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다락방의 비밀 정원사

by 이호창

마음 다락방의 비밀 정원사


옛날 옛적, 세상 모든 아이들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는 아무도 모르는 ‘마음 다락방’이 하나씩 있었어요. 그 다락방은 아주 신비한 곳이어서,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겪은 모든 일, 했던 모든 말, 느꼈던 모든 감정이 먼지처럼 쌓이지 않고 예쁜 ‘씨앗’이 되어 차곡차곡 보관되었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리안’이라는 소년이에요. 리안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어요.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을 때가 많았거든요. 화창한 날 친구들과 신나게 공을 차다가도,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다가도, 문득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변하는 것처럼 슬퍼지곤 했죠. 그럴 때면 리안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렸고, 친구들은 그런 리안을 이상하게 쳐다보았어요.


“리안, 왜 또 울어? 누가 너 때렸어?”


“아니… 그냥… 그냥 눈물이 나.”


리안은 자기 마음을 자기도 알 수가 없었어요.


사실 리안의 마음 다락방에는 다른 친구들보다 유난히 ‘차갑고 푸른 얼음 씨앗’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아주 어릴 적, 크게 넘어져서 아팠던 기억, 친구와 심하게 다투었던 슬픔, 부모님께 꾸중을 들었던 서러움 같은 것들이 모두 얼음 씨앗이 되어 마음 다락방 구석에 쌓여 있었죠.


리안의 마음 다락방에는 파수꾼도 하나 있었어요. 이름은 ‘나야나’라고 하는, 아주 심술궂고 고집 센 꼬마 도깨비였죠. ‘나야나’는 다락방에 있는 모든 씨앗을 끌어안고는 외쳤어요. “이건 전부 리안 거야! 이 얼음 씨앗도, 저 뾰족한 가시 씨앗도 전부 리안이라고! 이게 바로 리안의 진짜 모습이야!”


리안의 마음 다락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 더 들여다볼까요?


다락방에는 세상과 통하는 다섯 개의 작은 창문이 있었어요. ‘눈 창문’, ‘귀 창문’, ‘코 창문’, ‘혀 창문’, ‘몸 창문’이었죠. 다섯 명의 꼬마 요정들은 이 창문을 통해 바깥세상의 소식을 물어왔어요. 눈 요정은 예쁜 꽃을 보면 “와, 빨간색이야!” 하고 소리쳤고, 귀 요정은 친구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재미있는 소리가 들려!” 하고 노래했죠.


이 요정들이 가져온 소식들은 ‘생각 정리 요정’에게 전달되었어요. 생각 정리 요정은 아주 똑똑해서, 빨간색 소식과 동그란 모양 소식을 합쳐 ‘사과’라는 이름표를 붙여주었고, 재미있는 소리에는 ‘웃음’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주었죠. 리안이 평소에 ‘생각’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 요정들의 바쁜 일이었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어요. ‘사과’라는 이름표가 붙으면, 심술쟁이 도깨비 ‘나야나’가 불쑥 나타나 외쳤어요. “저 사과는 내 거야! 내가 먹을 거야!” ‘나야나’는 모든 것을 자기 것과 연결 지었고, 특히 얼음 씨앗이 쌓인 구석으로 달려가 씨앗들을 흔들어 깨우곤 했어요.


“이봐, 얼음 씨앗들아! 리안이 지금 친구랑 놀고 있잖아! 저번에 친구랑 놀다가 넘어져서 아팠던 거 기억나지? 어서 나가서 리안을 슬프게 해줘! 그게 진짜 리안이니까!”


‘나야나’가 흔들면, 잠자던 얼음 씨앗 하나가 반짝, 하고 빛을 내며 작은 싹을 틔웠어요. 그러면 다락방 벽에 걸린 커다란 거울에 과거의 슬픈 장면이 어렴풋이 비쳤고, 그 순간 놀이터에 있던 리안의 마음에는 차가운 슬픔의 바람이 휙, 하고 불어오는 것이었죠. 리안이 이유 없이 슬퍼졌던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답니다. 이 신비한 마음 다락방을 아주 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아뢰야 다락방’이라고 불렀어요. 모든 것을 저장하는 곳이라는 뜻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리안은 또다시 찾아온 슬픔을 견딜 수가 없었어요.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 케이크를 먹으려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마음속에서 얼음 씨앗이 또 싹을 틔운 거예요. 리안은 자기도 모르게 파티를 뛰쳐나와 무작정 숲속으로 달려갔어요.


한참을 울다 지쳐 오래된 나무 밑에 웅크리고 있을 때였어요. 누군가 따뜻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어요.


“얘야, 마음의 정원에 비가 너무 많이 오는구나.”


리안이 고개를 들어보니, 햇살처럼 따뜻한 미소를 띤 할아버지 한 분이 서 계셨어요. 할아버지는 자신을 ‘마음 할아버지’라고 소개했어요.


“나는 마음의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란다. 네 마음 다락방 이야기도 아주 잘 알고 있지.”


리안은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졌어요.


“제 마음속에 다락방이 있는 걸 어떻게 아세요? 그리고 심술쟁이 ‘나야나’도요!”


마음 할아버지는 웃으며 리안의 옆에 앉았어요.


“물론 알고 있지.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그런 다락방이 있단다. 그리고 ‘나야나’도 있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구나, 리안.”


“가장 중요한 사실이요?”


“그래. 너는 네 마음 다락방의 주인이자, 그곳의 정원사라는 사실 말이다.”


할아버지는 리안의 손을 잡고 눈을 감게 했어요.


“자, 나와 함께 네 마음 다락방으로 깊이 들어가 보자. ‘나야나’에게 네가 진짜 주인이라는 걸 알려주러 가자꾸나.”


리안이 눈을 감자, 정말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요. 리안은 자신의 마음 다락방 안으로 쏙 들어와 있었어요. 그곳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천장은 밤하늘처럼 수많은 씨앗들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죠. 한쪽에는 따스한 빛을 내는 ‘황금 씨앗’들이, 다른 쪽에는 리안을 늘 괴롭히던 ‘얼음 씨앗’과 ‘가시 씨앗’들이 쌓여 있었어요.


심술쟁이 ‘나야나’가 리안을 보더니 팔짱을 끼며 소리쳤어요.


“흥! 여긴 왜 왔어? 이 얼음 씨앗들은 다 내 거고, 리안 거야! 이게 너라고!”


리안은 조금 무서웠지만, 옆에 선 마음 할아버지를 보고 용기를 냈어요.


마음 할아버지가 ‘나야나’에게 말했어요.


“나야나, 너는 리안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구나. 하지만 저 씨앗들은 리안의 ‘전부’가 아니란다. 그저 리안이 겪었던 ‘경험’일 뿐이지. 리안은 저 씨앗들의 주인이자 정원사야.”


할아버지는 리안에게 세 가지 마법 도구를 보여주었어요.


“첫 번째는 ‘마음돋보기’란다.”


할아버지가 돋보기를 건네주자, 리안은 조심스럽게 얼음 씨앗 하나를 비춰보았어요. 그러자 씨앗 안에서 어릴 적 무릎이 까져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어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돋보기로 찬찬히 들여다보니 더 이상 무섭거나 슬프지 않았어요.


‘아, 이건 그냥 옛날에 아팠던 기억일 뿐이구나. 지금의 내가 아픈 건 아니네.’


리안이 그렇게 생각하자, 얼음 씨앗의 차가운 기운이 조금 약해지는 것 같았어요.


“두 번째는 ‘햇살 물뿌리개’란다.”


할아버지는 황금빛 물뿌리개를 가리켰어요.


“얼음 씨앗을 없앨 수는 없단다. 하지만 새로 좋은 씨앗을 심고, 그 씨앗에 물을 주어 더 크고 환하게 키울 수는 있지. 그러면 다락방 전체가 환해져서 얼음 씨앗의 찬 기운이 힘을 잃게 된단다.”


“좋은 씨앗은 어떻게 심어요?”


“아주 간단하단다. 네가 누군가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 때마다, 고맙다고 진심으로 인사할 때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감탄할 때마다, 네 다락방에는 새로운 황금 씨앗이 하나씩 생겨나지.”


“마지막 세 번째는 ‘선택 바구니’란다.”


할아버지는 작은 바구니를 보여주었어요.


“다섯 요정들이 세상 소식을 가져오고 생각 정리 요정이 이름표를 붙여주면, ‘나야나’가 소리치기 전에 네가 먼저 선택하는 거야. 어떤 씨앗에 더 마음을 줄지 말이다. 친구의 웃음소리를 들었을 때, ‘나야나’가 오래전 다퉜던 기억의 가시 씨앗을 흔들려고 하면, 네가 먼저 바구니를 들고 새로운 황금 씨앗 쪽으로 가서 햇살 물뿌리개로 물을 주는 거란다.”


리안은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마음 다락방을 다스리는 법을 조금은 알 것 같았죠. 리안이 ‘나야나’ 도깨비를 돌아보니, 도깨비는 여전히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아까처럼 기세등등해 보이지는 않았어요.


얼마 뒤, 리안이 눈을 뜨자, 다시 숲속 나무 아래였어요. 마음 할아버지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죠. 꿈을 꾼 것 같았지만, 리안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고 용기로 가득 차 있었어요.


다음 날, 학교에 간 리안은 작은 실천을 시작했어요.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주었고,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께 “고맙습니다!” 하고 허리 숙여 인사했어요. 그날 밤, 잠들기 전 마음 다락방을 살짝 엿보니, 정말로 따스한 황금 씨앗 두 개가 새로 생겨나 반짝이고 있었어요!


며칠 뒤, 그림을 그리다가 물감을 엎질렀어요. 예전 같았으면 ‘나는 역시 뭘 해도 안 돼!’라는 얼음 씨앗이 싹을 틔워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졌을 거예요. 심술쟁이 ‘나야나’도 벌써 얼음 씨앗 더미로 달려가고 있었죠.


하지만 리안은 얼른 마음속으로 ‘마음돋보기’를 꺼내 들었어요.


‘이건 그냥 실수일 뿐이야.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야.’


그리고는 ‘선택 바구니’를 들고 새로 생긴 황금 씨앗 쪽으로 마음을 향했어요.


‘괜찮아, 다시 그리면 돼!’


그러자 신기하게도 눈물이 나지 않았어요. ‘나야나’는 김이 샌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제자리로 돌아갔죠.


일이 생길 때마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자 리안은 더 이상 이유 없는 슬픔의 주인이 아니었어요.


어느새 자기 마음 다락방의 멋진 정원사가 되어 있었죠.


어느 날, 리안은 혼자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 친구 라두를 발견했어요. 라두의 얼굴에는 리안이 예전에 늘 달고 다니던 슬픔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죠. 리안은 조용히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어요.


“라두야, 무슨 일 있어? 너도 혹시 마음 다락방에 얼음 씨앗이 너무 많아진 거니?”


라두가 깜짝 놀라 리안을 쳐다보았어요. 리안은 활짝 웃으며 마음 할아버지에게서 배운 비밀을 라두에게 속삭여주었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주머니에서 가장 반짝이는 황금 씨앗 모형을 꺼내 라두의 손에 쥐여주었어요.


“이건 내 마음 다락방에서 가져온 ‘친절 씨앗’이야. 네게 힘이 되면 좋겠다.”


리안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 정말 신기하게도 라두의 마음 다락방에도 작은 황금 씨앗 하나가 똑같이 생겨나 반짝이기 시작했답니다.


그렇게 리안은 자기 마음의 정원을 가꿀 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마음에도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마음의 정원사’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리안의 마음 다락방은 이제 차가운 얼음 씨앗보다 따뜻한 황금 씨앗이 훨씬 더 많아져, 언제나 햇살 가득한 비밀 정원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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