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것에는 저마다의 노래가 있단다. 어떤 노래는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지고, 어떤 노래는 세상을 살아가며 스스로 피어나는 법이지. 이것은 그 두 가지 노래의 비밀을 모두 품게 된 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란다.
시간의 흐름이 얌전히 내려앉은 작은 골목 끝, 햇살에 바랜 낡은 나무 문을 가진 집이 있었어. 그곳은 장난감 할아버지, 엘리아스가 사는 곳이자 세상 가장 다정한 장난감들이 태어나는 곳이었지. 작업실에 들어서면, 언제나 잘 마른 소나무의 향긋한 내음과 반짝이는 니스 냄새, 그리고 사포질 소리, 작은 망치 소리 같은 행복한 소리가 가득했단다.
엘리아스 할아버지는 한 가지 굳건한 믿음이 있었어. 모든 것은 세상에 나오기 전에 뚜렷한 ‘쓰임새(본질)’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지. 그래서 할아버지가 만드는 장난감들은 저마다의 ‘마음’을 선물 받고 태어났어. 춤추는 발레리나 인형은 ‘우아한 춤으로 기쁨을 주는 마음’을, 통통 튀는 오뚝이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 용기를 주는 마음’을, 알록달록한 팽이는 ‘함께 어울리는 즐거움을 주는 마음’을 품고 있었지. 할아버지에게 장난감의 행복이란, 정해진 자신의 쓰임새를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었단다.
그중에서도 할아버지의 가장 큰 자랑은 나무로 깎아 만든 작은 새였어. 그 새는 깃털 하나하나를 결 따라 정성껏 조각하고, 일곱 빛깔 물감으로 자연의 색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였지. 할아버지는 새의 작은 가슴속에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노래를 부른다’는 마음을 심어주었어. 태엽을 감으면, 나무 새는 수정처럼 맑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노래를 불렀단다. 하지만 그 노래는 할아버지가 정해준 단 하나의 곡조였어. 새는 슬픈 감정을 담은 노래나, 바람 소리를 닮은 엉뚱한 노래, 혹은 자기 멋대로의 아무 노래는 부를 줄 몰랐지. 그저 정해진 아름다움을 반복할 뿐이었어.
할아버지는 그 완벽한 새를 보며 가끔 생각했지.
‘이 아이는 진정으로 행복할까? 내가 정해준 마음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어. 정해진 길을 가는 것이야말로 혼란 없는 가장 큰 행복이라 믿었기 때문이지.
그러던 어느 비 온 뒤 맑게 갠 아침이었어.
엘리아스가 창문을 활짝 열자, 무지갯빛 햇살 한 줌이 먼지를 반짝이며 작업실 안으로 쏟아져 내렸지. 그리고 그 햇살의 끝자락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작은 아이가 가만히 서 있었단다. 아이의 머리카락은 깊은 밤하늘처럼 검었고, 그 눈동자에는 아주 작은 별조각이 박혀 있는 듯 신비로운 빛을 띠고 있었어. 아이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 같았지. 그저 숲속의 작은 나무처럼, 냇가의 조약돌처럼, 목적 없이 그 자리에 있을(존재)할 뿐이었어.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엘라라’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어. 먼 곳에서 온 ‘별빛’이라는 뜻이었지.
엘라라는 할아버지의 장난감들과는 아주 달랐어. 정해진 역할이 없었기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지. 아이는 그저 조용히, 세상 모든 것을 처음 만나는 것처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어. 나무의 결을 손가락으로 쓸어보고, 망치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햇살 아래 떠다니는 먼지 하나하나를 눈으로 좇았지.
엘리아스는 엘라라를 무척 사랑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단다.
‘이 아이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을까? 이 세상에서 어떤 쓰임새를 갖게 될까?’
할아버지는 자신의 방식으로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어. 아이에게도 멋진 운명을 선물해주고 싶었던 거야.
“엘라라야, 너는 다른 이를 돕는 아이가 되렴. 그것이 너의 기쁨이 될 게다.”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망가진 장난감을 고치는 법을 가르쳐주었어. 엘라라는 가르쳐준 대로 곧잘 따라 했지만, 장난감을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보는 대신, 그저 부서진 조각들을 가만히 들여다볼 뿐이었어. 아이의 눈에는 성취의 기쁨이 돌지 않았지.
“그렇다면 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이가 되렴. 지혜를 나누는 것이 너의 행복일 거야.”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세상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그것을 다른 인형들에게 전해주도록 했어. 엘라라는 들은 이야기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전달했지만, 그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메아리일 뿐, 아이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이 담긴 이야기는 아니었지.
엘라라는 슬퍼졌어.
‘나는 왜 나무 새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없을까? 나는 왜 아무런 쓰임새도 없는 아이일까?’
아이는 자신이 마치 무엇을 담아야 할지 정해지지 않은 텅 빈 그릇처럼 느껴졌단다.
어느 날, 엘라라는 답답한 마음을 안고 작업실을 빠져나와 깊은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어. 그곳에서 아이는 처음으로 그냥 ‘거기 있는’ 것들의 노랫소리를 들었단다.
아이는 커다란 참나무 아래 가만히 앉았어. 나무는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았지. 그저 그 자리에 깊이 뿌리내리고 서서,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가지를 스치는 바람의 노래를 들으며 조용히 자신의 삶을 살고 있었어. 하지만 나무의 그늘 아래에는 작은 버섯들이 자라고 있었고, 가지 위에는 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지. 나무는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이 없었지만, 그냥 그곳에 생겨난 자체로 이미 세상의 일부가 되어 다른 생명들을 품어주고 있었던 거야.
아이는 졸졸 흐르는 시냇가에 발을 담갔어. 시냇물은 어디로 가야 한다는 뚜렷한 목적도 없이, 그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뿐이었지. 하지만 시냇물은 목마른 사슴에게 물을 주고, 날카로운 돌멩이들을 둥글게 깎아주며, 바다를 향한 긴 여행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
엘라라는 문득 깨달았지.
‘아, 꼭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구나.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마음이 없어도, 그냥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세상과 함께 노래할 수 있구나.’
아이는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속에서 아주 작지만 맑은 떨림이 피어나는 것을 느꼈단다. 그것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숲의 소리를 닮고 시냇물의 흐름을 닮은, 엘라라만의 노래였어.
엘라라가 며칠째 보이지 않자, 엘리아스는 걱정이 되어 아이를 찾아 나섰어. 할아버지는 숲속 시냇가에서 조용히 노래를 흥얼거리는 엘라라를 발견했지. 아이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워 보였지만, 할아버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자신의 믿음이 더 옳다는 생각이 남아있었어.
할아버지는 품속에서 가장 아끼는 나무 새를 꺼내 태엽을 감았단다. 그러자 수정처럼 맑고 완벽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외롭게 들리는 노래가 숲속에 울려 퍼졌지.
“엘라라야, 보렴. 이 새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 태어났단다. 이것이 이 아이의 흔들리지 않는 운명이자 행복이지. 그렇다면 너의 갈 길은 무엇이니? 너는 무엇을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니?”
할아버지의 단호한 질문에, 엘라라의 눈에 다시 슬픔이 고였어. 아이는 자신의 노래가 무엇인지, 자신의 쓰임새가 무엇인지 아직 말로 설명할 수 없었거든. 아이는 대답 대신, 눈물을 글썽이며 나무 새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단다. 그 완벽하지만 외로운 노래를 위로하고 싶었던 거야.
바로 그 순간이었어.
엘라라의 따뜻한 손끝이 나무 새의 차가운 몸에 닿는 순간, 아이의 눈동자에서 반짝이던 작은 별빛 한 조각이 스르르 흘러나와, 새의 텅 빈 가슴속으로 빛처럼 스며들어갔지.
그러자, 늘 똑같은 노래만 기계처럼 부르던 나무 새가 처음으로 다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
그것은 엘라라의 슬픔을 위로하는 애틋한 노래였고, 시냇물의 흐름을 닮은 자유로운 노래였으며, 숲의 나무들을 닮은 평화로운 노래였지. 할아버지가 한 번도 가르쳐주지 않은, 정해진 악보를 넘어선 나무 새 자신만의 ‘첫 번째 노래’였단다.
엘리아스 할아버지는 숨을 쉴 수가 없었어.
자신이 만든 완벽한 장난감은, 정해진 본래 목적의 ‘안’에서만 아름다웠지. 하지만 아무런 본질도 없이 태어난 저 작은 아이 엘라라는, 멈춰 있던 마음에 새로운 노래를 선물하고, 잠들어 있던 숨결에 생명을 불어넣는 아이였던 거야.
할아버지는 비로소 깨달았어.
책상은 정해진 쓰임새를 위해 태어나지만, 살아있는 나무는 살아가면서 스스로 자신의 쓰임새를 무한히 만들어낸다는 것을 말이지. 그리고 엘라라는 책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나무와 같은 아이라는 것을. 아니, 어쩌면 생명을 품는 숲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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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책상처럼 어떤 본질을 가지고 계획된 존재가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만약, 아주 만약에 우리에게 정해진 본질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 되어라’가 아니라, 엘라라처럼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잠든 마음을 깨우고, 세상 모든 것과 함께 노래하라’는 별빛 같은 약속이 아닐까.
그 후로, 엘리아스의 작업실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어.
할아버지는 여전히 아름다운 장난감들을 만들었지. 하지만 더 이상 그 안에 완벽하게 정해진 마음을 심어주지는 않았단다. 대신, 할아버지는 새로운 노래를 품을 수 있는 ‘자리’를 비워둔 채, 따뜻한 가슴을 가진 장난감들을 만들었어.
그리고 엘라라는 그 장난감들을 하나하나 품에 안고, 저마다 다른 노래를 찾아주었지. 어떤 인형에게는 서툴지만 용감한 노래를, 어떤 팽이에게는 조금은 엉뚱하지만 유쾌한 노래를… 맘껏 하라고...
엘라라는 노래가 ‘필요해서 하라고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장난감 스스로 자신의 노래를 ‘찾도록 도와주는’ 아이가 되었단다.
엘리아스와 엘라라의 장난감들은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어. 그리고 그 장난감을 받은 아이들은 모두 알게 되었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누군가 가르쳐준 완벽한 노래가 아니라, 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조금은 서툴더라도 나만의 진짜 노래라는 것을 말이야.
아가야, 너도 가끔은 네가 무엇이 되어야 할지 몰라 막막할 때가 있을 게다.
하지만 기억하렴. 너는 무엇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너 자신으로 살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단다.
너의 본래 꿈은 먼 훗날의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너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며, 너만의 따뜻한 빛으로 세상과 함께 노래하는 것이란다.
너는 채워져야 할 빈 그릇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세상을 비추는 별의 노래를 품고 태어난 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