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와 세 가지 세상의 비밀

by 이호창

레오와 세 가지 세상의 비밀


아주 먼 옛날,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한 호기심 많은 눈을 가진 아이, 레오가 살고 있었어요. 레오가 사는 세상은 아주 조용하고 아늑했답니다. 레오에게는 둘도 없는 비밀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집 뒤뜰에 있는 ‘나만의 반짝이는 연못’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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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은 레오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놀이터였습니다. 그곳에 가면 물 위에 또 다른 레오가 언제나 방긋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물에 비친 레오는 언제나 최고로 멋져 보였어요. 방금 자다 일어나 헝클어진 머리카락도 물속에서는 얌전하게 보였고, 넘어져서 무릎에 난 작은 상처도 보이지 않았죠. 레오는 물에 비친 친구를 향해 손을 흔들면, 물속의 레오도 똑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어요. 레오가 까르르 웃으면, 물속의 레오도 소리 없이 입을 크게 벌리며 따라 웃었습니다.


“안녕! 우린 정말 똑같다. 우리는 하나야!”


레오는 물속의 친구와 내가 완전히 똑같은 하나라고 느꼈어요. 슬픈 일도, 화나는 일도 없는 완벽한 세상이었죠. 세상의 모든 것이 꼭 레오를 위해 있는 것만 같았어요.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기 무섭게 엄마가 맛있는 빵을 들고 나타나셨고, 눈꺼풀이 무거워지면 어느새 포근한 담요가 몸을 감싸주었거든요. 엄마도, 빵도, 담요도 모두 레오 자신의 일부처럼 느껴졌습니다. 레오는 이 행복하고 완벽한 연못 세상이 영원할 거라고 굳게 믿었어요. 이것이 레오가 처음 만난 세상, 모든 것이 내 모습과 나에 대한 즐거운 생각으로 가득 찬 ‘나만의 반짝이는 연못’ 세상이었답니다.


어느 날 오후, 엄마가 레오의 작은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씀하셨어요. “우리 아들, 레오야. 저 연못 너머에는 더 신기하고 재미있는 곳이 있단다. 엄마랑 같이 가보지 않을래?”


레오는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이렇게 멋진 연못보다 더 신기한 곳이 있다고? 내 단짝 친구가 있는 이곳보다 더 재미있는 곳이 있을 리가 없는데.’ 레오는 조금 망설였지만, 엄마의 따뜻하고 믿음직스러운 손에 이끌려 조심스럽게 연못 뒤편으로 걸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여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끝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숲이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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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들어서는 순간, 레오는 생전 처음 듣는 소리들에 깜짝 놀랐습니다. 마치 수많은 나뭇잎들이 한꺼번에 서로 다른 이야기를 소곤소곤 속삭이는 것 같았죠.


“저기 저 키 큰 건 ‘나무’라고 불러.”

“네 발밑에서 예쁘게 피어난 건 ‘꽃’이야.”

“하늘을 휙 하고 날아가는 저건 ‘새’란다.”


온갖 속삭임이 레오의 귀를 간지럽혔습니다. 숲의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레오가 어리둥절해서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어요. 커다란 나뭇가지 위에서 지혜로워 보이는 커다란 눈을 한 부엉이 아저씨 ‘부보’가 소리 없이 날아와 앉았습니다.


“어서 오렴, 작은 친구. 이곳은 ‘약속의 속삭이는 숲’이란다.”


부보 아저씨가 점잖게 말했어요.


“이 숲에서 다른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싶으면, 여기서 쓰는 말과 우리가 함께 지키는 약속들을 배워야 한단다. 예를 들어, 저기 저 빨간 공을 갖고 싶으면, 예전처럼 그냥 달려가서 가지면 안 돼. ‘나, 레오는, 저 빨간 공을 갖고 싶어요. 같이 놀아도 될까요?’ 하고 말해야 하지.”


레오는 머릿속이 복잡해졌어요. 연못에서는 그냥 ‘나’ 자신이 세상의 전부였는데, 이곳에서는 ‘나’와 ‘공’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었어요. 그리고 ‘갖고 싶다’는 마음을 말로 꼭 이야기해야만 했죠.


레오는 부보 아저씨의 가르침에 따라 숲의 말을 하나씩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아빠’, ‘장난감’, ‘주세요’, ‘고맙습니다’. 말을 배우자 정말로 신기한 일이 일어났어요.

다람쥐에게 “안녕!” 하고 말을 걸자, 다람쥐가 도토리를 하나 건네주었고, 토끼에게 “같이 놀자!” 하고 외치자, 토끼가 함께 술래잡기를 해주었습니다.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더 새롭고 신나는 놀이를 함께 할 수 있었죠. 레오는 이제 더 이상 연못 속 자신에게만 말을 거는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하게 서운한 마음도 생겨났습니다. 예전에는 배고프면 바로 빵이 생기는 마법 같은 세상이었지만, 이제는 “엄마, 배고파요. 빵 주세요”라고 말해야 했어요. 말을 하는 순간, ‘아, 지금 나에게 빵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어요. 갖고 싶은 장난감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저걸 원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이 지금 내 손에 없다는 사실이 더 확실하게 느껴졌습니다.


레오는 문득 ‘나만의 반짝이는 연못’으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예전과 달라 보였어요. 여전히 레오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이제 그 모습만으로는 예전처럼 완전한 행복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숲에서 배운 수많은 말과 약속들, 그리고 ‘갖고 싶다’는 새로운 마음이 레오와 연못 속 레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든 것 같았어요. 레오는 이제 완벽한 하나가 아니라, 자꾸만 무언가를 더 바라는 아이가 되어버린 것이죠.


이곳이 바로 레오가 만난 두 번째 세상, 말과 약속을 배우며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법을 깨닫는 ‘약속의 속삭이는 숲’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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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별 모양 딸랑이’였죠. 할머니는 레오가 아주 아기였을 때, “우리 강아지, 세상의 모든 좋은 소리만 듣고 자라렴” 하시며 따뜻한 나무로 깎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딸랑이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느낌을 주는 물건이었어요. 딸랑이를 흔들 때 나는 ‘딸랑’ 소리는 레오의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그것은 엄마의 따뜻함, 할머니의 사랑,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이 그 안에 담겨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러던 어느 맑은 날, 레오는 숲의 가장 깊은 곳까지 탐험을 떠났습니다. 신나게 별 모양 딸랑이를 흔들며 달리던 중이었어요. 그런데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그만 앞으로 쿵 하고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손에 꼭 쥐고 있던 딸랑이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딸랑이는 데굴데굴 굴러가더니, 숲의 맨 끝자락에 있는 안개 낀 깊은 골짜기 아래로 뚝 떨어져 버렸습니다.


“아! 내 딸랑이!”


레오는 골짜기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짙고 축축한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그곳은 완벽한 고요함만이 가득한 곳이었죠.


레오는 부보 아저씨에게 울면서 달려갔어요.


“부보 아저씨! 제 별 모양 딸랑이가 사라졌어요! 저 아래, 이상하고 무서운 곳으로 떨어졌어요!”


레오는 골짜기를 설명하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숲의 말로는 그곳을 표현할 단어가 없었어요. ‘슬프다’, ‘무섭다’라는 말로는 한참 모자랐어요. 그건 그냥… 마음이 텅 비어버린 느낌, 심장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린 듯한 충격적인 느낌이었습니다.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마음이었죠.


레오는 ‘나만의 반짝이는 연못’으로도 달려가 보았어요. 연못은 여전히 레오의 모습을 비춰주었지만, 잃어버린 딸랑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연못에 비친 내 모습만으로는 이 텅 빈 마음을 도저히 달랠 수가 없었어요.


부보 아저씨가 레오의 어깨에 조용히 날아와 앉았습니다.


“레오야, 그곳은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골짜기’란다. 그곳은 우리의 말이나 생각으로는 가볼 수 없는 곳이지.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자신만의 ‘골짜기’와 그곳에 빠뜨린 ‘소중한 딸랑이’를 하나씩 가지고 있단다.”


부보 아저씨의 말에 레오는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그 딸랑이는 네가 세상에서 가장 원했던 것이었지. 하지만 그걸 잃어버려서 생긴 그 텅 빈 마음 때문에, 너는 앞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게 될 거야.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놀이를 만들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될 거란다.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자라나는 방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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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레오는 모든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레오는 가끔씩 ‘나만의 반짝이는 연못’에 찾아가 그곳에 비친 자신을 보며 미소 지었습니다. 모든 것이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지금의 자신도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며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약속의 속삭이는 숲’에서 살았습니다. 친구들과 말로 이야기를 나누고, 약속을 지키며 함께 어울렸습니다.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했고, 때로는 친구들과 힘을 합쳐 더 멋진 것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레오는 쑥쑥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레오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골짜기’가 있었습니다. 별 모양 딸랑이를 잃어버린 그 텅 빈 공간. 그 무엇으로도 완벽히 채울 수 없는 그 텅 빈 마음은, 레오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되었습니다. 레오는 더 멋진 장난감을 만들고,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상상하고, 더 높은 나무 위를 향해 올라갔습니다. 어쩌면 또 다른 별 모양 딸랑이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혹은 그보다 더 멋진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을 품고서 말이죠.


레오는 이제 알았습니다. 자신은 이 세 가지 세상 모두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연못의 행복한 내 모습, 숲속의 즐거운 약속들, 그리고 결코 채워지지 않는 골짜기의 텅 빈 마음. 이 모든 것이 합쳐져 비로소 ‘레오’라는 특별한 아이를 만든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것은 세상 모든 아이들이 겪는 비밀스럽고도 아주 멋진 모험이라는 사실도 말입니다.









레오의 여정: 라캉의 세 가지 질서로 본 주체 형성의 알레고리


이 이야기는 레오라는 한 아이가 '나만의 반짝이는 연못', '약속의 속삭이는 숲', 그리고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골짜기'라는 세 가지 세상을 차례로 경험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서정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레오의 여정은 단순히 한 아이의 성장 서사를 넘어,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Jacques Lacan)이 제시한 인간 주체 형성의 세 가지 핵심 질서, 즉 상상계(The Imaginary), 상징계(The Symbolic), 실재계(The Real)의 작동 방식을 예시하는 철학적 알레고리로 독해될 수 있습니다.


레오가 각 세상에서 겪는 경험과 인식의 변화는 라캉이 설명하는 주체화의 세 가지 결정적 국면과 조응합니다. 첫 번째 세상인 연못은 상상계적 자아(ego)의 형성 과정을, 두 번째 세상인 숲은 상징계로의 진입과 욕망의 탄생을, 그리고 세 번째 세상인 골짜기는 실재계와의 충격적 조우와 그것이 남긴 근원적 결핍의 흔적을 상징합니다.


레오의 이야기는 '나만의 반짝이는 연못'에서 시작됩니다. 이곳은 완벽한 충만함과 자기 동일성의 공간입니다. 레오는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최고로 멋져 보였"으며, 그 모습과 자신을 "완전히 똑같은 하나"라고 느낍니다. 이 연못 세상은 라캉이 주체 형성의 첫 번째 질서로 설명하는 상상계(The Imaginary)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상상계는 언어 이전의 단계로, 이미지와 감각적 융합이 지배하는 세계입니다.


이 단계의 핵심적인 사건은 라캉 이론의 초석이라 할 수 있는 거울 단계(Mirror Stage)입니다.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의 아이는 아직 자신의 신체를 통합적으로 지각하지 못하는 파편화된 존재입니다. 그러나 거울(혹은 어머니의 얼굴과 같은 거울 역할을 하는 타자)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보고, 아이는 처음으로 자신을 하나의 통일된 형태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 인식의 순간, 아이는 환희에 차지만, 이 환희는 근본적인 오인(méconnaissance)에 기반합니다. 거울 이미지는 실제의 파편화된 신체 경험과는 다른, 이상적이고 완전한 허상이기 때문입니다. 레오가 연못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우린 정말 똑같다. 우리는 하나야!"라고 외치는 장면은 바로 이 거울 단계의 환희에 찬 동일시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상처도 흠도 없는 완벽한 이미지와 자신을 합치시키며 최초의 자아(ego)를 형성합니다.


또한, 이 연못 세상은 자신과 외부 세계의 경계가 모호한 상상계의 특징을 명확히 드러냅니다. 레오에게 "엄마도, 빵도, 담요도 모두 레오 자신의 일부처럼 느껴"집니다. 이는 아이가 자신과 어머니(혹은 주 양육자)를 분리되지 않은 하나로 인식하는 이자적(dyadic) 관계를 반영합니다. 욕구는 즉각적으로 충족되며,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핍(lack)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충만의 왕국, 이것이 바로 상상계의 본질입니다. 레오는 이 완벽한 세상이 영원할 것이라 믿지만, 이 상상적 낙원은 필연적으로 깨어질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상상계의 평화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약속의 속삭이는 숲'으로 들어가면서 균열을 맞이합니다. 이 숲은 라캉의 두 번째 질서인 상징계(The Symbolic)를 명백하게 상징합니다. 상징계는 언어, 법, 사회적 규범, 문화 등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존재하며 개인을 구성하는 거대한 질서의 장입니다. 라캉은 이를 '대타자(the big Other)'의 영역이라고도 칭했습니다.


레오가 숲에서 처음 경험하는 것은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무', '꽃', '새'와 같은 이름들은 개별 사물들을 언어라는 보편적 체계 속에 편입시킵니다. 이는 주체가 언어의 세계로 들어서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소통의 기술을 익히는 것을 넘어, 세계를 상징계의 질서에 따라 재편하고 그 질서에 종속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지혜로운 부엉이 아저씨 '부보'입니다. 부보는 숲의 '말과 약속'을 가르치며, 상징적 법의 대리인, 즉 라캉이 말하는 '아버지의 이름(Name-of-the-Father)'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부보의 가르침("저 빨간 공을 갖고 싶으면... '나, 레오는, 저 빨간 공을 갖고 싶어요' 하고 말해야 하지")은 레오에게 두 가지 중대한 변화를 가져옵니다. 첫째, 그는 '나'와 '공'이 분리되어 있음을, 즉 자신과 대상이 더 이상 융합된 하나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둘째,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어라는 매개를 거쳐야 함을 배웁니다.


이것이 바로 상징계가 주체에게 가하는 '거세(castration)'의 본질입니다. 여기서 거세란 실제 신체적 거세가 아니라, 상상계적 전능감과 즉각적 충족의 상실을 의미하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레오는 이제 "엄마, 빵 주세요"라고 말해야만 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요구의 언어를 발화하는 순간, 그는 "아, 지금 나에게 빵이 없구나"라는 결핍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상상계의 충만함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영원히 메워지지 않을 구멍이 생깁니다.


라캉에게 욕망(desire)은 바로 이 구멍에서 탄생합니다. 욕망은 생물학적 욕구(need)도, 언어화된 요구(demand)도 아닙니다. 아이가 엄마에게 빵을 요구할 때, 그 요구의 이면에는 빵 너머의 것, 즉 상실된 상상계적 합일과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갈망이 숨어 있습니다. 빵으로 욕구는 채워질 수 있지만, 이 근원적인 갈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욕구와 요구 사이의 이 간극이야말로 인간 욕망이 영원히 미끄러지며 다른 대상을 찾아 헤매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상징계로의 진입은 레오에게 사회적 관계(다른 친구들과의 소통과 놀이)를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안겨주었습니다. 그가 연못으로 돌아갔을 때, "말과 약속들이 레오와 연못 속 레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든 것 같았다"는 묘사는 상징계에 의해 분열된 주체의 상태를 정확히 보여줍니다. 그는 이제 완벽한 이미지의 자아(ego)가 아니라, 언어 속에서 소외되고 결핍을 짊어진 주체가 된 것입니다.


레오의 여정은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골짜기'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가장 소중한 보물인 '별 모양 딸랑이'를 이 안개 낀 골짜기에 떨어뜨리는 사건은 레오에게 충격적인 경험을 안겨줍니다. 이 골짜기는 라캉의 세 번째 질서이자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인 실재계(The Real)의 알레고리입니다. 실재계는 상상계의 이미지나 상징계의 언어로 결코 포착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것은 상징화 이전의 원초적 실재이자, 언어의 그물망에서 빠져나가는 것, 그리고 주체가 감당할 수 없는 트라우마의 핵입니다.


레오가 딸랑이를 잃어버린 후 느끼는 감정은 실재계의 특성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그는 이 상실감을 "숲의 말로는 그곳을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고 느낍니다. '슬프다', '무섭다'와 같은 상징계의 언어는 "심장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린 듯한 충격적인 느낌"을 담아내기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는 실재계가 언어적 표현을 거부하는 영역임을 시사합니다. 골짜기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묘사되는 것 또한, 그것이 우리의 감각과 인식을 초월해 있음을 암시합니다.


잃어버린 '별 모양 딸랑이'는 라캉 이론에서 욕망의 원인이자 대상으로 기능하는 대상 a(objet petit a)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대상 a는 실제로 존재했던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상징계로 진입하면서 상상계적 충만함의 일부를 '상실했다'고 구성해낸 환상적 대상입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젖가슴, 배설물, 시선, 목소리 등 신체의 일부에서 떨어져 나간 조각들로 나타납니다. 이 대상 a는 실재계의 일부가 상징계 안에 남긴 흔적과도 같습니다. 레오에게 딸랑이는 바로 그 상실된 낙원, 즉 완전한 만족을 약속했던 대상의 구체화된 형태입니다.


중요한 것은 대상 a가 결코 되찾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것의 기능은 되찾아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남긴 '구멍' 혹은 '텅 빈 공간'을 통해 주체의 욕망을 영원히 추동하는 데 있습니다. 부보 아저씨의 마지막 설명은 이 점을 명확히 합니다. "그걸 잃어버려서 생긴 그 텅 빈 마음 때문에, 너는 앞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게 될 거야...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자라나는 방법이란다." 이 말은 라캉의 욕망 이론의 핵심을 관통합니다. 인간은 잃어버린 대상 a를 대체할 무언가를 찾아 평생을 헤매지만, 그 어떤 대상도 근원적인 구멍을 완전히 메울 수는 없습니다. 이 끊임없는 미끄러짐과 대체(환유, metonymy)의 과정이야말로 인간 욕망의 본질적인 운동 방식이며, 동시에 문화, 예술, 학문 등 인간 활동의 근원적인 동력이 됩니다.


'레오와 세 가지 세상의 비밀'은 한 아이의 성장담을 넘어, 인간 주체가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라는 세 가지 질서의 교차점에서 어떻게 탄생하고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한 편의 정교한 철학적 우화입니다. 레오의 여정은 우리에게 이 세 질서가 단순히 순차적으로 거쳐가는 단계가 아님을 일깨워줍니다. 라캉이 후기에 제시한 보로메오 매듭(Borromean Knot : 세 개의 고리가 서로 맞물려 있는 특별한 형태의 매듭)의 비유처럼,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는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으며, 어느 하나가 풀리면 나머지 모두가 해체되는 구조로 주체를 형성합니다.


레오는 마지막에 "자신은 이 세 가지 세상 모두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는 여전히 '나만의 반짝이는 연못'으로 돌아가 상상계적 자아와 관계를 맺고, '약속의 속삭이는 숲'이라는 상징계의 질서 속에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며, 마음 한구석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골짜기'라는 실재계의 흔적, 즉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안고 살아갑니다.


결국 레오의 이야기는 라캉이 진단한 인간 조건의 본질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인간이란 자신의 이미지(상상계)와 언어(상징계)에 의해 소외되고,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실재계의 상실로 인해 영원히 분열된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 비극적으로 보이는 조건 속에서 역설적으로 삶의 동력이 솟아납니다. 채워지지 않는 결핍은 우리를 끊임없이 무언가를 욕망하고, 창조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엔진이 됩니다.


동화 속 레오가 그러했듯, 우리 모두는 각자의 연못과 숲, 그리고 골짜기를 품고 살아가는, 끝나지 않는 모험 속의 주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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