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관계는 끝났다는 사실을 마음이 먼저 알고, 몸이 그다음을 따라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손은 가장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다. 나만 놓으면 끝이라는 걸 안다. 그 손을 내가 붙들고 있는 한, 이 관계는 억지로나마 “있는 척”을 한다. 더 이상 사랑이라 부르기 힘든 무언가를 위해 나는 애써 자연스러운 척, 아무렇지 않은 척을 반복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질문이 떠오른다. 이 관계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우리는 서로의 말에 대답하지 않게 되었을까.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말을 주고받으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한 시간 속에서 나는 혼자 늙어가는 기분이다. 상대는 이미 마음의 짐을 다 덜어낸 사람처럼 보인다. 내가 더 이상은 무리라는 신호를 보내도, 돌아오는 건 무덤덤한 시선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놓지 못한다. 정확히는, 놓는 게 두렵다. '혹시 내가 참으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손을 놓는 순간 정말 모든 게 끝나버리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어쩌면 내가 이 관계를 붙들고 있는 이유는 사랑이 아니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더 괴롭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본래 계속 붙들어야 유지되는 것이라지만, 모든 애씀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물이 흐르지 않는 강물처럼, 감정도 멈춘 채 머물기만 하면 결국 썩어간다. 그런데 나는 마치 썩어가는 감정을 품에 안고, 그것이 아직 따뜻하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 손을 놓는다는 건 끝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다시 품는 일이기도 하다. 붙드는 일보다 놓는 일이 훨씬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마음의 결정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 지쳐가는 나를 보며, 내가 정말 원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 안도감이라는 사실도 점점 분명해진다.
우리는 종종, 이 관계가 끝나면 내 모든 것이 무너질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무너지는 건, 이미 오래전에 멈춰버린 관계 안에서 계속 머무는 나 자신이다. 변화는 언제나 낯설고 아프지만, 그 아픔이 나를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언젠가는 이 어색하고 불편한 감정들조차도 지나가고, 나는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한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오늘은 아직 그 손을 놓을 준비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손에 힘을 주는 대신 조용히 내려놓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나는 비로소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