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관광 마라토너

(부제: 어느 먹방마라토너의 행복론)

by 플레이런너

독립군을 벗어나 처음 가입한 마라톤 클럽은 다음 카페 런너스클럽이다.

여의도 토달(토요일 달리기)에 열심히 나갔다.

출발선에 서 있는 주자들의 욕망과 목표는 정말 한결같다.

대다수 주자는 30km, 하프, 10km 등 거리 자체에 목표를 두고 뛰지만, 나의 지향점은 그들과 아예 달랐다.

“풀코스(나의 닉네임), 오늘은 어디까지 뛸 거야?”

마라톤 선배의 질문에 난 웃으면서 답했다.

“저는 오늘도 한강 바람맞으며 먹방 마라톤 할 겁니다.”

관광마라톤을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바로 현금이다. 페이스메이커는 풍선을 달고 뛰지만, 나는 현금을 달고 뛰었다.

달리다가 만나는 매점에서 사 먹을 수 있는 커피, 포카리, 초콜릿, 바나나는 기본이다.

“딱”

갈증이 심할 때는 캔맥주 하나를 사서 단숨에 들이켠다.

세상에 이때 마시는 맥주처럼 맛있는 맥주는 또 없다.

그래서 이렇게 뛰는 달리기를 스스로 ‘관광마라톤’이라 정의했다.


뛰면서 사방팔방 시야를 넓게 보며 구경하고 그러다가 매점이 나오면 반갑게 주인장과 인사한다. 잠수교 근처 매점에서는 단골집도 생겨, 간혹 깜박하고 돈을 안 챙긴 날에도 외상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나름 후미주자의 생존법이기도 했다.


마라톤을 시작하고 많은 지인들에게 전도를 했다.

마라톤으로 생긴 나의 외형적, 내면적 변화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혼자서 시작한 달리기가 ‘함께’로 변해 갔다.


전도한 지인들과 금산인삼마라톤 대회에 수십 명이 함께 참여했다. 함께 뛰고 뒷풀이를 진행했다. 사전에 금산에 맛있는 음식을 조사했다. 인터넷뿐 아니라 맛집을 잘 아는 선배의 정보도 참작했다. 금산의 어죽은 서울에서 먹어 본 어죽과는 급이 달랐다. 금강 상류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오랜 시간 진하게 우려서, 쌀이나 국수와 함께 걸쭉하게 끓여낸 금산의 전통 향토 음식이었다. 거기다 금산에 지역 특산물인 인삼을 넣어 한 숟갈 뜨는 순간, 인삼 뿌리의 씁쓸함과 국물의 깊은 감칠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맛이었다.

나의 맛 표현은 딱 두 가지다. ‘맛있다, 아주 맛있다.’

어죽의 맛은 그 보다 더한 최상급이었다.


달리기 실력과 전혀 상관없이 보스톤을 향한 목표로 지인들과 달리기 모임을 결성했다. 그 이름도 보스톤.

회원이 몇 명 되지도 않지만 유니폼을 바로 맞추었다. 옷도 준비되었으니 마라톤 대회를 참여하는 것이 수순이다.


클럽 결성 기념으로 춘천마라톤을 전부 참가했다. 달리는 주자뿐만 아니라 가족이 함께 참여했다.

풀코스 완주보다 중요한 건 그다음 뒤풀이다.

음식이 보상되고, 보상이 사람을 모으고, 사람이 모이면 웃음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뛰기 위해 먹는지, 먹기 위해 뛰는지 헷갈린다.

나에게 마라톤은 기록경기가 아니라 축제였다.

이제 풀코스는 구색이다. 관광 마라톤을 위해서는 춘천의 맛집에서 이 대식구들이 맛난 음식을 먹을 식당이 중요했다.

춘천 하면 닭갈비?

이왕이면 스무 명 남짓한 대식구가 별장처럼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닭갈비 집을 수소문 끝에 찾아냈다.

식당이라기보다는 전원주택 같은 분위기였다.

우리 일행은 조금도 기다릴 수 없어 계속 요구했다.

“죽통주 하나 더요?”

죽통주, 속이 빈 대나무에 술이 들어 있다. 한결 부드럽고 향은 맑고 풋풋했으며 뛴 사람이나 기다린 사람 양쪽을 만족시키는 술이 바로 죽통주였다.

“닭갈비 추가요”

“야채 추가요”

“상추 더 주세요”

“쌈장 더요”

“마늘도요”

“사리 넣어 주세요”

“밥도 볶아주세요”

“반찬이 없어요”

출발을 기다리는 시간부터 결승선을 통과하기까지, 대여섯 시간을 주로에서 보낸 런너들과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 기다림의 몫을 온전히 견뎌낸 이들, 양쪽 다 완주자였다. 닭갈비 식당의 뒷풀이는 각자의 방식으로 그 레이스를 마친 이들이 마침내 한자리에 모이는 순간이었다. 완주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그들에게, 닭갈비의 맛을 따지는 일은 이미 사치였다.


식당의 주인과 직원들은 한꺼번에 밀려든 우리 일행의 주문을 감당하느라 정신을 못 차렸다. 거기다 마라톤 대회로 인해 손님으로 식당이 가득했다. 식당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먹는 장소는 마당이었고 부엌은 안채에 있어, 동선이 멀다 보니 우리가 쏟아내는 요구에 쉽게 대응하지 못했다. 나중에 계산할 때 보니 터무니없이 계산이 싸게 나올 정도로 식당 사장님은 혼이 나가 있었다.


보스톤 활동 몇 년 후 런너스클럽 지역 소모임 청화주(청계천에서 화요일 달리기)에 가입했다. 지역적으로 마장동과 가까운 청계천 8가 적십자사 바로 밑에서 달리기를 하는 소모임이었다. 보통 동호대교 5km, 또는 한남대교 6.5km 정도 가볍게 달렸다. 거기다 이름이 청화주라 하면 고량주 같고 뭔가 기대되는 이름이어서 참석한 이유도 있다.

淸火走인가? 靑華酒인가?

“최고의 맛집으로 모시겠습니다. 그것도 매주 다른 식당으로”

급기야 얼마 안 가서 내가 청화주의 소모임지기, 즉 회장이 되었다. 회장 첫 일성이었다. 동네 내 지인들이 함께 참여하며 뛰었다. 지인들 호응 덕분에 청화주의 성격은 관광마라톤으로 점차 변해갔다.

봄에는 중랑천 근처 응봉산으로 야경 소풍을 떠났다. 마장동에서 떼온 질 좋은 삼겹살과 목살을 챙기고,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불판, 그리고 각종 술과 음료를 담은 묵직한 아이스박스까지 준비했다. 응봉산 팔각정 아래,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가로등 밑에서 돗자리를 깔고 고기를 구워 먹던 그 별천지 같은 경험은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선명히 각인되어 있다. 가을이면 살곶이 다리 근처에서 풍성한 음식을 차려놓고 '청화주' 창립제를 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달리기 위해 먹었는지, 먹기 위해 뛰었는지 분간이 안 갈 때가 많다. 전국의 수많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서도 내 머릿속엔 늘 그 고장의 맛집 지도가 먼저 그려졌다.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주로(走路)에서 네다섯 시간을 오직 '기다림'으로 버텨준 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자 예우였다. 땀 흘린 뒤 가족과 함께 나누는 맛난 음식이야말로 완주 메달보다 값진 성찬이었다.

이 즐거운 습관은 여전하다.


"인생 뭐 있어? 맛난 거 먹는 게 남는 거지!"라고 말하는 친구들과 함께, 먹고 즐기는 '먹즐 산악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맛난 음식에 대한 욕구, 그리고 그것을 소중한 이들과 나누는 기쁨. 바로 이것이 내가 정의하는 행복이다.

나는 잘 뛰는 사람이 아니라, '잘 같이' 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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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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