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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의 작업-떼와 싸리비

작업이란 전혀 몰랐던 인간이 군대에서 작업하면서 좌충우돌하는 이야기



왼쪽 경비소대 기수단, 나의 임무 경비소대 위급시 여단장 보호가 주 임무, 수기사(맹호부대)에서 훈련소 수련회 날 아버지가 면회 오셨음




며칠 전 철원에 갔다가 일부러 운천 시내를 잠시 들렀다. 나는 운천, 철원과 인접한 전격 부대, 제1기갑여단에서 군대 생활을 마쳤다. 의정부 105보충대를 거쳐서 6주간의 훈련은 수기사(수도기계화사단, 맹호부대) 124기였다. 신기하게도 학번은 기억 못하면서도 군번은 지금도 또렷하다. 23295721. 지금 내 기억이 그 시절로 돌아간다. 본부대에 속한 경비소대원인 나의 보직은 위병으로 주로 정문 경비가 임무였다. 갓 입대한 이등병이라 정문에서 근무하기 전 본부대에서 생활할 때 이야기이다. 본부대에서는 낫질, 잡초 뽑기 같은 수많은 작업을 해야 했다. 오늘의 작업을 사병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인사계가 발표한다. 난 남들보다 약간 늦게 군대에 갔다. 재수에 삼학년까지 마치고 갔으니 보통 2년 정도는 늦은 편이었다. 입대는 늦었지만, 제대는 자그마치 97일이나 덜했다. 문무대 교육 45일, 전방 교육 45일, 7일은 특명 때문이었다. 요즘 ‘공정’의 잣대로 따지면 이런 특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보다 일찍 군대를 들어가 제대한 친구들이 입대한 나에게 각종 조언을 해주었다. 또한 필수품이라며 군화 물집 예방하라고 티눈 밴드, 파스 등을 챙겨주기도 했다. 하지만 인사계에 대해서 조언해주는 친구는 없었다. 우리 부대에서는 군대 생활은 인사계로 시작해서 인사계로 끝난다고 할 정도로 사병 생활에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었다. 그러한 인사계가 오늘의 작업 지시를 하달했다. 



“오늘은 산정호수 근처 훈련장에서 떼를 떠오자. 그 떼로 방벽을 보수한다.”


군대 트럭 뒤 의자에 경직된 자세로 한 손에는 M16 총을 무릎 사이에 꼭 잡으면서 앉아 있었다. 도착과 동시에 인사계가 구체적인 작업을 지시한다. 


“각자 떼를 떠서 이곳에 쌓는다. 시간은 지금부터 두 시간. 실시”


실시라는 복창과 동시에 나 역시 삽을 들고 그 넓은 훈련장을 돌아다녔다. 사실 난 서울에서만 줄곧 살아와서 떼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그렇다고 눈치가 빠르거나 손 맵시가 있는 편은 더욱더 아니었다. 이날 나와 함께 작업을 진행한 인원은 말년 병장 한 명과 나보다 이삼 개월 선임자였지만 계급은 같은 작대기 하나의 이등병들이었다. 선임 김 모 이등병의 작업을 슬쩍 쳐다보았다. 풀이 우거진 곳에서 삽을 '기역' 자로 각지어서 꽂고 다시 삽을 뽑아서 ㄷ자 모양으로 만들어서 흙을 파는 행위를 아주 천천히 슬로비디오처럼 반복해서 했다. 나 역시 똑같이 따라 했다. 몇 번 그 작업을 반복하니 떼 모양 비슷한 것이 삽에 자동으로 얹어지는 듯하다. 스스로 기분이 좋았다. 나름 작업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아주 아주 정성 들여 만든 작품처럼 떼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 떼를 인사계가 지정한 장소로 옮겨 놓았다. 뒤에 보니 인사계가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갑자기 인사계가 소리를 지른다. 


“야, xx놈이, 넌 이게 떼야?, 잡초지, 떼도 몰라. 이걸 그냥 삽으로 확 떼를 떠 버릴까?”


순간 당황스러웠고 무시무시한 표현에 나는 무척 쫄았다. 역시 사람에 외모와 언어는 비례한다고도 생각했다. 선임 이등병과 똑같이 따라 했는데 떼가 아니라고 하는 지적이 쉽게 이해는 안 되었다. 그렇다고 반박도 못하는 처지였다. 그래서 두 가지 떼를 관찰하듯 째려보았다. 겉모양은 둘 다 푸르른 색을 띠었다. 분명 그랬다. 굳이 차이라는 것을 따진다고 하면 키 높이에서 인사계 지적한 나에 떼 아니, 잡초가 좀 더 높아 보였다. 그것은 흙의 두께가 그만큼 더 쌓여있기 때문이었다.



떼 작업이 있은 며칠 후 이번에는 철원 동송으로 싸리비 작업에 나갔다. 산에서 싸리비라는 나무의 잣 가지를 찾아서 낫으로 자르고 모아 현장으로 가져갔고 부대에서 작업 시간에 싸리비 빗자루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봄에 만들어서 겨울까지 사용해야 하는 싸리비의 작업 양을 나는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트럭을 타고 꽤 오랜 시간을 달렸다. 선임자들은 신나 했다. 또한 내게 운도 좋다면서 말한다. 이등병이 차 타고 부대 밖으로 외출을 다 한다고 말이다. 바람도 쐬고 민간인도 구경하고 구멍가게도 운 좋으면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한다. 트럭 뒤에서는 사병 중에 선임자가 최고로 끗발이 있었다. 그렇게 그날의 싸리비 작업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야산에 도착했다. 


트럭에서 대원들이 하차하는 순간 인사계의 작업 명령이 떨어졌다.


“오늘은 각자 싸리비 열 개씩 만들 재료들을 갖고 온다. 점심도 여기서 먹는다. 어쩜 저녁도. 실시!”


2인 1조로 조를 짜준다. 난 삼 개월 선임자와 한 조가 되었다. 그 고참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올라갔다. 고참은 등산하듯 산을 재빠르게 계속 올라갔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싸리비는 이렇게 높은 곳에 있나 보지’ 역시 싸리비 작업을 해본 고참의 세계는 뭔가 틀려. 이제는 다른 조들도 안 보일 정도까지 계속 올라갔다. 거기다 산의 경사가 직각에 가까운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작업도 하기 전에 싸리비 작업해서 들고 내려갈 걱정부터 들었다. 산에 올라올 때 인사계는 친절하게 우비 하나씩을 챙겨주었다. 비가 올 때 대비하라고 준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 싸리비를 잔뜩 싸 오라는 뜻이었다. 선임병이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게를 잡고 한마디 뱉는다.


“지금부터는 자유다. 고참들 없는 세상에서 딱 너와 나 둘이서만 작업하자. 얼마나 좋냐? 아무도 없으니, 같은 이등병끼리, ”


“김 이병님, 싸리비 작업은 이번이 몇 번째이세요?”


“나, 처음인데”



그 말에 떼 작업의 악몽이 떠올랐다. 선임의 패기 어린 한마디도 나의 불안감을 이기지 못했다. 그래도 둘이서 열심히 싸리비 작업을 했다.


그냥 무턱대고 자르는 것이 아니라 좀 가늘고 날씬하고 키가 크고 나름의 혜안을 갖고 선별해서 작업을 했다. 군대는 반복 교육이라고 했다. 작업이 몸에 익을 정도로 꽤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덧 우의에는 싸리비를 만들 재목들이 제법 쌓여 가고 있었다. 이때 선임 김 이병이 휴식까지 준다. 우비에 싸여 있는 싸리비에 기대면서 대한민국 국방부의 시계는 왜 이리도 더디 가는가를 토론하며 담배 한 모금 장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군바리 행복이 무엇이겠는가? 내 몸 편하면 최고 아닌가? 딱 지금이 그러했다. 


담배를 맛있게 피우고 있는데 한쪽에서 사람의 소리가 들린다. 다름 아닌 선임 고참 이 일병의 목소리였다.



“야, 너희들 뭐해, 아래에서 난리가 났어. 너희들 안 보인다고. 소리 못 들었어?.”


우린 둘 다 사실 시계가 없었다. 원래 고참 이병의 계획은 빨리 작업하고 늘어지자는 것이었는데 약간에 시행착오가 발생한 듯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가 작업한 양이 상당했다는 점이었다. 그것으로 위안으로 삼으며 조금 빠른 걸음으로 내려왔다.


“자식들, 작업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군. 양은 많네”


아! 인사계의 저 한마디에 걱정이 사그라진다. 인사계가 모처럼 인정하는 듯한 말을 한다. 우비를 인사계 앞까지 질질 끌고 가서 선임 이등병이 목소리 크게 신고한다.


“작업 끝나고 돌아왔습니다. 전격.”


전격이라는 구호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대구 사투리를 아주 걸쭉하게 하는 인사계의 입에서 군대 구호보다 큰 소리의 욕설과 탄식이 터져 나온다. 



“야 XXX 놈아, 넌 이게 싸리비냐 각목이지. 뺀치카 떼냐? 난로에 나무가 없어?. 내가 너희들 같은 놈 때문에 늙는다. 내 얼굴 봐라 누가 날 삼십 대 후반으로 보겠냐?”


그랬다. 그의 외모는 그냥 오십 대 후반이었다. 얼굴 색은 검었고 무엇보다 말투가 완전 어르신이었다. 따져보면 나와 열 대살 차이였지만 우리 아버지 보다도 더 윗사람처럼 보였다.


작업 시간 때문에 저녁을 현장에서 준비했는데 큰 버너에 들통을 얹어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그 냄비에 대고 인사계가 한마디 한다.


“야 XXX 놈들아, 싸리비와 나무도 구분 못 하는 놈들아. 라면이나 실컷 처먹어라.” 


그러더니 라면에 침을 확 뱉는다. 


“이게 바로 싸리비가 아니고 나무다” 하면서 휘젓는다. 


이어서 “요게 바로 싸리비다”하면서 침을 퉤 뱉고 싸리비로 또 휘젓는다. 


싸리비는 푸른 밤색을 띠면서 회초리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날씬했고 나와 김 이병이 작업 해온 나무는 주로 색깔이 거무칙칙했고 두께가 싸리비에 비해서 조금 더 두꺼웠다.


김 이병과 난 그저 멍하니 쳐다보다가 인사계가 침 뱉은 라면을 떠먹었다. 그 후 각목은 어떻게 되었을까? 솜씨 좋은 선임 병사가 있어서 각목과 싸리비를 같이 엮어서 그래도 빗자루로 사용했다. 각목과 싸리비의 융합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대부분 이등병이 그렇지만 나 역시 군대에서, 어수룩한 사람을 놀림조로 호칭하는 딱 그 ‘고문관’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난 몸으로 하는 일, 거기다 손재주는 전혀 없다. 카톡방에 있는 우리 전격 부대 전우들에게 오늘의 에피소드를 전하면서 빠른시간 내에 옛 추억을 안주 삼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언젠가부터인가 군대 꿈을 꾼 날은 기분이 참 좋다. 


”신고합니다. 오늘 이등병의 작업, “떼와 싸리비”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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