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몸속 우주 여행

by 이호창

소년의 몸속 우주 여행


작은 마을의 아담한 집, 창가에 기대앉는 것을 좋아하는 소년이 살았어요. 소년의 이름은 별솔, 이제 막 열 살이 되었답니다. 별솔이는 아침마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나지막이 물었어요.


"나는 왜 세상에 태어났을까? 왜 이렇게 작은 아이일까?"


별솔이의 몸은 아직 조그맣고 여렸지만, 그 마음속에는 밤하늘의 뭇별처럼 호기심이 총총히 박혀 있었지요.


어느 날 밤이었어요. 별솔이는 낮에 동무와 크게 다툰 일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속상한 마음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지요. 바로 그 깊은 잠의 바다를 헤엄치던 때, 별솔이의 몸 안에서 아주 신비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별솔이의 팔꿈치를 덮고 있던 아주 작은 생명 알갱이 하나가 번쩍, 하고 눈을 뜬 거예요. 그리고는 속삭였죠.


"나는 빛알이라고 해. 늘 너의 몸을 감싸고 지켜주는 문지기지. 하지만 오늘 밤만은 아니야. 나는 아주 놀라운 여행을 떠날 거야."


'빛알'은 살갗을 이루는 생명 알갱이였습니다. 빛알은 별솔이의 몸을 만드는 수억만 개의 작은 생명들 중 하나로, 여태껏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며 별솔이의 몸을 보듬는 일만 해왔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잠든 별솔이의 슬픈 마음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똑똑히 느꼈어요. 별솔이의 슬픔은 차가운 안개처럼 몸속을 떠다녔고, 그 차가운 기운이 닿는 곳마다 다른 생명 알갱이들이 힘없이 움츠러드는 것이 보였죠. 그 순간, 빛알은 아주 신비로운 그림을 보았습니다.


별솔이의 몸이 끝도 없이 넓은 밤하늘처럼 펼쳐지고, 그 안에 사는 모든 생명 알갱이들이 은하수처럼 반짝이며 서로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었어요.


"우리는 모두 하나야. 너의 아픔은 나의 아픔, 너의 기쁨은 곧 나의 기쁨이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따뜻한 목소리가 빛알의 마음을 부드럽게 흔들었습니다. 빛알은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아, 별솔이가 슬프면 우리 모두가 아픈 거구나. 그렇다면 내가 이 슬픔의 이유를 찾아내고,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비밀을 알려줘야겠어.’ 빛알은 굳게 마음먹고 길을 떠났습니다.


빛알은 자신의 자리에서 똑, 떨어져 나와 붉은 물결이 넘실대는 따뜻한 강물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 강은 별솔이의 온몸 구석구석으로 생명의 기운을 실어 나르는 '핏줄 강'이었어요. 강물을 따라 여행하던 빛알은 얼마 가지 않아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에 다다랐습니다. "쿵, 쿵, 쿵, 쿵!" 세상을 뒤흔들 듯 크고 규칙적인 소리였지요. 그곳에서 빛알은 힘차게 움직이는 '두근이'들을 만났습니다. 두근이들은 바로 심장을 이루는 생명 알갱이들이었어요.


가장 힘세 보이는 두근이 하나가 빛알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안녕, 작은 친구. 나는 두근이야. 매일 같이 이 붉은 강물을 온몸으로 보내주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지. 내가 뛰는 이 박자는 우리 몸 전체의 생명이 담긴 약속이야. 내가 잠시라도 멈추면 모두가 기운을 잃고 시들어버려. 그래서 나는 단 한숨도 쉬지 않고 춤을 춘단다."


빛알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습니다.


"정말 대단하다! 그럼… 별솔이가 슬퍼서 울면, 너도 슬프니?"


두근이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습니다.


"물론이지.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진 한 가족인걸. 예를 들어 네가 있는 살갗이 뾰족한 곳에 긁히면, 그 아픔의 신호가 핏줄 강을 타고 순식간에 내게로 와. 그럼 나는 깜짝 놀라 더 빨리 뛰며 모두에게 '조심해!' 하고 외치는 거란다. 마찬가지로, 별솔이의 슬픔이 차가운 안개가 되어 퍼지면 내 마음도 시큰거리고, 온몸에 무거운 기운이 퍼지니 나도 뛰는 힘이 약해진단다."


두근이의 말을 들은 빛알의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몸의 모든 부분이 서로의 감정과 상태를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어요. 빛알은 두근이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하고 핏줄 강을 따라 더 깊은 곳으로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다음으로 빛알이 도착한 곳은 알록달록한 보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신비로운 곳이었어요. 그곳은 바로 '간'이었죠. 그곳에 사는 생명 알갱이 '초롱이'들은 몸에 필요한 좋은 기운들을 예쁜 보석으로 만들어 차곡차곡 쌓아두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초롱이 하나가 반짝이는 노란 보석을 닦으며 말했어요.


"나는 초롱이야. 우리 몸의 기운을 저장하고, 나쁜 것들이 들어오면 마치 시냇가의 조약돌을 걸러내듯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샘물지기란다. 내가 만약 욕심을 부려 나쁜 기운을 '이건 내 일이 아니야'하며 다른 친구들에게 그냥 보내면 어떻게 될까? 그건 우리 몸의 규칙을 어기는 일이야. 나쁜 기운은 결국 돌고 돌아 다른 곳을 아프게 하고, 결국 나에게 다시 와서 우리 모두를 병들게 만들지."


빛알은 점점 더 놀라운 비밀을 알아가며 여행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수만 개의 별똥별이 끝없이 오가는 눈부신 곳에 다다랐습니다. 바로 별솔이의 생각을 만드는 '뇌'였어요. 그곳의 생명 알갱이 '반짝이'들은 은하수처럼 모여 앉아 생각의 실을 잣고 있었습니다. 반짝이 하나가 빛알을 따뜻하게 맞이해주었습니다.


"어서 오렴, 빛알아. 우리는 생각의 빛을 만드는 반짝이란다. 너의 몸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세상인지 알고 있니? 사람의 몸은 말이야, 저 넓은 하늘과 단단한 땅이 하나로 만나는 아주 귀한 곳이란다."


빛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습니다.


"하늘과 땅이 만난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반짝이가 부드럽게 속삭였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끝없는 생각과 꿈이 바로 '하늘'이고, 너처럼 우리를 단단하게 받쳐주는 몸이 바로 '땅'이야. 별솔이와 같은 사람은 그 하늘의 꿈을 땅 위에서 펼쳐내는 소중한 다리와 같단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 작은 우주를 품고 살아가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빛알은 자신이 그저 작은 살갗 알갱이가 아니라, 이 위대한 우주의 비밀을 품은 소중한 존재의 한 조각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즐거운 여행도 잠시, 갑자기 핏줄 강이 검붉게 변하며 차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선가 날카로운 가시를 잔뜩 돋운 무서운 생명 알갱이가 나타났습니다. 그 알갱이는 바로 별솔이가 낮에 친구와 다투며 품었던 '미워하는 마음'과 '상처 주고 싶은 생각'이 똘똘 뭉쳐서 태어난 '가시 알갱이'였습니다.


"나는 모든 게 싫어! 다치게 할 거야!"


가시 알갱이는 소리를 지르며 주변의 다른 알갱이들을 뾰족한 가시로 콕콕 찔렀습니다. 찔린 알갱이들은 아파하며 움츠러들었고, 그 아픔은 순식간에 핏줄 강을 타고 퍼져나갔습니다. 몸 전체가 비상에 걸린 것이죠. 두근이들의 심장 소리가 불안하게 빨라졌고, 초롱이들이 쌓아둔 예쁜 보석들도 빛을 잃기 시작했어요.


빛알은 너무나 무서웠지만,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대신 용기를 내어 가시 알갱이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두근이와 반짝이가 들려준 몸속 세상의 규칙을 똑똑히 떠올렸습니다.


"네가 다른 친구를 아프게 하면, 그 아픔은 강물을 타고 흘러 결국 너에게도 돌아갈 거야. 봐, 네가 뿜어내는 차가운 기운 때문에 강물 전체가 차가워지고 있잖아. 결국 너도 그 차가움에 떨게 될 거야. 우리는 모두 하나로 이어져 있으니까."


가시 알갱이는 빛알의 말에 잠시 멈칫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 듯 더 사납게 소리쳤습니다.


"시끄러워! 내가 아픈 걸 너희가 어떻게 알아!"


그 순간이었습니다. 빛알은 가만히 가시 알갱이를 바라보았습니다. 날카로운 가시들 너머로 혼자 외롭게 덜덜 떨고 있는 작은 모습이 보였습니다. 빛알은 가시 알갱이가 왜 저렇게 화가 났는지 알 것 같았어요. 미워서가 아니라, 혼자 너무 아파서 그랬던 것입니다. 빛알은 미움 대신 따뜻한 마음을 담아 말했습니다.


"그렇구나. 너도… 아팠구나. 미안해. 우리가 너의 아픈 마음을 먼저 알아주지 못해서."


빛알의 진심 어린 한마디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가시 알갱이의 뾰족하던 가시들이 마치 봄눈 녹듯이 하나둘씩 녹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의 다른 생명 알갱이들도 빛알의 마음을 느꼈는지, 하나둘씩 다가와 가시 알갱이를 부드럽게 감싸주었습니다. 두근이들은 따뜻한 사랑의 박자를 보내주었고, 초롱이들은 맑은 기운을 보내주었으며, 반짝이들은 "괜찮아, 이젠 우리가 함께 있어."라는 위로의 생각을 보내주었습니다.


모두의 따뜻한 마음속에서 가시 알갱이의 날카로운 가시는 모두 녹아내렸고, 그 자리에는 상처 입고 울고 있는 작은 '슬픔 알갱이'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제야 모두가 깨달았습니다. 미움은 사실 아픔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것을요.


모든 생명 알갱이들은 이제 슬픔 알갱이의 손을 잡고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근육을 이루는 '으쓱이' 알갱이들이 튼튼한 힘으로 받쳐주고, 숨을 쉬게 하는 '숨숨이' 알갱이들이 맑은 바람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네가 아프면 나도 아파. 네가 기쁘면 나도 기뻐."


"우리는 따로가 아니야. 우리는 모두 하나야."


그 노랫소리는 별솔이 몸속의 작은 우주 전체에 울려 퍼졌습니다. 마침내 빛알은 세상을 보는 '눈'을 이루는 '도롱이' 알갱이들이 사는 하늘에 다다랐습니다. 도롱이들은 별처럼 반짝이는 창문을 통해 바깥세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도롱이야. 우리가 함께 기쁨을 볼 때, 그 기쁨은 온 우주를 비추는 빛이 된단다."


빛알은 도롱이가 보여주는 창문을 통해 별솔이의 몸 전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곳은 정말로 수많은 생명들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광대한 우주였습니다.


그때, 별솔이가 스르르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이상하게도 어젯밤 동무를 미워했던 무거운 마음이 눈 녹듯 사라져 있었습니다. 대신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따뜻하고 신비한 떨림이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머리로만 아는 생각이 아니라, 꿈속에서 들었던 생명 알갱이들의 노랫소리가 온몸으로 퍼지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내 몸이 하나의 우주라면… 내가 누군가를 아프게 하면, 결국 그 아픔이 돌고 돌아 나에게 오는 거구나."


그날 아침, 별솔이는 가장 먼저 다투었던 동무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미안해" 하고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동무도 별솔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죠. 별솔이의 작은 친절은 마치 맑은 호수에 던진 조약돌처럼, 동네 전체로 아름다운 물결을 일으키며 퍼져나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별솔이의 몸속에서 시작된 작은 여행에서 끝나지 않아요.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몸 또한, 수억만 개의 생명 알갱이들이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는 눈부신 우주랍니다. 그 작은 생명들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그 신비로운 약속을 마음으로 느껴보세요. 그러면 당신의 하루하루가 온 우주를 울리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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