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귀를 가진 아이

by 이호창

빛의 귀를 가진 아이



한때, 이 숲은 노래하는 별들로 가득했습니다.


하늘은 깊었고,

사람들의 마음엔 저마다 고유한 울림이 있었죠.

그 울림은 말보다 먼저 전해졌고,

사람들은 서로의 울림을 느끼며 살아갔습니다.


별들과 바람과 나무들도 울림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 울림이 뭘 말하는지

가슴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사람들은 바빠졌습니다.

자기 마음의 울림을 듣거나,

별들의 울림을 듣는 대신,

금속과 물질의 강렬한 소리만 쫓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숲도, 하늘도, 별도 점점 조용해졌습니다.


사람들은 그 변화의 이유를 몰랐고,

어느새 이곳은 ‘잠든 숲’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숲과 도시 사이의 작은 마을에는

루미니짜라는 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소녀는 조금 특별했습니다.

남들보다 귀가 컸고,

잘 들리는 대신 쉽게 마음의 상처를 느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루미를 놀렸고,

루미는 점점 더 말을 아끼고

혼자 있게 되었죠.



하지만

루미니짜는 자기의 그 커다란 귀로

다른 누구도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바람 사이를 스치는

잊힌 노래,


땅속에서 새싹이 자라며 내는

조용한 기쁨,


멀리서 별들이 내뱉는

빛의 숨소리…


루미니짜는 그것들을

‘내 마음에 닿는 울림’이라 이름 붙였어요.


루미니짜는 자기가 들은 그 소리를

용기 내어 사람들에게 크게 이야기했습니다.


“바람이 노래를 불렀어요.

그리고 새싹이 속삭였고,

별빛이 숨을 쉬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루미니짜를 이상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더 이상 서로의 말조차 잘 듣지 못했습니다.


거리엔 매일 쇳소리가 가득했습니다.

문이 닫히는 소리, 기계가 울리는 소리,

화면을 누르는 소리, 자동차가 으르렁대는 소리…


너무 시끄러워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목소리는 묻혀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점점 대화하지 않게 되었고,

침묵 속에서 서로의 울림을 잊어버렸습니다.


어느 날, 종이 한 장이 바람을 타고 날아왔습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울림을 잃은 세계.

노래를 잊은 사람들.

그러나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이가 있다.

바람의 도서관에서 너를 기다리노라.

최초의 울림을 기억하라.

그 울림은 네 안에 있다.”



루미니짜는 망설이다가, 가슴 속의 울림에 이끌려

바람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그리고 나뭇잎 속에 숨겨진

작은 문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바람의 도서관이었습니다.



문 너머엔 고요한 공간이 펼쳐졌고,

루미니짜는 먼지 쌓인 책 하나를 꺼냈습니다.



책을 펼치자,

첫 장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의 울림을 기억하라.

그것은 곧 너 자신이며,

네가 잃은 세계의 노래이기도 하다.

울림을 잊는 순간, 세상은 멈춘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도 울림은 남는다.

가장 고요한 순간,

사라진 줄 알았던 네 울림이

세상의 첫 울림을 부를 것이다.”


루미니짜는 매일 밤,

작은 숨결 하나까지 가만히 가라앉히며

고요 속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세상의 소음을 조용히 벗고

자기 마음의 숲으로,

가장 깊고도 조용한 내면의 심연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가슴 깊은 곳에서 아주 작은 떨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두려움도 아니었고,

외로움도 아니었습니다.

그건 마치,

오래전부터 항상 내 안에 있었지만

내가 잊고 지냈던 최초의 울림,

모두가 하나되는 울림이었습니다.



그 울림은,

점점 퍼져 나가며

루미니짜의 몸을 감싸고,

공기 속을 지나

별과 나무와 먼 산까지 닿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루미니짜는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세상과 나누어진 존재가 아니야.

모든 것이 하나로 울리고 있어.

나와 너, 별과 나무, 숨결과 시간조차…”



그 밤,

세상 전체가 하나의 고요한 울림으로

루미니짜의 가슴 안에 머물렀습니다.


자신의 울림을 느낀 이후,

루미니짜는 말없이도 다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말투는 한결 부드러워졌고,

눈빛에는 햇살 같은 잔잔함이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함께 있는 사람들은,

그저 루미니짜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루미니짜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설명하지도, 조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조용히 자기 자리에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점점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 아이 옆에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져.”


이전엔 지치고 메말랐던 사람들도

루미니짜 곁에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숨을 고르게 되었고,

생각 없이 내뱉던 말들도

조금 더 조심스럽게 꺼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사람들은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조금씩 공감하고, 동감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한 울림이

사람들의 마음 안에

스며들어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마을에도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늘 흐리기만 했던 하늘에

별 하나가 조용히 반짝이기 시작하며,


시들어 가던 나무가

작은 새싹을 틔우고,


사람들의 얼굴에도

서서히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 누구도 이 변화가

루미니짜의 울림 때문이었다는 걸

정확히 알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느낌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루미니짜와 함께 놀면서 물었습니다.



“루미니짜야,

왜 너와 있으면 기분이 편안해지는 거지?”



루미니짜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너와 나를 하나로 느끼게 하는

가슴 속의 울림을 찾으면 돼!”



그날 이후,

아이들은 조용한 시간마다

가슴 깊은 곳을 살며시 들어보려 애썼습니다.



처음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많은 아이들이 느꼈습니다.


자신의 가슴 안에서,

아주 작고 따뜻한 울림이

조용히 번지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말은 없었지만,

서로의 눈빛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깨어남은

또 다른 깨어남을 불러왔습니다.


아이들 사이에 퍼진 ‘울림 찾기’는

장난처럼, 놀이처럼

자연스럽게 퍼져 나갔습니다.


어른들 역시 변화된 아이들의 모습에 놀라

조용히 자기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불꽃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울림의 번짐은

마침내 숲 전체에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밤이면 희미하던 별이 다시 반짝이고,

바람은 더 따뜻하게 불며,

숲의 동물들도 서로를 조용히 바라보며

한때 잃어버렸던 조화를

다시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숲은 단지 나무와 동물이 있는 곳이 아니라,

울림을 기억하는 이들의 마음과 마음이

연결된 하나의 생명이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

아무도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숲에는 다시 노래가 흐르고,

사람들의 마음도

서로를 느낄 수 있는 울림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모두는

조용히 깨달았습니다.


깨어난다는 것은


어디선가 새로운 것을 얻는 일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타오르고 있던


가슴 속의 첫 불꽃의 울림을 기억하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누구나 그 불꽃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불꽃이 내는 울림은,

하늘처럼 비어 있어 만물을 감싸고,

땅처럼 넓게 어루만지며 감싸고,

사람처럼 모두를 사랑하는

따스한 숨결로 세상에 번져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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