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잣는 아이, 미리내

by 이호창

별을 잣는 아이, 미리내


아주 먼 옛날, 세상의 모든 것이 저마다의 조각으로 흩어져 있던 ‘미완의 골짜기’가 있었습니다. 그곳의 돌멩이들은 그저 단단하고 차가운 돌멩이일 뿐이었고, 빛깔들은 저마다의 유리병에 갇혀 서로를 몰랐으며, 소리들은 제각각의 조개껍데기 속에 숨어 메아리가 되지 못했습니다. 골짜기 사람들은 저마다 가장 귀한 조각 하나씩을 평생토록 모으며 살았지만, 그들의 마음은 늘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듯 텅 비고 서늘했습니다.


그 골짜기에 ‘미리내’라는 아이가 살았습니다. 미리내는 ‘은하수’라는 뜻을 가진 이름처럼,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특별한 눈을 가졌습니다. 미리내의 눈에는 세상 모든 것들이 아주 가늘고 투명한 빛의 실로 희미하게 이어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실들은 너무나 가늘고 힘이 없어서, 서로를 끌어안지 못하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외롭게 떨고만 있었지요.


어느 날 밤, 미리내는 잠든 골짜기를 홀로 걷다가, 풀잎 끝에 걸려있던 작은 별빛 한 조각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길 잃은 아기 반딧불이처럼 가냘프게 깜빡이고 있었죠. 미리내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자, 별빛은 아이의 손가락 끝으로 스며들어와 하나의 빛나는 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실에서는 아주 작지만 애틋한 노래가 들려왔습니다.


‘나는 혼자서는 빛날 수 없어요. 나는 다른 모든 것의 노래와 만나, 비로소 하나의 별자리가 되고 싶어요.’


그날 이후, 미리내는 결심했습니다. 흩어져 있는 세상의 모든 조각들을 찾아, 이 별의 실로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을 엮어내기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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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는 가장 먼저, 골짜기에서 가장 단단하고 무거운 침묵을 모으는 ‘돌 할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할아버지의 오두막은 온통 돌로 가득했습니다. 강가에서 주운 반들반들한 조약돌, 산에서 굴러온 뾰족한 화강암, 땅속 깊은 곳에서 캐낸 검은 현무암까지.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돌을 닦고, 크기별로 줄을 세우고, 그 위에 아무도 앉지 못하게 하는 것이 유일한 기쁨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저는 미리내라고 해요.”


돌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미리내의 발소리가 자신의 소중한 돌 하나를 깰까 봐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돌멩이 하나만 제게 주실 수 없나요? 아주 멋진 그림을 엮는 데 필요해요.”


“내 돌을? 안 될 말이지! 이 돌들은 수억 년의 세월을 견뎌낸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침묵이란다. 너 같은 작은 아이의 시끄러운 놀이에 쓰일 물건이 아니야.”


미리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저는 돌멩이를 가져가려는 게 아니에요. 저는 그 돌멩이가 품고 있는 ‘침묵의 노래’를 빌리고 싶어요.”


아이는 가장 못생긴 이끼 낀 돌멩이 하나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속삭였습니다.


“이 돌멩이는 그냥 돌멩이가 아니에요. 아주 먼 옛날, 뜨거운 불꽃이었던 기억을 품고 있어요. 거센 비바람에 깎이고, 차가운 강물에 씻기며 여기까지 여행해 온 긴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죠. 이 돌멩이의 침묵은 텅 빈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시작을 기억하는 아주 깊고 따뜻한 노래랍니다. 그 노래가 없다면, 다른 어떤 시끄러운 소리도 의미를 가질 수 없어요.”


돌 할아버지는 처음으로 자신의 돌멩이들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늘 똑같이 차갑고 단단하게만 보였던 돌의 표면 위로, 희미하게 강물의 무늬와 바람의 흔적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미리내가 쓰다듬던 그 이끼 낀 돌멩이를 아이의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돌멩이는 더 이상 무겁지 않았습니다. 그 안에서 아주 오래된 자장가 같은 울림이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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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미리내는 세상의 모든 빛깔을 유리병에 담아 모으는 ‘빛깔 할머니’를 찾아갔습니다. 할머니의 집은 온통 색색의 유리병으로 가득 찬 무지개 궁전 같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파란 파랑’, ‘가장 슬픈 초록’, ‘가장 행복한 노랑’… 할머니는 빛깔들이 서로 섞여 고유의 색을 잃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할머니, 할머니의 빛깔들을 조금만 빌려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엮고 싶어요.”


“내 빛깔들을? 섞이게 하려고? 절대 안 된다! 파랑은 오직 파랑일 때 가장 아름답고, 노랑은 오직 노랑일 때 가장 빛나는 법이란다. 섞이는 순간, 모두가 흐릿하고 볼품없는 색이 되어버릴 게야.”


미리내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창가로 이끌었습니다. 창밖에는 마침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죠.


“할머니, 저길 보세요. 저 하늘은 무슨 색인가요?”


“저건… 붉은색이기도 하고, 주황색이기도 하고, 보라색 같기도 하구나.”


“맞아요. 저 노을이 아름다운 건, 수많은 빛깔들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부드럽게 껴안고 있기 때문이에요. 파랑이 있기에 노랑은 더 따뜻하게 빛나고, 어둠이 있기에 붉음은 더 애틋하게 타오르죠. 빛깔의 진짜 아름다움은 홀로 있을 때가 아니라, 다른 빛깔과 ‘함께’ 있을 때 비로소 피어나는 노래랍니다.”


빛깔 할머니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늘 유리병 속의 순수한 색만을 들여다보느라, 그 색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세상의 풍경을 잊고 살았던 것입니다. 할머니는 가장 아끼던 ‘새벽의 푸른빛’이 담긴 병과 ‘저녁노을의 붉은빛’이 담긴 병의 마개를 조심스럽게 열어주었습니다. 두 빛깔은 기쁨의 춤을 추듯 병 밖으로 나와, 미리내의 별 실에 스며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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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미리내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투명한 조개껍데기 안에 가두어 모으는 ‘소리 도련님’을 찾아갔습니다. 그의 성은 온통 조개껍데기로 지어져, 발을 디딜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곳에는 ‘갓 태어난 아기의 첫 울음소리’, ‘가장 단단한 떡갈나무가 쓰러지는 소리’, ‘한겨울의 마지막 눈송이가 녹는 소리’까지,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저마다의 껍데기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도련님, 그 소리들을 세상에 돌려주세요. 모두가 함께 부를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


소리 도련님은 차갑게 웃었습니다.


“어리석은 아이로구나. 이 소리들은 내가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 가둔 것이다. 세상에 나가는 순간, 다른 소리들과 뒤섞여 사라져버릴 테지. 나는 이 순수한 소리들을 영원히 소유하고 싶단다.”


미리내는 가장 작은 조개껍데기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도련님, 이 껍데기는 왜 비어 있나요?”


“아, 그건 ‘침묵’이라는 소리다. 가장 쓸모없는 소리지.”


미리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침묵이야말로 모든 소리의 어머니랍니다. 침묵이 없다면, 어떤 아름다운 소리도 노래가 될 수 없어요. 아기의 첫 울음소리가 감동적인 것은, 그 이전에 있었던 고요한 기다림 때문이고,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가 슬픈 것은, 그 후에 찾아올 영원한 침묵 때문이지요. 소리는 홀로 존재할 수 없어요. 언제나 비어있는 침묵과 함께 있을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답니다. 모든 것은 그렇게 텅 비어 있기에, 서로를 채워주며 존재하는 거예요.”


소리 도련님은 처음으로 자신의 소리들이 얼마나 외로웠을지를 생각했습니다. 껍데기 속에 갇힌 소리들은 서로를 그리워하며 울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도련님은 가장 아끼던 ‘여름 소나기의 첫 빗방울 소리’가 담긴 껍데기와, 가장 쓸모없다고 여겼던 ‘깊은 밤의 침묵 소리’가 담긴 껍데기를 미리내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두 소리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서로에게 스며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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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재료를 모두 모은 미리내는 미완의 골짜기 한가운데로 돌아왔습니다. 어느새 돌 할아버지와 빛깔 할머니, 그리고 소리 도련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이를 따라와 있었죠.


미리내는 눈을 감고, 손안의 별 실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춤을 추듯, 노래를 하듯, 세상의 모든 흩어진 조각들을 엮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돌멩이의 깊은 침묵이 먼저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 위로 소나기의 첫 빗방울 소리가 떨어지자, 침묵은 더 이상 공허하지 않고 모든 것을 기다리는 설렘이 되었습니다. 새벽의 푸른빛과 저녁노을의 붉은빛이 그 위를 흐르자, 소리는 빛깔을 얻고 빛깔은 노래를 품었습니다. 미리내의 별 실은 그 모든 것을 하나로 엮어주는 은하수가 되었습니다.


미리내가 잣는 것은 더 이상 평범한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세상’이었습니다. 돌멩이는 산이 되어 굳건히 서고, 빛깔들은 꽃이 되어 피어났으며, 소리들은 바람이 되어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한가운데, 서로의 손을 잡고 웃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돌 할아버지는 자신이 평생 모아온 돌멩이가, 저 아름다운 산의 심장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빛깔 할머니는 자신이 가두어두었던 빛깔들이, 서로를 비추며 더 눈부신 꽃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소리 도련님은 자신의 소리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하나의 아름다운 교향곡이 되는 것을 들었습니다.


자신이 평생 모아온 조각들은, 혼자 있을 때는 미완성이었지만, 함께 어우러지니 비로소 완전한 세상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미완의 골짜기는 더 이상 미완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모아두었던 조각들을 들고나와, 미리내가 짠 세상에 자신의 조각을 더하기 시작했습니다. 골짜기는 웃음과 노래, 그리고 따뜻한 이야기로 가득 찼습니다.


미리내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진짜 임무는 혼자서 완벽한 그림을 엮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요. 그것은 세상 모든 것이 이미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비밀을 발견하고, 모두가 함께 자신만의 아름다운 그림을 엮어갈 수 있도록 첫 번째 별 실을 풀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미완의 골짜기’는 ‘별을 잣는 골짜기’라 불리게 되었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외로운 조각을 모으지 않았어요. 대신, 저마다의 손에서 빛나는 작은 별 실을 풀어 이웃의 실과 다정히 엮어주었죠. 돌멩이는 노래가 되고, 빛깔은 춤이 되고, 소리는 따스한 이야기가 되어 골짜기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골짜기는 하늘의 은하수만큼이나 눈부시게 빛났답니다. 아주 작은 별 하나가 시작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자리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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