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25주년 이야기
오늘은 내가 사업을 시작한 지 25주년이 되는 해이다. 중학교 다닐 때 어머니는 의도치 않게 ‘세성과학’이라는 조립 완구 회사를 하셨다. ‘世成’의 작명은 그 당시 침쟁이 아저씨라고 불렀던 어머니의 단골 점집에서 지으셨고 그 의미는 ‘세상을 이룬다’는 뜻이라고 했다. 오늘날 완구나 프라모델의 리딩 기업 하면 ‘아카데미 과학’을 떠올리는데 세성과학도 당시에 그런 것을 만드는 회사였다. 현재 나의 사업체, 디자인세성의 ‘세성’이라는 이름에는 이처럼 나의 어머니의 스토리가 깃들어 있다.
1997년 봄, 창업하기 전 완구 관련해서 공부했다. 나름 시장조사도 하고 도서관에서 자료도 찾았다. 사업의 한 단계 실천으로 도쿄에서 개최되는 완구 전시회를 보러 갔다. 도쿄 시내를 돌다가 사람들의 줄이 계단까지 채워져 있고 그것도 모자라 건물 밖에까지 이어진 광경을 보았다. 무엇일까? 호기심에 그 줄을 따라가 보았다. 티셔츠, 컵, 배지, 등에 사진으로 인쇄해 주는 것이었다. 한쪽 옆에서는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직접 찍어서 인쇄하고 그것을 티셔츠와 컵에 바로 프린팅 했다. 지금이야 아주 간단한 사업처럼 보이지만 그때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것이다’ 싶어 완구 생각은 바로 접고 지금의 상왕십리역 근처에 발 빠르게 창업했다. 경험도 없는 내가 직원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그마치 네 명이나 두었다. 그러나 고객은 하루에 한 두 명이었다. 보통 하나에 몇 만 원이었으니 계속해서 적자 구조였다. 설상가상으로 이때 그 유명한 IMF 사태가 시작되었다.
창업 일 년 후 매장을 임대한 건물에 2층을 추가로 임대했다. 즉석 인쇄 편의점을 점차 버리고 대학 때 연극 기획과 사회에서 선거 기획 하면서 경험했던 광고기획사로의 전환을 점차 시도했다. 함께 했던 직원들과 주변 지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 층의 매장을 폐쇄했다. 일종의 벼랑 끝 승부수였다. 지금까지가 고객이 찾아오는 구조였다면 앞으로는 고객을 찾으러 가야 하는 체계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4년 왕십리 뉴타운 재개발과 어머니의 건강 악화를 이유로 본가와 붙어있는 지금의 ‘마장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무실과 집이 붙어 있어서 내가 생각했던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았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우리 사무실을 아지트처럼 사용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상왕십리역과 지금의 사무실을 모두 경험한 유일한 단체가 있다. 그것은 대학 연극반 ‘아몽’의 식구들이다. 상왕십리역 사무실에서 두 번, 지금의 사무실에 한 번의 연극 연습이 모두 디자인세성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세 번 모두 무대 공연으로 실현이 되었다. 세 편의 연극은 지금도 대학로에서 가끔 공연되고 있는 굿 닥터, 라이어, 택시드리벌이다. 내 역할은 세 번 모두 기획이었다.
요즈음 가끔 자기소개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난 이렇게 말한다.
“대학에서 연극반 생활을 했습니다. 대부분 연극 공연 기획 일을 했습니다. 이때 기획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 우연히 선거 기획 사무실에서 일했습니다. 그것이 바탕이 되어 지금의 광고기획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 마을의 기획을 꿈꿉니다. 기획을 하는 사람으로 기억해 주십시오.”
기획을 한다는 것은 지금까지도 이 사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숙제이자 과제이다. 왜냐하면 김치찌개 식당은 맛이 완성되어 소문이 나면 그 맛만 정량적으로 유지하면 고객을 유지할 수 있다. 그에 반해 기획의 일은 늘 어제보다 오늘은 더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 고객사인 담당자도 함께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디자인세성의 미래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아주 가끔 오래전에 거래했던 거래처의 지인들에게 전화를 받곤 한다. 그때마다 ‘대표님 아직도 사업을 하고 계시네요?’ 하고들 말하면서 일을 준다.
현재 주요 고객사인 대표님께서 ‘내 나이 칠십이 될 때까지 우리와 파트너를 맺자’고 했다. 만약 이 약속이 실현된다면 앞으로 이 고객사와 인연의 시간이 이제 4년 정도 남았다. 운 좋게 이 고객사와 관계를 맺어서 지금까지 잘 유지하고 있는 것이 나름 롱런의 비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지역에 몇몇 지인들과 함께 ‘협동조합 고기 연구소’를 창업했다, 고기는 마장동의 고기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고민을 기회로’라는 말의 이니셜이며 장소를 떠올릴 때 ‘고기’, 마장동의 식문화인 ‘고기’ 등을 같이 연상할 수 있는 중의적 의미의 고기이다. 사업자등록증에 우리 사업의 종목은 교육, 문화 예술, 출판, 미디어, 굿즈 개발, 공공 위탁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얼마나 오래 최초 기획한 것처럼 이 협동조합을 꾸려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협동조합 고기 연구소는 서로 잘 맞는 사람들이기보다는 서로 공존할 줄 아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협동조합이기를 바라본다. 분명한 것은 디자인세성 이후에 삶으로 그려가는 중이다. 그때까지 나름 치열하겠지만 차분하게 성장하고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함께한 25년, 함께할 25년’의 모습에 대해 상상해 본다. 현재 장인어른께서는 나와 아주 가까운 마장이라는 지역에서 부동산을 운영하고 계신다. 우리 나이 팔십이 넘으셨는데도 꽤 일을 잘하시는 현역 대표이시다. 소소한 수입은 덤이고 일과 함께 나이에 비해 아주 젊게 건강을 유지하신다. 아마도 나에 멘토 같은 모델로 삼으면 어떠할까 싶다.
디자인세성의 25주년을 함께하고 옆에서 지켜봐 준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함께한 25년, 함께할 25년
㈜디자인세성 대표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