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 타블렛』제8장

제8장: 여덟 번째 구절 주해

by 이호창

제8장: 여덟 번째 구절 주해


원문:

“이리하여 그대는 온 세상의 영광을 얻을 것이요, 모든 어둠은 그대에게서 달아날 것이다.”

(Hoc modo habebis gloriam totius mundi. Ideo fugiet a te omnis obscuritas.)



8.1. 우주론적 해석: 빛의 창조와 어둠의 소멸


모든 창조 신화의 정점에는 ‘빛의 도래(Fiat Lux)’라는 장엄한 사건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태초의 혼돈과 어둠이 마침내 질서와 광명에 자리를 내어주는, 우주적 아침의 첫 순간입니다. 『에메랄드 타블렛』의 여덟 번째 구절은 바로 이 창조의 클라이맥스를 선언합니다. 앞선 구절들이 ‘하나의 실체’의 기원과, 그것을 정화하고 고양시키는 순환의 과정을 설명했다면, 이제 이 구절은 그 모든 작업의 궁극적인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 결과는 바로 “온 세상의 영광”을 얻는 것이며, 그 영광이 현현하는 순간 “모든 어둠은 달아날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어둠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빛의 완전한 현존 앞에서 어둠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 설 자리를 잃고 소멸하는, 근본적인 실재의 변혁을 의미합니다.


“이 방법을 통하여”: 창조의 메커니즘


이 위대한 결과는 어떻게 성취됩니까? 구절의 시작인 “이리하여(Hoc modo)”, 즉 “이 방법을 통하여”라는 말은, 이 모든 것이 바로 앞선 일곱 번째 구절에서 묘사된 순환의 과정에 의해 이루어짐을 명확히 합니다. “그것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고, 다시 땅으로 내려와, 위와 아래의 힘을 받는다.” 이 영원한 상승과 하강의 순환이야말로,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 우주적 연금술의 엔진입니다.

우주론적 관점에서, 이 순환은 태양의 열기(위의 힘)가 지상의 바다(아래의 힘)를 비추어 수증기를 하늘로 끌어올리고, 그 순수해진 수증기가 다시 비가 되어 땅을 적시는 거대한 증류 과정과 같습니다. 태초의 우주는 ‘어둠’, 즉 모든 가능성이 구분 없이 뒤섞인 혼돈의 상태였습니다. 『코르푸스 헤르메티쿰』의 「포이만드레스」가 묘사했듯이, 이것은 “뱀처럼 꿈틀거리는” “축축한 본성”입니다. 바로 이 어둡고 혼돈된 물질 속에, ‘하나의 실체’는 신성한 빛의 씨앗을 품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연금술적 순환, 즉 끊임없는 승화와 응축의 과정은, 이 혼돈의 물질로부터 빛의 씨앗을 분리하고, 정화하며, 그 힘을 점차 강화시켜 마침내 스스로 빛을 발하는 태양으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 동적인 순환의 과정 없이는, 어둠은 영원히 어둠으로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온 세상의 영광”: 질서 잡힌 코스모스의 탄생


이 순환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은 바로 “온 세상의 영광(gloriam totius mundi)”입니다. 여기서 ‘영광’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혼돈이 물러가고 질서가 세워진, 아름답고 조화로운 코스모스 그 자체입니다. 태초의 어둠 속에서는 어떤 형태나 구별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상승과 하강의 순환을 통해, 빛과 어둠이 나뉘고, 하늘과 땅이 제자리를 찾으며, 행성들이 각자의 궤도를 따라 운행하기 시작합니다. 이 질서정연하고 예측 가능한 우주의 운행, 모든 존재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전체의 조화를 이루는 이 장엄한 모습이야말로 ‘세상의 영광’입니다.

이것은 『키발리온』이 말하는 ‘극성의 원리(The Principle of Polarity)’와 깊이 연결됩니다. 혼돈과 질서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실체가 아니라, 동일한 실체의 양 극단입니다. 위대한 작업은 혼돈이라는 극에서 질서라는 극으로 진동수를 이동시키는 과정입니다. 그 영광의 정점에서, 우주는 더 이상 무의미한 물질의 집합이 아니라, 신성한 마음(Nous)의 지성이 완벽하게 표현된, 살아있고 의미로 가득 찬 예술 작품이 됩니다.


“모든 어둠은 달아나리라”: 빛의 절대적 우위


이 영광의 현현이 가져오는 필연적인 결과는 “모든 어둠이 그대에게서 달아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빛이 어둠과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빛이 현존할 때 어둠이 ‘스스로 달아난다(fugiet)’고 표현된 점입니다. 이는 빛과 어둠이 동등한 힘을 가진 두 개의 대립적인 원리가 아님을 암시합니다. 어둠은 빛의 ‘부재’ 혹은 ‘결핍’일 뿐, 그 자체로 독립적인 실체를 가지지 못합니다.

촛불 하나를 켜는 순간, 그 방을 가득 채우고 있던 어둠은 어디로 갑니까? 그것은 촛불과 싸우다 패배하여 쫓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빛이 존재하는 바로 그곳에, 어둠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될 뿐입니다. 이처럼, 위대한 작업을 통해 탄생한 ‘철학자들의 돌’, 즉 온전한 빛의 실체가 현현하는 순간, 이전의 혼돈과 무질서, 무지라는 ‘모든 어둠’은 그 존재의 근거를 잃고 자연스럽게 소멸합니다.


이것은 『키발리온』의 ‘진동의 원리(The Principle of Vibration)’를 통해 더 깊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진동하며, 빛은 어둠보다 무한히 높은 진동수를 가집니다. 연금술적 순환의 과정은 물질의 진동수를 점진적으로 높여나가는 기술입니다. 그 진동수가 마침내 빛의 임계점을 돌파하는 순간, 낮은 진동수의 상태인 어둠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고, 그 실체 자체가 빛의 실체로 변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메랄드 타블렛』의 여덟 번째 구절은 우리에게 우주 창조의 마지막 단계를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순환이라는 신성한 메커니즘을 통해, 태초의 어둠과 혼돈으로부터 질서와 영광의 코스모스를 탄생시키는 과정입니다. 이 우주적 일출(日出)의 드라마는, 다음 단계에서 우리가 탐구할 심리적 연금술, 즉 우리 내면의 어둠을 몰아내고 의식의 빛을 창조하는 과정의 완벽한 원형이자 약속이 됩니다.


8.2. 연금술적 해석: ‘알베도(백화)’ 단계의 완성


만일 일곱 번째 구절이 연금술의 과정, 즉 ‘증류(distillation)’의 비밀을 묘사했다면, 여덟 번째 구절은 그 과정의 첫 번째 위대한 결실이 무엇인지를 선언합니다. 연금술의 용광로 안에서, 이 선언은 위대한 작업의 첫 번째 주요한 목표 달성, 즉 ‘알베도(Albedo)’, 혹은 ‘백화(白化)’ 단계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니그레도(Nigredo)의 가장 깊은 어둠과 부패가 마침내 끝나고, 물질이 그 모든 불순물을 벗어던진 채 눈부시게 빛나는 순백의 상태에 도달하는 기적의 순간입니다. 이 순간, 연금술사는 “온 세상의 영광”의 첫 번째 빛을 얻게 되며, “모든 어둠은 그에게서 달아납니다.”


어둠의 소멸과 흰 돌의 탄생


위대한 작업의 첫 단계인 니그레도는 연금술사에게 가장 길고도 고통스러운 시련의 시간입니다. 용기 안의 물질은 모든 형태를 잃고 검게 썩어 들어가며, 마치 모든 희망이 사라진 듯 보입니다.

『헤르메스 비의』는 이 상태를 “검은 까마귀”의 탄생으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연금술사는 이 어둠에 절망하지 않고, ‘부드러운 불’을 유지하며 끊임없이 정화의 작업을 계속합니다. 일곱 번째 구절이 묘사했듯이, 물질의 ‘영’은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오는 순환을 반복하며, 마치 “부드럽고 긴 비”가 까마귀의 검은 깃털을 씻어내듯이, 물질의 어두운 본질을 정화합니다.

마침내 이 기나긴 세척의 과정이 끝났을 때, 용기 안에서는 경이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모든 검은색이 완전히 사라지고, 물질은 완벽하고 눈부신 흰색으로 변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덟 번째 구절이 말하는 “모든 어둠이 달아나는” 순간입니다. 검은 까마귀는 이제 “가장 흰 백조”로 변모했으며, 연금술사는 ‘축복받은 돌’ 혹은 ‘흰 돌(White Stone)’이라 불리는 첫 번째 완성을 손에 쥐게 됩니다. 이 흰 돌은 더 이상 이전의 불순하고 불안정한 물질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시련을 견뎌낸, 정화되고 안정된 새로운 실체입니다.


세상의 영광: 은(銀)의 창조


이 ‘알베도’의 완성품이 얻게 되는 “온 세상의 영광”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연금술의 전통에서, 흰 돌은 불완전한 금속들을 완전한 ‘은(Silver)’으로 변성시키는 힘을 가진다고 전해집니다. 은은 달(Luna)의 금속이며, 순수함, 명료함, 그리고 반사하는 빛을 상징합니다. 즉, 알베도 단계는 아직 최종적인 완성인 ‘금(Gold)’의 단계는 아니지만, 모든 불완전함(납)을 넘어선 첫 번째 완벽한 상태(은)를 성취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키발리온』의 ‘극성의 원리(The Principle of Polarity)’를 통해 이해될 수 있습니다. 납과 은은 서로 다른 종류의 물질이 아니라, ‘금속성’이라는 동일한 실체의 양 극단에 위치합니다. 납은 가장 불완전하고 낮은 진동수의 극에, 은은 첫 번째로 완전하고 높은 진동수의 극에 있습니다. 연금술의 작업은, 니그레도라는 과정을 통해 납의 모든 불순한 성질을 제거하고, 그 진동수를 높여 마침내 은의 극성에 도달하게 하는 기술입니다. 이 흰 돌을 불완전한 금속에 투사(projection)하면, 그 금속의 진동수 또한 은의 진동수와 공명하게 되어, 그 본질 자체가 은으로 변성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백색 팅크제: 치유의 힘


더 나아가, 이 흰 돌은 단순히 금속을 변성시키는 것을 넘어, 인간의 질병을 치유하는 ‘백색 팅크제(White Tincture)’로서의 힘을 지닌다고 여겨졌습니다. 『헤르메스 비의』는 완성된 돌이 “모든 피조물의 모든 질병에 대한 보편적 의약”이 된다고 말합니다. 알베도 단계에서 얻어진 흰 돌은, 아직 완전한 엘릭시르는 아니지만, 육체의 불균형과 질병(어둠)을 몰아내고, 그것을 본래의 건강하고 조화로운 상태(빛)로 되돌리는 강력한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질병이 육체 안의 원소들의 불균형과 불순함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을 때, 모든 불순물이 제거되고 완벽한 조화를 이룬 흰 돌은, 그 자체로 가장 완벽한 치유제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여덟 번째 구절은 연금술사에게 가장 큰 위안과 희망을 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기나긴 니그레도의 어두운 밤을 인내하며 작업을 계속한 자에게는, 반드시 “모든 어둠이 달아나고” 순백의 광명이 찾아오는 새벽이 올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 ‘알베도’의 완성은 단순한 중간 단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위대한 영광이며, 불완전함을 완전함으로, 질병을 건강으로 바꾸는 첫 번째 기적의 실현입니다. 이 흰 돌이라는 견고한 토대 위에서, 연금술사는 비로소 최종적인 완성, 즉 붉은 황금의 창조를 향한 마지막 여정을 시작할 준비를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8.3. 심리학적 해석: 그림자 통합과 내면의 광명 체험


연금술의 위대한 작업이 우리 영혼의 심층 구조를 탐험하고 변성시키는 내면의 여정이라면, 『에메랄드 타블렛』의 여덟 번째 구절은 그 여정의 가장 눈부신 심리적 성취가 무엇인지를 약속하는 희망의 선언입니다. 앞선 구절들이 우리를 내면의 혼돈과 대면하게 하고(솔베, Solve), 그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세우도록(코아굴라, Coagula) 이끌었다면, 이제 이 구절은 그 모든 고된 작업의 결과로 얻어지는 내면의 상태, 즉 “온 세상의 영광”을 얻고 “모든 어둠”이 사라지는 체험에 대해 말합니다. 심리학적으로 이것은, 개인이 자신의 ‘그림자(Shadow)’를 성공적으로 통합하고, 그 결과로써 이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내면의 광명과 온전함을 체험하는 ‘개성화(individuation) 과정’의 결정적인 순간에 해당합니다.


“이 방법을 통하여”: 통합의 심리적 과정


이 눈부신 결과는 어떻게 얻어집니까? 구절의 시작인 “이리하여(Hoc modo)”는 이 모든 것이 바로 앞선 일곱 번째 구절에서 묘사된 심리적 순환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명확히 합니다. “그것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고, 다시 땅으로 내려온다.” 이 과정은 우리 내면의 두 가지 핵심적인 심리적 활동을 상징합니다.

첫째,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우리의 어둡고 혼란스러운 무의식적 내용물(땅)을, 의식적인 성찰과 이해(하늘)의 빛 속으로 가져오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이유 없는 강렬한 분노를 느낀다고 가정해 봅시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감정에 휩쓸려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혹은 그 감정을 억누르며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그러나 심리적 연금술사는 이 분노라는 ‘땅의 물질’을 자신의 ‘의식의 하늘’로 가져갑니다. 그는 “나는 왜 이토록 분노하는가? 이 감정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것은 과거의 어떤 상처와 연결되어 있는가?”라고 자문하며, 그 감정을 분석하고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이것이 바로 무의식의 의식화 과정입니다.

둘째, “다시 땅으로 내려오는 것”은 하늘에서 얻은 그 의식적인 통찰을, 다시 자신의 구체적인 삶과 감정(땅) 속으로 가져와 통합하는 과정입니다. 자신의 분노가 사실은 과거에 겪었던 무력감과 슬픔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달은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분노를 맹목적으로 폭발시키는 대신, 자신의 슬픔을 애도하고,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위로하는 새로운 행동 방식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늘에서 얻은 앎(Gnosis)이 땅에서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킬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치유와 통합이 일어납니다.


“온 세상의 영광”: 통합된 자아의 체험


이러한 상승과 하강의 순환을 통해 그림자가 성공적으로 통합될 때, 구도자는 “온 세상의 영광”을 얻게 됩니다. 이것은 외부적인 부나 명예를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내면의 모든 대극들이 조화롭게 통합된 상태, 즉 ‘자기(Self)’를 체험하는 것에서 오는 충만함과 온전함의 느낌입니다.

이전까지 구도자의 내면은, 선과 악, 이성과 감성, 빛과 그림자가 서로 다투는 전쟁터였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자기 안의 한 부분을 다른 부분으로 억누르려 애쓰며, 막대한 심리적 에너지를 내적 갈등 속에 소모했습니다. 그러나 그림자를 통합한 영혼은 더 이상 자신과 싸우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연약함과 강인함, 너그러움과 이기심, 빛나는 이상과 어두운 욕망 모두가 자기 자신의 일부임을 온전히 수용합니다.

이것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들이 마침내 조화를 이루어 장엄한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전에는 소음처럼 들렸던 저음의 튜바(그림자)와 날카로운 트럼펫(공격성)이, 이제는 바이올린(사랑)과 플루트(영성)의 멜로디와 어우러져 전체 음악에 깊이와 풍성함을 더해줍니다. 이 내면의 조화와 전체성의 체험이야말로, 다른 어떤 세속적인 성취와도 비교할 수 없는 “온 세상의 영광”입니다.


“모든 어둠은 달아나리라”: 그림자의 변성


이 영광의 체험이 가져오는 필연적인 결과는 “모든 어둠이 그대에게서 달아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여기서 ‘어둠(obscuritas)’이란 우리가 외면하고 억압했던 그림자를 의미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타블렛이 우리가 어둠과 싸워 이기거나 그것을 파괴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둠은 그저 “달아난다(fugiet)”고 표현됩니다.

이는 그림자 통합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통찰입니다. 그림자는 그 자체로 악한 실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의식의 빛이 닿지 않는 곳에 머물러 있을 때, 왜곡되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그 힘을 드러낼 뿐입니다. 우리가 용기를 내어 의식의 빛으로 그림자를 비추고, 그 안에 담긴 감정과 욕망들을 이해하고 수용할 때, 그림자는 더 이상 우리를 위협하는 어둠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창조적인 에너지의 원천으로 변성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공격성(그림자)을 억압해 온 사람은 종종 수동-공격적인 행동이나 원인 모를 분노 폭발로 고통받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공격성을 의식적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자기주장이나 목표 성취와 같은 건설적인 방향으로 사용하는 법을 배울 때, 그림자는 더 이상 ‘어둠’이 아니라 ‘힘’이 됩니다. 빛이 비추는 곳에 어둠이 존재할 수 없듯이, 의식적인 이해와 통합의 빛이 비추는 곳에, 그림자의 파괴적인 힘은 그 설 자리를 잃고 ‘달아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에메랄드 타블렛』의 여덟 번째 구절은, 심리적 연금술의 최종적인 목표가 내면의 어둠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어둠을 온전히 끌어안아 빛으로 변성시키는 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고통스럽고도 용기 있는 통합의 과정을 통과한 자만이, 분열의 고통에서 벗어나, 자기 존재의 모든 측면이 조화롭게 춤추는 내면의 광명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자의 돌이 약속하는 진정한 의미의 심리적 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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