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선생님께서 상담 날짜 내일로 해도 되냐고 물어보셨어요."
학기초, 학부모 상담주간이다. 일정 변경 때문에 아이에게 물어본 모양이다.
"선생님께서 혹시 엄마 직장 다니시느냐 해서 '병' 때문에 회사 쉬고 있다고 했어요."
"아... 그래. 그래서 선생님께서 뭐라고 하셨어?"
"선생님이 혹시 엄마 코로나 때문에 쉬고 계시냐 해서 그냥 '병'이라고만 했어"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아들은 엄마의 큰 비밀을 지켜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병? 내가 무슨 병인데?"
"엄마 cancer잖아. 내가 말 안 했어. 그냥 병이라고만 했어."
아들은 급식 메뉴 말하듯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담담하게 얘기한다.
그 순간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남몰래 훔친 물건을 잘 숨겨왔다 생각했는데 문 앞에서 들켜버린 기분이랄까. 죄지은 것마냥 두근거렸다.
아이가 어려서 모를 거라 생각했다. 아니, 몰랐으면 하고 바랐다.
아픈 엄마 때문에 학교에서 행여나 주눅 들고 우울해할까 신경 쓰여서였다.
항암치료도 했던 터라 내가 아프단 걸 대강 알고 있을 거라 짐작했지만, 짐작과는 다르게 아이는 병명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내색을 안 했을 뿐. (그나저나 아들은 cancer라는 단어를 어디서 주워들은 걸까.)
어떤 마음으로 그동안 말을 아껴왔을까.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아들이 유치원에 다니던 7살 어느 가을날,
나는 '갑자기' 환자가 되었다. 교통사고가 난 것처럼 갑자기였다.
7살 아이에게 설명할 자신도 없고, 굳이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집안 분위기를 무채색으로 만들긴 싫었다.
그렇게 아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는데 이미 알고 있었다니.
올해 11살인 아들은 반에서 까불대는 평범한 아이 중 한 명이고, 우리 집에서는 개그맨이다.
아들에게 내려진 특명 '엄마를 웃겨라'.
내가 조금이라도 기운 없어 보이면 아들은 바로 눈치채고 웃기기 시작한다.
원래부터 활발했던 건 아니다.
유치원 때까지 말 수가 없고 너무 조용해서 걱정할 정도였다. 방석에 꼼짝 말고 앉아있어라 하면 24시간이라도 앉아있을 것 같은 아이. 그런 아이였다.
그랬던 아이의 성격이 외향적으로 변한 건 학교 들어가면서부터이다.
생각해봤다. 아이의 성격이 한순간 바뀐 게 아니라, 엄마를 웃기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변한 게 아닐까.
이때부터 엄마의 비밀을 알고 있었을까.
인생 2 회차 같은 아들은 자기 할 일 알아서 하고, 가끔 엄마 어깨를 주물러주는 스윗 가이이다.
빨래 개기, 설거지하기, 분리수거 배출, 화분에 물 주기, 청소기 돌리기 등 못하는 게 없는 살림남이기도 하다. 그 작은 몸 안에는 엄마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랑이 연료가 되어 오늘도 엄마를 위해 한 몸 불사른다.
아들은 온 마음을 다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엄마를 사랑하고 있고,
엄마는 그 사랑을 받고 오늘도 더 건강해진다.
아이가 1학년 때 준 쪽지 - 엄마 사랑해요. 엄마는 친절하다. 엄마는 나를 안아준다.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
*사진 - pixabay, 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