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도 아니고, 아주 먼 미래도 아닌 바로 오늘, 누리라는 아이가 살았어요. 누리의 세상은 네모난 유리창 안에 있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손바닥만 한 유리창으로 친구들을 만났고, 밥을 먹을 때도 커다란 유리창에 떠오른 완벽한 모양의 음식을 보며 배를 채웠지요. 친구들의 웃음소리는 언제나 유리창 너머에서 들려왔고, 엄마가 다가와 안아주실 때의 따뜻한 손길마저도, 마치 차가운 유리를 한 번 거쳐야만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누리의 손가락은 말랑한 흙이나 간지러운 풀잎 대신, 화면을 쓸어내리는 매끈하고 차가운 유리창의 감촉만을 기억했습니다. 발은 푹신한 잔디밭을 마음껏 뛰어다니는 법 대신, 네모난 방 안의 정해진 공간을 조심조심 걷는 데 익숙했지요. 누리는 가끔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며 생각했어요.
‘나는 정말 여기에 있는 걸까, 아니면 저 유리창 속에 사는 희미한 그림자인 걸까?’
세상은 온통 선명하고 깨끗한 색으로 빛났지만, 이상하게도 누리는 늘 무언가 막이 낀 것처럼 흐릿한 기분이었습니다. 마치 자기 자신이 조금씩 지워지고 있는 것만 같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오후였어요. 네모난 유리창이 깜빡이며 새로운 놀이를 알려주었지만, 누리는 왠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어제, 창밖으로 진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에요. 화면 속 친구들은 언제나 정해진 대로 웃고 달렸지만, 창밖의 아이들은 달랐습니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져 울기도 하고, 바람에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헝클어지기도 했지만, 그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유리를 뚫고 들어오는 것처럼 생생했습니다. 그 순간 누리는 깨달았어요. 자신의 세상은 너무나 조용하고, 너무나 깨끗하고, 그래서 너무나 외롭다는 것을요. 유리창 속 세상이 진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싹텄습니다.
누리는 처음으로 유리창을 등지고, 삐걱이는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문밖의 세상은 어쩐지 낯설고도 신기했습니다. 공기는 화면 속 그림처럼 멈춰 있지 않고 살랑거리며 부드럽게 누리의 뺨을 스쳤고, 햇살은 눈을 감아도 따끈한 온기를 눈꺼풀 위에 남겼습니다.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누리는 정해진 길을 벗어나 발길 닿는 대로 걸었습니다. 걷다 보니 낡고 담쟁이덩굴이 무성한 골목길 끝에 다다랐습니다. 그곳에 낡은 나무 문이 달린 작은 집이 있었어요. 문틈으로 알록달록한 물감 냄새와 오래된 나무 냄새, 그리고 흙냄새가 섞여 흘러나왔습니다. 그 향기는 누리가 한 번도 맡아본 적 없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을 끄는 힘이 있었습니다. 누리는 자석처럼 이끌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빛과 색으로 가득 찬 방이었습니다. 사방에는 그림들이 가득했고, 바닥에는 물감 통들이 데굴데굴 굴러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한 분이 커다란 캔버스 앞에 서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붓을 들고 있지 않았어요. 대신, 온몸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맨발로 바닥에 떨어진 물감을 밟으며 춤을 추듯 캔버스 위를 오갔습니다. 손가락으로 물감을 찍어 바람처럼 휘젓고, 손바닥으로 햇살처럼 문질렀습니다. 그림은 어떤 정해진 모양이 아니었어요. 그것은 마치 짙은 숲의 향기, 시원한 시냇물의 노래, 혹은 따뜻한 봄날의 꾸벅꾸벅 졸음 같았습니다. 형태는 없었지만, 그 어떤 그림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했습니다.
누리가 숨을 죽이고 바라보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할아버지의 눈은 깊은 호수처럼 맑았습니다.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지 않는단다.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내 몸이 세상과 나누는 진짜 이야기를 그리지. 자, 이리 오렴.”
할아버지는 누리의 작은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천으로 누리의 눈을 가렸습니다.
“어어, 왜 눈을 가리세요?” 누리는 조금 무서워졌습니다.
“얘야, 너의 눈은 너무 오랫동안 네모난 유리창만 봐왔단다. 그래서 세상을 납작하고 매끈하게만 보도록 길들여졌지. 진짜 세상은 울퉁불퉁하고, 부드럽고, 따뜻하기도 한데 말이야. 잠시 동안만 눈에게 휴식을 주자꾸나. 대신, 너의 온몸을 새로운 눈으로 만들어 보는 거야. 자, 이게 무엇인 것 같니?”
할아버지는 누리의 손을 거친 무언가에 가져다 댔습니다. 울퉁불퉁하고 딱딱한 감촉,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깊은 결. 누리는 손가락 끝으로 천천히 더듬었습니다. 화면 속 나무 그림은 그저 갈색과 초록색의 조합일 뿐이었는데, 진짜 나무는 손끝으로 읽을 수 있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나무… 기둥 같아요. 아주 오래 산 나무요.”
“그래, 맞다. 그럼 이건 어떠니?”
이번에는 보드랍고 서늘한 것이 손바닥에 닿았습니다. 간질간질한 느낌이 기분 좋았습니다.
“이끼인가 봐요. 물기를 머금고 있어요.”
할아버지는 누리의 신발과 양말을 벗겼습니다. 맨발이 흙에 닿는 순간, 누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화면 속에서 보던 흙은 그냥 갈색 점들의 모임이었는데, 진짜 흙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살아 숨 쉬는 것 같았습니다. 발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작은 흙 알갱이들의 감촉이 온몸으로 생생하게 전해졌습니다.
“바로 그거란다! 네 몸은 세상을 만나는 수많은 문을 가지고 있어. 손끝으로, 발끝으로, 코끝으로 세상을 읽는 거지. 유리창은 세상을 보여주기만 하지만, 너의 진짜 몸은 세상과 껴안고, 속삭이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단다.”
그날 이후, 누리는 매일 할아버지의 작업실을 찾아갔습니다. 누리는 할아버지와 함께 빵을 구웠습니다. 하얀 밀가루가 손에 묻어나는 느낌, 말랑한 반죽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부풀어 오르는 신기함, 오븐에서 풍겨 나오는 고소한 냄새, 그리고 갓 구운 빵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혀끝에 퍼지는 따뜻함까지. 누리는 음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임을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둘은 함께 비를 맞기도 했습니다. 차가운 빗방울이 정수리를 때리는 느낌, 옷이 젖으며 몸에 착 감기는 감각, 흙과 풀이 비에 젖어 풍기는 짙은 향기. 누리는 비가 내리는 날이 이렇게 신나는 날인 줄 몰랐습니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소리는 그저 방해되는 소음이었지만, 온몸으로 맞는 빗소리는 세상이 연주하는 즐거운 음악이었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누리 앞에 작은 캔버스와 물감들을 놓아주었습니다.
“누리야, 이제 네 이야기를 그려보렴.”
“무슨 이야기를요?”
“네가 세상과 속삭였던 이야기. 네 몸이 기억하는 모든 것을 그리면 된단다. 정답은 없어. 네 손이 가는 대로, 네 마음이 이끄는 대로.”
누리는 막막했습니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때, 할아버지가 물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느낌이 뭐니? 좋았던 것, 슬펐던 것, 모두 괜찮아.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몸은 그것을 전부 기억한단다.”
누리는 눈을 감았습니다. 문득 얼마 전, 아끼던 작은 새가 하늘나라로 떠났던 날이 생각났습니다. 그때의 슬픔이 다시 밀려왔습니다. 할아버지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 슬픔은 어디에 있니? 네 몸 어디에서 느껴지지?"
누리는 가만히 자신의 몸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가슴 한가운데가 쿵, 하고 차갑게 내려앉는 느낌. 목구멍에 커다란 돌멩이가 걸린 것처럼 답답하고 뜨거운 느낌. 그리고 자꾸만 차가워지는 손끝의 느낌. 슬픔은 그냥 슬픈 기분이 아니라, 몸 구석구석에 남은 분명한 흔적이었습니다.
누리는 자기도 모르게 차가운 파란색 물감에 손을 담갔습니다. 그리고 캔버스 한가운데를 꾹 눌렀습니다. 가슴을 누르던 그 무겁고 차가운 느낌을 그대로 담아서요. 그다음엔 답답한 회색 물감을 집어 들었습니다. 뜨거웠던 목구멍의 느낌처럼, 물감을 두껍게 덧칠했습니다. 눈물이 핑 도는 아찔한 느낌은 하얀 물감을 콕콕 찍어 표현했습니다.
누리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몸이 기억하는 슬픔의 감각을 따라 손을 움직일 뿐이었습니다. 한참 뒤 눈을 떠보니, 캔버스에는 파랗고 회색빛의 얼룩이 가득했습니다. 그것은 새의 모습도, 누리의 우는 얼굴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누리는 알 수 있었습니다. 그 그림은 바로 자신의 ‘슬픔’ 그 자체라는 것을요.
그런데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캔버스 위에 몸속에 웅크리고 있던 슬픔을 모두 쏟아내자, 가슴을 짓누르던 돌멩이가 사라진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림은 슬퍼 보였지만, 동시에 누리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그림이 “괜찮아, 내가 네 슬픔을 다 알고 있어. 이제 네 안에 있지 않고 여기 있으니, 너는 괜찮아.”라고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그때, 할아버지가 누리의 어깨를 감싸 안았습니다.
“보이니? 이게 바로 너와 세상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란다. 네 몸속에 갇혀 있던 슬픔이 캔버스 위에서 새로운 집을 찾은 거야. 그러니 네 마음엔 이제 다른 행복한 감정들이 들어올 공간이 생긴 거지. 너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야. 세상 모든 것이 이렇게 너의 친구가 되어줄 거란다.”
누리는 그날 집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엄마를 힘껏 껴안았습니다. 유리창 너머의 흐릿한 온기가 아니었습니다. 엄마의 심장 소리가 등 뒤로 전해졌고, 엄마의 따뜻한 숨결이 목덜미를 간질였습니다. 누리는 살아있다는 것을, 진짜 세상 속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존재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다음 날, 누리는 친구들을 만나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네모난 화면 속에서 보던 아바타가 아니었습니다. 친구의 발그레한 볼, 까르르 웃을 때마다 들썩이는 어깨, 술래잡기를 하며 마주 잡은 손의 따스한 온기. 모든 것이 새롭고 생생했습니다. 누리는 친구들과 함께 흙바닥을 뒹굴고, 비 온 뒤 생긴 물웅덩이를 첨벙거리며 온 세상을 자기 몸에 가득 담았습니다.
누리는 이제 더 이상 유리창 속 희미한 그림자가 아니었습니다. 누리는 바람과 함께 달리고, 햇살과 함께 웃고, 흙과 함께 꿈꾸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가끔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할아버지처럼 온몸으로 말이지요. 신나게 달렸던 날의 벅찬 숨결을, 친구와 손잡았던 따뜻함을, 할머니가 들려주신 옛이야기의 포근함을 캔버스에 담았습니다. 누리의 그림들은 언제나 보는 이에게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세상은 차갑고 매끈한 유리가 아니란다. 너를 꼭 안아주는 따뜻하고 다정한 품이란다.” 라고 말이지요. 누리의 세상은 이제 네모난 유리창을 넘어, 끝없이 넓고 살아 숨 쉬는 진짜 우주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