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잃은 소피의 노래

by 이호창

빛을 잃은 소피의 노래



태초에 '영원한 빛의 정원'이 있었습니다.

모든 빛이 하나의 노래가 되어 흐르는 곳이었죠.

그곳의 공기는 살아있는 선율이었습니다.

샘물은 맑은 화음으로 솟아났습니다.

꽃들은 저마다 다른 빛깔의 노래를 부르며 피어났어요.

그 정원에는 별의 첫 속삭임으로 태어난 아이, 소피가 살았습니다.

소피의 기쁨은 빛의 노래들을 엮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지갯빛 옷감을 짰지요.

소피가 노래하며 부드럽게 손짓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별빛은 영롱한 명주실이 되었습니다.

새벽빛은 따스한 금실이 되었지요.

그 실로 짠 옷감은 입는 이의 마음마저 환하게 밝혔습니다.

정원의 모든 빛의 아이들은 소피가 짠 옷감을 입었습니다.

다 함께 기쁨의 춤을 추었고, 그 기쁨은 정원을 더욱 충만하게 만들었지요.


하지만 소피의 마음속에는 씨앗 하나가 자라났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위험하고도 고귀한 열망의 씨앗이었어요.


'이 모든 빛을 낳으신 보이지 않는 분.

그분의 얼굴을 내 힘으로 짜 보이고 싶어!

오직 나 홀로의 힘으로 완벽하게 말이야.'


그것은 자기 자신을 증명하고픈 교만한 욕심이었습니다.

빛의 정원은 '함께'라는 노랫말로 이루어져 있었어요.

수많은 빛들이 서로를 따스하게 비추며 존재했지요.

하지만 소피는 다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는 곳에서 '나 홀로'라는 금지된 음표로 노래했어요.

소피는 늘 곁에 있던 짝꿍 '지혜'의 손을 뿌리쳤습니다.


정원 가장 깊은 곳으로 향했습니다.

가장 순수하고 강렬한 빛의 근원을 찾아갔지요.

그곳에서 눈부신 빛의 실을 억지로 뽑아내려 애썼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나 홀로!'라고 외친 소리가 날카로운 비명이 되었습니다.


소피가 짜던 빛의 옷감을 갈가리 찢어버렸습니다.

정원의 조화는 산산이 깨어졌어요.

소피는 찢어진 옷감과 함께 빛의 나라에서 끝없이 추락했습니다.

따스하고 영원하던 빛의 노래가 멀어졌습니다.

아득한 메아리만 남았어요.


빛 한 점 없는 차가운 어둠이 그녀를 삼켰습니다.

소피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지요.

소피가 떨어진 곳은 '메아리 없는 늪'이었습니다.

빛과 소리를 모두 집어삼키는 곳이었죠.

그곳은 짙고 슬픈 그림자의 땅이었습니다.


소피는 모든 것을 잊었습니다.

자신이 누구였는지, 어디서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어요.

빛을 짜는 법도, 노래하는 법도 전부 잊었습니다.


다만 가슴속에 작은 불씨 하나가 남았을 뿐입니다.

깊은 슬픔과 막연한 그리움이 담긴 불씨였죠.

그 작은 불씨만이 그녀의 몸을 희미하게 떨게 했습니다.

늪의 끈적한 어둠 속에서 그림자들이 기어 나왔습니다.

소피의 슬픔을 양식으로 삼는 그림자들이었죠.

그들은 소피의 잊힌 기억들이 뒤틀려 태어난 모습이었습니다.


차가운 비늘을 가진 거대한 뱀이 다가와 그녀의 몸을 휘감았습니다.

그 뱀은 '후회의 그림자'였어요.

그리고 차갑게 속삭였지요.


"네 잘못이야. 네 교만이 모든 것을 망쳤어.

빛의 정원은 너를 기억조차 하지 않을걸.

넌 영원히 이곳, 네가 만든 이 진흙 속에서 살게 될 거야."


그 목소리에 소피의 남은 빛이 위태롭게 흔들렸습니다.

무거운 바위 같은 '절망의 그림자'도 다가왔습니다.

그 그림자가 소피의 어깨를 짓눌렀어요.


"아무도 널 구하러 오지 않아.

이곳은 어떤 빛도 닿지 않는 곳.

어떤 기도도 들리지 않는 곳이지.

그냥 포기해. 이 무거운 어둠이 너의 진짜 집이야."


그 거대한 무게에 소피는 고개조차 들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불씨마저 꺼져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소피는 이제 모든 희망을 잃었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남은 숨결마저 어둠에 내어주려 했지요.


바로 그때였습니다.

아주 멀고 아득한 곳에서, 기억 너머의 고향에서.

잊고 있던 빛의 노래 한 소절이 날아왔습니다.

아주 작은 황금빛 나비가 되어 어둠을 가르고 날아왔지요.

나비는 소피의 차가운 귓가에 가만히 내려앉았습니다.

그것은 거대한 구원의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질책하거나 가르치는 목소리도 아니었지요.

그저 아주 작고 다정한 속삭임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그리움을 담은 목소리였어요.


"기억하렴, 빛의 아이야..."


그 한마디가 소피의 마음을 녹였습니다.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아주 작은 샘이 퐁, 하고 솟아났습니다.

그것은 눈물이었습니다.

소피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떠올렸습니다.

자신의 어리석었던 교만을 생각하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소피는 잊었던 노래를 다시 불렀습니다.

화려한 기교가 담긴 노래가 아니었어요.

자신의 모든 상처와 진심을 담아내는 노래였지요.

그것은 첫 번째 '회개의 노래'였습니다.


"저는 영원한 빛의 정원에서 태어난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제 교만이 저를 어둠 속에 가두었습니다.

이제 저의 찢어진 노래는 오직 빛을 향한 그리움뿐입니다.

저를 용서하소서."


소피의 노래가 늪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녀를 휘감고 있던 '후회의 그림자'가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다 스르르 풀리더니, 한 그루의 수양버들로 변했습니다.

슬픈 이슬을 머금고 조용히 눈물 흘리는 나무였지요.


소피의 몸이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그녀는 처음으로 무릎을 펴고 설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절망의 그림자'가 더 큰 어둠으로 소피를 짓눌렀습니다.

하지만 소피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노래를 불렀습니다.


"제 빛은 비록 희미하여 한 치 앞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를 낳아준 위대한 빛의 얼굴을 기억합니다.

제 작은 불씨는 꺼지지 않았으니,

다시 그 빛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따스한 노래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진심을 담은 노래에 무겁던 '절망의 그림자'는 힘을 잃었습니다.

더 이상 소피를 누르지 못하고, 땅 위를 환하게 비추는 이끼로 변했습니다.

길을 안내하는 빛나는 이끼였지요.


소피의 몸은 이제 깃털처럼 가벼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피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거울 속 자신처럼 생긴, 차갑고 아름다운 '오만의 그림자'였지요.

그림자가 소피를 보며 비웃었습니다.


"왜 돌아가려 하지? 네가 바로 이 어둠의 주인인데.

이 모든 슬픔이 너의 왕국이잖아.

빛보다 강한 어둠의 주인이 되렴."


소피는 눈을 감았습니다.

고향의 황금빛 노래를 온 마음으로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 마지막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는 어둠의 주인이 아닙니다.

저는 빛의 정원에서 태어난 작은 음표일 뿐입니다.

제 유일한 소원은 고향의 거대한 음악 속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빛들과 함께, 다시 하나의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그 노래가 끝나자, 오만의 그림자는 부서졌습니다.

수천 마리의 반딧불이가 되어 어두운 늪의 하늘 위로 솟아올랐습니다.

반딧불이들은 은하수처럼 길을 터주었습니다.

이제 완전히 빛이 된 소피의 몸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노랫소리를 타고,

반딧불이가 만든 별의 계단을 따라 부드럽게 하늘로 향했습니다.


다시 돌아온 '영원한 빛의 정원'은 예전과 똑같았습니다.

하지만 소피는 예전의 소피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빛의 옷감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녀의 옷감에는 새로운 빛깔이 더해져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결코 없었던 아주 깊고 아름다운 빛깔이었지요.

그것은 어둠의 슬픔을 이해하는 '짙푸른 지혜'의 실이었습니다.

모든 상처를 용서하는 '따스한 새벽'의 실이었습니다.


소피가 새로 짠 옷감을 입은 빛의 아이들은 춤을 추었습니다.

이전보다 더 깊고 충만한 기쁨의 춤이었지요.

그 춤과 노래는 빛의 정원을 더욱 찬란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들 마음속에도 길을 잃고 어두운 늪에 빠진 작은 소피가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자신의 빛을 잊은 채, 후회와 절망의 그림자에 갇혀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아무리 깊고 외로운 어둠 속이라도, 우리를 부르는 고향의 노래 소리는 결코 끊이지 않는다는 것을요.


그 작은 속삭임에 귀 기울여 진실한 마음으로 자신의 노래를 부를 때, 우리 안의 작은 불꽃은 다시 눈부신 별이 될 거예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환하게 밝혀줄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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