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만 원짜리 조명을 구매하다<심리 유튜버 성장 일기>

<아무도 안 보지만 유튜버입니다>

by 김현
<아무도 안 보지만 유튜버입니다>


총 10편. 유튜브를 다시 시작하고 올린 영상의 개수다. 결과는 어땠냐고? 보기 좋게 모두 폭망. 한 편을 제외하곤 모두 조회수 1000회도 넘지 못했다. 영상들은 올리기만 하면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럴 때마다 난 쓰레기 통을 뒤지듯 문제의 원인을 뒤적거리곤 했다. "흠... 썸네일이 별론가?" "아~ 이 주제는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하나?" "오케이! 제목을 좀 구체적으로 바꿔보자" 난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아냈다. 물론 그 해결책들이 나를 매번 배신했다는 게 문제였지.




그런데 사실은...진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영.상.미. 유튜브는 브런치가 아니다. 글만 읽는 블로그나 브런치와는 다르게 유튜브는 시각과 청각이라는 요소도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시각과 청각이 문자보다 훠어어어어얼 씬 더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난 지금까지 그 팩트를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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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흰 바탕에 검은 글씨만 띄워진 유튜브 영상을 끝까지 시청할 수 있겠는가?


이 질문에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할 것 같은가? 내용이 유익하면 끝까지 볼 수 있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난 모험을 감행했다. 흰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만 영상을 제작했다. 아무런 이미지도 넣지 않고 아무런 움짤도 넣지 않았다. 오로지 흰 배경을 바탕으로 내 목소리에 맞춰 검은색 자막만 띄웠다. 도파민이 판치는 유튜브 생태계에서 난 자발적으로 사냥감이 되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왜 그랬나 싶다. 내가 나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했었나? 아무런 이미지 없이 그냥 글만 달랑 띄워놓아도 메세지만 좋다면 사람들이 볼꺼라고 생각했나?아니면 그냥 편집하기 귀찮아서? 편하게 하고 싶었나? 모르겠다. 이유는 이 중 하나일 수도 있고 모두일 수도 있다. 어느쪽이든 확실한 것은 내가 틀렸다는 것이다.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영상 편집으로 승부보는 것이다. 메세지를 더 와닿게 하기 위해 적절한 이미지를 넣는다. 중간 중간 짧은 영상도 넣는다. 가능하다면 애니매이션까지 한번 추가해 본다. 또 다른 방법은 영상에 내가 나오는 것이다. 얼굴을 드러내는 게 베스트지만 그건 내가 원하지 않는다. 몸만 보이게 카메라 구도를 잡고 그에 맞게 조명을 뿌린다. 디퓨져나 조화 커튼 등으로 그럴듯한 환경을 조성한다. 이정도만 해도 영상 퀄이 꽤 올라간다.





난 몇일 간 고민 끝에 내가 직접 영상에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영상 편집으로 승부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배울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걸 다 인내할 자신이 없었다. 설령 배운다고 해도 또 다른 문제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컴퓨터. 우리집 컴퓨터는 수많은 편집소스를 감당할 능력이 못된다.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만 써도 버벅거리는데, 그 많은 클립을 어떻게 버텨내겠는가.





그래서 난 오늘 조명 하나를 구매했다. 26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서. 테이블에 덮을 식탁보와 그 위에 놓을 디퓨저도 구매했다. 이제는 영상의 분위기를 바꿀 때가 됐다. 그동안 영상미를 너무 외면했다. 물론 이렇게 발버둥친다고 조회수가 오르진 않는다. 이미 난 2년 전에도 내 모습을 영상에 담았었다. 그때도 잘 안됐었다. 하지만 흰 배경에 글만 띄우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을까? 처음 10초 보고 끌 사람도 한 10초는 더 봐주지 않을까?몇번 아작나 보니까 미련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이렇게 까지 실패해보지 않았으면 난 아직도 이런 말을 했을 것 같다. "포장이 뭐가 중요해? 내용물이 중요하지" 착각이다. 포장도 내용물만큼 중요하다. 어쩌면 포장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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