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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내린 보약

문화일보 마라톤 대회에 참가후기 은상 수상

그는 여느 때처럼 오늘도 병원 침상에 누워있다. 허리 부분에 마사지 치료받기 위해서이다. 그의 고질적인 요통 때문이다. 처음에는 엉덩이를 약간 내보이는 것이 다소 어색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바지를 내린다. 그 정도로 이 생활에 이력이 났다. 늘 어느 병원이든 마사지 치료 방법은 비슷했다. 처음에는 허리 쪽에 뜨거운 팩 같은 것을 올려놓는다. 그다음에 담당 진료사가 무거운 기구를 끌고 와서 척주를 바로 잡아주는 재활을 한다. 그것이 끝나면 바로 조명기처럼 생긴 것이 그의 허리에 맞춰진다. 그것이 십 분 정도 지나면 허리에 무언인가를 바르면서 계속 비벼준다. 그가 기억하는 데 있어 참으로 시원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이때였다. 대충 이 정도가 진료의 순회이고 보통 사십 분에서 오십 분 정도 걸린다.

 

오늘도 그는 이런 마사지를 받기 위해 병원 침상에 누워있다. 그는 매일 오면서도 그다지 증상이 호전되거나 큰 진전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병원에 오는 것이 악화가 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생활에 권태를 느낄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병원에 다니고 있다. 아마도 흘러간 세월이 그에게서 믿음을 앗아간 것 같았다. 오늘도 바지와 팬티를 혼자서 반쯤 내려 엉덩이에 걸치고 누워있다. 잠시 후 무언가가 그의 허리에 놓아진다. 허리가 따뜻해지며 보온감을 느낀다. 그리고 치료사는 밖으로 나가 버린다. 이제 그는 커튼 안 속에 혼자 누워있다. 그러면서 잠시 생각에 빠져든다. 그가 왜 이렇게 매일 병원에 오는 신세가 되었을까 하는 한탄이 저절로 우러났다. 그래서 옛 기억이 요통처럼 고통스럽게 떠올랐다.

 

그에게 요통이 찾아온 것은 군대에서의 사소한 일 때문에 비롯됐다. 그가 천육백 원과 요통을 교환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날 사병 식당 선임하사가 여단장의 휴양소에 있는 돌을 집으로 운반해 달라고 제안했다. 선임하사의 제안은 임무 완수 후 현장에서 막걸리 한 통을 사주겠다는 것이었다. 벤 트럭이 진입할 수 있는 곳까지 나르면 그만이다. 그는 덩치에 비례할 만큼 힘이 폭발적이지는 못했다. 그에게는 막걸리를 마시고야 말겠다는 욕심만큼은 강했다. 그래서 그가 꾀를 낸 것은 힘센 후임 사병과 같이 작업을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 후임 사병은 체육학과 출신으로 상당한 괴력의 소유자였다. 대대에서 그와 팔씨름해서 이긴 사병은 없었다. 더 나가서 씨름에서도 그 후임 사병은 패배를 몰랐다. 아마도 그가 선임하사의 제안을 단번에 받아들인 것도 속내에 그 후임 사병에 대한 믿음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단계 앞선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간단히 해치우고 노동의 보상과 기쁨으로 막걸리를 마시겠다고 자못 엄숙하게 결의까지 그는 한다. 둘 다 어느 정도의 주량은 있어서 탈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었다.

 

현장에 도착해서 선임하사가 그들에게 가리킨 돌은 두 개였다. 하나의 돌은 여자 유아 세 네 살 정도 크기였다. 그 돌은 가볍게 벤트럭에 실었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그놈은 크기도 초등학생쯤이었고 돌 모양새도 이상했다. 옆에서 보면 남근처럼 우람해 보였고 앞쪽에서 보면 마치 줄기가 떨어져 나간 송이버섯처럼 가냘프게 다가왔다. 선임하사의 취미도 남다르다 생각했지만, 그는 선임하사의 기호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막걸리였다. 술에 대해서는 그도 남다른 애착이 있었다. 첫 휴가 나오면서 그가 가장 먼저 시도하려고 했던 짓은 링캘 병에 소주를 담아서 주사를 맞고 싶어 했다. 그 정도로 술에 대한 애착이 강했기 때문에 선임하사의 제안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그 돌을 힘들게 계곡에서 찻 길까지 여러 번에 휴식을 거쳐 트럭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선임하사가 사준 막걸리 한 병을 단번에 마셨다. 막걸리를 주문하면 김치가 덩달아 나왔다. 그 김치 맛은 그가 지금껏 먹어본 그 어떤 김치보다도 맛있다고 그의 인상에 깊게 박혀있다. 선임하사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막걸리를 한 병 더 사주었다. 그 순간 그에게 다시 한번 떠오른 생각은 돌을 나르기를 참 잘했다였다. 계약은 한 병인데 한 병을 더 사주다니 대포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때까지 그는 막걸리에 대한 포만감 그 자체였다. 그 기분을 간직한 채 그는 잠자리에 들었다. 막걸리만큼이나 걸쭉하고 알찬 꿈을 기대하면서 그는 잠을 청했다.

 

새로운 문제는 다음 날 아침에 발생했다. 그가 일어나지를 못한다. 막걸리를 많이 마셔 속이 아파서 그런 것이 아니라 허리가 너무 땅기기 때문이다. 그 당시 그의 허리는 그다지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그는 위병소 근무로 하루에 여덟에서 열 시간 정도 보초를 섰다. 그 여파로 허리가 조금은 편하지 않았다. 위병소에서 같이 근무하는 동료 중에 조금 심한 친구들은 후송을 간다. 무릎에서 물을 빼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그가 그때 완전 말년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로부터 약 십 년간을 그는 요통과 전쟁을 치렀다. 요통으로 유명한 정형외과 병원, 한방병원에 이르기까지 두루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한방이든 양방이든 진단 공통점은 디스크는 아니고 요통이라는 것이다. 그의 병명은 뼈가 휘어서 생기는 문제이고 단기간에 치료는 불가능하고 꾸준한 재활훈련과 곧은 자세를 어느 병원이든 강조한다. 주의사항은 대략 이러했다. 무거운 물건 들지 마라, 되도록 운전하지 마라, 늘 바른 자세를 취해라, 허리 보온대를 항상 차라, 잠잘 때 무릎에 베개를 끼고 자라, 그런데 이러한 주의사항을 그가 평소에 지키려고 애를 써도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사회 생활하면서 운전을 안 할 수 없고 늘 바른 자세를 간직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보온대를 차면 가뜩이나 나온 그의 배가 더욱 볼록해져 볼썽사납기 그지없다. 물론 허리가 아픈데 그깟 모양새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 그는 임신 팔 개월이라는 배만은 숨기고 싶어 했다.

 

이런 그의 사실을 알고 있는 친구들은 그가 걱정이었다. 그가 남자구실이나 제대로 할까 하고 그의 친구들이 모이면 그런 기우들을 내비쳤다. 어쨌거나 친구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요통과 함께 그는 결혼했다. 그는 신혼 첫날부터 요통으로 보냈다. 첫날밤은 신부가 마치 마사지사로 변신한 것처럼 신부의 손이 그의 허리를 맴맴 돌면서 진통제를 발라진다. 신부의 손은 그의 허리에서 여러 모양을 그리면서 일정한 속도로 밀려왔다. 여느 때의 병원에서 받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허리는 아프지만, 원형을 그리는 신부의 손 빨라질수록 요통에 대한 관념은 사라지고 아래에 힘이 들어감을 직감한다. 그가 이런 신세가 된 것은 결혼 전날 집안의 일을 돕겠다고 무거운 짐을 날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날밤 잠자리에서 요통이 시작되어 마사지와 함께 그의 첫날밤은 깊어만 갔다. 모르긴 몰라도 평소 그의 품성과 성격으로 보았을 때 허리가 끊어져도 첫날밤은 성대하게 보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술만큼이나 첫날밤에 집착했다. 첫날밤의 무리는 다음 날 바로 찾아왔고 신혼여행을 요통처럼 보냈다.

 

그는 얼마 전부터 마라톤을 시작했다. 마라톤 입문 동기도 거래처 담당자가 마라톤 애호가라 그와 마라톤으로 공유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을 뿐이다. 접대 문화에 대해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특히 술 접대에서 차수가 늘어날수록 수주액이 그 자리에서만 늘어날 뿐이라고 그는 여겼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접대 방식으로 고민하던 시간에 우연히 계기로 마라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뛰었다. 이제 십일 개월 정도 흘렀다. 예전보다 그의 체중이 많이 감소했다.

 

그런 그에게 요즈음 늦잠이 찾아왔다. 그는 늦잠을 자고 싶어도 자지를 못했다. 전혀 부지런하지도 않은 그가 보통 다섯여섯 시면 일어났다. 요통 때문에 더 이상 누워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베개를 벽에 기대어 모자라는 잠을 청한다. 일요일도 그의 생각과 달리 일찍 일어난다. 그런데 그에게 늦잠이 찾아온 것이다. 늦잠이 그에게 가져온 가장 큰 행복은 요통으로부터의 해방이다.-그것은 마라톤이 그에게 준 많은 선물 중에 첫 번째라고 그는 단언한다. 마라톤 입문 오 개월 정도부터 그가 늦잠을 잘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그는 오늘도 그 선물에 감격해한다. 어느 마라톤 글에서 "마라톤은 신이 내린 보약"이라는 그 문구가 떠오른다. 그 보약은 그에게 기꺼이 찾아왔다. 보약을 많이 먹으면 밤은 더욱 즐겁다. 이제 그 보약을 정말로 사랑해 볼까 한다. 그리고 그는 편지를 보내볼까 한다. 사랑하고픈 마라톤에게 쓴다. 어쩜 이것이 첫 번째로 그가 마라톤에게 보낸 사랑의 고백 편지 같다.

 

그는 아직 요통에서 완벽한 해방을 맞이하지는 않았다. 아직도 요통의 상혼들은 곳곳에 남아있다. 배둘레헴의 증표들,-이 배 둘레 살과 비만이 요통의 원인이라는 생각을 최근에서야 하고 있다. 특히 배둘레헴의 특징은 상반신이 하반신에 비해 반수 이상을 차지한다. 과반수를 균형으로 옮기는 작업, 즉 세력균형, 그것은 요통의 완전 해방이다.-그는 오늘도 외쳐본다. 외세의 힘을 얻지 않고 완전한 자주 해방할 때까지 요통과의 투쟁은 계속되리라. 그리고 배둘레헴에서의 완전 해방의 그날까지 끝까지 투쟁하노라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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