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47, 보스턴〉을 보고
영화 〈1947, 보스턴〉을 보자 오래전 달리기 시작하던 시절의 기억들이 마치 빛바랜 필름처럼 되살아났다. 1999년 가을, 요통과 비즈니스 접대 차원에서 시작했던 달리기는 어느새 내 삶의 한 축이 되었다. 그 첫 무대가 중앙서울마라톤 10km였다. 몇 주 뒤에는 춘천 하프에 나가 2시간 29분으로 완주했다. 달린다고 몸과 마음이 이렇게 달라질 줄 누가 알았을까?
어디선가 읽었던 말, “마라톤은 신이 내린 보약” — 그 보약이 꽤 오래전, 조용히 내 안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즈음 나는 매일 시시때때로 강북 한강공원에서 성수대교–영동대교 5km를 왕복하며 하루를 열었다. 주말엔 잠실대교, 때로는 천호대교까지 나아가는 장거리 주행도 했다.
달리기 클럽도 없이, 지도도 없이, 그냥 독립군처럼 마구 뛰었다. 한 달 150~200km. 두 달을 그렇게 보내고 드디어 생애 첫 풀코스를 맞았다.
2000년 봄, 광화문에서 잠실까지 — 첫 풀코스의 기적
출발은 광화문, 골인은 잠실주경기장.
30km 즈음, 잠실 롯데백화점 앞에서 가족을 만나기로 했다. 사실 그 지점까지는 “꼭 버티자”는 오기로 달렸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아침에 인사하고 나온 가족이 왜 그렇게 반가웠을까?
그 순간 나는, 기록도 완주도 다 잊고 오랜 여행 끝에 고향을 본 사람처럼 기뻤다.
애들의 엄마가 건네준 꿀 섞은 콜라와 초콜릿. 선우, 선경이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달리는 길 한복판에서 가족과 사진을 찍고 대화를 나눈다는 자체가 기록을 포기했다는 뜻이겠지만, 나는 애초에 기록과는 담을 쌓은 런너였다.
다시 발을 떼었다.
골인지점에서도 가족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응원 덕분인지, 나의 목표 기록인 Sub 5 언저리로 첫 풀코스를 마쳤다.
지금도 그날의 공기, 땀, 환한 표정이 생생하다.
“마라톤 대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러나 단 하나, 보스턴만은
국내 마라톤 대회는 참가 신청만 하면 누구나 뛸 수 있다.
춘천, 중앙, 서울마라톤, 통일마라톤, 양평 이봉주, 금산인삼, 충주사과, DMZ…
지역 특산물과 새로 난 다리가 건설되면 서해대교, 인천대교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전국의 주요 도시들을 나는 ‘뛰어서’ 여행했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오직 하나,
달리고 싶어도 뛸 수 없는 대회가 있었다. 바로 보스턴 마라톤!
1997년부터 참가자가 폭증하며 엄격한 자격기록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그 순간부터 보스턴은 전 세계 마스터즈의 성지가 되었다.
나의 풀코스 기록은 4시간 35분대.
보스턴 기준까지는 한 시간 이상 줄여야 했다.
수능 점수 60점 학생이 갑자기 90점을 받아야 대학을 가는 격이었다.
그래도 꿈은 버려지지 않았다.
나는 결국 국가대표 출신 방선희 감독이 운영하는 ‘중앙마라톤교실’ 문을 두드렸다.
마라톤 학원을 다니는 마음이었다.
중앙마라톤교실 — 비와 땀과 지옥훈련의 시간
첫날, 천둥 번개 속에서 서울대 트랙을 달렸다.
육상선수가 된 듯한 기분, 아니 사실은 ‘나만 너무 둔해 보이는’ 기분이 더 컸다.
참가자 중 배 나온 사람은 나 포함 두 명. 그게 그렇게 위안이 될 줄이야.
5000m 레벨 테스트 결과는 32분 05초.
평소보다 약간 좋은 기록이었지만 반에서는 거의 꼴찌였다.
보강 훈련, 인터벌, CT(서킷트레이닝), 크로스컨트리, LSD(장거리 달리기)…
토요일마다 지옥이 펼쳐졌다.
훈련 다음 날은 계단을 내려가기도 힘들었다.
대관령 삼양목장 전지훈련에서는 이른 새벽 홀로 달리는 이봉주 선수를 우연히 보았다.
엘리트도 혼자 달린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나를 뜨겁게 했다.
그날의 바람과 풀 냄새는 지금도 선명하다.
마라톤교실을 거치자 기록은 25분 가까이 단축되었다. 거리로 치면 4.5km 정도였다.
그러나 보스턴의 문은 여전히 멀리 있었다.
보스턴—도달하지 못한 꿈, 그러나 내 안에 선명히 살아 있는 도시
달리기 클럽에서는 기록이 빠른 사람의 이름으로 보스턴을 대신 뛰어주는 일이 암암리에 있었다.
속된 말로 '대리 보스턴’. 그렇게 다녀온 사람들은 대개 인생 최고의 후기 글을 남겼다.
그들의 공통된 말.
“보스턴은 대회가 아니라 축제다.”
“주로가 응원으로 가득하다.”
“집에서 만든 음식을 사발째 들고 나와서 건네주는 시민들.”
“끝없는 하이파이브.”
“그리고… 젊은 여대생들의 키스존.”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지인들과의 마라톤 소모임 이름을 ‘보스턴’이라 지었다.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영화가 다시 불러온 기억 — 손기정, 보스턴, 그리고 나
개봉 첫날, 왕십리 CGV에서 〈1947, 보스턴〉을 봤다.
후반부의 보스턴 장면에서 나는 숨을 들이켰다.
임시완은 진짜 마라토너처럼 뛰었다
다만 욕심을 내자면, 국뽕을 걷어내고 마라톤의 본질과 디테일을 조금 더 파고들었다면
마스터즈들은 더 깊이 빠져들었을 것이다.
2002년, 달리기를 가장 열심히 하던 해에 손기정 선생께서 돌아가셨다.
그 장례식에 가고 싶었다.
일제의 국적을 달고 뛰어야 했던 그분의 상처와 고독을 비록 멀리서나마 위로하고 싶었다.
영화는 오래 묻어두었던 그 마음까지 꺼내 주었다.
‘달린다는 행위’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역사, 꿈, 소망을 품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했다.
달리기는 끝나지 않는다
달리기는 끝나지 않는다.
나는 끝내 보스턴을 뛰지 못했지만, 그 꿈을 향해 달려가던 시간들은 지금도 내 삶의 근육 어딘가에서 조용히 숨을 쉬고 있다.
비를 맞으며 달리던 서울대 트랙, 대관령의 서늘한 아침 공기, 잠실 30km 지점에서 가족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벅찬 순간들…
그 모든 장면이 기록으로 남지 않았을 뿐, 내 삶을 지탱해 준 단단한 기둥들이었다.
영화 한 편이 오래 잠든 내 보스턴의 꿈을 다시 깨웠다.
이제 나는 선수가 아니라 ‘길 위의 갤러리’가 되어 달리는 이들과 숨을 맞추며 그 축제를 함께 느끼고 싶다.
달리기는 끝나지 않는다.
꿈도, 마음도, 삶도 여전히 내 안에서 뛴다.
2023. 0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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