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했던 친구가

by 김현


이제는 친구가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왜 일까? 나이를 먹어서? 더 소중한 것들이 생겨서?

모르겠다.







30대 중반이 되니까 마음 속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친구에 대한 내 마음도 그렇다. 어릴 땐 친구가 전부였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어느 순간부터는 친구가 없어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뭐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20대의 내가 봤다면 헛소리하지 마라며 내 얼굴에 침을 튀겼을만한 소리다. 하지만 진심이다.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굳이 친구가 없어도 살아가는데 지장 없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달부터였나?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소중한 것이 늘어난다. 여자친구, 돈, 앞으로의 미래, 부모님의 건강, 사회적 지위. 걱정하고 고민해야할 것들이 갑작스레 나를 들이닥친다. 현실이라는 파도에 친구는 밀려난다. 친구가 싫어져서가 아니다. 친구보다 소중한 것들이 많아져서다. 친구라는 패는 쏠쏠하다. 하지만 나머지 패가 더 좋다면 친구를 버리는 게 맞는 선택이다.





물론 난 아직 친구들과 사이 좋게 자알 지내고 있다. 각자의 일 때문에. 그리고 각자의 가족 때문에 자주 못 보기는 하지만 그래도 종종 연락하고 계를 하며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뭐 어쨌든 내 마음이 변한 건 변한 거니까. 아마 친구들도 같은 생각일 거라고 본다. 내 친구 중 한 명도 결혼하고 아기를 낳으니까 나랑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친구가 뒤로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땐 솔직히 조금 섭섭했다. 나랑 제일 친한 친구가 그런 말을 한 거니까. 근데 그 후로 4년이 지난 지금 나도 같은 마음이다. 어쩌면 지금은 내가 더 감정이 메말랐을 수도 있다.




난 앞으로도 그럴까 궁금하다. 40대 50대가 되면 어떨까? 내가 어릴 때 어른들은 나이를 먹으면 친구들과 점점 더 멀어진다고 했다. 점점 더. 점점 더라는 뜻은 이제 시작이라는 뜻이다. 앞으로는 더 멀어질 일만 남았다는 소린데 여기서 더 멀어지면 남이 되라는 건가?ㅎㅎ 그래도 그 정도까지는 안 멀어졌으면 한다. 뭐 서로 못 만나도 어쨌든 친구가 하나라도 있는 게 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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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중천에 뜬 오후 1시. 뜨거운 햇빛이 창틈으로 들어와 주방의 열기를 올린다. 난 파스타 면을 삶으려 18cm 편수냄비에 수돗물을 붓는다. 그러다 문득 제는 친구가 없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어온다. 난 잠시 멍해다. 런 생각이 들어서가 아니라 이런 생각이 아무런 이물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현실때문에. 난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는다. 냄비에 담긴 자박한 물은 어느새 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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