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첩국 사이소, 재첩국... 재첩국 사이소, 재첩국."
감정 없는 담담한 목소리로 읊조리듯 외치는 재첩국 아줌마의 청량한 목소리. 그저 기계처럼 반복해서 소리치는 그 문장 안에는 규칙적인 운율과 멜로디가 있다. 무심한 듯 정교한 아줌마의 소리는 이른 아침, 장미맨션 마당에 울려 퍼져 재첩국 냄새를 싣고 80세대의 각 집으로 배달되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적당한 공기의 무게. 밝게 지저귀는 새들의 명랑한 노랫소리. 시원하게 피부에 와닿는 바람의 온도. 눈부시게 빛나는 아침의 다정한 햇살. 그 모든 것이 기분 좋게 어우러진 장미맨션의 아침을 깨우는 재첩국 아줌마의 기척에 엄마가 반색하며 나를 급하게 부른다.
"나진아, 아줌마 가기 전에 빨리 내려갔다 온나."
잠에서 덜 깬 나는 귀찮았지만 네, 하고 대답을 한다. 졸린 눈을 비비며 엄마에게 받은 돈과 은색 냄비를 들고 현관문을 열자, 엄마가 나를 불러 당부한다.
"아줌마한테 재첩 좀 많이 달라고 해라. 저번처럼 국물만 항그* 가오지 말고."
지난번, 희멀건 국물만 가득한 냄비를 받아 든 엄마는 역정을 냈다.
"아니, 재첩은 하나도 없고, 이게 뭐고. 이 아지매* 처음엔 안그렇더만, 갈수록 이라노."
재첩국 아줌마를 향한 불만이었지만, 그 화풀이를 받는 건 나였다. 내가 그런 국물만 가득한 재첩국을 받아온 당사자이니까.
내가 과연 아줌마에게 재첩을 많이 달라는 말을 할 수 있을지 영 자신이 없었지만, 어쨌든 속이 빈 냄비를 들고 5층을 사뿐히 걸어 내려간다. 1층에 도착하자 시원한 바람이 헝클어진 머릿결을 스치고 지나간다. 향긋한 풀내음이 내 코를 간지럽히자 무겁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가동과 나동 사이에 있는 아름드리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아줌마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돈을 건넨다. 아줌마는 기다란 파란 대야 안에 든 재첩국을 자루바가지로 퍼 내가 가져간 냄비에 담아주신다. 그제야 생각 난 듯 나는 아줌마에게 엄마가 재첩을 많이 달라했다는 말을 한다. 아줌마는 못 이기는 척 퍼던 국을 버리고 나 보란 듯 새로이 퍼 올리지만, 그 전과 별반 달라진 느낌은 없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할 용기는 어린 나에게 없다. 나는 그래도 말을 했다, 그거면 됐다. 엄마가 또 성을 낼까 두렵지만, 어쩌겠는가.
재첩국으로 가득 찬 냄비를 받아 들고 다시 5층으로 올라간다. 냄비가 무거워 넘어지지 않게 신경을 쓰면서 올라가야 한다. 잘못하단 국을 다 엎을 수가 있다. 냄비를 받아 든 엄마가 또 볼멘소리를 한다. 나는 입이 삐쭉 튀어나왔다. 도대체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그럴 거면 엄마가 갈 것이지 왜 나한테 시켜서 내가 이 욕을 들어야 하는가. 내 속이라도 들여본 것인지 엄마는,
"안 되겠다. 다음부터는 내가 내려가야지. 이 아지매가 안 되겠네, 진짜."
불만도 잠시, 엄마는 재첩국이 끓으며 올라오는 냄새에 기분이 좋아진 듯하다.
"아침에 안 그래도 국이 없었는데, 잘됐다. 요새 재첩 생각이 나드만."
물에 우유를 아주 살짝만 탄 것 같은 뿌연 국물에 동그랗게 가라앉은 작은 재첩들. 그 재첩들이 보일세라 표면 위를 둥둥 떠다니며 존재감을 뽐내는 정구지*조각들. 나에겐 그저 별 맛 안나는 맛없는 국인데 엄마는 그것을 먹을 때마다 연신 시원하다, 시원하다를 외쳤다.
도대체 이 뜨거운 게 어째서 시원하다는 것일까.
그때는 몰랐다.
재첩국이 아랫지방에서만 먹는 음식인 것을.
뜨거운 것이 시원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이제야 재첩국의 시원한 맛을 알 것 같은데, 더 이상 재첩국 아줌마의 목소리는 들을 수가 없다.
*방언 뜻풀이
항그: 많이
아지매: 아주머니
정구지: 부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