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나무의 열 친구

by DrLeeHC

생명나무의 열 친구


우리 아가들. 이리 와서 할미 곁에 바싹 붙어 앉으렴. 오늘은 조금 신비한 이야기를 들려줄까 해.


세상이 어떻게 처음 생겨났는지, 온갖 동물과 식물들이 어떻게 제자리를 찾게 되었는지에 대한 아주 오래된 비밀 이야기란다.



옛날 옛적 아주 먼 옛날, 세상이 아직 말랑말랑한 갓난아기였을 때 말이다.

그때는 해님도 달님도 없고, 오직 모든 것을 품은 '커다란 고요함'만이 있었단다.

그 고요함은 너무나 커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큰지조차 몰랐지.


어느 날, 커다란 고요함은 문득 궁금해졌어.


'내 마음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그래서 고요함은 커다랗고 따뜻한 숨을 '후-' 하고 불었단다.

그러자 깜깜하던 세상 한가운데에 아주 작은 빈자리가 생기고, 그 안에 먼지보다도 작은 빛의 씨앗 하나가 톡, 하고 떨어졌어.


모든 것의 시작, 바로 '왕관 씨앗'이었지.


씨앗이 가만히 숨을 쉬자, 그 안에서 가장 먼저 번쩍! 하는 빛이 튀어나왔단다.


바로 하늘을 가르는 생각의 번개, 날쌘 은빛 독수리였어.

독수리는 너무나 빠르고 지혜로워서 세상의 모든 비밀을 한눈에 꿰뚫어 보았지만, 너무 빨라서 어디에도 내려앉을 틈이 없었지.


그러자 씨앗이 다시 한번 부드럽게 부풀어 오르며, 독수리를 가만히 받아주는 커다란 세상을 펼쳤단다.

바로 깊고 따뜻한 바다를 등에 업은 바다거북 할머니였지.

할머니는 독수리가 맘껏 날아다닐 수 있도록 너른 등을 내어주며 말했단다.


"아가야, 지혜는 이해의 품 안에서 비로소 둥지를 틀 수 있단다."


그렇게 첫 번째 친구들이 생겨났어.


번개처럼 빠른 생각과, 그 모든 것을 품어주는 깊은 이해였지.


거북 할머니의 등 위에는 곧 신비한 숲이 자라나기 시작했어.


숲의 오른쪽에는 커다랗고 마음씨 좋은 흰곰 아저씨가 살았지.

곰 아저씨는 뭐든지 나눠주는 걸 좋아했어.


"이것도 가져가렴, 저것도 가져가렴!" 하고 온몸으로 꼬옥 껴안아 주었단다.

그래서 곰 아저씨 주변에는 늘 꽃들이 만발하고 시냇물이 넘쳐흘렀어.

사랑이 너무 많아서 경계가 없었거든.


숲의 왼쪽에는 늠름한 붉은 사자가 살았어.


사자는 뭐든지 제자리를 정해주는 걸 좋아했지.

"이 선을 넘으면 안 돼! 이것은 네 것이고, 저것은 내 것이야!" 하고 어흥! 용맹하게 소리쳤단다.

그래서 사자 주변은 모든 것이 반듯하고 질서정연했지만, 때로는 너무 엄격해서 새싹들이 자라기 힘들어했어.


흰곰 아저씨의 '다 괜찮아!'와 붉은 사자의 '절대 안 돼!'는 매일같이 다투었단다.

숲이 너무 질척거리거나 너무 메마르곤 했지.

바로 그때, 그 둘 사이에 아주 작은 친구 하나가 '윙- '하고 나타났어.


바로 황금빛 꿀벌이었지.


꿀벌은 부지런히 둘 사이를 오갔어.

흰곰 아저씨에게서는 달콤한 사랑을 한 방울, 붉은 사자에게서는 단단한 용기를 한 방울 얻어왔지.

그리고 그 둘을 섞어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의 황금빛 꿀을 빚었단다.

꿀벌 덕분에 곰 아저씨의 사랑은 함부로 넘치지 않게 되었고, 사자의 용기는 따뜻한 마음을 품게 되었어.


숲의 한가운데, 드디어 아름다운 조화가 피어난 거야.


아름다운 꿀 향기는 새로운 친구들을 숲으로 불러들였어.


한 친구는 지칠 줄 모르는 초록 이리였지.


이리는 늘 가슴이 두근거렸고, 숲의 끝까지 달려가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어 했어.

열정으로 가득 찬 친구였지.


다른 한 친구는 알록달록 무늬 나비였단다.

나비는 조용히 앉아 세상의 모든 무늬와 이치를 헤아리는 걸 좋아했어.

이슬방울이 왜 둥근지, 나뭇잎의 잎맥은 왜 그런 모양인지 생각했지.

지혜로 가득 찬 친구였어.


처음에 이리는 나비가 너무 느리다고 답답해했고, 나비는 이리가 너무 정신없이 뛴다고 어지러워했어.

하지만 곧 알게 되었지.

이리의 뜨거운 열정은 나비의 차가운 지혜가 있어야 길을 잃지 않았고, 나비의 복잡한 생각은 이리의 힘찬 달음박질이 있어야 현실이 된다는 것을 말이야.

둘은 어느새 가장 좋은 짝꿍이 되어 숲을 탐험했단다.


이리저리 뛰고 날아다니는 이리와 나비의 발자국과 날갯짓은 허공에 수많은 이야기와 꿈들을 그려냈어.

그 꿈들은 포근한 안개가 되어 숲 아래 바다로 내려앉았고, 그 꿈들을 먹고 사는 커다란 친구가 나타났지.


바로 꿈꾸는 보랏빛 고래였단다.


고래는 바다 깊은 곳을 헤엄치며, 땅 위의 모든 꿈들을 모아 간직했어.

그리고 밤이 되면 그 꿈들을 다시 수면 위로 뿜어 올려 하늘의 독수리에게 전해주었지.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아주 중요한 친구였단다.


이제 아홉 친구들이 모두 모였네.

하지만 뭔가 하나 빠진 것 같지 않니?

맞아. 이 모든 친구들이 함께 어울려 살 진짜 '집'이 필요했어.


보랏빛 고래가 품었던 꿈들이, 거북 할머니의 등껍데기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렸어.

왕관 씨앗에서부터 시작된 모든 친구들의 힘이 그 뿌리로 모여들었지.

마침내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땅을 뚫고 쑥쑥 자라나기 시작했단다.


그것이 바로 '생명나무'였어.


생명나무는 아홉 친구 모두를 위한 완벽한 집이었지.

가장 꼭대기에는 은빛 독수리가 둥지를 틀어 세상을 내다보았고,

튼튼한 줄기는 붉은 사자가 지켰으며,

너른 그늘에서는 흰곰 아저씨가 낮잠을 잤어.

향기로운 꽃들 사이에는 황금빛 꿀벌이 윙윙거렸고,

푸른 잎사귀들 사이로는 초록 이리와 알록달록 나비가 숨바꼭질을 했지.

나무의 깊은 뿌리는 꿈꾸는 고래의 바다를 감쌌고,

그 모든 것을 바다거북 할머니가 묵묵히 받쳐주었단다.


그리고 생명나무는 마침내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어.

그 열매 안에는 열 친구들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었지.

누구든 그 열매를 한 입 베어 물면, 세상 모든 것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단다.


아가야, 이 이야기가 너무 멀게만 느껴지니?

그렇지 않아.


이 커다라 생명나무는 바로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도 똑같이 자라고 있단다.


네 마음속에도 하늘을 나는 독수리의 지혜가 있고,

모두를 껴안는 흰곰의 사랑이 있으며,

'안 돼!'라고 말할 줄 아는 붉은 사자의 용기가 있단다.


열심히 꿈을 좇는 초록 이리의 열정도,

세상을 궁금해하는 알록달록 나비의 똑똑함도 모두 네 안에 숨어 있지.


때로는 이 친구들이 서로 다투어서 네 마음이 시끄럽고 힘들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그럴 때마다 황금빛 꿀벌처럼, 친구들의 좋은 점을 모아 '아름다움'이라는 꿀을 만들어 보렴.


그러면 네 마음속의 생명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튼튼하고 아름다운 나무로 자라나, 아주 달콤한 열매를 맺게 될 거란다.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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