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존재로 머물렀던, 나의 사랑 이야기
사람들은 대개 사랑을 꽃에 비유하지만, 나에게 사랑은 늘 그림자였다. 볕이 드는 한낮에도, 나는 그늘에 서 있었다.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고, 나란히 걷던 발걸음은 남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되는 비밀처럼 감추어졌다. 마치 나는 누군가의 하루에 스며들지 못하는, 익명의 계절 같았다.
그는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세상에서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인사하지 않았고, 소개받지 못했으며, 사진 속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나의 존재는 늘 문턱 밖에 머물렀다. 손끝이 닿을 듯, 그러나 넘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구석에서, 그와 함께였다. 존재하되,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처음엔 그것이 특별함이라 여겼다. 나만 아는 그 사람의 말투, 나만 느낄 수 있는 체온, 나만 부를 수 있는 이름.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나는 점차 희미해졌다. 비밀은 설렘이 아니라 무게가 되었고, 기다림은 약속이 아닌 침묵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나는 왜 늘 그림자일까."
연인의 자리는 마치 유리 진열장 같았다. 누군가는 거기에 담겨 반짝이는데, 나는 그 밖에서 늘 바라보는 입장이었다. 이름 없이 불리는 애정, 장소 없이 이어지는 관계. 나는 그 어떤 찬란함도 누리지 못한 채, 늘 ‘조용한 존재’로만 남아 있었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그 사랑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사랑은 숨긴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드러낸다고 망가지는 것도 아닐 텐데. 그는 왜 나를 안고 있으면서, 세상 앞에서는 나를 놓았을까. 내가 부끄러운 사람이어서일까. 아니면, 그가 아직 자신을 다 보여줄 용기가 없었던 걸까. 내가 던진 질문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점점 나의 존재 가치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 자신에 대한, 그리고 사랑에 대한.
나는 단 한 번쯤, 누군가의 세상에 온전히 초대받고 싶었다. 낮에도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랑, 타인의 시선이 두렵지 않은 사이, 나의 존재를 감추지 않아도 되는 관계. 하지만 그런 소망은 늘 ‘나중에’로 유예되었고, 그 끝없는 ‘나중’은 결국 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젠 안다. 나는 잎새처럼 흔들리며 누군가의 그늘 아래 머물기보다는, 조금 쓸쓸하더라도 내 빛을 가진 채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더 이상 나를 감춰야 하는 사랑 앞에서 무릎 꿇지 않겠다고, 나는 나에게 약속했다.
다음번에는, 내 이름을 숨기지 않을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싶다. 내 그림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함께 걸으며 빛과 어둠을 나누는 사람. 손을 잡았을 때, 그 손이 세상을 피해 움츠러들지 않는 사랑.
"당신은 나를 숨기지 않을 사람인가요?"
그 대답이 ‘예’인 사람과, 이제는 사랑을 시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