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동행은 적절한 때에 비켜설 수 있는 내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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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대회 풀코스 출발선에 서자 내 머리 위로 풍선 하나가 흔들렸다.
오늘 나의 욕망과 체력이 합의한 목표 시간이었다. 사실 마라톤은 처음부터 무작정 달리는 것이 아니라 후반의 결정적인 순간을 위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빨간 복장의 페이스메이커 옆에 바짝 붙는다.
풍선을 달고 뛰는 그의 속도를 따라 나는 숨을 고르며 출발했다.
나는 늘 페이스메이커 뒤에서만 달린다.
페이스메이커에게 있어 꾸준한 주력과 절제, 기록 관리는 필수다.
풍선 하나에 수십 명의 호흡과 기록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풀코스를 28번 완주했지만 풍선을 달 기량도, 그럴 용기도 갖추지 못했다.
이런 페이스메이커를 주제로 한 영화가 새해 벽두에 개봉했다.
달림이인 나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제목은 “페이스메이커”
책임감과 의무감이 뒤섞인 감정에 이끌려, 나는 개봉 첫날 극장에 앉아 있었다. 페이스메이커로 살아왔던 주만호(김명민)가 딱 한 번 자기 자신을 위해서 달린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주제이다. 지원(고아라)이라는 배우를 처음 보았다. 처음에는 화려한 외모에 시선이 갔지만, 그녀가 주만호를 '도구'가 아닌 '선수'로 바라봐 주는 유일한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 그녀에게서 진정한 페이스메이커의 모습을 보았다. 지원은 주만호를 '삼발이'나 '도구'로 보지 않는다. 그녀는 그를 '오빠'이자 '달리는 인간'으로 바라본다. 모두가 국가대표의 기록에만 신경 쓸 때, 유일하게 주만호의 꿈을 물어봐 준 사람이다. 그녀는 주만호가 비로소 자신의 레이스를 시작할 수 있도록 조용히 등을 떠밀어 준, 말 그대로 '페이스메이커를 위한 페이스메이커'였다.
“삼발이”.
마라톤 코스 30km 지점까지만 달린다고 해서 붙여진 주만호의 별명이었다. 그의 달리기는 언제나 타인의 완주를 위한 것이었다. 자신의 수익은 포기하고 동료에게 투자하는 삶인 것이다.
그러나 주만호는 그 30km를 지나, 더 이상 누구의 기록도 아닌 자신의 레이스를 시작한다. 그 이후 펼쳐지는 투혼의 질주는 처절했고 나는 그 장면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스터즈 러너에게도 30km 지점은 여전히 ‘마의 구간’이다. 온몸의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순간이 어떤 것인지, 나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장면은 마치 내 다리에서도 통증이 전해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실제 마라톤 대회에서 자기 다리에 피를 흘리며 끝까지 달리는 마라토너를 본 적이 있다. 그 기억들이 영화 속 장면과 겹쳐지며 떠올랐고, 그의 고통과 표정은 더 이상 연기가 아니라 몸으로 이해되는 감정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직장 생활과 가정, 그리고 사회 역시 모두 페이스메이커의 삶과 닮아 있다. 누군가의 리듬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고, 앞서기보다는 흔들리지 않게 곁을 지키는 일들. 그 균형이 유지되기에 삶에 큰 파열음이 나지 않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전혀 다른 분야의 책 한 권이 문득 떠올랐다. 페이스메이커의 삶과 묘하게 닮아 있는 이야기였다. 시골의사 박경철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통찰편은 의외로 단순한 진실을 말한다. 자주 움직일수록 손해를 보고, 결정적인 순간은 오래 기다려야 온다는 것이다. 책이 말하는 잦은 매매의 위험은 일상에서 늘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느라 정작 내 레이스를 미뤄두는 우리의 삶과도 겹쳐 보인다. 주만호의 단 한 번의 레이스가 오랜 기다림 끝에 허락된 ‘자기만의 순간’처럼 느껴졌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남의 레이스에 보폭을 맞추느라 내 페이스를 유보해 온 삶은, 주식 시장에서 남들의 매매에 이끌려 다니는 투자자의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이 비유를 조금 더 밀어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 존재가 떠올랐다. 바로 자식을 위해 살아가는 이 땅의 엄마들이다. 자식이라는 종목이 가치주이든 성장주이든 우량주이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투자하는 가장 오래된 투자자문사, 그리고 가장 용감한 투자자들이라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내 어머니 역시 형편을 재지 않았다. 유치원부터 보이스카웃에 이르기까지, 나라는 종목에 대해 아낌없는 투자를 이어갔다. 수익보다는 그저 잘되기만을 바라는 무조건적인 맹신으로.
그 유전자를 물려받은 나는 과연 어떤 부모였을까? 아이들이 어릴 적, 여행을 주제로 한 ‘아이와 함께 떠나요?’라는 모임에 참여했었고 몇 해 뒤에는 그 운영을 맡기도 했다. 여행 한 달 전이면 나는 늘 사전 답사를 다녔다. 본 여행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어른들이 먼저 속도를 낮추고 동선을 살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부모는 페이스메이커다. 부모란 아이를 앞에서 끌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마음껏 치고 나갈 수 있는 순간을 위해 조용히 길을 닦고, 주로를 비켜서는 존재라는 것을.
오늘 저녁, 술자리가 하나 있다. 오늘 밤의 나는 주인공으로 달릴까, 아니면 누군가의 페이스메이커로 남을까?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질문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살아가며 수없이 같은 갈림길에 서니까. 오늘은 상대의 말 속도에 귀를 맞추고, 술잔이 비워지는 리듬에 보폭을 맞추며 30km 지점까지는 동행으로 함께 달려볼 생각이다.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은 언제나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그 모습은 달라진다. 그 지점을 지나서는 공감의 페이스메이커, 그것으로도 충분하리라.
우리는 살면서 때로는 앞서 달리고, 때로는 곁에 서서 속도를 맞춘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은 나를 위해 전력으로 달려야 할 때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숨을 고르며 옆에서 보조를 맞춰야 할 순간도 있다. 인생이란 결국 질주와 기다림, 그리고 페이스메이커의 리듬을 오가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그 긴 마라톤은 혼자서는 끝까지 완주할 수 없다.
문득 이런 질문이 남는다.
나는 누군가의 속도를 책임질 만큼, 풍선을 달고 뛸 준비가 된 사람일까?
서로의 풍선이 되어 완주를 향해 함께 뛸 사람은 누구일까?
2012.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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