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잼보리 대회를 보면서 초등학교 때 보이스카우트 추억을 그리다
새만금잼보리 세계스카우트 대회 기사를 보면서 나의 보이스카우트 시절이 떠오른다. 화려한 유니폼과 얼룩덜룩한 스카프,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의 끝을 붙여서 하는 독특한 인사법이 내 인상에 남아 있다. 여름 방학이 되면 매번 스카우트 대회가 곳곳에서 열렸다. 지구별, 지역별로. 방학 때가 되면 학기 중 보다 더 바쁘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 방학 때 남양주시 마석에서 스카우트 대회가 개최되었다. 새만큼 같은 세계대회는 아니고 서울대회 정도의 규모였다. 2박 3일, 이 당시는 엄마들이 상당수 함께 참여했다. 매달 적어도 한 번은 야외활동이 있었고 방학에는 성동 전체 지역의 초등학교가 다 모여서 보이스카우트, 걸스카우트가 함께 하는 캠프나 대회를 엄마들과 몇 박 며칠을 함께 했다. 엄마들의 업무는 아이들 식사 준비와 수시 때때로의 간식 제공이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한 극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운동도 아니고, 공부도 아니고, 확실한 취미를 익히는 것도 아닌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계속 지원해 준 것은 수익성을 따지지 않는 부모 마음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5학년이 되어서는 보이스카우트 숫자의 희소성 때문에 난 전교 임원도 하게 되었다.
한편, 스카우트 대회에서 최고의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은 학교별 장기 자랑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 우리는 ‘세계 의상대회’라는 타이틀로 꽤 오랜 시간 준비했다. 각본은 서울 동명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대회가 열리고 그럴듯한 양복을 입은 사회자가 각국의 참가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참가국은 일본, 미국, 중국, 영국, 아랍, 아프리카 등으로 각 역할은 6학년에게만 주어졌다. 6학년은 스카우트 각 조를 맡고 있는 보장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전통이었다. 난 아프리카인으로 등장했다. 얼굴은 부족처럼 덕지덕지 초콜릿과 화장품을 이용해서 검게 분장했고, 상반신은 맨살에 조개 목걸이를 걸고 가슴팍에 한 줄을 그었다. 머리는 아프리카 특유의 곱슬을 표현하기 위해 백으로 올려서 마구 흩트렸다. 하반신 아래에는 우선 반바지를 입고 아프리카 특유의 복장인 나일론 끈으로 줄기줄기 엮어서 연출하였다.
“한국에 온 첫인상이 어떻습니까?”
아빠 양복을 입고 나온 사회자의 첫 질문과 나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최대한 알아들을 수 없는 말투와 억양으로 손짓 발짓 다 써가며 대답했던 그때의 즐거움이 아직도 남아있다.
내 복장이 조금 멀리서 보면 어울린다고 다른 학교 선생님이 말씀하실 정도였다. 우리 학교가 최종 심사 결과 대상을 받았다. 아마도 튀는 복장, 준비된 연출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온 듯하다. 이것이 화제가 되어 그 후 학교에서도 여러 번 의상 대회를 재현했다.
여름 방학 때 좀 더 규모가 큰 스카우트 대회에도 참가했다. 역시 2박 3일이었다. 이때도 핵심은 장기 자랑이었다. 장기자랑은 세월과 상관없이 롱런하는 프로그램임에는 틀림없다. 난 장기자랑 시간 때 연극을 했다. 그 당시 삼촌이 연극을 신촌 다방에서 했다. 난 엄마와 삼촌의 연극을 자주 보러 갔다. 극장은 다방 한가운데 아주 작은 동그란 무대였다. 무대 크기는 1평 남짓할 정도로 정말 작았다. 보통 2인 극이었다. 나는 삼촌의 연극에 약간의 응용을 더 해서 그대로 따라 했다. 상대방 역할까지 같이 했다. 즉, 1인 2 역이었다. 오른쪽에서 몇 마디 떠들고 바로 왼쪽으로 몇 미터 옮겨서 몇 마디 던졌다. 대사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따발총을 발사하며 무지 빠른 말로 세상에 대해 풍자하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대사를 빨리 던졌다. 훗날 생각했다 혹 이 연극이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아니었을까? 김영진 주연의 연극을 최초로 선보인 셈이다. 그런데 왠지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크게 웃고 박수를 쳐주었다. 그 결과 나에게 대상이라는 영광을 안겨 주었다. 장기자랑은 밤에 했는데 다음날 다른 행사 때 타 학교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나를 알아보고 눈길을 주셨다. 그때의 기분은 말도 못 하게 좋았다. 겉으로는 표현을 못 했지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더욱 즐겁고 열심히 하게 되었다.
또 하나의 추억은 이때 창의적으로 보이스카우트를 이끌었던 최기호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선생님이 기획하신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다. 학교에서 텐트 치고 하룻밤 자기, 스카우트가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하신 구명 활동 익히기, 북한산 2박 3일 산행, 관악산 1박 2일 산행, 불암산 같은 숱한 당일 산행이 있었다. 선생님이 산을 좋아하셔서 보이스카우트와 함께 했는데 몇몇 산행은 6학년들만 참여했다. 선생님은 훗날 내 결혼식에 주례를 맡아 주셨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보이스카우트는 이렇듯 내 삶에 있어서 '화양연화'라 할 수 있다. 특별한 경험과 친구들, 창의적인 활동들, 교과서 밖의 새로운 세상에서 꿈을 꾸고 나를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새만금에서는 “2023년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가 열리고 있다. 현재 4만 명의 청소년들이 모여있는 새만금은 폭염과 상한 음식 등 열악한 환경으로 온열 병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왜 하필 이렇게 더운 여름에 대회를 강행해야 했을까 하는 등의 불만 기사가 터져 나온다. 뉴스를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잼버리 대회가 세계 청소년들에게 선사하는 추억은 그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과 꿈이 되어야 한다.
부디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반전이 일어나 유종의 미를 잘 거두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회를 유치하고 준비했던 문재인 정부나 현재 시점에서의 윤석열 정부를 두고 누가 더 큰 귀책이 있는 가로 책임 논쟁을 벌이는 것은 나중이란 생각이 든다. 158개국 약 사만 삼천 명의 청소년들이 12일간 새만금에서 벌어지고 있는 잼버리대회를 안전하게 잘 치러내는 것 자체가 급선무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우선 합심해야 한다. 그래도 반가운 소식이 있다. 불교조계종은 폭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를 지원하기 위해 전국 170여 개 사찰 시설을 야영이나 숙박용으로 개방하기로 했다는 뉴스이다. 조계종은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에 참가한 각국의 청소년들이 남은 기간보다 편안하게 한국의 전통문화와 역사, 자연을 체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지원하고자 한다"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러한 뒷받침이 이어져서 지금 참여하고 있는 각국의 스카우트 청소년들이 훗날 한국에서 참여했던 새만금 대회를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노트로 기억될 수 있게 혼신의 노력을 다해주기를 모든 관계자에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