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여우 반짝이와 말씨 요정

by 이호창

꼬마 여우 반짝이와 말씨 요정



옛날 옛적, 끝없이 펼쳐진 푸른 숲과 보석처럼 반짝이는 햇살이 어우러진 ‘빛나는 숲 마을’에 아주 특별한 꼬마 여우가 살았어요.

꼬마 여우의 이름은 ‘반짝이’였답니다.

이름처럼 반짝이는 눈망울에 맑은 웃음소리를 가졌고, 세상 모든 것에 궁금한 게 참 많은 호기심 대장이었죠.


매일 아침, 반짝이는 창문을 활짝 열고 파란 하늘을 향해 외쳤어요.


“오늘 하늘은 참 예쁘다! 멋진 하루가 될 거야!”


그 한마디면 충분했어요.

그 말은 시원한 바람처럼 반짝이의 마음을 살랑살랑 간지럽혔고,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하는 행복한 주문이 되었지요.


하지만 그런 반짝이에게도 남모를 비밀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어깨에 늘 메고 다니는 작은 주머니 때문이었어요.

사실 빛나는 숲 마을의 모든 아이들은 태어날 때 저마다의 ‘마음 주머니’를 선물 받는답니다.

기쁘고 신나는 생각을 하면 솜사탕처럼 가벼워지고, 따스한 햇살처럼 포근해지는 아주 신기한 주머니였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반짝이의 주머니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걱정 주머니’가 되어버렸거든요.

문제는 반짝이의 사소한 말버릇에 있었어요.

속상한 일이 생겨 “아, 망했어!” 하고 외치거나, 어려운 일을 만나 “난 절대로 못 할 거야.” 하고 고개를 저을 때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차갑고 까만 ‘걱정 조약돌’ 하나가 ‘툭’ 하고 주머니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었어요.


걱정 조약돌이 하나둘 쌓일수록 주머니는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돌멩이 같았지만, 나중에는 커다란 돌덩이라도 든 것처럼 어깨를 묵직하게 짓눌렀죠.

이상하게도 주머니가 무거워지는 날이면, 반짝이의 마음도 함께 축 가라앉았고, 알록달록 예쁜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보이는 것만 같았답니다.


반짝이는 이 무겁고 차가운 주머니를 친구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어요.

다른 친구들의 마음 주머니는 늘 통통 튀는 공처럼 가벼워 보였거든요.

그래서 늘 어깨를 살짝 움츠리고 다녔지요.

그 모습이 어쩐지 슬퍼 보인다는 걸, 반짝이 자신만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맑은 날 아침이었어요.

반짝이는 가장 아끼던,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나뭇가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만 손이 미끄러져 장난감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나뭇가지가 두 동강 나고 말았습니다.


순간, 반짝이의 마음 주머니 속 걱정 조약돌들이 한꺼번에 차갑게 식는 것 같았어요.


“아! 내 소중한 장난감! 완전히 망가졌어! 이제 다 끝났어!”


반짝이가 울먹이며 절망적인 말을 쏟아내는 순간, 정말 이상하고 무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반짝이의 입에서 시커먼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그 속에서 못생긴 꼬마 도깨비 하나가 ‘퐁’ 하고 튀어나왔어요.

삐죽삐죽한 팔다리에, 온통 찡그린 얼굴을 한 도깨비는 반짝이의 무거운 걱정 주머니 위로 펄쩍 뛰어 올라앉으며 퉁명스럽게 말했어요.


“흥! 나는 ‘망가졌어’ 도깨비야. 네가 그렇게 슬픈 말을 할 때마다 내가 나타나지.”


도깨비는 자신의 집인 양 걱정 주머니를 툭툭 치며 말을 이었어요.


“이 주머니, 아주 마음에 들어! 네가 던져 넣은 걱정 조약돌 덕분에 아주 아늑하고 좋다고!”


반짝이는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어요.


“내 주머니에 산다고? 그리고 너는 왜 그렇게 심술궂게 생겼니?”


도깨비는 기다렸다는 듯이 으스대며 대답했죠.


“네가 ‘망했어’, ‘끝났어’ 하고 말하면, 나는 네 마음을 더 무겁고 어둡게 만들어.

그게 내 일이거든.

네가 ‘나는 바보 같아’라고 말하면 ‘바보’ 도깨비가, ‘큰일 났다’라고 하면 ‘큰일’ 도깨비가 나타나서 네 생각을 온통 휘젓고 다닌단다.”


그제야 반짝이는 깨달았어요.

자신의 걱정 주머니가 온갖 말씨 도깨비들의 소굴이 되어버렸다는 것을요.

도깨비들은 반짝이가 힘들어할 때마다 나타나서 더 깊은 슬픔 속으로 밀어 넣었어요.


반짝이가 ‘괜히 그랬나 봐…’ 하고 후회하면, 어느새 나타난 도깨비가 귓가에 얄밉게 속삭였죠.


“맞아, 네 장난감은 이제 영원히 고칠 수 없어. 너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우야!”


그날 밤, 반짝이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워진 걱정 주머니를 꼭 껴안고 잠이 들었어요. 그리고 아주 신비하고 놀라운 꿈을 꾸었답니다.


꿈속에서 반짝이는 무지갯빛 꽃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숲길을 걷고 있었어요.

하지만 반짝이의 걱정 주머니에서 말씨 도깨비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고개를 내밀자, 아름답던 숲이 조금씩 그 빛을 잃고 어두워지기 시작했어요.

바로 그때였어요.

숲길 저편, 가장 큰 나무의 은은한 빛 속에서 따뜻한 미소를 지닌 할아버지 한 분이 나타났습니다.


숲의 모든 지혜를 품고 있는 현자 할아버지였어요.

할아버지는 반짝이의 손을 다정하게 잡으며 물었어요.


“얘야, 네 마음 주머니가 무척 무거워 보이는구나.

그 안에 든 시끄러운 손님들은 모두 네가 부른 말씨 도깨비들이란다.”


반짝이는 울먹이며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어요.

소중한 장난감이 부러진 일, 걱정 조약돌이 가득한 주머니, 그리고 ‘망가졌어’ 도깨비가 나타나 마음을 슬프게 한 일까지요.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어요.


“그랬구나.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렴. 말에는 세상을 바꾸는 신기한 힘이 있단다.

그 힘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네 마음의 색깔과 세상의 모습이 달라지지.

나와 함께 짧은 여행을 떠나볼까? 네가 스스로 말의 힘을 깨닫게 될 거란다.”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언제나 웃음소리가 가득한 ‘괜찮아 마을’이었어요.

그곳에 사는 동물 친구들은 무슨 일이 생겨도 서로에게 가장 먼저 이렇게 말해주었죠.


“괜찮아!”


반짝이가 지켜보는 앞에서 아기 다람쥐 한 마리가 도토리를 옮기다 데굴데굴 넘어졌어요.

도토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죠.

하지만 아기 다람쥐는 울지 않았어요. 엄마 다람쥐가 달려와 꼭 안아주며 말했거든요.


“아이코, 우리 아가. 괜찮아!

훌훌 털고 다시 주우면 되지. 엄마가 도와줄게.”


그러자 아기 다람쥐의 입에서 작고 귀여운 ‘괜찮아’ 요정이 뿅 하고 나타나 무릎의 흙을 털어주고 흩어진 도토리를 함께 주워주었어요.

그 모습을 본 반짝이는 주머니 속 걱정 조약돌 하나가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답니다.


두 번째로 도착한 곳은 꽃향기가 가득한 ‘고마워 마을’이었어요.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반짝이는 향긋한 꿀 내음을 맡았어요.

아기 곰 한 마리가 엄마 곰에게 작은 들꽃을 건네며 말하고 있었어요.


“엄마, 매일 맛있는 꿀을 줘서 고마워요!”


그 순간, 아기 곰의 입에서 나온 ‘고마워’ 요정이 꽃잎에 앉아 반짝이는 이슬을 선물했어요.

햇살이 비추자, 나무 위 여우 아저씨가 하늘을 보며 말했어요.


“따스한 햇살아, 온 세상을 비춰주어 고마워!”


그러자 ‘고마워’ 요정들이 나타나 햇살 주위에서 즐겁게 춤을 추었고, 세상은 더욱 밝고 따뜻해졌어요.


반짝이도 조용히 속삭여 보았죠.


“이렇게 멋진 곳에 데려와 주셔서 고마워요, 할아버지.”


그러자 주머니 속 조약돌 몇 개가 더 따스한 온기를 품게 되었어요.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는 반짝이를 ‘해볼까 마을’로 데려갔어요.


그곳에서는 모두가 무언가를 만드느라 아주 바빴어요.


부러진 나뭇가지, 떨어진 나뭇잎, 흔한 돌멩이 하나도 그냥 버리는 법이 없었죠.


“이 나뭇가지는 돛을 달아 배를 만들면 어떨까?”


“이 돌멩이로는 알록달록 무당벌레를 그려보자!”


모두의 입에서는 “한번 해볼까?” 하는 활기찬 말이 끊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때마다 작고 총명한 ‘해볼까’ 요정들이 나타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선물하고 서툰 손길을 도왔어요.

그곳에 실패란 없었어요.

그저 새로운 것을 향한 즐거운 도전만 있었을 뿐이죠.


현자 할아버지가 반짝이의 부러진 장난감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보렴, 아가야.

저들에게 부러진 나뭇가지는 ‘끝’이 아니라 ‘무엇을 만들어볼까?’ 하는 새로운 시작이란다.”


여행을 마친 반짝이는 현자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외쳤어요.


“할아버지, 이제 정말 알 것 같아요!

제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차가운 조약돌을 만드는 도깨비가 나오기도 하고, 따뜻한 보석을 만드는 요정이 나오기도 하는군요!”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으며 반짝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요.


“그렇단다, 아가야.

말은 네 마음의 집을 짓는 벽돌과 같아. 슬프고 아픈 말로 벽을 쌓으면 너를 가두는 감옥이 되지만, 밝고 따뜻한 말로 벽을 쌓으면 언제든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멋진 집이 된단다.”


“‘망가졌어’는 끝이 아니에요! ‘다시 해볼까?’ 하고 시작하는 새로운 문이었어요!”


반짝이가 희망에 차서 외치는 순간, 걱정 주머니 속에서 마지막까지 버티던 ‘망가졌어’ 도깨비가 비명을 지르며 연기처럼 사라졌어요.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머니 속 모든 걱정 조약돌들이 영롱한 빛을 내는 ‘희망 보석’으로 변했답니다!


꿈에서 깨어난 반짝이는 가장 먼저 부러진 나뭇가지 장난감을 바라보았어요.

어젯밤처럼 슬프지 않았어요.

오히려 가슴이 두근거렸죠. 반짝이는 작은 목소리로, 하지만 또렷하게 말했어요.


“괜찮아. 더 멋지게 고쳐볼까?”


그러자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어요!

반짝이의 입에서 작고 반짝이는 ‘해볼까’ 요정이 나타나, 부러진 나뭇가지 옆에 예쁜 풀잎과 반짝이는 이슬을 가져다주었어요.

반짝이는 풀잎으로 장난감을 정성껏 묶고 이슬로 장식하여 전보다 훨씬 더 멋진 모습으로 고쳐냈답니다.


그날 이후, 반짝이의 삶은 마법처럼 변했어요.


친구와 놀다가 넘어지면 “괜찮아? 내가 손잡아 줄게, 함께 일어나자!” 하고 말했어요. 그러면 ‘괜찮아’ 요정이 나타나 아픈 마음을 보듬고 우정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죠.


맛있는 간식을 받으면 “이렇게 맛있는 걸 나눠줘서 정말 고마워!” 하고 활짝 웃었어요. 그러면 ‘고마워’ 요정이 나타나 마음을 햇살처럼 따뜻하게 채워주었어요.


어려운 퍼즐을 만났을 땐 더 이상 “어려워, 못 하겠어!” 하고 말하지 않았어요.

대신 “어디 한번 해볼까? 아주 재미있겠다!” 하고 말했죠.

그러면 어김없이 ‘해볼까’ 요정이 나타나 좋은 생각을 선물해주었습니다.


반짝이의 무겁던 걱정 주머니는 어느새 깃털처럼 가벼워졌어요.

말씨 도깨비들이 살던 집은 이제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는 반짝이는 희망 보석과 사랑스러운 말씨 요정들로 가득 찼거든요.

반짝이는 이제 자랑스럽게 그 주머니를 ‘희망 주머니’라고 불렀답니다.

움츠렸던 어깨는 활짝 펴졌고, 반짝이의 얼굴에는 그늘 대신 밝은 미소가 언제나 머물렀어요.


어린이 친구들,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반짝이와 같은 주머니가 하나씩 있어요.

오늘 여러분은 그 주머니에 어떤 말을 담고 싶나요?

슬픔을 부르는 말씨 도깨비 대신, 기쁨을 선물하는 말씨 요정을 마음껏 초대해 보세요.


여러분이 내뱉는 다정하고 용기 있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여, 여러분의 세상을 세상 가장 빛나는 곳으로 만들어 줄 거예요.

꼬마 여우 반짝이처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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