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용남이의 마음 속 주머니에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 반듯한 플라스틱 자가 늘 들어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길이를 재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용남이가 세상을 보는 창이자,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엄격한 심판관이었습니다. 용남이는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세상 모든 것을 자로 재고 비교해야만 마음이 놓이는 아이였습니다.
“어제는 8시 1분에 일어났으니까, 오늘은 7시 59분에 일어나야 해. 2분이나 빨라졌군.”
“준호는 줄넘기를 50개나 했는데, 나는 48개밖에 못 했잖아. 내일은 꼭 51개를 넘기고 말겠어.”
이런 생각들은 용남이의 머릿속을 맴도는 벌떼처럼 윙윙거렸습니다. 하루하루는 어제보다 나아야만 하는 숙제의 연속이었고, 놀이터는 즐거운 공간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경기장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용남이의 자를 더욱 바쁘게 만드는 두 친구, 준호와 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준호는 바람처럼 빠른 아이였습니다. 미끄럼틀을 1초라도 더 빨리 내려오고, 놀이터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는 것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준호에게 세상은 오직 ‘더 빨리’라는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경주로 같았습니다. 그의 이마에는 늘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고, 숨 가쁜 목소리에는 승자의 자부심이 가득했습니다.
나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척척박사’였습니다. 내 마음 속의 자는 지식의 양을 재는 보이지 않는 자였습니다. 어제보다 책을 한 페이지라도 더 읽어야 했고, 친구들이 모르는 어려운 단어를 하나라도 더 알아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그건 말이야…”라고 운을 떼며 새로운 지식을 설명할 때, 나의 눈은 반짝였지만 그 빛에는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으려는 날카로운 긴장감이 서려 있었습니다.
용남이는 우리 두 친구 사이에서 늘 불안했습니다. 준호처럼 빠르지도, 나처럼 똑똑하지도 않다는 생각이 용남이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그래서 용남이는 놀이터 한 쪽에 모래성을 쌓는 일에 집착했습니다. 누구보다 더 높고, 더 정교한 성을 쌓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용남이의 모래성은 날마다 높아졌지만, 그럴수록 성벽 아래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용남이의 마음속 그늘도 짙어만 갔습니다. 성이 무너질까 봐 노심초사했고, 친구들의 칭찬 한마디에 안도와 불안을 오가는 시소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가을날, 아이들의 팽팽한 경쟁심은 결국 터져버릴 듯한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습니다. 준호가 숨을 몰아쉬며 선언했습니다.
“오늘, 우리 놀이터에서 ‘최고 어린이 선발 대회’를 여는 거야! 달리기, 모래성 쌓기, 그네 높이 타기! 뭐든지 일등만 기억하는 거다!”
그 말은 아이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습니다. 용남이는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최고’라는 단어가 달콤한 꿀처럼 유혹하는 동시에, 날카로운 가시처럼 마음을 찔러왔습니다. 여기서 진다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대회는 시작부터 살얼음판을 걷는 듯 위태로웠습니다. 준호는 코너를 돌다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져 무릎에 시뻘건 피가 흘렀습니다. 하지만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기록이 뒤처졌다는 생각에 얼굴을 찡그리며 절뚝거리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네를 최대한 높이 타기 위해 온몸을 비틀었습니다. 하늘에 닿을 듯 솟아오른 그네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아찔했지만, 그보다 ‘내가 가장 높다’는 생각에 취해 있었습니다.
문제는 용남이의 차례에서 터졌습니다. 용남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모래성을 쌓고 있었습니다. 뾰족한 첨탑과 단단한 성벽, 성을 둘러싼 해자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작품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그네에서 뛰어내린 내가 그만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다 용남이의 성 위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와르르!
용남이의 자부심과 희망이 한순간에 모래더미로 변해버렸습니다.
“야! 너 때문에 다 망쳤잖아!”
용남이는 눈물이 핑 돌며 나에게 소리쳤습니다. 나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습니다.
“내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거든? 네가 여기다가 이런 걸 만들어 놓은 게 잘못이지!”
아이들의 날 선 목소리가 놀이터에 울려 퍼졌습니다. 자랑스러운 기록도, 완벽한 모래성도, 하늘 높이 솟았던 자부심도 모두 상처와 원망으로 얼룩졌습니다.
즐거웠던 놀이터는 어느새 패배의 쓴맛과 갈등의 먼지만이 자욱한 잿빛 전쟁터가 되어버렸습니다. 용남이는 무너진 모래성 앞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습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만들기 위해 애썼는데, 결국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마음속 한구석에서 또다른 자신이 ‘너는 실패자야’라고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늘 벤치에 앉아 인자한 미소로 아이들을 지켜보던 하얀 머리의 할아버지 한 분이 조용히 다가왔습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백발 할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꾸짖지 않았습니다. 그저 상처 난 준호의 무릎을 닦아주고, 속상해하는 나의 등을 토닥여주고, 눈물범벅이 된 용남이의 어깨를 감싸 안았습니다.
“열심히 한 만큼 속상한 마음도 크겠지. 너희의 자는 참으로 곧고 훌륭하구나. 하지만 말이다, 그 자로는 잴 수 없는 것도 세상엔 참 많단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이끌고 놀이터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멈춰 있던 낡은 회전목마로 갔습니다.
“이 회전목마를 보거라. 이 친구는 앞으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는단다. 그저 빙글빙글, 떠났던 자리로 다시 돌아올 뿐이지. 하지만 너희는 이 회전목마를 탈 때면 늘 행복한 웃음을 짓지 않았니? 옆 친구에게 손을 흔들며 말이야.”
용남이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회전목마를 탈 때는 한 번도 자를 꺼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누가 더 빠른지, 누가 더 높은지 잴 필요 없이, 그저 함께 빙글빙글 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너희들의 삶은 길쭉한 자처럼 앞으로만 재촉하며 달려가는 경주가 아니란다. 때로는 이 동그란 회전목마 같아야 해. 봄이 가면 뜨거운 여름이 오고, 또 서늘한 가을과 추운 겨울이 지나면 어김없이 따스한 봄이 다시 찾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매년 똑같은 날에 찾아오는 생일에 촛불을 불고, 주말이면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비슷한 반찬으로 저녁을 먹는 것처럼, 우리 삶에는 즐겁게 반복되는 동그란 시간들이 있단다. 그 동그란 시간 속에서 우리는 안심하고,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준단다.”
할아버지는 엉망이 된 꽃밭을 가리켰습니다.
“앞으로만, 위로만 오르려고 하니 내 발밑에 상처 입는 예쁜 꽃들을 보지 못하는 거란다. 넘어진 친구의 아픔도, 내 마음이 지쳐가는 소리도 듣지 못하게 되지. 가끔은 경주를 멈추고 서로의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주고, 내년에 더 예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함께 물을 주는 동그란 마음이 필요한 법이란다.”
할아버지의 말씀은 용남이의 마음속을 가득 채웠던 벌떼 소리를 잠재우는 잔잔한 음악 같았습니다. 용남이는 깨달았습니다. 매일매일 더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이 자신과 친구들을 얼마나 아프게 찔러왔는지를. 친구를 이기는 기쁨보다, 함께 웃는 즐거움이 얼마나 더 크고 따뜻한지를 말입니다.
길쭉한 자가 주는 성취감은 늘 불안이라는 그림자를 달고 다녔지만, 할아버지가 말한 동그란 시간은 넉넉하고 편안한 품 같았습니다.
며칠 뒤, 놀이터의 풍경은 놀랍게 변해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더 이상 각자의 기록에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모두 모래사장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용남이가 튼튼한 성의 기초를 닦자, 준호는 자신의 빠른 발을 이용해 놀이터 곳곳에 흩어진 예쁜 조약돌과 나뭇가지들을 순식간에 모아 왔습니다. 늘 책만 보던 나는 역사책에서 본 멋진 성의 구조를 떠올리며 외쳤습니다.
“여기에 강이 흐르게 하고, 저쪽엔 망루를 세우자! 그럼 더 멋질 거야!”
용남이는 성을 쌓고, 준호는 재료를 나르고, 나는 설계를 맡았습니다. 저마다의 길쭉한 마음 속의 자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아름다운 협동을 이루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아이들의 놀이는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용남이는 여전히 멋진 모래성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성이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괜찮아, 내일 친구들과 더 재미있는 모양으로 다시 만들면 되지’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준호는 여전히 빨리 달렸지만, 이제는 달리다가 넘어진 친구가 있으면 경주를 멈추고 달려가 손을 내밀어주었습니다. 나는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구절이 나오면, 혼자 알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친구들에게 큰 소리로 읽어주며 함께 웃었습니다.
길쭉한 자와 함께 동그란 시계도 마음에 품게 된 것입니다. 길쭉한 자는 더 나은 내일을 꿈꾸게 했고, 동그란 시계는 오늘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용남이의 주머니 속 자는 더 이상 불안의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성장을 위한 즐거운 도구가 되었고, 그 옆에는 언제나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돌아가는 따뜻한 회전목마가 있었습니다.
놀이터에는 비로소 경쟁의 숨소리가 아닌, 조화로운 웃음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습니다.
우리의 삶은 시간을 담는 그릇과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은 모양의 그릇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는 길고 뾰족한 화살 같은 그릇에, 다른 이는 둥글고 넉넉한 항아리 같은 그릇에 시간을 담습니다. 『길쭉한 자와 동그란 시계』 속 놀이터는 바로 이 두 가지 시간의 그릇, 즉 직선적 시간관과 순환적 시간관이 어떻게 우리 삶을 빚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우주라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첫머리에서 용남이와 준호, 동화 속 화자가 살아가는 세계는 직선적 시간관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이 시간관의 상징은 바로 용남이의 주머니 속에 늘 들어있는 ‘길쭉한 자’입니다. 이 세계에서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 화살처럼 인식됩니다. 어제는 오늘의 발판일 뿐이며, 오늘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희생되어야 할 과정입니다. 준호가 어제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하고, 용남이가 더 높은 모래성을 쌓아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가치는 ‘진보’와 ‘성장’이라는 단 하나의 방향으로만 측정되기에, 길쭉한 자는 끊임없이 비교하고 평가하는 도구가 됩니다. ‘누가 더 앞서 있는가?’, ‘나는 뒤처지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이 아이들의 마음을 지배하며, 모두가 잠재적인 경쟁자가 됩니다. ‘최고 어린이 선발 대회’는 이러한 직선적 시간관이 낳은 필연적인 갈등의 장이며, 결국 이 경쟁은 우정의 파괴와 상처, 그리고 공들여 쌓은 모든 것이 무너지는 허무함으로 귀결됩니다. 과정의 즐거움보다 최종 결과의 성공이 중요하기에, 용남이가 모래성을 쌓으며 느꼈을 즐거움은 ‘최고의 성’이라는 결과 앞에서 무의미해지고, 성이 무너졌을 때 남는 것은 과정의 추억이 아닌 실패의 고통뿐입니다.
아이들의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백발 할아버지가 제시하는 ‘회전목마’는 순환적 시간관이라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엽니다. 이는 마음속 ‘동그란 시계’의 발견과도 같습니다. 회전목마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즐거운 음악과 함께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올 뿐입니다. 이는 시간이 진보의 압박이 아니라, 안정적인 반복과 리듬을 통해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는 사실을 상징합니다. 할아버지가 예로 든 계절의 변화, 매년 돌아오는 생일과 명절처럼, 순환의 시간은 예측 가능한 질서 속에서 우리에게 안도감을 줍니다. 동그란 시계 위에서는 경쟁이 무의미하기에, 회전목마를 타면서 누가 더 빠른지 재는 아이는 없습니다. 그곳에는 오직 함께 웃고 손 흔드는 관계의 즐거움만이 존재합니다. 이 시간관은 ‘나’의 성취보다 ‘우리’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며,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주고 망가진 꽃밭을 함께 가꾸는 치유의 힘을 발휘합니다. 순환의 시간 속에서는 결과보다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이 중요하기에, 아이들은 함께 협력하는 과정 자체에서 기쁨을 찾습니다.
이 동화의 진정한 지혜는 어느 한쪽의 시간관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길쭉한 자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동그란 시계의 지혜 안에서 길쭉한 자를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데 있습니다. 변화된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각자의 재능, 즉 직선적 능력을 이용해 함께라는 더 큰 가치, 즉 순환적 조화를 만들어냅니다.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장을 향한 열망과 목표 의식은 우리를 발전시키지만, 그것이 전부가 될 때 삶은 황폐해집니다. 가족과의 저녁 식사,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산책, 친구와의 의미 없는 농담처럼 삶의 곳곳에 숨어있는 동그란 시간의 가치를 발견할 때, 우리의 영혼은 비로소 균형을 찾고 시간의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