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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진 Jun 14. 2024

한산도

아버지의 고향

돌아가신 아버지의 고향은 한산도*이다.


국민학교 1학년 여름방학, 한산도로 가기 위해 장미맨션을 나선다. 엄마와 오빠, 나는 짐을 가득 들고 긴 여행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다. 아빠는 같이 가지 않는단다. 집에서 나오기 전, 엄마가 냉장고에 먹을 것을 이렇게, 저렇게 준비해 놓았다고 아빠에게 이야기를 길게 하자, 아빠는 알아서 잘할 수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괜히 나조차 혼자 있을 아빠가 걱정이 되지만, 아빠는 왜인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항상 엄마가 서서 인사해 주던 5층 우리 집 베란다에 아빠가 서 있다. 그 장면이 눈에 익지 않아 영 어색하다. 배경과 아빠를 잘라 오려 붙인 이질감마저 느껴진다. 아빠는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웃으며 우리를 향해 긴팔을 정신없이 휘젓고 있다.


"재미있게 잘 놀다 온나! 아빠가 도둑  오게 집 잘 지키고 있으께!"


이상하다. 놀러 가는 건 우린데, 왜 아빠가 더 신이 난 걸까. 아빠는 당장 베란다를 뛰어넘어 우리 머리 위 하늘로 새가 되어 날아버릴 것 같이 가볍고, 즐거워 보인다.


버스를 타고 충무*로 향한다. 충무시장에 도착하니 충무숙모와 사촌오빠 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어둡고 축축한 충무 시장 , 낮게 깔려있는 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곧이어 한쪽에는 무심한 듯 아무렇게나 툭툭 말아 멋없이 쌓아놓은 김밥이, 한쪽엔 주황빛에 가까운 투명하게 빨간 깍두기색에 가까운 칙칙한 빨간색의 오징어무침이 놓여있는 접시가 나온다. 그걸 보자마자 입에 침이 고인다. 이쑤시개에 김밥을 꽂아 얼른 입에 넣는다. 그저 김에 싼 밥일 뿐인데, 나는 충무김밥이 너무 맛있었다. 김밥을 입에 넣기 바쁘게, 얼른 넓적한 깍두기도 찍어 같이 입에 넣는다. 내 입엔 오징어무침보다 깍두기가 더 맛있다. 그래서 언제나 깍두기는 모자라고 오징어는 남는다. 오징어무침 없이 깍두기만 주면 좋겠다. 김밥을 다 먹은 후 배를 타러 항구로 간다. 약국에서 귀미테를 사 엄마가 내 귀 밑에 붙여준다. 아직 어리던 나는 차나 배를 타면 가끔 토를 했기에, 엄마는 까만 봉지도 챙겼다. 귀미테 덕분인지 다행히 그날은 토를 하지 않았다.


세찬 바람을 가르며 배가 바다 위를 쉼 없이 달린다. 우유를 쏟아 부든 듯이 새하얀 물거품이 배 주변에서 정신없이 요동친다. 바닷물은 파란데, 왜 거품은 이토록 하얀색일까 궁금해진다. 혹시 배에서 하얀 물이 나오는 걸까? 그런 내 마음을 알리 없는 물거품이 철퍽철퍽 소리를 내며 배의 거센 움직임을 따라 화려하게 튀 내 얼굴에 까지 와닿는다. 짠맛이 감도는 얼굴을 급하게 비비며 눈을 들어 멀리까지 펼쳐진 바다를 바라본다. 어디까지 바다이고 어디부터가 하늘인지 분간도 잘 안 되는 수평선 너머로 작은 배들이 사라지고 들어온다. 눈부신 햇살에 반사된 파란 바다는 진주같이 반짝여 나는 그만 눈이 부시다. 밖구경을 마치고 배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는다. 일렁이는 배 위에서 신이 난 나는 자리에 앉아서도 쉴 새 없이 조잘거린다. 엄마는 나에게 입도 안 아프냐고 물었다.


한산도의 야소마을. 이곳에는 아빠는 바닷가의 거센 바람을 맞으며 성장했다고 했다. 엄마 손을 잡고 들어선 곳에는 골목골목 내 키만 한 담장들이 조용히 늘어서 있다.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들을 지나 어느 집으로 들어간다. 아빠가 어릴 때 살던 집이란다. 문을 들어서자 듬성듬성 자란 풀이 가득한 마당과 오래된 기와집이 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시골집이 낯선 나는 엄마의 몸뒤로 몸을 숨겨버린다. 설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나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졌다.




금방 배가 들어왔다며 살아 날뛰는 생선들이 가득 든 대야를 들고 누군가가 왔다. 생선들은 그 좁은 곳에서 물도 없이 서로의 몸을 때리며 살기 위해 날뛰고 있었다. 그 모습이 불안 불안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생선 한 마리가 결국엔 튕겨져 나와 뜨거운 시멘트 바닥에서 떨어져 버리고 만다. 그 모습을 보던 어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살아 있을 때 얼른 회를 떠야 한다고 했다. 생선을 싫어하지만, 회를 뜨는 모습이 재미있을 것 같아 구경을 하기 위해 도마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거는 짤아가*  *도 없겠다."


어른 손바닥보다 조금 큰 생선을 한 마리 집어 들고 숙모가 투덜대며 고민을 하다 결국 배를 가른다. 배를 다 가르기도 전에 배 안에 들어 있던 알의 모습이 보인다. 생선이 알을 배고 있었나 보다. 어른들에게는 그저 음식일 뿐인 생선의 알이, 나에게는 아기 물고기 그 자체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생선이 불쌍하다. 그러다 곧 슬퍼진다.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야 하는 아기라니. 아기와 엄마물고기를 다시 바다에 보내줘야 한다고 우긴다. 어른들은 나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당황했지만, 작아서 먹을 것도 없다며 나에게 그 생선을 건네주었다.


배가 반쯤 갈려진 채 힘겹게 숨을 헐떡이는 생선을 두 손에 올리고 집을 나선다. 생선을 받아 들고 나올 때만 해도, 이 물고기를 바다에 넣어만 주면 다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바짝 마른 채 익어가고 있는 해변의 회색 돌멩이 무더기가 눈에 들어올수록 그 확신은 점점 줄어다. 그러다 문득, 이 물고기가 바다에 다시 돌아간다 해도 살아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다. 다시 돌아갈까? 하지만, 그럴 순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두 손 위에서 죽어가고 있는 생선을 들고 훌쩍거리며 바닷가를 서성인다. 그러다 결심한 듯 밀려오는 바닷물에 생선을 살포시 넣어준다. 들어왔다 다시 나가는 물길에 휩싸여 물고기는 내 눈앞에서 사라진다.


그곳의 밤은 불빛 하나 없이 깜깜했다. 늦은 밤, 화장실을 가기 위해 손전등을 가지고 엄마와 수돗가로 나온다. 화장실은 너무 멀리 있기도 했지만, 똥통 위 구멍만 뻥 뚫린 오래된 재래식이라 내가 밑으로 빠질 것 같다며 엄마는 볼일을 요강에서 보라고 했다. 매일 닦아 반들반들한 유기 요강 위에 깐 달걀같이 어리고 하얀 엉덩이를 살포시 올려놓는다. 아직 작은 나의 엉덩이가 요강 안에 빠질 것 같아, 털썩 주저앉지 않게 조심하며 앞을 바라본다. 내 눈앞의 반은 새까 평면 같은 산이, 반은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화려한 밤하늘이 차지하고 있다. 하늘과 맞닿은 산 등성이 위에 있는 나무들이 바람에 움직이는 것이 언뜻 보인다. 저곳에는 림없이 늑대와 귀신이  것이다. 지금 막, 늑대와 귀신이 나무 뒤에서 움직이는 것을 본 것 같다. 늑대와 귀신이 오줌을 누고 있는 나를 잡으러 여기까지 것 같다. 나는 그만 무서워져, 엄마에게 저기 늑대와 귀신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엄마는 그런 거 없다며, 그냥 웃어버린다.




*한산도: 경남 통영시 한산면에 있는 섬. 충무공 이순신의 최대 전승지인 한산대첩을 이룬 곳.

충무: 지금의 통영

짤아가: 작아서, 짧아서

: 먹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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