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아이들의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민서는 매일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놀이터 옆 낡은 벤치로 향했다. 그곳은 아이들의 아지트이자, 조용한 경쟁이 펼쳐지는 무대였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스마트폰을 꺼내 들면, 화면을 넘기는 소리와 ‘좋아요’ 알림음이 주변의 소음을 이겼다.
민서의 꿈은 유명한 인스타 화가였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민서에게 인스타그램은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보여줄 유일한 창구였다. ‘내 그림이 ‘좋아요’를 많이 받으면, 모두가 날 인정해 줄 거야!’ 민서는 며칠간 공들인 무지갯빛 유니콘 그림을 올리며 가슴이 부풀었다. ‘#유니콘 #그림스타그램 #초등미술’ 같은 해시태그도 꼼꼼히 달았다.
스마트폰 화면에 하트가 켜질 때마다 민서의 심장이 뛰었다. 숫자가 올라가는 모습은 달콤한 사탕 같았지만, 그 맛은 금방 사라졌다. 좋아요가 50개를 넘어도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허전했다. 그때 옆에 있던 친구 수빈이가 외쳤다.
“얘들아, 내 공기놀이 동영상, 좋아요 80개 넘었어!”
아이들이 "와~" 하고 몰려들었다. 민서는 애써 웃었지만, 뱃속에 작은 돌멩이가 생긴 기분이었다.
‘다음엔 더 화려한 걸 그려야지.’
민서는 주먹을 꽉 쥐었다.
“왜 나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예쁜 것만 올리고 싶어질까?”
누구에게도 닿지 않을 질문이 맴돌았다.
며칠 뒤, 민서는 답답한 마음에 학교 도서관 구석에 앉았다. 낡은 책들 사이에 먼지 쌓인 작은 노트 한 권이 눈에 띄었다. 누군가 일부러 숨겨둔 듯했다. 낡은 가죽 표지를 넘기자 손글씨가 나타났다. 비밀 일기장 같았다. 첫 페이지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네가 간절히 좇는 그 무언가는 정말 네가 원하는 걸까?>
민서는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아 심장이 철렁했다. 아무도 모르게 노트를 가방에 챙겼다. 그날 이후, 이 낡은 노트는 민서가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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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민서는 침대에 엎드려 노트를 펼쳤다.
<우리는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규칙을 열심히 따라가고 있어.>
민서는 인스타그램을 떠올렸다. 친구들이 올리는 사진은 신기할 정도로 비슷했다. 새로 산 옷을 입은 셀카, 화려한 디저트, 유명한 카페 인증샷. 민서 역시 얼마 전 엄마가 사준 원피스를 입고 찍은 사진을 올리며 “이게 바로 나야!”라고 뿌듯해했다. 하지만 노트의 글을 읽자, 방금 한 생각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진짜 나를 보여주는 게 아니야. 인스타그램이 원하는 멋진 모습을 연기하는 거지.'
다음 날, 민서는 벤치에 앉은 수빈에게 물었다.
“수빈아, 넌 왜 인스타에 사진 올려? 진짜 이유가 궁금해서.”
수빈이는 당연하다는 듯 웃었다.
“좋아요 많이 받으면 기분 좋잖아! 모두가 날 멋지다고 생각해 주는 것 같고.”
민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노트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는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스마트폰이 좋아요를 주는 방식에 맞춰 행동을 바꾸고 있어.’
민서는 깨달았다. 인스타그램은 자유로운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해야 사랑받을 수 있어’라고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었다.
하굣길, 민서는 놀이터에서 동생 지호를 봤다. 지호는 친구들과 진흙탕에서 뒹굴며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 채 깔깔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즐거워 보여 민서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스마트폰으로 그 순간을 찍었지만, ‘업로드’ 버튼은 누르지 못했다.
‘이런 사진은… 좋아요를 못 받을 거야. 옷도 더럽고 얼굴도 웃기잖아.’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진짜 행복한 순간은 외면한 채, 인스타그램이 좋아할 만한 포장된 순간만 올리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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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
<인간은 늘 무언가를 원하도록 만들어졌어. 하지만 그것을 손에 넣어도 만족감은 금새 사라지고, 또 다른 것을 원하게 되지.>
민서는 얼마전에 본 유튜브 광고를 떠올렸다.
“와, 저 반짝이 펄 색연필만 있으면 내 그림이 훨씬 예뻐질 텐데!”
지난달에 72색 색연필 세트를 샀을 때의 기쁨은 이미 희미했다. 노트는 민서의 마음을 꿰뚫는 듯했다.
<너는 늘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느껴. 하지만 그 부족함은 물건으로 채워지는 게 아니라, 계속 새로 생겨나는 거야.>
작년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이 떠올랐다. 민서네 가족은 최신형 게임기를 사려고 새벽부터 마트로 달려갔다. 게임기를 손에 넣었을 때, 매일 행복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설렘은 한 달도 가지 못했다. 더 재밌어 보이는 새로운 게임이 나왔고, 민서는 또다시 엄마를 졸랐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바라는 건 게임기라는 물건이 아니야. 그 물건이 가져다줄 거라 믿는 ‘완벽한 행복’이라는 환상이지. 하지만 그 환상은 신기루처럼 잡히지 않아.'
민서는 친구 민재에게 물었다.
“민재야, 넌 새 장난감 사면 얼마나 행복해?”
민재는 어깨를 으쓱했다.
“상자 뜯을 땐 최고지! 근데… 한 일주일 놀면 시시해져. 그러다 TV에서 더 멋진 로봇 광고가 나오면, 또 그게 갖고 싶어져.”
민서가 말했다.
“나도 그래! 그럼 우린 계속 뭘 사야 하나?”
민재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민서는 노트의 쓰인 말을 기억해 냈다.
<우리는 무엇을 사도 결국 다시 허전해질 거야. 그게 소비 사회의 무서운 비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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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의 다른 페이지에는 조금 더 무서운 이야기가 있었다.
<사람들은 세상이 너무 무섭고 복잡하게 느껴질 때, 차라리 거대한 악당이 모든 것을 조종한다고 믿고 싶어 해.>
민서는 몇 년 전 코로나19 때를 떠올렸다. 어른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바이러스처럼 퍼졌다. 옆집 아저씨는 “마스크는 우리를 감시하려는 속임수야!”라고 했고, 미용실 아주머니는 “백신에 비밀 칩이 들어 있대!”라며 속삭였다. 민서네 반에서도 몇몇 아이들이 “학교에서 마스크 쓰라는 건 이상해!”라며 수군거렸다.
그때 민서는 정말 무서웠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우리를 조종하는 걸까? 불안한 마음에 노트의 다음 장을 넘겼다.
<이해할 수 없는 혼란과 마주할 때, 그 모든 게 누군가의 ‘계획’ 때문이라고 믿으면 역설적으로 마음이 편안해져. 혼돈보다 질서 있는 음모가 낫다고 생각하는 거지. 하지만 그건 진짜 답이 될 수 없어.>
민서는 친구 지은과의 대화를 기억했다.
“지은아, 넌 그 소문들 믿었어?”
지은이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엔 무서웠는데, 아빠가 그러시더라. 세상이 갑자기 변해서 사람들이 불안하니까,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서라도 상황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거라고.”
민서는 노트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소문은 혼란을 이해하려는 방법이었지만, 결국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더 큰 혼란에 빠뜨릴 뿐이었다. 예전에 선생님께 여쭤본 적도 있었다. 선생님은 민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세상은 원래 복잡하단다. 모든 걸 누군가 조종한다고 믿는 건 쉬운 답을 찾으려는 마음 때문이야. 중요한 건 우리가 서로 믿고 돕는 거란다.”
민서는 노트의 구절을 떠올렸다.
<중요한 건 문제를 똑바로 마주 보는 용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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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의 마지막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세상의 모순을 똑바로 봐. 그러면 새로운 길이 보이기 시작할 거야.>
민서는 그동안의 고민들이 하나의 퍼즐처럼 맞춰지는 것을 느꼈다. 인스타그램은 ‘좋아요’를 좇으라고, 광고는 새 물건을 사라고, 무서운 소문은 보이지 않는 악당을 믿으라고 했다. 하지만 그 끝에는 더 큰 허전함과 혼란만이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진짜 행복이 아니라 행복의 ‘그림자’를 좇게 만들었다.
민서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그날 오후, 민서는 스마트폰을 방에 두고 놀이터로 달려갔다. 인스타그램을 새로고침하는 대신, 지호, 수빈, 민재와 함께 오랜만에 공기놀이를 했다. 진흙투성이 손으로 고무줄놀이를 하며 웃는 친구들의 얼굴을 보니, ‘좋아요’ 숫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따뜻함이 마음에 차올랐다.
‘그래, 이게 진짜 행복인데.’
민서는 노트의 구절을 떠올렸다.
<진짜 행복은 새로 산 무언가 속에 있는 게 아니야. 이미 내가 가진 것들, 바로 지금 내 곁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순간에 있어.>
다음 날 미술 시간, 민서는 인스타그램에 올릴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반짝이는 유니콘 대신, 놀이터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그렸다. 그림을 완성하자 수빈이가 다가와 감탄했다.
“우와, 민서야! 이거 진짜 잘 그렸다! 당장 인스타에 올려! ‘좋아요’ 폭발할 텐데?”
민서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건 안 올릴 거야. 그냥 우리끼리 간직하고 싶어.”
수빈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자랑해야지!”
민서는 그림 속 친구들을 보며 말했다.
“이제 ‘좋아요’는 중요하지 않아. 우리가 이 그림을 보고 함께 즐거웠다는 사실, 그것만으로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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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민서는 일기장 옆에 비밀 노트를 나란히 놓았다. 노트의 마지막 문장을 다시 읽었다.
<세상은 복잡한 규칙들로 가득하지만, 너는 네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어.>
민서는 생각했다.
‘인스타그램이 없어도, 새 장난감이 없어도 우린 행복할 수 있어. 중요한 건 광고나 소문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가 서로 마주 보고 진짜 즐거운 걸 찾는 거야.’
다음 날, 민서는 수빈이와 민재에게 제안했다.
“얘들아, 우리 ‘놀이터 클럽’ 만들래?”
스마트폰은 가방에 넣어두고, 대신 새로운 놀이를 만들고, 그림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클럽이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친구들도 하나둘씩 합류했다. 아이들은 놀이터의 흙과 나뭇잎으로 새로운 게임 규칙을 만들었고, 벤치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민서는 가끔 잠들기 전, 서랍 속 노트를 펼쳐보곤 했다.
<우리는 정말 자유롭게 선택하고 있을까? 지금 내가 원하는 건 진짜 나의 욕망일까?
그 질문들은 마음속에 남아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민서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정답은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진짜 행복을 직접 만들어나가는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동화로 읽는 지젝: 민서의 작은 깨달음에 담긴 거대한 진실
어린이의 세계는 순수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어른들의 세상만큼이나 복잡한 규칙과 욕망이 소용돌이친다. 동화 '민서와 우리들의 작은 깨달음'은 스마트폰과 소비문화 속에서 자신의 진짜 행복을 찾아 나서는 한 소녀의 이야기다. 이 소박한 이야기는 현대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의 사상과 깊은 공명을 일으킨다.
민서가 겪는 내면의 갈등과 깨달음의 과정은, 지젝이 날카롭게 비판하는 현대 사회의 이데올로기, 환상, 그리고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주체적 '행위(Act)'의 문제를 아이의 눈높이에서 보여주는 우화(寓話)다.
1. 인스타그램이라는 '큰 타자'와 이데올로기적 연기
지젝에게 이데올로기는 단순히 세상을 왜곡하는 ‘가짜 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현실을 경험하고 욕망하는 방식 자체를 구조화하는 보이지 않는 틀이다. 동화 속 ‘우리 마을’의 아이들은 인스타그램이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공간 안에서 살아간다. 이 공간은 지젝이 말하는 '큰 타자(the big Other)', 즉 우리의 행동과 욕망을 승인하고 지시하는 익명의 사회적 권력으로 작동한다. 인스타그램은 민서의 말처럼 “자유로운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해야 사랑받을 수 있어’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이 속삭임에 응답하기 위해 민서와 친구들은 ‘연기(페르소나)’를 시작한다. 민서가 새로 산 원피스를 입고 찍은 사진을 올리며 “이게 바로 나야!”라고 뿌듯해하다가도, 이내 “인스타그램이 원하는 ‘멋진 모습’을 연기하는 거지”라고 깨닫는 장면은 지젝 사상의 핵심을 찌른다. 우리는 큰 타자의 시선을 내면화하고, 그가 인정할 만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상품화한다. 진흙탕에서 순수하게 웃는 동생 지호의 모습은 ‘좋아요’를 받지 못할 것이기에 업로드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는 이처럼 우리의 가장 진실한 기쁨마저 검열하고, 오직 교환가치가 있는 ‘포장된 순간’만을 가치 있는 것으로 규정한다. 민서는 이데올로기적 게임의 규칙을 무의식적으로 따르며, ‘좋아요’라는 상징적 보상을 위해 자신의 진정성을 저당 잡혔던 것이다.
2. 새 장난감과 채워지지 않는 결핍의 환상
민서의 허전함은 ‘좋아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녀는 반짝이 색연필과 최신형 게임기가 자신에게 “완벽한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새것을 손에 넣은 기쁨은 “신기루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고, 또 다른 결핍과 욕망이 그 자리를 채운다. 이는 지젝이 라캉(Lacan)의 정신분석을 빌려 설명하는 인간 욕망의 본질적 구조와 정확히 일치한다.
인간은 근본적인 '결핍(Lack)'을 안고 태어난 존재이며, 이 결핍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대상을 욕망한다. 하지만 그 어떤 대상도 이 근원적 구멍을 완전히 채울 수는 없다. 소비주의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광고는 특정 상품(오브제 쁘띠 a, objet petit a)이 우리의 결핍을 최종적으로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환상(Fantasy)’을 판매한다. 민서가 좇는 것은 색연필이나 게임기라는 물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만 있으면 모든 것이 완벽해질 것’이라는 약속, 즉 환상이다. 노트가 “그 부족함은 물건으로 채워지는 게 아니라, 계속 새로 생겨나는 거야”라고 말했듯, 소비주의적 환상은 욕망을 충족시키는 대신 영원히 새로운 욕망을 생산하며 우리를 끝없는 추구의 궤도에 묶어둔다.
3. 마스크 소문과 음모론이라는 '쉬운 답'
코로나19 시기에 퍼진 마스크와 백신에 대한 음모론은 동화에 현실적인 깊이를 더하며, 지젝의 사회 비판과 또 다른 연결점을 만든다. 지젝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현실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이 모든 것을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거대한 음모론이라는 ‘쉬운 답’에 빠지기 쉽다고 진단한다. 세상이 예측 불가능한 혼돈 상태에 있는 것보다, 차라리 사악한 누군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는 서사가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동화 속 선생님은 이러한 현상을 “어려운 문제 앞에서 가장 쉬운 답을 찾으려는 마음”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지젝이 말하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의 또 다른 얼굴이다. 음모론은 현실의 복잡한 모순을 직시하는 고통을 피하게 해주는 값싼 진통제와 같다. 하지만 노트가 경고하듯, 이러한 믿음은 “스스로 덫에 빠지는 것”이며, 현실을 해결하는 대신 더 큰 불신과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진짜 용기는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똑바로 마주 보는 것”에 있다.
4. 놀이터 클럽과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행위'
이야기의 절정에서 민서는 마침내 이데올로기적 환상과의 단절을 감행한다. 지젝의 용어로 이는 '행위(Act)'에 해당한다. ‘행위’는 단순히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상징적 질서(큰 타자)의 규칙을 깨뜨리는 급진적이고 주체적인 선택이다. 민서의 첫 번째 ‘행위’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친구들과 직접 놀이터에서 노는 것이다. 그녀는 ‘좋아요’라는 가상적 인정을 포기하고, 진흙투성이의 몸과 웃음소리가 가득한 현실적 관계를 선택한다.
더 나아가, 친구들의 행복한 모습을 그린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않기로 한 결정은 더욱 성숙한 ‘행위’다. 그녀는 자신의 진정한 기쁨을 다시 ‘좋아요’를 위한 상품으로 전환하기를 거부한다. 이로써 민서는 이데올로기적 순환의 고리를 끊고, ‘그림자’가 아닌 ‘진짜 행복’을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소유하게 된다. ‘놀이터 클럽’의 창설은 이러한 개인적 ‘행위’가 공동체적 실천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바깥에 자신들만의 작은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민서와 우리들의 작은 깨달음'은 한 아이의 성장을 통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비춘다. 민서의 마지막 질문, “우리는 정말 자유롭게 선택하고 있을까?”는 지젝 철학의 핵심처럼, 이데올로기로부터의 완전한 탈출은 없으며 비판적 성찰은 계속되어야 함을 암시한다. 이 동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거대한 시스템의 속삭임 속에서도 귀를 닫고, 우리를 진정으로 살아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그것을 위해 용기 내어 행동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나’로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