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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 Mar 22. 2024

읽고 생각하고 씁니다_

아무것도 아닌 나. 그래서 자유로운,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렇다고 글을 아예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을 작은 노트에 두서없이 써 내려가곤 했다. 다만 그 날것의 글들을 다듬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대신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읽었고 많이 생각했다. 방학 중인 아이를 돌보고 살림을 하면서 틈틈이 책을 읽었다. 어떤 이는 감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읽고 쓰던데, 나는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읽고 또 읽었다. 그러나 책의 내용에 몰입하는 동안 나는 더 많이 나에 대해 생각했다.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다른 이의 이야기를 찾아 읽었으나 결국에는 늘 나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랬다. 어쩌면 나는 나에 대해 궁금하고 알고 싶어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며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렇다. 나는 같은 직장에 세 번이나 입사했고, 결국 세 번 모두 퇴사했다. 끝내 마음의 확신이 서지 않아 갈팡질팡하며 억지로 쥐어짜 낸 용기였으나 결국엔 정말 이럴 줄 몰랐냐며 채근하듯 나는 끝내 적응하지 못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곳이었다. 나만 순응하면 되었다. 그러나 나는 나날이 나를 잃어갔다. 내가 좋아했던 나의 일이 점점 싫은 일이 되어갔다. 퇴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점점 이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앞뒤 따질 것이 아니라 지금 멈추어야 한다는 내 마음의 소리를 이제는 들어주어야 했다. 입사보다 퇴사는 더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곳을 떠났다. 완전히.


며칠 전 대학원 친구에게서 정말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내가 일하기 전에 일한 전임자이기도 했던 친구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다가 나의 근황도 이야기했고 격려와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많이 위로가 되었다. 친구 역시 다른 대학에서 2년간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었고 그곳에서 5년을 더 일하다가 결국 퇴사했다고 했다. 고생한 것을 인정받아 정규직으로 전환된 그 친구에게 축하를 해주었던 기억이 있는데, 친구가 결국 퇴사를 했다고 해서 무척 놀랐다. 연봉은 나쁘지 않았으나, 인력을 더 뽑지 않고 자꾸 추가되는 업무에 못 살겠더라고 했다. 대학에서 일해봤기에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너무 잘 알았다. 그리고 친구도 상담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또 한 번 친구가 어떻게 일했으며 왜 그런 마음을 느꼈을지 잘 알 것 같았다. 친구는 대학원에 다닐 적부터 청소년 상담을 하고 싶어 했는데, 다시 꿈을 좇고 있었다.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이지 내 주변 사람들은 왜 이렇게 멋진 사람들이 많을까? 이런 친구들 덕분에 나는 괜히 위로받고 힘을 얻는 기분이 든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지금 상담사가 아니다. 상담 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아직도 내가 다시 상담 일을 하게 될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저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읽고 싶어 마음껏 읽었고, 쓰고 싶지 않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쓰고 싶어서 쓴다.  마음이 다시 뭔가를 하고 싶다고 때까지 기다려 주려고 한다.  


대학원 졸업 후 한창 일을 하고 싶었을 때, 타지로 시집을 왔다. 그렇게 해오던 공부와 수련이 멈추었다. 이내 아이가 생겼고 출산 후 아이를 키우면서도 늘 뭔가에 쫓기듯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항상 있었다. 곧 상담 일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하고 싶었던 상담을 정말 원 없이 했다. 행정 일은 분명 힘들었으나 돈을 받으며 일을 배울 수 있었다. 딱 거기까지만 생각하려고 한다. 나를 미칠 만큼 힘들게 했던 사람이나 일들이 아닌 고맙고 좋았던 점만 기억하려고 한다.

오늘은 오전에 센터장님이 잘못 걸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무척 어색하게 안부를 묻고 금방 끊었다. 일로 맺어진 관계는 이토록 가볍다. 여전히 센터를 생각하면 괜히 긴장되고 떨린다. 아직도 센터 사람들이 종종 꿈에 나온다. 직장 동료는 학교에서 만난 친구가 아니기에 내겐 어렵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꽤 거리를 두었다. 그랬기 때문인지 그만둔 이후로 사적인 안부 연락은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이 오는 것보다 홀가분하고 좋은데 왠지 쓸쓸하다. 내가 끝내 적응하지 못했던 건, 내가 나를 버리고 그 사람들 안에 완전히 녹아들어 가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지금껏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닌, 어떠한 역할들로 존재를 증명받고 싶었던 같다. 이것을 깨달은 지금 나는 나다운 일상을 살아보려 시도 중이다. 나다운 게 뭘까? 이제야 나는 내게 계속해서 묻고 답을 찾으려 하고 있다. 그래서 읽고 생각하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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