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연못의 비밀

by 이호창

메아리 연못의 비밀


옛날 옛날,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모였다 흩어지는 ‘메아리 연못’이라는 신비한 곳이 있었어요. 그 연못가에는 ‘리라’라는 소녀가 살았죠. 리라에게는 아주 특별한 눈이 있었답니다. 바로 세상 만물의 숨겨진 속마음을 볼 수 있는 눈이었죠.


예를 들어, 연못에 활짝 웃는 꽃 한 송이가 비치면, 다른 사람들은 그저 ‘예쁘다’고 말했지만, 리라의 눈에는 그것이 보였어요. 꽃잎을 물들인 따스한 햇살의 기억과, 밤새 꽃을 키워낸 차가운 이슬의 슬픔, 흙의 인내와 벌의 입맞춤까지. 꽃 한 송이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어요. 온 세상이 힘을 모아 피워낸 작은 기적이었죠. 연못은 리라에게 이처럼 모든 것이 이어진 진실을 보여주는 비밀 거울이었답니다.


어느 날, 연못에 아주 이상한 변화가 찾아왔어요. 연못의 물이 점점 뿌옇게 흐려지더니, 모든 것을 그럴듯하게 흉내 내는 신기한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죠. 그 안개는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 가장 보고 싶어 하는 모습만을 골라서 보여주었어요.


안개는 외톨이 아이에게 수많은 친구들의 환상을 보여주었고, 힘이 약한 아이에게는 커다란 바위를 번쩍 드는 거짓된 힘을 보여주었죠. 마을 사람들은 그 안개를 ‘소원을 들어주는 안개’라 부르며 무척 좋아했어요. 더 이상 힘들게 노력하지 않아도, 슬픈 사실을 마주하지 않아도, 안개는 언제나 달콤하고 멋진 가짜 세상을 보여주었으니까요. 사람들은 점점 진짜 세상을 바라보는 대신, 안개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거짓말 속에서 외로운 섬이 되어갔답니다.


하지만 리라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의 진짜 모습이 보였어요. 안개가 보여주는 힘센 아이의 그림자 뒤에는, 사실은 아무도 놀아주지 않아 홀로 돌멩이를 던지는 외로운 아이가 있었죠. 리라는 사람들에게 달려가 외쳤어요.


“여러분, 저건 진짜가 아니에요! 저 안개는 우리의 진짜 모습을 삼키고, 우리를 서로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어요!”


하지만 아무도 리라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 오히려 사람들은 리라를 이상한 아이라고 손가락질했죠.


“리라는 맨날 이상한 소리만 해. 저 애는 우리가 행복한 게 싫은가 봐.”


리라는 진실을 말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슬픈 예언자가 되었어요. 리라의 진실은 달콤한 거짓말의 안개 속에서 힘을 잃고 흩어졌답니다.


*


리라는 너무나 외로웠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밤, 리라는 연못 가장 깊은 곳, 달빛마저 비껴가는 어두운 곳에서 작은 빛 하나를 발견했어요. 그것은 안개가 흉내 낼 수 없는, 아주 작지만 스스로 빛나는 ‘고요한 돌멩이’였죠.


리라가 조심스럽게 돌멩이를 줍자, 돌멩이에서 따뜻하고 오래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아가야, 안개를 이기고 싶니? 그렇다면 너는 너 자신과 세 가지 약속을 해야 한단다.’


리라는 용기를 내어 대답했어요. “약속이요? 제가 뭘 약속해야 하는데요?”


‘첫 번째 약속은 ‘침묵을 듣겠다’는 약속이란다. 시끄러운 안개의 노랫소리를 끄고, 세상의 진짜 소리를 듣는 것이지.’

‘두 번째 약속은 ‘진짜 너를 보겠다’는 약속이란다. 안개가 보여주는 꾸며낸 모습이 아니라, 연못 깊은 곳에 비친 너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야.’

‘마지막 약속은 ‘작은 씨앗을 믿겠다’는 약속이란다. 안개 속에 진짜 꽃을 피워내는 것이지.’


*


다음 날부터 리라의 조용한 모험이 시작되었어요.

첫 번째 약속을 위해, 리라는 마을에서 가장 시끄러운 광장으로 갔어요. 안개는 저마다 잘난 체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증폭시켜 귀가 아플 지경이었죠. 리라는 눈을 감고 두 귀를 막았어요. 하지만 소리는 머릿속까지 울렸죠.


리라는 포기하지 않고, 소리를 막는 대신 그 소리 너머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어요. 시끄러운 칭찬 소리 뒤에 숨은 불안한 심장 소리를, 즐거운 노랫소리 밑에 흐르는 외로운 한숨 소리를요.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소리가 사라진 아주 깊은 곳에서, 바람이 풀잎을 스치는 소리, 흙이 숨 쉬는 소리, 바로 세상이 함께 부르는 ‘보이지 않는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답니다.


두 번째 약속은 더욱 어려웠어요. 리라는 연못으로 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았죠. 안개는 리라에게 속삭였어요. ‘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주님이란다.’ 연못에는 정말 예쁜 공주님의 모습이 비쳤어요. 하지만 리라는 고개를 저었어요.


리라는 더 깊이, 더 깊이 연못을 들여다보았어요. 그러자 물속 깊은 곳에서,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 슬퍼하는 외톨이 아이, 눈물을 꾹 참고 있는 자기 자신의 진짜 얼굴이 떠올랐죠. 리라는 울지 않았어요. 대신, 물속의 자신에게 조용히 미소 지어 주었답니다. ‘괜찮아, 나는 혼자가 아니야. 저 꽃과, 바람과, 그리고 너와 함께 있어.’


마지막 약속을 위해, 리라는 할머니가 남겨주신 작은 꽃씨 하나를 꺼내 들었어요. 안개는 ‘그런 씨앗은 소용없어. 내가 더 화려한 꽃을 보여줄게!’라며 온갖 현란한 꽃의 환상을 피워냈죠.


리라는 흔들리지 않았어요. 아이는 연못가 가장 축축하고 어두운 흙바닥에 작은 씨앗을 심었답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진짜 눈물과 진짜 땀으로 씨앗에 물을 주었죠. 때로는 외로움의 눈물을, 때로는 희망의 땀방울을요.


*


시간이 흘러, 리라의 씨앗에서 아주 작은 싹이 돋아났어요.

그 싹은 안개가 만든 어떤 꽃보다도 작고 볼품없었지만, 그 안에는 진짜 생명의 힘이 있었답니다. 싹은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서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라나 마침내 세상을 꼭 닮은, 하지만 세상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단 하나의 꽃을 피워냈어요.


그 꽃이 피어나는 순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꽃의 진실한 향기가 퍼져나가자, 연못을 뒤덮고 있던 뿌연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처음으로 안개가 보여주던 가짜 모습 뒤에 숨겨진,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었죠. 주름지고, 서툴고, 때로는 슬픈 얼굴. 하지만 그것은 진짜 자기 자신의 얼굴이었어요.


사람들은 더 이상 리라를 손가락질하지 않았어요. 대신, 리라가 피워낸 작은 꽃 주위로 모여들어, 저마다의 진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을 사람들은 리라가 늘 보던 것을 함께 보게 되었어요.


작은 꽃 한 송이를 들여다보니, 그 안에 햇살과 구름과 땅의 모습이 함께 어른거렸습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니, 그 아이를 웃게 만든 엄마의 따뜻한 손길과 아빠의 든든한 어깨가 함께 보였습니다.

텅 빈 하늘처럼 보이던 허공을 바라보니, 그 안에서 모든 꽃과 나무와 사람들이 함께 숨 쉬고 있는 보이지 않는 숨결이 느껴졌습니다.


모든 것은 홀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은 서로에게 기대어, 서로의 덕분에 피어나는 눈부신 그물과도 같았습니다.


메아리 연못은 더 이상 달콤한 거짓말을 속삭이지 않아요. 대신, 그 깊은 물속에 진짜 세상을 비추어주고 있죠. 그리고 리라는 이제 외롭지 않답니다. 세상 모든 것과 이어진 비밀을 함께 아는 수많은 친구들이 생겼으니까요.


*


그 후로 메아리 연못 사람들은 모두 알게 되었어요. 때로는 세상이 온통 뿌연 안개처럼 느껴질 때라도,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는 결코 거짓으로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고요한 돌멩이’가 있다는 것을요. 그 돌멩이가 들려주는 진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만의 작은 씨앗을 심을 때, 세상의 모든 거짓말을 이기는 가장 위대한 진실이 바로 자기 안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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