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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인 Sep 20. 2023

이 소녀들을 어쩌란 말인가

줌 수업후의 대면

중년의 여자들이 오랜만에 만나서 적당히 주름진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너 하나도 안 변했다, 옛날이랑 똑같다’며 깔깔대는 모습을 자주 본다. 무엇이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을 뛰어 넘어서 과거 어느 한순간의 즐거웠던 상대방의 순수함만을 보게 하는 것일까.

  글쓰기 후속모임에서 만난 중년의 여성들이 묘하게도 반짝거린다. 처음 만났으니 그네들의 젊은 시절을 보았을 리 만무다.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외피만 변해 왔을 것이다. 삶의 때가 묻어나는 외형은 외면하고 서로의 본질과 내면을 재빨리 간파한다. 인간은 늘 모든 대상에게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일 테니. 내가 찾아낸 그네들의 순수한 모습은 내 노년의 큰 자산임에 틀림없다.

  수원으로 이사를 하고 정년퇴임을 하였다. 사실 서울에 있을 때에도 직장 생활하느라 동네 친구는 전혀 없었다. 서울과의 절대적인 거리도 멀어졌고, 이제는 시간과 공간을 나눌 대상을 찾고 있었다. 노년을 보낼 장소와 즐길 거리가 정해졌으니 이제는 이 모든 것을 함께 즐길 친구들이 필요했다.

  글쓰기 수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끝난 뒤의 사적인 모임을 원하고 있었다. 글을 쓰겠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으니 인간과 인생에 대한 관점이나 자세를 공유할 수 있으리라. 역시나 다양한 생활, 경험, 감성을 장착하고 내 앞에 4명의 여인이 나타났다.   

   

엄근진 명랑소녀

  그녀를 처음 만나고 조금 충격이었다. 줌 화면으로는 전혀 웃지 않는 엄근진의 모습이 상당히 인상에 남았었다. 대면하니 순수하고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계속 방글거리는 명랑소녀였다. 경제학 전공, 수학선생님, 부동산 전문가, 이미 작가. 아니 이런 반전이 있나.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계속 웃고 있다. 내 예상을 너무 벗어나 있다.


에너지 뿜뿜

  말로만 듣던 에너지 뿜뿜이었다. 줌 화면에서도 항상 에너지 넘쳤다. 만나니 생명력 그 자체였다. 터지기 직전의 꽃망울이 지닌 생명력과 긴장감이 살아있었다. 앞에 앉아 있으니 그 에너지에 자주 감전되곤 한다. 아니 충전이다. 영통신문 기자, 마을활동가, 영어 선생님, 문화해설사. 마을 주변의 다양한 활동에 기꺼이 몸과 마음을 바쳐 풀뿌리 역할을 하고 있다. 민주사회의 최전선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나이를 잊은 채 좋은 영향력을 끊임없이 줄 수 있을 것이다.


차분한 장신의 매력녀

  차분하고 깊은 눈만큼이나 속 깊어 보이는 매력녀. 아직 어린 자녀들을 보듬으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엄마, 영어 선생님, 끊임없는 글쓰기. 우리 모임의 막내인데 제일 의젓하게 느껴진다. 아직 중년의 뻔뻔함을 넘지 못한 여인의 조심스러움과 수줍음이 남아있다. 현역의 생활인이며 그 누구보다 글쓰기에 진심이다. 그녀 앞에 놓여 있는 높은 가능성과 남아있는 많은 날을 축복한다.  


반짝반짝 소년미 소녀미

  부지런하고, 장난기 많고, 세상이 재미있어서 어쩔 줄을 모르는 순수함이 묻어나는 눈빛. 어머 이 나이에 이런 눈빛이라니. 소녀 같은 하이텐션도 살짝. 끊임없이 새로운 배움을 시작하는 도전정신. 그림, 사진, 피아노.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격 때문에 모임 합류를 고민했단다. 나 같은 아마추어도 있는데. 나의 적극적인 꼬임에 빠져 결국 모임을 지속하기로 했는데 아마도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할 것 같은 확신이 든다.    


놀고먹고 캐릭터  

  유쾌, 상쾌, 통쾌, 발랄, 도전, 배움. 그녀들이 살짝 들려준 활동은 거의 사기캐. 정신이 번쩍 들도록 자극을 받았지만 나는 조금 뒤에서 60%만 따라가기로 한다. 조금 힘을 빼고 천천히. 원래 노는 걸 좋아해서 잿밥에만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로 대리 만족이나 해야겠다. 모든 모임에는 각자 역할이 있을 것이다. 나는 ‘놀고먹고’ 캐릭터로 결정했다.  

  유쾌하고 발랄한 유년이 아니라 노년이 시작되었다. 나의 진짜 삶은 지금부터다. 충분히 좋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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