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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진 Jun 07. 2024

재첩국

재첩국 사이소, 재첩국

"재첩국 사이소, 재첩국... 재첩국 사이소, 재첩국."


감정 없는 담담한 목소리로 읊조리듯 외치는 재첩국 아줌마의 청량한 목소리. 그저 기계처럼 반복해서 소리치는 그 문장 안에는 규칙적인 운율과 멜로디가 있다. 무심한 듯 정교한 아줌마의 소리는 이른 아침, 장미맨션 마당에 울려 퍼져 재첩국 냄새를 싣고 80세대의 각 집으로 배달되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적한 공기의 무게. 밝게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 시원하게 피부에 와닿는 바람의 온도. 눈부시게 빛나는 아침의 다정한 햇살. 그 모든 것이 기분 좋게 어우러진 장미맨션의 아침을 깨우는 재첩국 아줌마의 기척에 엄마가 반색하며 나를 급하게 부다.


"나진아, 아줌마 가기 전에 빨리 내려갔다 온나."


잠에서 덜 깬 나는 귀찮았지만 네, 하고 대답을 한다. 졸린 눈을 비비며 엄마에게 받은 돈과 은색 냄비를 들고 현관문을 열자, 엄마가 나를 불러 당부한다.


"아줌마한테 재첩 좀 많이 달라고 해라. 저번처럼 국물만 항그* 가오지 말고."


지난번, 희멀건 국물만 가득한 냄비를 받아 든 엄마는 역정을 냈다.


"아니, 재첩은 하나도 없고, 이게 뭐고. 이 아지매* 처음엔 안그렇더만, 갈수록 이라노."


재첩국 아줌마를 향한 불만이었지만, 그 화풀이를 받는 건 나였다. 내가 그런 국물만 가득한 재첩국을 받아온 당사자이니까.


내가 과연 아줌마에게 재첩을 많이 달라는 말을 할 수 있을지 영 자신이 없었지만, 어쨌든 속이 빈 냄비를 들고 5층을 사뿐히 걸어 내려간다. 1층에 도착하자 시원한 바람이 헝클어진 머릿결을 스치고 지나간다. 향긋한 풀내음이  코를 간지럽히자 무겁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가동과 나동 사이에 있는 아름드리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아줌마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돈을 건넨다. 아줌마는 기다란 파란 대야 안에 든 재첩국을 자루바가지로 퍼 내가 가져간 냄비에 담아주신다. 그제야 생각 난 듯 나는 아줌마에게 엄마가 재첩을 많이 달라했다는 말을 한다. 아줌마는 못 이기는 척 퍼던 국을 버리고 나 보란 듯 새로이 퍼 올리지만, 그 전과 별반 달라진 느낌은 없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할 용기는 어린 나에게 없다. 나는 그래도 말을 했다, 그거면 됐다. 엄마가 또 성을 낼까 두렵지만, 어쩌겠는가.


재첩국으로 가득 찬 냄비를 받아 들고 다시 5층으로 올라간다. 냄비가 무거워 넘어지지 않게 신경을 쓰면서 올라가야 한다. 잘못하단 국을 다 엎을 수가 있다. 냄비를 받아 든 엄마가 또 볼멘소리를 한다. 나는 입이 삐쭉 튀어나다. 도대체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그럴 거면 엄마가 갈 것이지 왜 나한테 시켜서 내가 이 욕을 들어야 하는가. 내 속이라도 들여본 것인지 엄마는,


"안 되겠다. 다음부터는 내가 내려가야지. 이 아지매가 안 되겠네, 진짜."


불만도 잠시, 엄마는 재첩국이 끓으며 올라오는 냄새에 기분이 좋아진 듯하다.


"아침에 안 그래도 국이 없었는데, 잘됐다. 요새 재첩 생각이 나드만."


물에 우유를 아주 살짝만 탄 것 같은 뿌연 국물에 동그랗게 가라앉은 작은 재첩들. 그 재첩들이 보일세라 표면 위를 둥둥 떠다니며 존재감을 뽐내는 정구지*조각들. 나에겐 그저 별 맛 안나는 맛없는 국인데 엄마는 그것을 먹을 때마다 연신 시원하다, 시원하다를 외쳤다.


도대체 이 뜨거운 게 어째서 시원하다는 것일까.


그때는 몰랐다.

재첩국이 아랫지방에서만 먹는 음식인 것을.


뜨거운 것이 시원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이제야 재첩국의 시원한 맛을 알 것 같은데, 더 이상 재첩국 아줌마의 목소리들을 수가 없다.




*방언 뜻풀이

항그: 많이

아지매: 아주머니

정구지: 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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