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하면 똥을 싸도 박수 친다. 원래도 아는 말이었지만 유명세가 이렇게 중요하다고? 난 솔직히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난 침대에 누워 유튜브 쇼츠를 넘기고 있었다. 그러다 마주친 명언 쇼츠. 역사상 가장 지능이 높았던 철학자 칸트가 말한 인생 명언 3가지? 요새 칸트를 공부하느라 계속 검색해서 그런가, 자연스럽게 연관 쇼츠에 뜬 것 같다. 근데 내용이... 아니 이게 뭔 칸트가 한 말이여? 이 쇼츠는 지나가는 개도 알만한 당연한 소리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양산형 쇼츠였다.
남을 의식을 하지 마라. 돈을 빌려주지 마라. 뭘 하지 마라 어쩌고 저쩌고. 칸트가 한 말이 아닌 것도 모자라 그냥 흔하디 흔한 뻔한 소리들이었다. 순간 난 머리가 뜨거워졌다. 곧바로 그 채널에 올라온 다른 쇼츠도 살펴봤다. 가장 유명한 철학자 니체가 말한 인생 명언 5가지! 역시나 니체가 하지도 않은 소릴 그럴듯하게 포장했다. 목소리도 ai 성우인지 어디서 들어봤던 목소리였다. 어휴.
그런데 내 눈길을 사로잡는 부분이 있었다. 쇼츠 조회수가 대부분 몇만 이상이었고 좋아요 수도 거의 1천 개를 넘었다. 난 멍해졌다. 뭐지? 댓글창을 열어보니 온통 자기반성으로 가득한 글들이 널려 있었다. 아니... 이거 니체가 한 말 아닌데?
사람들은 당연히 모를 수 있다. 우리가 칸트랑 니체를 알 필요는 없으니까. 알아야 할 이유도 없고 모른다고 문제 될 것도 없다. 다만 내가 잠시 멍해졌던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난 이런 생각을 했다. "야... 이게 사람들이 명성이나 평판에 생각보다 영향을 더 많이 받네. 완전 헛소린데 유명인이 말했다고 하니까 그냥 믿어버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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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느냐 보다 누가 말했느냐에 더 관심을 둔다. 이미 이 사실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수사학에서 암시한다. 설득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그 사람의 성격이다. 즉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면 평판과 명성이라고 할 수 있다. 유명하면 똥을 싸도 박수친다. 상대방을 납득시키려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느냐보다 내가 얼마나 유명하냐가 더 중요하다. 내 명예가 높다면 내 말에 권위가 생긴다. 개소리를 해도 그런 듯해 보인다. 헛소리를 해도 귀 기울인다. 구독자 100명 유튜버가 한 말을 100만 유튜버가 하면 의혹이었던 그 말은 정답이 된다. 내용은 안 중요하다. 그 내용을 누가 안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래도 난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명언 쇼츠의 내용은.. 그냥 진짜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친구들이랑 모여 술을 들이붓다 보면 꼬인 혀를 통해 자연스럽게 토해지는 흔하디 흔한 말. 뒷담화 하면 안 돼~ 아무리 친해도 돈거래는 조심해야 해~ 약점을 보이면 안 돼~ 과연 역사상 가장 지능이 높은 철학자라는 제목을 뺏어도 사람들이 공감했을까? 아무런 의심 없이 그 말들을 들으며 자기반성에 빠졌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당연한 소릴 그럴듯하게 하는구먼~ 하며 바로 휴대폰 화면을 스르륵 넘겨버렸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명언 쇼츠 만드는 사람들이 똑똑한 거다. 사람들이 설득당하는 심리를 잘 파악한 거니까. 나도 칸트나 니체를 몰랐으면 당했겠지. 어쩐지 '역사상 가장 지능이 높은'이라는 말을 지나치게 강조해 놨더라. 이 또한 ai로 만들어 낸 명언에 권위를 불어넣기 위한 기술인거지. 대단하다. 하지만 한계는 있을 것이다. 절대 이런 잡기술로는 어느 정도 이상의 구독자는 못 끌어들인다. 사람들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이용하는 쇼츠는 사라져야 한다. 유튜브도 그걸 알고 대책을 세우는 것 같긴 하다. 제발 좀 이딴 콘텐츠들은 싹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