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가 새겨진 모자
준서는 홀로 미끄럼틀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놀이터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지만, 그 소리는 마치 두꺼운 유리 벽에 막힌 것처럼 준서의 귀에 닿지 않았습니다. 준서의 눈은 오직 한 곳, 축구 골대 앞에 모여 있는 아이들에게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바로 ‘스타더스트’ 무리였습니다.
스타더스트는 별똥별이라는 뜻이에요. 그 아이들은 모두 똑같은 파란색 캡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모자 한가운데에는 은색 실로 꼼꼼하게 수놓인 반짝이는 별 로고가 박혀 있었죠. 저 모자를 쓴 아이들은 언제나 함께였습니다. 어깨를 부딪치며 웃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고, 서로의 귓가에 비밀 이야기를 속삭였습니다. 마치 반짝이는 별 로고가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암호라도 되는 것처럼요.
준서는 스타더스트 무리에 너무나도 끼고 싶었습니다. 저 파란 모자만 있다면, 저 아이들의 웃음소리 안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모자가 마치 행복한 세계로 들어가는 마법 열쇠처럼 보였습니다.
그날 저녁, 준서는 식탁에 앉아 밥을 깨작거리며 엄마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용기를 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엄마, 저… 파란색 별 모자….”
설거지를 하던 엄마가 돌아보았습니다. 엄마의 얼굴엔 희미한 피곤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응? 아, 요즘 아이들이 많이 쓰고 다니는 거 말이구나.”
“나도 그거… 사 주면 안 돼요? 하나도 안 비싸대요.”
엄마는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 그 침묵이 준서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엄마는 젖은 손을 닦고 다가와 준서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우리 준서, 그 모자가 정말 갖고 싶구나. 그런데 어떡하지? 다음 달에 할머니 생신이라 선물을 사야 해서 지금은 조금 힘든데. 엄마가 나중에 꼭 사줄게. 미안해, 아들.”
준서는 “괜찮아요”라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마음은 전혀 괜찮지 않았습니다. 방으로 돌아온 준서는 책상 서랍 가장 깊숙한 곳에서 작년에 쓰던 낡은 회색 모자를 꺼냈습니다. 준서는 결심했습니다.
‘그래, 없으면 만들면 되지. 내일, 나도 꼭 파란 모자를 쓰고 놀이터에 갈 거야.’
다음 날 새벽, 준서는 모두가 잠든 사이 살금살금 일어났습니다. 준서는 파란색 물감과 붓, 그리고 아껴두었던 반짝이 풀을 꺼냈습니다. 회색 모자를 파란색으로 꼼꼼히 칠했습니다. 햇볕에 모자를 말리는 동안, 하얀 종이에 별을 수십 개나 그렸습니다. 스타더스트 로고와 똑같이 그리려고 숨을 참아가며 몇 번이나 고쳐 그렸습니다. 가장 잘 그린 별을 오려내고 반짝이 풀을 듬뿍 발랐습니다.
마침내 준서만의 ‘스타더스트’ 모자가 완성되었습니다. 파란색은 조금 얼룩덜룩했고, 종이 별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준서는 무척 기뻤습니다. 이제 나도 스타더스트야. 진짜 별보다 더 반짝이는 것 같아!
준서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모자를 쓰고 놀이터로 향했습니다. 심장이 발소리에 맞춰 쿵, 쿵, 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 멀리 스타더스트 아이들이 보였습니다. 그 무리의 대장인 민준이가 준서를 발견했습니다.
“어? 너도 스타더스트 모자 샀네?”
준서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드디어 나를 알아봐 주는구나! 준서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아이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가까이 다가온 준서의 모자를 본 민준이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배를 잡고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얘들아, 이것 좀 봐! 이 모자 가짜야! 종이 별이 붙어 있어!”
민준이의 외침에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준서의 머리로 꽂혔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준서의 모자를 손가락질하며 웃기 시작했습니다.
“색깔도 이상해. 막 얼룩덜룩해.”
“와, 별 모양도 삐뚤빼뚤하잖아! 유치원 동생이 그려도 이것보단 잘 그리겠다!”
준서의 얼굴이 불타는 것처럼 뜨거워졌습니다. 온몸의 피가 얼굴로 다 쏠리는 것 같았습니다. 준서는 모자를 벗어 품에 공처럼 구겨 넣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놀이터를 뛰쳐나왔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등 뒤에서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습니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창피하고 분해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무작정 달리던 준서는 낯선 골목 끝에 멈춰 섰습니다. 그곳에는 ‘햇살 수선집’이라는 낡고 작은 가게가 있었습니다. 가게 안에는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한 분이 돋보기를 낀 채 낡은 구두를 정성껏 닦고 있었습니다.
준서는 가게 앞 작은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소리 죽여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때, 끼익 소리를 내며 가게 문이 열리고 할아버지가 나왔습니다.
“아가, 여기서 뭘 하고 있니?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이구나.”
준서는 구겨진 모자를 보여주며 끝내 엉엉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것 때문에… 애들이 저를 비웃었어요. 가짜라고… 바보 같다고….”
할아버지는 말없이 준서의 손에서 모자를 건네받았습니다. 그리고는 돋보기를 쓰고 모자를 아주 유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준서는 할아버지도 자기를 비웃을까 봐 조마조마했습니다.
한참 뒤,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음, 이 별은 참 특별한 별이구나.”
“네? 가짜인데요….”
“아니. 할애비가 보기엔 진짜보다 더 반짝이는 것 같은데. 이건 네 마음이 담겨서 그래. 이렇게 정성껏 만든 별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잖니.”
할아버지는 준서의 눈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얘야, 중요한 건 모자에 박힌 로고가 아니란다. 중요한 건 그 모자를 쓰고 누구와 함께 웃고 떠드느냐지. 진짜 친구는 말이다, 네가 어떤 모자를 썼는지보다 네가 오늘 기분이 어떤지를 먼저 물어봐 주는 사람이란다.”
할아버지의 말에 준서의 울음이 조금씩 잦아들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니, 실과 바늘, 그리고 예쁜 색깔의 천 조각들이 가득 담긴 상자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자, 이왕 만든 거, 세상에서 가장 멋진 모자로 만들어 볼까? 네가 직접 말이야.”
그날 오후, 준서는 햇살 수선집 앞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모자를 꾸몄습니다. 삐뚤빼뚤한 종이 별 옆에, 노란색 천으로 만든 작은 해님을 꿰매어 달았습니다. 초록색 실로는 작은 새싹을 수놓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서툰 준서의 손을 잡아주며 바느질하는 법을 차근차근 알려주었습니다.
모자는 더 이상 스타더스트 짭퉁 모자가 아니었습니다. 해님과 새싹, 그리고 준서의 마음이 담긴 별이 함께 있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준서 모자’가 되었습니다.
다음 날, 준서는 그 모자를 쓰고 다시 놀이터로 갔습니다. 일부러 스타더스트 아이들 근처로는 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텅 빈 모래밭에 앉아 혼자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여자아이 하나가 준서에게 다가왔습니다. 어제 준서를 보고 웃지 않았던 아이, 혜림이었습니다.
“안녕? 네 모자, 정말 예쁘다. 어제랑 다르네?”
준서는 조금 놀랐지만, 이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응. 내가 직접 만든 거야.”
“정말? 해님이랑 새싹, 너무 귀엽다. 이 별도 네가 만든 거야?”
“응. 햇살 수선집 할아버지랑 같이 만들었어.”
준서와 혜림이는 나란히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제처럼 외롭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스타더스트 무리에서 빠져나온 다른 아이 한 명도 슬그머니 다가와 준서의 모자를 구경했습니다.
그 모습을 민준이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민준이의 파란 모자는 오늘도 반짝였지만, 어쩐지 민준이의 표정은 즐거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준서의 알록달록한 모자에 더 큰 관심을 보였으니까요. 그 모자에는 진짜 이야기와 진짜 정성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준이는 괜히 심술이 났습니다.
“흥, 저런 너덜너덜한 모자가 뭐가 좋다고.”
하지만 민준이의 눈은 자꾸만 준서 쪽으로 향했습니다.
며칠 뒤, 놀이터에서는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아이들은 더 이상 똑같은 파란 모자를 쓰고 몰려다니지 않았습니다. 어떤 아이는 자신의 낡은 모자에 빨간 단추를 달았고, 어떤 아이는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 그림을 그려 붙였습니다. 모두들 햇살 수선집 할아버지에게 배운 솜씨였습니다.
놀이터는 이제 반짝이는 별 로고 하나가 아니라, 제각기 다른 모양의 해님과 구름과 꽃들로 가득 찼습니다. 아이들은 서로의 모자를 구경하며 칭찬해주고, 만드는 법을 알려주며 깔깔 웃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준서가 친구들과 신나게 흙장난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민준이가 혼자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습니다. 스타더스트 모자는 여전히 쓰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혼자인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때, 준서가 민준이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민준이는 움찔하며 준서를 쳐다봤습니다.
준서가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민준아, 같이 놀래?”
민준이는 놀란 듯 눈만 껌뻑였습니다. 며칠 전 자기가 ‘가짜’라고 놀렸는데, 같이 놀자고 하다니.
“…….”
민준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손에는 자신의 파란 스타더스트 모자를 꼭 쥐고 있었습니다.
“저기… 준서야.”
“응, 민준아.”
“나… 나도 가르쳐 줄 수 있어? 내 모자에… 구름을 하나 달고 싶은데.”
민준이는 조금 부끄러운 듯 말했습니다. 준서는 활짝 웃었습니다. 며칠 전의 서운함이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민준이의 손을 잡고 햇살 수선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럼! 같이 가자. 할아버지가 하늘색 천 조각을 가지고 계실 거야.”
아이들은 더 이상 로고로 편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파란 모자를 썼든, 알록달록한 모자를 썼든, 아무것도 쓰지 않았든 모두가 소중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깨달았습니다. 진짜 우리를 반짝이게 하는 건 머리 위의 로고가 아니라, 서로를 향해 먼저 내밀어 주는 손과 따뜻한 마음이라는 것을요.
그날 놀이터의 하늘 위로, 파란 모자와 알록달록한 모자를 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이좋게 어우러져 울려 퍼졌습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다채로운 별똥별들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