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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마음 위에 얹힌 거리

불완전한 관계와 장거리 연애가 남긴 마음의 기록

by 세린

우리는 연애를 하고 있는 걸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완전한 연애"는 아니다.

애초부터 명확한 경계도, 확실한 약속도 없었다. 그냥 서로를 좋아했고, 자주 연락했고, 마음을 나눴다. 그리고 그렇게 흐르듯 이어지던 감정이 지금까지 왔다. 누가 먼저 “우리 사이는 뭘까”라고 물었다면,

아마 서로 대답을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불안한 관계 위에 장거리가 얹혔다.


보고 싶어도 쉽게 볼 수 없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어려운 날들이 많다. 애초에 불투명했던 관계는 물리적 거리 속에서 더 불안정해졌다. 하루에 몇 번씩 들여다보는 메시지창, 읽고도 답이 없는 그의 말, 자꾸 미뤄지는 만남의 약속. 이런 것들이 마음을 조금씩 잠식해간다.


“나 혼자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스친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을 다그친다.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고, 장거리라는 상황에서 이 정도는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타일러도 마음은 자꾸 흔들린다. 명확하지 않은 사이에서 혼자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이 느낌은, 장거리라는 물리적 거리보다 훨씬 더 멀고 차갑게 느껴진다.


그는 가끔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그 말에 실린 온도는 일정하지 않다. 어떤 날은 뜨겁고, 어떤 날은 식은 커피처럼 미지근하다. 포기하려는 기색도 자주 내비친다. 힘들다고, 우리 사이가 불확실하다고, 장거리가 자신을 지치게 만든다고. 그런데 이상하지. 정작 그 말은 나도 할 수 있는 말인데,

언제나 먼저 포기하겠다는 쪽은 그다.


이 관계는 명확하지 않아서 아프고, 멀리 있어서 더 외롭다. 하지만 나는 이 관계를 지키기 위해 매일 나름의 노력을 해왔다. 말을 아끼고, 기대를 줄이고, 감정을 조심스레 건넨다. 하지만 그가 내민 불확실한 태도와 자꾸만 물러서려는 모습 앞에서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가는 기분이 든다. 불안 속에서도 사랑할 수 있을까? 아니, 나 혼자서만 불안해하며 사랑을 유지할 수 있을까?


장거리 연애는 원래 어렵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우리’라는 확신 없이 거리를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붙잡고 있는 게 관계인지, 혹은 그냥 그와의 감정인지, 나조차도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나는 지금 무엇을 지키고 있는 걸까. 애매한 관계를 지키기 위해 이토록 애쓰는 내가 바보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어쩌면, 진짜 힘든 건 거리가 아니라 그 거리를 버틸 만큼 단단한 마음을 나눠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아직도 그와의 관계에 이름을 붙이지 못한 채, 하루하루 감정을 조심스레 꺼내놓고 있다. 혹시라도 그가 부담스러워할까, 멀어질까봐. 하지만 그가 자꾸만 멀어지는 걸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그 마음의 거리까지도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사랑이든 아니든, 나에겐 확신이 필요하다. 내가 노력하는 이 감정이 공허하지 않기를, 그리고 우리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기를. 하지만 그 불확실한 사이에서 나만 간절할 때, 사랑은 점점 지치고 메말라간다.

오늘도 나는 질문만 남긴다. 우리는 어떤 사이일까.


그리고 나는, 이런 사이를 계속 감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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