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세 가지 원리(Drei Prinzipien) – 존재의 구조
야콥 뵈메(Jacob Boehme)의 사상 체계에서 ‘일곱 자연 성질(Sieben Quellgeister / Natureigenschaften)’과 더불어 우주와 신, 그리고 인간 존재를 이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틀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세 가지 원리(Drei Principien, Three Principles)’이다. 이 세 가지 원리는 단순히 세 개의 다른 세계나 힘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그 안에서 생성되고 활동하며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는 세 가지 근원적이면서도 상호 연관된 실재의 차원 또는 양태를 의미한다. 뵈메는 이 세 원리를 통해 신적인 본질이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고, 우주 만물이 어떻게 구성되며, 선과 악이 어떻게 발생하고, 인간이 어떻게 타락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통합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그의 다른 주요 저작인 《세 가지 원리 또는 신적 본질의 세 가지 기초에 관한 설명, Beschreibung der Drey Principien Göttliches Wesens》 (1619)은 바로 이 개념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으며, 그의 사상 전반에 걸쳐 이 세 원리에 대한 이해는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4.1. 제1원리: 어둠의 세계, 불의 근원, 아버지의 성질
야콥 뵈메가 제시하는 ‘첫 번째 원리(das erste Principium)’는 모든 존재의 가장 깊은 근원이자 토대가 되는 실재의 첫 번째 차원이다. 그는 이 원리를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는데, 대표적인 것이 ‘어둠의 세계(finstere Welt)’, ‘불의 근원(Feuerquell)’, 또는 삼위일체(Heilige Dreifaltigkeit)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아버지의 성질(Eigenschaft des Vaters)’이다. 이 첫 번째 원리는 아직 빛과 분리되지 않은 원초적인 상태, 즉 강력하고, 수축하며(contractive), 자기중심적이고, 때로는 격렬하며 고통스러운 힘이 지배하는 영역을 나타낸다. 이것은 마치 모든 가능성이 응축되어 있지만 아직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강력한 잠재력의 어두운 자궁과도 같다.
뵈메의 사유 안에서 ‘어둠’은 단순히 빛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을 넘어, 자기 자신 안으로 깊이 수렴하고 응축하려는 근원적인 힘을 상징한다. 이 어둠의 세계는 운그룬트(Ungrund)라는 규정할 수 없는 심연에서 신적인 의지(Wille)가 자기 자신을 느끼고 소유하고자 하는 ‘갈망(Begierde)’을 통해 처음으로 형성된다. 이때 의지는 아직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치 캄캄한 방 안에 홀로 갇힌 것처럼 자기 자신만을 향하게 된다.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할 때 외부의 모든 자극을 차단하고 오직 그 문제에만 몰두하며 자기 내면으로 깊이 파고드는 경험을 할 수 있듯이, 이때 우리의 의식은 마치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것처럼 자기 자신에게로 강하게 집중된다. 제1원리의 ‘어둠’은 이와 유사하게, 아직 외부 세계와 관계 맺지 않고 자기 자신 안에 갇혀 있는 듯한, 강력하지만 고립된 힘의 상태를 나타낸다. 이 어둠의 세계는 그 자체로는 고통스럽고 불안정한 상태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만을 향하는 의지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갈망하지만, 그것을 채워줄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자기 자신 안에서 맴돌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배고픈 사자가 먹이를 찾지 못해 포효하는 모습과도 같다. 이러한 내적인 불만족과 긴장이 바로 제1원리의 역동성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뵈메는 이 첫 번째 원리의 격렬하고 역동적인 성격을 ‘불의 근원(Feuerquell)’ 또는 ‘분노의 불(Zornfeuer)’이라는 강력한 이미지로 표현한다. 이 ‘불’은 모든 것을 소멸시키고 정화하며, 동시에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근원적인 신적인 힘을 상징한다. 이것은 앞서 ‘일곱 자연 성질’의 첫 번째 삼중주(수렴, 확장, 회전)가 만들어내는 격렬한 에너지와도 연결된다.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는 용광로의 불을 생각해 볼 수 있듯이, 그 불은 단단한 쇠를 녹일 만큼 강력하고 뜨겁지만, 동시에 그 열기를 통해 쇠는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질 수 있다. 제1원리의 ‘불’은 이와 유사하게,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자기 자신 안으로 삼키려는 파괴적인 힘(분노의 측면)을 지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존재에게 생명력을 부여하고 활동하게 만드는 근원적인 에너지(생명의 측면)이기도 하다. 이 ‘불의 근원’은 모든 존재가 자기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외부의 위협에 저항하기 위해 필요한 힘이다. 그러나 이 불이 제어되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폭발할 경우, 그것은 파괴와 고통, 그리고 죽음을 가져오는 ‘지옥의 불(höllisches Feuer)’로 변질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첫 번째 원리의 불은 항상 다음에 나타날 두 번째 원리인 ‘빛의 원리’에 의해 조명되고 부드럽게 조절되어야만 창조적이고 생명을 주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뵈메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 첫 번째 원리를 ‘아버지의 성질’과 연결시킨다. 성부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가장 깊은 근원이자 보이지 않는 토대이며, 그의 본질은 이 첫 번째 원리의 강력하고 때로는 엄격하며 심판하는 듯한 특성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성부의 의지는 모든 것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지만, 동시에 모든 존재에게 경계와 질서를 부여하고, 그릇된 것을 심판하며 바로잡으려는 엄격한 공의의 측면도 지니고 있다. 한 가정에서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사랑과 보살핌을 제공하는 동시에 때로는 엄격한 규칙과 훈육을 통해 자녀들이 올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역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듯이, 뵈메의 관점에서 성부 하나님의 첫 번째 원리는 모든 존재에게 생명의 근원이 되지만 동시에 그들이 자신의 한계를 알고 질서 안에서 살아가도록 요구하는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과도 같다. 이 ‘아버지의 성질’은 모든 피조물에게 두려움과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힘이지만, 동시에 모든 존재가 의지할 수 있는 가장 견고하고 변하지 않는 기초이기도 하다. 이 첫 번째 원리 없이는 어떠한 존재도 그 형태를 유지하거나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
요약하자면, 야콥 뵈메가 제시하는 ‘첫 번째 원리’는 모든 존재의 근저에 있는 어둡고 강력하며 자기중심적인 힘의 차원이다. 이것은 ‘어둠의 세계’이자 ‘불의 근원’이며, 삼위일체 하나님 중 ‘아버지의 성질’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이 첫 번째 원리는 그 자체로 악한 것은 아니지만, 고통과 갈등, 그리고 파괴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원리는 모든 존재가 자기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하고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기초이자, 다음에 이어질 빛의 원리가 드러나기 위한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뵈메는 이 첫 번째 원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어둠과 고통의 문제를 피상적으로만 보지 않고, 그것이 신적인 생명의 전체 드라마 안에서 어떤 의미와 역할을 지니는지를 탐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4.2. 제2원리: 빛의 세계, 사랑의 근원, 아들의 성질
야콥 뵈메(Jacob Boehme)가 제시하는 ‘세 가지 원리(Drei Principien)’ 중 첫 번째 원리가 주로 어둡고 격렬하며 자기중심적인 ‘아버지의 성질(Eigenschaft des Vaters)’을 나타낸다면, ‘두 번째 원리(das zweite Principium)’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밝고 부드러우며 모든 것을 포용하는 ‘아들의 성질(Eigenschaft des Sohnes)’을 드러낸다. 이 두 번째 원리는 신적인 본질 안에서 어둠의 힘을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의 생명과 조화를 창조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뵈메는 이 원리를 ‘빛의 세계(lichte Welt)’, ‘사랑의 근원(Quelle der Liebe)’, 그리고 삼위일체(Heilige Dreifaltigkeit)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아들의 성질’이라고 부르며,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를 통해 세상에 계시된 신의 본질적인 모습이라고 강조한다.
두 번째 원리는 첫 번째 원리의 어둡고 혼란스러운 상태 속에서 마치 번개(Blitz)처럼 터져 나오는 ‘빛(Licht)’의 세계이다. 이 빛은 단순한 물리적인 밝음이 아니라, 모든 존재에게 생명을 주고, 진리를 깨닫게 하며,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신적인 에너지 그 자체이다. 어둠이 모든 것을 자기 안으로 수축시키고 응축시키려는 힘이라면, 빛은 모든 것을 밖으로 확장시키고 서로 연결하며 조화롭게 만드는 힘이다. 캄캄한 밤에 등불을 켜면 그 빛이 주변의 어둠을 몰아내고 사물의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주듯이, 제2원리의 빛은 제1원리의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명료한 질서와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또한, 겨울 동안 얼어붙었던 땅이 봄 햇살(빛)을 받아 녹으면서 새로운 생명(새싹)을 피워내듯이, 이 빛의 세계는 죽음과 절망에 빠진 존재들에게 새로운 생명과 희망을 가져다준다. 뵈메의 사유 안에서 이 ‘빛의 세계’는 신적인 지혜(Sophia, 소피아)가 그 완전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장소이며, 모든 피조물이 자신의 참된 본성을 발견하고 신과의 교제를 누릴 수 있는 이상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이곳은 어둠이나 고통, 갈등이 없는 순수한 기쁨과 평화, 그리고 사랑으로 가득 찬 영역이다.
두 번째 원리의 핵심적인 특징은 바로 ‘사랑(Liebe, Love)’이다. 이 사랑은 첫 번째 원리의 자기중심적이고 분리적인 성향과는 정반대로, 모든 것을 서로 연결하고 포용하며 하나로 만들려는 힘이다. 이 사랑은 조건 없으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다른 존재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치유하는 희생적인 사랑이다. 어머니가 자녀를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고 보살피며 자녀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듯이, 제2원리의 사랑은 모든 존재를 향한 무한한 긍휼과 자비심이며, 상처받고 소외된 존재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고 회복시키는 힘이다. 또한, 서로 다른 생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되어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공동체를 이루는 모습도 이 사랑의 원리가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뵈메는 이 사랑의 원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희생을 통해 가장 완전하게 드러났다고 본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사랑으로 세상의 모든 미움과 폭력, 그리고 죽음의 힘을 이기셨으며, 이를 통해 모든 인간에게 신적인 사랑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이다. 이 사랑은 첫 번째 원리의 ‘분노의 불(Zornfeuer)’을 ‘사랑의 불(Liebesfeuer)’로 변화시키는 연금술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 두 번째 원리는 ‘아들의 성질’과 연결된다. 성자(Der Sohn)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성부(Der Vater)로부터 ‘낳아지며(gezeugt, begotten)’, 성부의 보이지 않는 본질을 드러내는 ‘영원한 말씀(das ewige Wort, 그리스어: Logos, 로고스)’이다. 이 말씀은 신적인 이성이자 창조적인 지혜이며, 모든 존재의 원형(archetype)을 담고 있다. 우리가 어떤 계획을 세울 때 그 계획이 처음에는 우리 마음속에 추상적인 아이디어로 존재하다가 점차 구체적인 언어나 그림으로 표현되듯이, 이때 언어나 그림은 우리의 보이지 않는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현실로 구현하는 매개체가 된다. 뵈메의 관점에서 성자 하나님은 이와 유사하게, 성부의 규정할 수 없는 깊이를 구체적인 ‘말씀’과 ‘형상(image)’으로 드러내어, 신 자신이 스스로를 인식하고 또한 피조물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도록 하는 신적인 자기 계시의 중심이다. 이 ‘아들의 성질’은 모든 존재에게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며, 그들이 자신의 참된 본질을 깨닫고 신적인 빛 가운데 살아가도록 이끈다. 성자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자들에게 빛을 비추는 등대와 같으며, 모든 피조물을 아버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다.
중요한 점은 이 제2원리, 즉 빛과 사랑의 세계가 제1원리인 어둠과 분노의 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거나 단순히 대립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제2원리는 제1원리의 격렬한 투쟁과 고통을 통과하고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비로소 그 완전한 힘과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다. 마치 연꽃이 진흙 속에서 피어나지만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이, 제2원리의 빛은 제1원리의 어둠을 전제로 하면서도 그것을 초월하여 새로운 차원의 생명을 창조한다. 뵈메는 이 두 원리의 관계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과 악의 문제가 궁극적으로는 신적인 사랑과 지혜 안에서 극복되고 선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제1원리의 어둠은 제2원리의 빛을 더욱 강렬하게 드러내는 배경이 되며, 제2원리의 사랑은 제1원리의 분노를 치유하고 정화하는 힘이 된다.
요컨대, 야콥 뵈메가 제시하는 ‘두 번째 원리’는 신적인 본질 안에서 어둠을 이기고 발현되는 빛과 사랑, 그리고 지혜의 세계이다. 이것은 ‘빛의 세계’이자 ‘사랑의 근원’이며, 삼위일체 하나님 중 ‘아들의 성질’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이 두 번째 원리는 첫 번째 원리의 격렬함과 대조를 이루면서도 그것과 역동적인 관계를 맺으며, 모든 존재에게 생명과 구원, 그리고 궁극적인 조화와 완성을 가져다주는 핵심적인 힘이다. 뵈메는 이 두 번째 원리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찬양하며, 모든 인간이 이 빛의 세계에 참여하여 참된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있음을 역설한다.
4.3. 제3원리: 외적 세계, 가시적 자연, 성령의 성질
야콥 뵈메(Jacob Boehme)가 제시하는 ‘세 가지 원리(Drei Principien)’는 신적인 본질이 자신을 드러내고 모든 존재가 그 안에서 활동하는 근원적인 세 가지 차원을 나타낸다. 첫 번째 원리가 주로 어둡고 격렬한 ‘아버지의 성질(Eigenschaft des Vaters)’을, 두 번째 원리가 밝고 사랑스러운 ‘아들의 성질(Eigenschaft des Sohnes)’을 드러낸다면, 이제 살펴볼 ‘세 번째 원리(das dritte Principium)’는 이 두 가지 상반된 원리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생성되고 유지되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세계를 가리킨다. 뵈메는 이 세 번째 원리를 ‘외적 세계(äußerliche Welt)’, ‘가시적 자연(sichtbare Natur)’, 그리고 삼위일체(Heilige Dreifaltigkeit)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성령의 성질(Eigenschaft des Heiligen Geistes)’이라고 부른다. 이 세 번째 원리는 앞의 두 원리가 마치 씨앗이나 설계도처럼 잠재적인 상태였다면, 그것이 구체적인 현실로 열매 맺고 드러나는 완성의 장(場)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원리는 우리가 감각을 통해 경험하는 시간과 공간 속의 모든 존재, 즉 하늘과 땅, 해와 달과 별,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광물, 식물, 동물, 인간을 포함하는 ‘외적인 세계’이다. 이 세계는 첫 번째 원리의 어두운 힘과 두 번째 원리의 밝은 힘이 서로 교차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역동적인 무대와 같다. 우리가 아름다운 산과 강, 울창한 숲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체들을 볼 때, 우리는 이 세 번째 원리의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계절의 변화, 낮과 밤의 순환, 그리고 모든 생명체의 탄생과 성장, 죽음의 과정 역시 이 외적인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움직임이다. 뵈메의 사유 안에서 이 모든 현상은 단순히 우연한 물질적 작용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신적인 원리들이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난 결과이다. 이 외적인 세계는 앞의 두 원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칠고(gross)’ ‘물질적인(materiell)’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신적인 본질과 단절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적인 생명력과 지혜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활동하는 장(場)이다.
뵈메는 이 세 번째 원리, 즉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자연세계를 ‘하나님의 살아있는 책(lebendiges Buch Gottes)’ 또는 ‘신의 지혜(Sophia, 소피아)의 외적인 표현’이라고 보았다. 그는 모든 자연 만물에는 그것의 내적인 본질과 영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표상(Signatura Rerum)’ 또는 ‘서명(signature)’이 새겨져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자연을 깊이 관찰하고 그 표상을 올바로 읽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자연을 통해 신의 지혜와 창조의 신비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약초의 모양이나 색깔, 향기를 통해 그것이 어떤 병을 치료하는 데 효능이 있는지 짐작할 수 있듯이(전통적인 약초학의 관점), 뵈메는 모든 자연물이 그 외적인 특징을 통해 자신의 숨겨진 힘과 의미를 드러낸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해바라기가 항상 해를 향해 자라는 모습은 영혼이 신적인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상일 수 있다. 이처럼 뵈메의 관점에서 가시적인 자연은 단순한 물질세계가 아니라, 신적인 메시지로 가득 찬 거대한 상징 체계였다. 이러한 관점은 자연을 단순히 인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 보는 것을 넘어, 자연 그 자체를 존중하고 그 안에서 신적인 지혜를 배우려는 경건한 태도를 요구한다.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 세 번째 원리는 ‘성령의 성질’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성령(Der Heilige Geist)은 성부의 근원적인 의지와 성자의 창조적인 말씀을 받아, 그것을 구체적인 생명과 운동,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현실 세계에 구현하는 ‘살아있는 힘(lebendige Kraft)’이다. 성령은 이 세 번째 원리 안에서 주관자로서 활동하며,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고 인도하며 궁극적인 완성으로 이끌어간다. 예술가가 마음속에 있는 영감(성자의 말씀)을 바탕으로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릴 때(성령의 활동), 그의 손길을 통해 추상적인 아이디어는 구체적인 색과 형태로 살아 움직이는 예술 작품(세 번째 원리, 현현된 세계)으로 탄생하는 것처럼, 성령은 신적인 계획을 현실 세계에 아름답게 펼쳐내고 모든 존재에게 생명을 불어넣으며 그들이 서로 조화롭게 관계 맺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뵈메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이 외적인 세계가 단순한 물질적인 영역을 넘어, 신적인 생명과 영광이 거하는 ‘하나님의 성전(Tempel Gottes)’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인간의 마음이 성령의 빛으로 조명될 때, 인간은 이 세 번째 원리인 자연 만물 속에서 신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와 교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 세 가지 원리가 서로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신적인 본질 안에서, 그리고 모든 피조물 안에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첫 번째 원리의 어둠과 두 번째 원리의 빛은 세 번째 원리인 외적 세계 안에서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 세상의 모든 현상과 인간의 경험을 만들어낸다. 뵈메는 특히 인간이 이 세 가지 원리를 모두 자신의 안에 지니고 있는 소우주(microcosm)로서, 어떤 원리를 자신의 삶의 중심으로 삼고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따라 그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보았다. 인간의 과제는 첫 번째 원리의 자기중심적인 어둠과 두 번째 원리의 신적인 빛 사이에서 올바른 균형을 찾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이 세 번째 원리인 외적인 삶 속에서 신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야콥 뵈메가 제시하는 ‘세 번째 원리’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외적이고 가시적인 자연세계이며, 이는 첫 번째 원리(어둠, 아버지)와 두 번째 원리(빛, 아들)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생성되고 성령의 활동을 통해 유지되는 실재의 차원이다. 이 세 번째 원리는 단순한 물질세계를 넘어, 신적인 지혜와 생명이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고 활동하는 무대이자, 인간이 자신의 영적인 여정을 펼쳐나가는 현장이다. 뵈메는 이 세 번째 원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신의 임재를 발견하고 그와 교통하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피조물과 함께 신적인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4.4. 각 원리의 특징과 상호 관계
지금까지 야콥 뵈메(Jacob Boehme)가 제시한 ‘세 가지 원리(Drei Principien)’ 각각의 개별적인 특징, 즉 제1원리(어둠의 세계, 아버지의 성질), 제2원리(빛의 세계, 아들의 성질), 그리고 제3원리(외적 세계, 성령의 성질)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원리는 결코 서로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정적인 실체들이 아니다. 뵈메의 사유 안에서 이 세 원리는 하나의 신적인 본질 안에서, 그리고 모든 피조물 안에서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역동적으로 관계하는 살아있는 과정 그 자체이다. 각 원리의 고유한 특징을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이들이 어떻게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며,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통일된 전체를 이루어 나가는지 그 상호 관계의 신비를 파악하는 것이다. (실제로 "The Life and Doctrines of Jacob Boehme"와 같은 자료에서 'Three principles'라는 항목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다양한 맥락에서 언급되는 것은, 이 원리들이 개별적으로뿐만 아니라 상호 관련 속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뵈메의 관점에서 세 가지 원리 중 어느 하나도 다른 원리들 없이는 그 자체로 존재하거나 자신의 완전한 의미를 드러낼 수 없다. 각 원리는 다른 원리와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고유한 성격과 역할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어둠의 세계인 제1원리는 그 자체로는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상태이지만, 동시에 빛의 세계인 제2원리가 탄생하기 위한 필수적인 배경이자 토대가 된다. 빛은 어둠이라는 대조가 있어야만 자신의 밝음을 인식하고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빛은 어둠을 밝히고 그것의 파괴적인 힘을 조화롭게 만들며 새로운 생명을 부여함으로써, 어둠의 존재 이유와 궁극적인 목적을 제시한다. 캄캄한 밤하늘(제1원리)이 있어야 별(제2원리)이 그 아름다운 빛을 발할 수 있듯이, 별빛은 밤하늘의 어둠을 배경으로 더욱 찬란하게 빛나며 동시에 그 어둠에 의미와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또한, 음악에서 낮은음(제1원리)과 높은음(제2원리)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어내듯이, 어둠과 빛은 서로를 통해 더욱 풍부한 전체를 형성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외적 세계, 즉 가시적 자연인 제3원리는 앞선 두 원리, 즉 어둠의 원리와 빛의 원리가 서로 만나고 상호작용하는 구체적인 현장이다. 제3원리는 제1원리로부터 물질적인 토대와 역동적인 생명력을 공급받고, 제2원리로부터는 질서와 아름다움, 그리고 영적인 의미를 부여받는다. 만약 제1원리만 있다면 세상은 혼돈과 파괴만이 가득할 것이고, 제2원리만 있다면 그것은 아직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지 못한 추상적인 가능성에 머무를 것이다. 제3원리는 이 두 가지 상반된 원리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만나 열매를 맺는 장(場)이다. 씨앗(제1원리와 제2원리의 잠재력)이 땅(제3원리의 물질적 토대)에 심겨져 햇빛과 물(제2원리의 영향)을 받고 자라나 아름다운 꽃과 열매(제3원리의 구체적 현현)를 맺는 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듯이, 이때 땅과 햇빛, 물은 씨앗이 자신의 잠재력을 현실로 드러내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세 가지 원리의 상호 관계는 단순히 정적인 공존이 아니라, 끊임없는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포함한다. 이 상호작용은 때로는 긴장과 갈등, 투쟁의 양상을 띠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더 높은 차원의 조화와 새로운 생성을 향해 나아간다. 제1원리의 자기중심적이고 수축하려는 힘과 제2원리의 확장하고 자신을 내어주려는 사랑의 힘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방향성을 지닌다. 따라서 이 두 원리가 만날 때, 그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긴장과 갈등, 즉 ‘영적인 투쟁(geistiger Kampf)’이 발생한다. 이러한 투쟁은 인간의 내면세계(선과 악의 갈등)뿐만 아니라, 역사와 사회, 그리고 자연 현상 속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가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안주하려는 마음(제1원리적 경향)과 변화하고 발전하려는 의지(제2원리적 경향) 사이에서 내적인 갈등을 경험하는 것과 같이, 이러한 갈등은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우리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투쟁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와 신적인 지혜(Sophia, 소피아)의 인도를 통해 점차 조화와 균형을 찾아간다. 제2원리의 빛과 사랑은 제1원리의 어둠과 분노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정화시키며, 제1원리의 강력한 에너지는 제2원리의 지혜로운 인도 아래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게 된다. 숙련된 마부가 거친 야생마(제1원리의 힘)를 길들여 훌륭한 명마(힘과 순종의 조화)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듯이, 이때 마부의 지혜와 인내(제2원리의 영향)는 야생마의 거친 힘을 파괴적이 아니라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세 가지 원리가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조화를 이룰 때, 거기서부터 새로운 생명과 창조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제3원리인 외적 세계는 바로 이러한 세 원리의 창조적인 결합을 통해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되고 변화하며 발전해 나가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다.
뵈메는 이 세 가지 원리가 거시적인 우주뿐만 아니라, 소우주(microcosm)인 인간 각자의 내면에도 동일하게 존재하며 작용한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 의지를 통해 이 세 가지 원리 중 어떤 원리를 자신의 삶의 중심으로 삼을 것인지,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 것인지에 대한 책임을 지닌다. 만약 제1원리인 어둠과 자기중심성에 지배당하면, 인간은 고통과 불안, 그리고 신과의 분리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약 제2원리인 빛과 사랑을 자신의 삶의 중심으로 삼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제1원리의 힘을 올바르게 다스린다면,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서 참된 평화와 기쁨을 누리고, 제3원리인 이 세상 속에서 신의 뜻을 이루는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처럼 야콥 뵈메의 사유 안에서 ‘세 가지 원리’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존재의 모든 차원을 구성하고 설명하는 핵심적인 틀이다. 각 원리는 고유한 특징을 지니면서도 다른 원리들과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완전한 의미를 드러내며, 이들의 투쟁과 조화, 그리고 새로운 생성을 통해 신적인 생명의 드라마가 우주와 인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펼쳐진다. 이 세 원리의 상호 관계에 대한 이해는 뵈메 사상의 깊이와 복합성을 파악하는 데 필수적이며, 독자들로 하여금 존재의 근원적인 구조와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성찰하도록 이끈다.
4.5. 인간과 우주에 나타나는 세 가지 원리
야콥 뵈메(Jacob Boehme)가 제시한 ‘세 가지 원리(Drei Principien)’는 단순히 추상적인 형이상학적 개념이나 신적인 본질 내부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이 세 가지 근원적인 힘, 즉 제1원리(어둠의 세계, 아버지의 성질), 제2원리(빛의 세계, 아들의 성질), 그리고 제3원리(외적 세계, 성령의 성질)가 거시적인 우주 전체의 구조와 운행 방식뿐만 아니라, 소우주(microcosm, 작은 세계)인 인간 각자의 존재와 삶 속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 세 원리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와 우리 자신을 더 깊이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뵈메의 사유 안에서 우주 전체는 이 세 가지 원리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성되고 유지되며 변화한다. 우주 공간의 광대함과 심연, 별들의 탄생과 소멸 과정에서 나타나는 엄청난 에너지와 파괴력, 자연계의 냉혹한 생존 경쟁, 그리고 지진이나 화산 폭발과 같은 예측 불가능한 자연의 힘 등은 제1원리의 어둡고 격렬하며 자기중심적인 힘이 우주적 차원에서 드러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밤하늘의 텅 빈 공간이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운그룬트(Ungrund)의 심연을 연상시키거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자기 안으로 수축시키는 강력한 힘이 제1원리의 자기중심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이것은 모든 존재가 그로부터 나왔지만 동시에 두려움과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우주의 근원적인 힘이다. 또한,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은 각 존재가 자기 자신을 보존하려는 제1원리적 갈망(Begierde)의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
반면, 태양과 별들이 발산하는 빛과 열기, 행성들의 규칙적인 운행, 자연계의 아름다운 질서와 조화, 그리고 다양한 생명체들이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모습 등은 제2원리의 밝고 사랑스러우며 질서를 부여하는 힘이 우주적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양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빛과 따뜻함을 제공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성장하게 하는 것은 제2원리의 생명 부여 능력을 보여준다. 또한, 다양한 꽃들이 각기 다른 색깔과 모양으로 아름다움을 뽐내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풍경을 이루거나, 복잡한 생태계가 서로 균형을 이루며 유지되는 모습은 제2원리의 질서와 조화의 힘을 나타낸다. 이것은 우주에 생명과 아름다움, 그리고 의미를 부여하는 창조적인 원리이다.
그리고 우리가 직접 보고 만지고 경험하는 구체적인 자연 만물, 즉 산과 바다, 숲과 사막, 다양한 동식물,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자체가 바로 제3원리가 구현된 모습이다. 이 세계는 앞의 두 원리, 즉 어둠과 빛의 힘이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들어내는 다채롭고 역동적인 현실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의 변화는 제3원리 안에서 제1원리(겨울의 수축과 죽음)와 제2원리(여름의 확장과 생명)가 끊임없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순환을 보여준다. 또한, 한 알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은 이 세 가지 원리가 모두 조화롭게 작용하여 구체적인 생명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여준다.
뵈메는 인간 역시 이 세 가지 원리를 자신의 존재 안에 모두 지니고 있는 ‘작은 세계(kleine Welt)’라고 강조한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 의지와 행동은 모두 이 세 원리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의 결과이며, 인간의 내면은 마치 이 세 원리가 서로 투쟁하고 조화를 이루어가는 작은 무대와 같다. 인간의 이기심, 자기중심적인 욕망, 분노, 증오, 질투,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은 제1원리의 어둡고 수축하는 힘이 인간 내면에서 드러나는 모습이다. 우리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해치려는 유혹을 느끼거나, 걷잡을 수 없는 분노나 질투심에 사로잡힐 때, 우리 안의 제1원리가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상실감으로 인해 절망에 빠지는 것도 이 어두운 힘의 영향일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타락하면서 갖게 된 옛 본성이며, 만약 이것이 제어되지 않으면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
반대로 인간의 양심, 이타적인 사랑, 연민, 용서, 창조적인 영감, 그리고 진리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 등은 제2원리의 밝고 사랑스러운 힘이 인간 내면에서 빛을 발하는 모습이다. 우리가 아무런 대가 없이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갖거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나 자연 풍경을 보고 깊은 감동을 느낄 때, 우리 안의 제2원리가 깨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 역시 이 빛의 힘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인간 안에 있는 ‘신의 형상(Imago Dei)’ 또는 ‘신적인 불꽃(Funke Gottes)’이며, 인간이 참된 기쁨과 평화를 누리고 신과 합일할 수 있는 가능성의 근거가 된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구체적인 삶의 현실, 즉 우리의 육체적인 활동, 사회적인 관계,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가는 문화와 문명 등은 제3원리가 인간을 통해 표현된 모습이다. 이 삶의 현장에서는 앞의 두 원리, 즉 내면의 어둠과 빛이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우리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우리가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가족이나 친구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 그리고 사회의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참여하는지 등 우리의 모든 구체적인 삶의 모습은 이 세 번째 원리 안에서 이루어지며, 그 안에는 항상 제1원리와 제2원리의 영향이 함께 작용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직업을 통해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할 수도 있고(제1원리의 지배), 다른 사람은 자신의 일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돕고 사회에 기여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제2원리의 영향).
뵈메는 인간에게 자유 의지(freier Wille)가 주어졌으며, 따라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이 세 가지 원리 중 어떤 원리를 따르고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 것인지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영적인 성장이란 바로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 세 원리의 역동적인 관계를 인식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제1원리의 어두운 힘을 제2원리의 빛과 사랑으로 변화시키며, 제3원리인 이 세상 속에서 신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이다.
이처럼 야콥 뵈메의 ‘세 가지 원리’는 우주와 인간 존재의 모든 차원을 관통하며 그 구조와 역동성을 설명하는 심오하고도 포괄적인 틀을 제공한다. 이 원리들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서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생성하고 변화하는 살아있는 힘들이며, 이들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와 우리 자신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참된 영적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데 중요한 통찰을 준다. 그의 사상은 우리로 하여금 우주 만물과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벌어지는 신적인 드라마를 발견하고 그에 참여하도록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