긴 어디를 가겠어요. 답답해서 그냥 교무실에서 나왔어요.”  

김경하의 학교생활도 녹록하지 않았다. 쉼 없이 발생하는 학생 사안 처리와 코로나 19 방역 관련 업무, 학생의 생활지도 등 받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다. 

“혹 또 사안이 발생했나요?”

얼마 전 타 학교와 연계된 학교폭력 사항 때문에 분주히 움직이던 모습을 본 적이 있어 걱정이 앞섰다. 

“아니요. 그런 것이 아니라 교무실에서 내년 업무분장 이야기를 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다 답답해서 나왔어요.”

“벌써 업무분장 이야기를 하시는가 봐요. 하기야 그럴 때가 되긴 했네요.”

“사람들이 다 그럴까요? 누가 봐도 아닌데, 자기 기준이 마치 정당한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꼴을 보기가 싫네요.”

김경하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었지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박이경은 알 것 같았다. 학교에서 모두가 맡기 싫어하는 자리 중 하나가 바로 생활 인권부장인데, 그 앞에서 일이 편하고 안 편하고를 따지고, 자기 일이 제일 힘들다는 식의 모습에 환멸감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글쎄요. 가치의 기준이 달라서 그렇겠죠. 내가 생각하는 백과 남이 생각하는 백이 다르다는 것을 전 요즘 느껴요.”

“백의 기준이 달라요?”

“내 생각에는 오십도 안 되는 일이 그들에게는 백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 모습 많이 보지 않나요?” 

김경하는 박이경이 말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학생 사안을 대하는 담임 선생님의 태도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어떤 담임이 열 가지 정도 하는 일을 다섯 가지도 안 하고서도 너무 많은 일을 한 것처럼 말하고 다니는 경우가 흔했다,

“그러하네요. 오십이 백인 사람에게는 구십이나 백이 기준점일 수 없으니 그렇게 행동하겠죠. 그런데 그것을 언제까지 봐주어야 할까요?”

김경하의 질문에 박이경은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 그 역시도 그 질문에 답을 못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이 너무 바쁠 때는 앞뒤 안 가리고 일만 하며 달려왔다, 하지만 일을 끝낸 시점에 이르면 지치고 상처받은 자신을 다독일 수 있는 명분이 자꾸 사라지고 있었다. 

“내년은 어떻게 하실 것인가요?”

김경하와 박이경 모두 부장 3년 차였다. 교원 인사 규정에 3년 보직을 마치면 다른 업무를 신청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하실지 결정하셨나요? 전 아직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좀 쉬고 싶은 생각이 앞서네요.”

김경하는 박이경의 말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았다. 교무와 홍보까지 맡아 지난 3년간, 거의 방학도 없이 생활해 온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저 역시 그래요. 그렇지만 얼마 전 교장 선생님을 뵈었는데, 다시 1년 더 해줄 수 없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선생님은 아직 안 들어가셨지요? 교장 선생님 말씀으로는 가장 말 꺼내시기 힘든 부서를 제일 뒤에 부르실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박이경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공교롭게도 학교에서 핵심 부서에 해당하는 교무, 연구, 교육과정, 생활 인권, 직업 부서장들이 모두 3년을 보낸 셈이니 내년은 규정대로라면 대규모의 인사이동이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관리자는 중요 부서의 부서장을 한 번에 다 바꾸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생님은 뭐라 답하셨어요?”

“저야 그만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그리고 우리 학교 같은 경우, 일이 사람을 따라가는 경우가 너무 심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상대적인 박탈감도 심했고요.

업무분장표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아요? 상당한 기간과 노력이 필요한 업무는 한 줄로 기록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30분이면 끝날 일을 여러 줄로 기록하고 있는 경우도 많아요.”

그랬다. 업무분장표의 업무 내용을 보다 보면. 각 부서장의 성격 탓도 있겠지만 각 부서의 기획계의 경우 부서 제반 업무라는 단 한 줄의 기록이 감당해야 하는 업무량은 다른 부서의 구성원 두 명이 감당하고 있는 업무의 두 배. 아니 세 배의 양이 되기도 하는 경우도 흔했다. 상대적으로 다른 한 부서의 업무계는 열 줄 정도 분량으로 쓰인 업무가 특정한 시기면 끝나는 경우도 많았다.

“부장님도 강하게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부장님 성격대로 또 일을 받으시면 너무 힘들어져요.”

박이경은 자신만 지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경하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 눈에 들어오는 빈 운동장을 바라봤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본인의 머리는 더 많은 생각으로 복잡해짐을 느꼈다. 

해가 갈수록 학교에서 교사가 담당해야 하는 새로운 일은 증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육이란 것이 기존의 것을 없애고 갈 것은 많지 않기에 늘 하던 일에 또 다른 새로운 일이 중과되는 구조의 연속이었다. 

이런 가운데에서 또 교사처럼 관성에 찌든 조직도 드물었다.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면 제일 먼저 오는 항변이 이전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답변이다. 항상 변하지 않으면 안 되고 누군가는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하면, 다 좋은데, 자신은 빼고 하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 것이다. 

박이경은 자신이 3년간, 새로운 학교 문화의 조성의 기본이 되는 각종 규정과 위원회 구성과 세부 규칙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겪은 일들이 떠올랐다. 의견을 모으고 제도를 정비하였지만, 그것을 실천으로 이어나가는 것은 보통 버거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내년에는 혁신학교 지정 1년 차 사업도 해야 한다. 한 마디로 학교를 변혁의 소용돌이로 몰아가야 한다. 그 주무를 교무, 연구, 교육과정, 생활 인권부가 나서서 주도해야 한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그냥 모른 척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자신이 힘들게 해 온 일에서 스스로 도망가는 꼴이 되는 것 같아 답답했다.

선배들을 탓하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던 자신이 그 선배들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다. 

 박이경은 학교 바꾸기의 첫걸음이 업무 분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3년간 겪은 경험으로 내린 결론은 그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이었다. 누구도 자기 일을 늘리고 싶지 않기에 업무 부서 조정과 그에 따른 업무분장 회의는 해마다 치열한 공격과 방어의 연속이었다. 입바른 소리를 먼저 한다는 것은 그 일을 떠안는 것처럼 되어버리기에 누구도 쉽게 나서지 않으려고 했다. 부장들 간에도 업무 조정을 할 때는 서로 자신의 부서 인원은 지키면서 업무는 적게 가져가기 위해 싸우다 보면 왜 부서 조정을 시작했는지 원래 목적이 퇴색해 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도 학교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이 앞섰다. 그리고 바꾸기 위해서라면 치열하게 싸우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 소용돌이 속에 자신이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 생각이 많아졌다. 교장 선생님이 부르신다면 어떤 말씀을 올려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풍요로운 가을 풍경을 가슴에 담아내기가 이처럼 어려웠다. 하지만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저 운동장을 가득 채울 아이들의 웃음 가득한 몸짓들을 위해서 또 누군가는 움직여야 하는 것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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