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처럼 술술 읽히는 나의 이야기에 점수를 주다!
대학원 입학할 때 자기소개서와 입학계획서 두 종을 제출했다. 그 결과 입학 할 때 전체 수석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아마도 타 원우들이 몇 자 적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은 듯하다. 그래서 입학식 때 입학선서를 하게 되었다. 전체 수석이라는 타이틀은 대학원 내내 나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문화예술 전문 예술인 또는 직업이 아닌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성장배경 및 가치관 (1,000자)
"대학 연극반에서의 기획은 직장으로 사회봉사로!"
저의 대학 생활은 연극반이 전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열정적으로 시작한 연극반 생활은 기획이 무엇인가를 제게 알려 주었습니다. 2학년 때 연극반 회장이면서 기획을 맡게 되었습니다. 평일에만 하던 공연을 수업이 없는 토요일 2회 공연으로 연장했습니다. 광고에서도 포스터, 티켓 등에 변화를 주어 역대 공연 중에서 최다 수주라는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홍보물도 직접 기획해서 만들었습니다. 거기다 관객은 3일 연속 만석이었습니다. 관객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이때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 덕분에 공연이 끝나면 연출과 배우가 박수받을 줄 알았는데 이번 공연은 기획의 작품이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대학 연극반에서의 기획 생활을 바탕으로 선거 기획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1회 지방자치 선거에서 성동구청장에서 출마하신 후보님과 1년 반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선거를 진두지휘했습니다. 그래서 지역의 공약, 선거홍보물, 자원봉사자 역할, 등 모든 분야를 기획했습니다. 또한 누구보다 후보자와 가장 가까운 가족이 지지하는 후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들이 쓴 사랑스러운 편지를 홍보물에 삽입했습니다. 홍보물이 인쇄되고 나서 생각지도 않았던 몇 개의 중앙일간지가 우리 후보의 기사를 실어주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선거 기획에서 얻은 기획력과 지역인맥을 바탕으로 광고기획사를 97년 창업했습니다. 처음 사업 시작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일본 전시 투어에 갔다가 그곳에서 인쇄 즉석편의점을 보았습니다. 그곳에 아주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실천해서 ‘프린트하우스’라는 상호로 왕십리에서 개업하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바로 IMF의 시작이었습니다. 경험도 없이 직원도 여러 명을 두고서 출발했지만, 매출이 좀처럼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원인은 사업 아이템의 차별성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사업의 기획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인쇄 즉석편의점, 즉 경인쇄 사업을 모두 던지고 새롭게 재창업했습니다. 광고기획사로 새롭게 재출발했습니다.
직장경력(사회경험), 사회 봉사 활동 (1,000자)
“다양한 네트워크에서 ‘생각을 다르게, 기획을 다르게’”
사회에서 총 세 번의 연극 공연을 올렸습니다. 세 번의 공연 연습은 모두 제 사무실이었고 내가 맡은 역할 역시 재학생 때처럼 기획이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왕십리 소월아트홀에서 ‘택시드리벌’이라는 연극을 공연했습니다. 이때 성동구청의 동아리 지원으로 그 전의 공연과는 달리 비용과 홍보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500석이라는 비교적 큰 극장이 공연마다 관객들로 가득 찼습니다.
2007년 성동구에서 ‘성동 CEO 아카데미 1기’라는 지역에 대표들이 참석하는 일종의 대학의 최고경영자 과정 비슷한 것을 개설했습니다. 저 역시 추천을 받아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지역 인맥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 과정이 뿌리가 되어 상공회, 라이온스 모임 등 지역의 네트워크 모임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서울국제라이온스협회 354-D지구 서울경성라이온스클럽에 CEO1기 대표님의 추천을 받아서 입회했습니다. 라이온스는 봉사 모임입니다. 봉사라 하면 금전적인 봉사와 함께 그것을 증명해 보여주는 사진 찍기가 꼭 있었습니다. 봉사도 다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수사회복지관과 MOU를 맺으면서 매달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클럽 회장을 맡으면서 물품 후원도 물론 하고 있지만 온몸을 움직이는 자원봉사가 훨씬 더 큰 비중을 두고 기획했습니다. 많은 회원이 현재까지 지속적인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봉사하면 할수록 저에게 든 생각은 수요자인 어르신들이 만족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했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실적인 문제에서 공급자 위주의 봉사를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CEO 1기 추천으로 서울상공회의소 성동구상공회 임원이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15년부터는 부회장 겸 기획운영위원장이 되어서 상공회에 전반적인 상황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시작한 사업이 문화동호회 발족이었습니다. ‘우리’를 묶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부부 동반으로 동호회를 끌어가면서 문화와 예술을 즐기고 있습니다.
수상실적(자격사항, 컴퓨터활용능력, 어학능력 등) (1,000자)
“수상은 사치, 진실한 다른 봉사!”
2007년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된 각종 사회 봉사 활동으로 말미암아 그곳에서 크고 작은 상을 여러 번 수상했습니다. 성동구청장상, 국회의원상,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상, 국제라이온스협회 354-D 지구 총재상, 아주대학교 총장상 등 다수의 상을 받았습니다.
수상에는 나름의 이유는 있습니다. 저의 고장 마장동은 주민자치 시범 마을입니다. 주민자치 위원들이 마장동에 예산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것이 시범 마을의 핵심입니다. 그 결과 주민자치에서 여러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마주보고’라는 카페, 등 주민예산의 수입 지출을 관리 기획하는 것이 주민자치의 주된 업무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인 모임보다는 다양한 일이 많습니다.
경성라이온스 회장을 맡으면서 가장 큰 저의 화두는 봉사에 필요한 예산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몇몇 흔히 말하는 재력 있는 회원들의 협찬으로 봉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으로만 예산을 짜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예산은 부족하지만, 반드시 해야 할 봉사와 할 수 있는 봉사는 참으로 많다는 사실을 알기도 했습니다. 우연히 유한킴벌리와 서울그린트러스트가 함께하는「2014 나누는 꿈 꾸는 커가는 기금」 공모전에 제안서를 만들어서 제출했습니다. 공모전에 당선이 되어서 용답동 독거 어르신들에게 라이언스 회원들이 함께 만든 화분을 나누어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가장 큰 보람은 이런 봉사는 처음 받아본다고 하시면서 어르신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할 때였습니다. 라면, 쌀 같은 물질 봉사가 아니어서 좋았다는 말씀과 애견은 부식이라도 필요하지만, 화분은 먹는 것도 없어서 더욱 좋다고 말씀하십니다. 화분이라는 나눔의 봉사가 지역의 문화로 퍼짐을 느꼈습니다.
사무실 한쪽 공간에는 이런 수상패들이 하나둘씩 늘어났습니다. 봉사의 경험이 점차적으로 늘어나면서 수상의 의미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보다 봉사의 진정성이 훨씬 더 중용한 가치라는 사실입니다. 봉사에는 등급과 실천이 아닌 진실한 실천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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