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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인 Sep 23. 2023

방과후 교실 풍경 1

설날 연후 후의 교실   

 

“영희 왜 안 와요?”

“영희 누나 왜 안 와요?”

설 연휴 기간 동안 외국 여행을 간 친구를 향해 동급생과 1학년들이 쏟아내는 질문이다. 친구들과 동생들을 배려있게 보듬던 예쁜 친구였다.

1학년 학생은 직접 찾아간다고

“제가 누나 사는 아파트 아는데 가볼까요?”

2학년 학생은 제주도가 폭설로 비행길이 막혔다는 뉴스를 보았는지

“영희가 틀림없이 제주도 한라산에 갇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배 타고 가서 구해 올래요.”

아! 이런 동화 같은 풍경이라니.

어느덧 나도 그들의 동화 속으로 들어가 함께 모험을 떠나고 있다.

    

‘고양이 해결사 깜냥’   

  

“선생님 이거 재미있어요?”

“응, 정말 재미있어.”

1학년 학생이 가져온 책을 열심히 보기에 따라 보았더니 정말 재미있었다.

‘깜냥’이라는 고양이가 인간 사회에 뛰어들어 재미있는 모험을 하는 내용이었다.

“우리 집에 그 책 다 있어요.”

그다음 수업 시간에 그다음 권을, 또 그다음에 그다음 권을 가져와 빌려주었다. 결국 4권 시리즈를 다 볼 수 있었다. 덕분에 깜냥을 따라 특별 여행모험을 즐길 수 있었다. 이런 신나는 세계가 있다니. 그 책을 빌려줄 생각을 한 의젓한 1학년 학생에게 감사를 보낸다. 내가 동화 속 모험을 즐길 줄 아는 어른이라는 것을 간파한 영특한 학생이다.     

 

승리의 웃음  

   

봄 학기 첫 수업에서 조금 늦되 보이고 착하게 생긴 남학생을 만났다. 1분기(3개월), 2분기가 끝나도 한 개의 한자도 모른다.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정말 하나도 모른다. 그런데도 계속 신청하여 열심히 공부하러 온다. 슬슬 걱정이 되어 엄마와 통화를 한다. 괜찮다며 천천히 조금씩 하면 된다고 오히려 나를 다독인다. 이런 학부모도 있구나. 3분기 들어서자 갑자기 둑이 터지듯 제법 많은 한자를 알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칠판에 나와서 한자 단어를 척척 쓰기까지 한다.

처음 칠판에 나와서 한자를 쓰고 보여준 그 환한 웃음은 내가 본 가장 멋진 미소였다. 자신을 이겨낸 승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확신에 찬 눈부신 표정, 울음을 견디고 만들어낸 자신에 대한 확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완벽한 승리.

다른 아이들과 달리 한 글자도 모른다는 절망감에도 굴하지 않고 6개월이 넘게 계속 익히고 또 익히고, 쓰고 또 썼다. 이제는 틈만 나면 한자를 열심히 쓰고 익힌다.

그가 울음을 참으며 써 내려갔을 시간상상하니 가슴이 무너진다. 곁에서 지켜보던 어머니가 진정한 승자이다. 그 아이가 한 글자씩 써 내려가던 매 순간은 인생의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인생의 좋은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며, 가장 훌륭한 가치로 남을 것이다

요즈음 새로 받게 된 피아노 레슨. 늙은 나에게 자꾸 되뇐다.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될 때까지.’ 신기하게도 주문이 효력이 있다.   

   

공개수업의 대반전     


1학년인 그는 착하고 속눈썹이 길어 사슴 같은 눈을 가진 예쁜 남학생이었다. 머리도 영리하여 한 번 듣고도 모든 한자를 척척 맞추는 것 같았다. 그러나 대 반전. 수업 시간에 자리에 앉아 있지를 못하고 계속 교실 곳곳을 방황하고 있었다. 드러누워 교실 바닥을 다 닦고 지나가고 가끔 열심히 공부하는 옆의 친구들을 건드리기도 하였다. 2분기에 또 신청하였기에 엄마와 통화하였더니 본인이 한자를 하고 싶어 한다고, 계속 보낸다고 한다.

대망의 공개수업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엄마들이 오시니 조금만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했더니 꿀떡같이 약속을 한다. 공개 수업이 시작되고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본래의 모습대로 교실을 종횡무진 누빈다. 급기야 야단을 쳐보지만 효과가 없다. 수업이 끝나니 엄마들이 힘들어서 어쩌냐고 연민을 보낸다. 나야 괜찮지만 본인과 주변 친구들이 못할 짓이다. 이 착하고 어린 영혼이 잘 성장해 나가길 기도할 뿐이다.    

       

꼬물꼬물, 또박또박 귀여운 병아리들   

   

방학 기간 동안에 각 급수별로 매 시간 한자 카드를 열 개씩 외우는 시간을 가졌다. 다 외운 사람은 나와 일대일로 카드 맞추기를 하였다. 1학년 두 여학생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둘 다 자그마하니 부서질 듯 연약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목소리도 개미 목소리 같아서 귀 기울여 들어야 했다. 둘 다 어찌나 똑똑한지 또박또박 모든 한자를 다 맞춘다. 그 조그만 머리로, 그 조그만 입으로 한자 하나씩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렇게 귀엽고 대견한 생명체들이라니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경외감이 든다.

     

안 듣고 있어도 다 들어요  

   

3월에 만난 똑 단발의 무뚝뚝한 표정의 2학년 여학생. 평소에 설명할 때 잘 듣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맨살의 엄지발가락을 보여주면서 아프다고 하였다. 발톱 안쪽에 고름이 들어, 보기만 하여도 아플 것 같았다. 엄마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병원에 데리고 가라고 문자를 넣었지만 답장은 없었다. 그다음 시간에 병원에 갔다 왔다고, 이제 새 살이 돋고 있다고 다시 보여준다. 아이들은 매 순간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하다. 볼 때마다 이야기 걸어주고, 착하고 예쁘다고 말해 주었다. 3분기 끝무렵부터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모르는 한자가 없다. 중간중간 내가 설명했던 내용을 빠짐없이 되뇌기까지 한다. 안 듣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건 또 다른 혼란이다. 아이들이 자꾸 허를 찌른다. 절대 선입견을 가지지 말 것. 엄중한 경고를 하는 것 같다.  

    

한자 방과후 선생님께

    

한 엄마가 문자를 주었다. 아들의 마음이 예뻐서 연락한다고. 학급 수업 시간에 그림일기를 썼는데 방과후 한자 선생님께 드리는 내용이었다고. 엄마에게 자랑하며 보여주었는데 형이 그 위에 물을 쏟아서 너무 속상해하고 있다고. 맞춤법도 틀리고 글씨도 삐뚤삐뚤하지만 마음을 받아달라며 그림 사진과 함께.

이런 뭉클함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일단 카톡프사에 올려 학생이 볼 수 있게 하였다. 내 마음을 그렇게나마 전달할 수 밖에. 고마움과 감동을 달리 전달할 방법이 없다. 부디 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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