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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인 Sep 15. 2023

콩이를 추억하는 법 1

콩이가 없는 일상들

2023년 6월 24일 콩이를 떠나보냈다. 14년을 함께한 15살, 흰색, 암컷 페키니즈였다.  

    

방 청소를 하는데 어디선가 손톱 조각이 나왔다. 콩이가 있었다면 혹시 콩이의 뱃살에 상처를 냈을까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콩이는 늘 배를 깔고 엎드려 있었다. 원래 손톱을 깎을 때는 방구석을 향하여 앉아 조심스레 깎는다. 혹시 멀리 튄 조각들은 그때마다 하나씩 집어낸다. 특히 콩이가 있을 때는 더 신경을 썼다. 그래도 이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늘 한 조각씩 나왔다.

남편은 거실 소파에 앉아 손톱을 깎는다. 높은 곳에 앉아, 온 사방에 조각들이 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 집어낸다며 큰 소리를 다. 콩이가 있을 때는 그런 남편의 행동에 속이 탔다. 일체의 간섭이나 잔소리를 하지 않는 나로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냥 참을 수밖에 없었다.

콩이가 가고 난 지금은 조금 느긋해졌다. 우리는 슬리퍼도 신고 있고, 설혹 발에 박혀 상처가 난들 어떠랴.      


냉동실에 있던 삶은 고구마를 버렸다. 나는 결코 음식을 버리는 법이 없다. 그런데 이것은 차마 먹을 수가 없었다. 입맛이 떨어진 콩이가 마지막까지 유일하게 먹었양식이기 때문이다. 엽산이 좀 없어진다 하여 물에 푹 삶아 조금씩 먹이던 것이었다. 건강할 때는 그렇게 좋아하는 데도 너무 먹으면 소화가 안될까, 혹 살이 찔까 염려하느라 마음껏 먹이지도 못하던 것이었다.

다들 보내고 나면 후회하는 것이 먹고 싶어 하는 것을 실컷 먹이지 못한 것이라 한다. 강아지 몸에 나쁘네, 이 찌네 하면서 안 먹인 것이다. 뭐가 더 중요한 지는 모르겠다. 집에서 치킨을 먹는 날은 튀긴 껍질 부분은 제거하고 속 살만 물에 담갔다가 주었다. 우리가 먹는 동안에 같이 조금 먹이고 나머지는 냉장고에서 밤새 염분을 빼고 다음날 먹였다. 콩이가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이었던 같다. 또 다른 간식은 병원에서 파는 오메가 3였다. 육포처럼 만들었는데 그걸 또 그렇게 좋아하였다. 이건 또 한 개 이상을 먹으면 설사를 하였다. 마음 놓고 못 먹이고 아주 조금씩 주었다. 냉동 건조 닭가슴살도 좋아했는데 나이 먹어 이가 빠지더니 씹는 것이 힘든지 잘 못 먹었다. 사료도 안 먹게 되어 소고기나 닭가슴살을 삶아서 먹였다. 결국엔 마지막까지 먹을 수 있었던 것이 푹 삶은 고구마였다.      


긴 장마 끝에 목욕탕 실리콘에 곰팡이가 피었다. 그동안 베이킹파우더와 샴푸 거품으로만 목욕탕 청소를 했다. 콩이가 소변은 목욕탕 앞 배변판에서, 응가는 반드시 목욕탕에서 했기 때문에 바닥은 항상 마른 상태를 유지했고 스나 곰팡이 제거제 등 강한 세제는 사용하지 않았다. 과연 곰팡이 제거제를 뿌리고 잠시 후에 물만 뿌렸는데도 순식간에 깨끗해졌다. 마스크를 쓰고 뿌렸는데도 머리가 심하게 아팠다. 그동안 강한 세제를 사용하지 않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급성신부전증으로 열흘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설사만 하였다. 어질어질 쓰러지면서도 꼭 목욕탕에 들어가 응가를 하였다. 오줌은 신장이 걸러내지를 못하니 냄새도 없는 말간 물이었다. 그것도 앉은 자리에서 안 싸고 꼭 복도까지 나와서 비틀비틀 배변판 근처에 쌌다. 그런 모습에 속이 문드러지는 것 같았다.  

     

남편과 영화를 보러 갔다.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복합몰이 있다. 점심 먹고 영화 보고 5시간 정도 걸린다. 영화관이 있는 콤플렉스는 한낮 폭염을 피할 수 있는 좋은 놀이터다. 콩이가 가고 난 지금은 얼마든지 밖에서 시간을 보내도 된다. 늦게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있을 수 있다.

콩이가 있을 때는 혼자 두고 나오면 ‘에어컨 끄고 나온 집이 금방 더워질 텐데’ 나 혼자 전전긍긍했다. 약하게 계속 켜놓는 것이 전기세도 덜 나온다는데 꼭 끄고 나오는 남편이 야속하기만 하였다. 그래서 더운 여름에는 가능한 외출을 자제하고 방에만 에어컨을 켜놓고 둘이 들어앉아 있곤 하였다. 에어컨 싫어하는 남편은 거실에서 혼자 더위와 놀고 있었다.    

  

가능한 콩이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 흔한 ‘손 줘’ 훈련도 안 시켰다. 그냥 예뻐서 바라보기만 했다. 우리 집에 온 지 1년쯤 되었을 때, 제주도 올레길을 5박 6일 다녀온 적이 있었다. 딸 집에 맡기고 다녀왔다. 강아지를 좋아하던 딸이 그동안 ‘손 줘’ 훈련을 시켜 놓았다. 한동안은 딸에게만 손을 주었다. 그 후로 내가 아무리 손을 달라 해도 한 번도 주지 않았다. 어쩌나 보려고 간식을 들고 손을 달라하니 마지못해 주는 척을 했다. 자본주의 강아지가 되어 있었다. 그 이상은 어떠한 훈련도 하지 않았지만 워낙 얌전하여 말썽 한번 부리지 않고 잘 지내 주었다.


저녁 운동 코스에 수제맥주집이 있다. 집에서 1.3km 떨어진 공원 옆에 높고 넓게 자리 잡고, 거대한 배처럼 그곳을 지키고 있다. 삼면이 통창이고 2층 층고에 한쪽만 이층으로 되어  있다. 카운터 전면에는 통 층 전체 크기의 대형 스크린이 갖가지 자연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한여름에 보여준 바다 전경은 보기만 하여도 속이 뻥 뚫리는 청량감을 주었다. 요즈음 내가 가장 애정하는 공간이다.  지나가다 자리가 좀 비어있으면 내 가게처럼 걱정이 되었다. 장사가 잘 되어야 오래도록 그곳을 즐길 수 있을 텐데.

오늘은 점심을 간단히 했더니 걷는 도중에 배가 고팠다. 이럴 때는 수제 맥주 한 잔에 북어포를 먹는다. 콩이를 보낸 지 2달 반 동안 허한 마음에 세 번쯤 맥주를 마셨다. 노을을 바라보며, 어둑해지는 공원을 바라보며, 바람을 즐기면서 마시는 맥주는 달다. 콩이를 떠나보낸 생각도 아득해진다. 알딸딸한 정신에 모든 그리움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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