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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진 Oct 27. 2024

단발머리

몰개성의 시대

중학교 입학식.

넓은 운동장에 아직은 단발머리가 어색한 여자아이 수백 명이 웅성거리며 모여있다. 자기 반에 어떤 아이가 있는지 궁금한 마음에 여기저기 둘러보며 누구를 자신의 단짝으로 만들어야 할지 다들 열심히 머리를 굴린다. 들뜬 분위기도 잠시, 선생님들이 한꺼번에 건물에서 쏟아져 나와 우리의 복장을 검사하기 시작한다. 우리 반이 서 있는 곳으로는 뽀글뽀글 파마를 한 동글동글 하얀 얼굴의 여자 선생님이 오셨다.


‘아, 저 사람이 우리 담임선생님인가 보다.’

무서운 마음에 입밖으로는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을 곱씹는다.


선생님은 한 명 한 명의 얼굴과 복장, 머리를 꼼꼼하게 체크한다. 머리가 조금 긴 아이에게는 내일까지 더 짧게 잘라오라 했고, 귀걸이를 한 아이는 말도 없이 그 귀걸이를 귀에서 빼 주머니에 넣었다. 머리에 꽂힌 핀도 마찬가지다. 아까의 구름 같은 분위기는 온데간데없다. 소란스럽던 운동장은 순식간에 찬 얼음물을 끼얹은 듯 냉랭하고 무겁다.  걸릴 것이 없이 준비해 왔지만 혹시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선생님 눈에  걸릴까 조마조마하다. 아니나 다를까, 내 앞에 오신 선생님이 나에게 묻는다.


"니 머리 원래 갈색이가?"

내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만지며 선생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어보신다.


내 머리는 검은색이지만 밝은 빛을 받으면 연하게 갈색으로 비치는 얇은 직모이다. 그날따라 운동장에 내리쬐는 아침 햇살은 유난히 눈부셨다.


"아, 아닌데요. 염색 안 했는데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새빨개진 얼굴로 선생님은 물은 적도 없는 염색유무에 대해 변명이라도 하듯 대답한다. 이대로 나는 선생님에게 찍히는 걸까. 내 말을 들은 선생님은 일단은 넘어가겠다는 듯 몸을 돌려 내 뒤에 서 있는 아이에게 가신다. 잘못한 것도 없이 죄를 지은 마음으로 그날을 보낸 이후,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있을까 항상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그날 이후 그런 일은 없었다.



동절기 귀밑 4cm, 하절기 귀밑 2cm.


이것이 내가 다니던 B여자 중학교의 두발규정이었다. 중학생이 된다는 들뜬 마음에 단발머리로 자르는 것조차 기쁜 마음이 들었던 학기 초와 달리 얇은 직모의 촌스러운 단발머리는 관리하기가 꽤 어려웠다. 왜 머리는 가마방향을 따라 한쪽으로만 뒤집어지는 걸까. 그 시절, 정말 뛰어나게 빼어난 미모가 아닌 이상 아이들은 죄다 못생겨 보였고, 하나같이 촌스러웠다. (김태희 언니는 그 머리를 하고도 예쁘더라) 심지어 1학년때는 머리에 층을 내는 것마저 규정에 어긋나 태권도부를 제외한(태권도부는 스포츠머리) 모든 학생들은 오로지 일자로 자른 단발머리만이 가능했다. 머리에 꽂은 수 있는 핀은 검은색 똑딱 핀이 유일했기에 하나같이 공장에서 잘못 찍어낸 듯한 모습을 하고 그 시절을 보냈다.


그나마 규정이 느슨해져 1학년 2학기부터 머리에 층을 내도 되는 것이 허락되었고, 선생님들이 깐깐하게 검사하지 않은 탓(?)에  2cm, 4cm를 조금씩 넘어가기도 했다. 그럭저럭 그 머리에 적응을 하며 어느새 3학년이 되었다.


젊고 아름다운, 내가 동경하던 미술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시고, 나이가 많으신 깐깐해 보이시는 여자 선생님이 새로 오셨다. 그분은 새로 학생 주임을 맡으셨다고 했다.

그 뒤로 미술시간은 두려움 시간이 되었다. 미술시간의 시작은 언제나 복장검사였고, 따로 검사를 하지 않은 날에도 선생님의 눈은 재빠르게 우리 모두를 훑어보았다. 그림을 그리다가 손톱이 조금이라도 긴 아이가 있다면 여자애가 지저분하다며 혼이 났고, 그 손톱에 때라도 끼어 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불호령이 떨어졌다. 앞머리가 긴데도 불구하고 핀을 하지 않은 아이에겐 앞머리를 자르던지 핀을 꽂던지 하라며 소리를 지르셨고, 교복 소매 끝이 더러운 아이는 '어머니 집에서 뭐 하시니'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할 지경이었다.

미술을 너무 좋아하던 나조차 그 시간은 힘들었으며, 아이들은 선생님이 너무 무서워 뒤에서조차 선생님을 욕하지 못했다.


가끔 미술 선생님은 자와 가위를 들고 수업에 들어오셨다. 선생님 눈에 머리가 길다 싶은 아이들은 하나같이 앞으로 불려 나갔다. 귀에 자를 대고 규정보다 조금만 머리가 길어도 선생님은 가차 없이 가위로 한쪽 머리카락을 자르셨다. 아이들은 경악했지만, 대들 수도 없었다. 한쪽만 이상하게 머리카락을 잘린 아이들은 그다음 날 그 길이에 맞춰 나머지 머리카락을 자를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던가. 그렇게 도깨비 같은 미술선생님에게도 철없이 순수했던 그때의 우리들은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선생님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장난을 치고 애교를 부렸다. 항상 정색만 하시던 선생님도 조금씩 부드러워지셨다. 선생님이 자와 가위를 가져오시는 날, 머리가 길어 한쪽 머리카락이 잘린 아이는, 아예 다른 한쪽도 잘라달라고 부탁했고, 선생님은 놀라운 솜씨로 아이들의 머리를 잘라주셨다. 아이들은 돈이 굳었다며 환호했고, 선생님 최고라며 엄지 손가락 두 개를 치켜세웠다. 선생님과 우리들은 다 같이 웃으며 그 미술시간을 시작했다. 나중에 선생님은 처음처럼 무섭지는 않았고, 많이 다정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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