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어 잠에서 깼다.
나는 왜인지 이불도 덮지 않은 채 거실에서 자고 있었고, 엄마와 203호 아줌마가 내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잠에서 덜 깬 내가 고개를 숙이며 어리둥절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엄마와 아줌마는 그런 나를 보고 심하게 꺌꺌 웃었다. 뭔가 이상했지만, 그저 내가 귀여워서 그런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나는 워낙 귀여우니까(?).
그런데 엄마가 아침밥을 주지 않았다. 딱히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상했다. 평소의 엄마라면 집착이라 할 정도로 나의 밥에 예민한 사람이었다.(나는 원체 잘 먹지 않았다.) 당연히 집에 있어야 할 오빠도 없었다. 엄마는 갑자기 나에게 장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침부터 시장에 가자고? 내 유치원에 가야 되는데? 근데 오빠야는 어디있노?'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유치원에 가기 싫었던 나는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엄마도 내가 유치원에 가야 한다는 것을 잊은 모양이다. 오빠도 보기 싫은 참이었는데, 잘됐다. 군소리 없이 엄마를 따라 장을 보러 나간다.
엄마 손을 잡고 온천장 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여러 사람을 만난다.
'아침인데 왜 사람들이 여기에 다 있노?'
시장에 아침부터 사람이 많다.
엄마가 나에게 뭘 먹고 싶냐고 묻는다. 갈치를 먹고 싶다는 내 말에 엄마는 비싼 것만 좋아한다면서 투덜대면서도 갈치를 유심히 본다.
"갈치 한 마리 주이소."
은빛 찬란한 기다란 갈치가 툭 툭 툭, 몇 번의 칼질로 네모반듯하게 잘려 까만 비닐에 담긴다. 생선이라고는 입에도 안 대던 내가 유일하게 먹는 생선이 갈치였다. 누군가 엄마에게 아들은 어디 갔냐고 묻는다. 큰애는 수련회에 갔다고 엄마가 대답한다. 그러고 보니 오빠는 어디 가서 두 밤 자고 온다고 했던 것 같다.
자꾸만 불안하다. 왜 이렇게 가슴이 울렁거리고 울고 싶은 기분이 드는 걸까. 뭔가 이상한데 정확히 뭐가 이상한지를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분명 아침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밝아져야 할 하늘이 점점 붉은빛으로 변한다. 종말의 날이라도 오려는 걸까. 그래서 하늘이 이렇게 핏빛으로 물드는 걸까. 이유를 알 수 없는 나는 너무나 불안하다. 엄마의 손을 붙잡고 발을 동동거리며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고 조른다. 엄마는 사야 할 것이 많다며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기저기를 더 들른다. 심지어 마주치는 사람들 마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대화가 자꾸만 길어진다. 마침내 그 모든 것을 끝내고 집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집으로 가는 것에 안도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하늘은 어느새 붉은빛을 넘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다. 불안함을 넘어 이제는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궁금한 것을 하나도 묻지 않고 참던 나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엄마에게 물어본다
"엄마, 아침인데 왜 하늘이 갈수록 어두워지노?"
엄마는 내 질문에 잠시 멈췄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는다.
"나진아, 지금 저녁이다, 니 낮잠 자고 일어난기다. 아직 아침인 줄 알았나?"
어린 나는 상황파악이 잘 되지 않는다. 날 보고 웃고 있는 엄마뒤로 빨간 우체통이 보인다. 어느새 주변은 어눅어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