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철학자 마틴 부버의 관점에서 본 인간관계를 나에게 적용해 보자
인간은 출생부터 관계 맺기를 하면서 살아간다. 관계 맺기는 인간에게 ‘나’의 죽음 직전까지는 늘 함께해야만 하는 숙명적인 과제이다. 그런데 이 인간관계로 인해서 때로는 상처받고 아프고 우울하기까지 한다. 반대로 흥이 나고 즐거운 행복한 인간 관계도 있다.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유대인 철학자 마틴 부버(1878-1965) 사상을 잠시 들여다 본다.
저서[나와 너]를 통해서 타자와 타자와의 진정한 관계를 사유했던 마틴 부버, [존재와 시간]으로 유명한 마틴 하이데거의 연인이었던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내가 본 유대인 철학자 출신 중에 가장 존경받고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 역할을 하는 철학자는 마틴 부버 한 명뿐이라고 말했다.”(신응철 교수, 숭실대학교 문화철학 전공)
저서 [나와 너] <나-그것>의 관계에서 ‘나’와, <나-너>의 관계에서 ‘나’만 있을 뿐이다.(부버 『나와서』 8쪽)이 말은 사람은 홀로 있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와 더불어 있는 존재라는 의미가 된다.
<나-그것> 관계에서 다른 사람은 ‘그것’, 즉 비인격적 존재가 된다. <나-그것> 관계는 다른 사람을 하나의 사물과 같이 다루어 자기의 수단으로 삼거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를 조건과 조건, 사물과 사물 사이의 문제 같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부버 『나와 너』 7쪽)
우리는 어떤 경우에 비인격적 존재가 될까? 사람이 아닌 사물로 취급받을 때는 언제일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쉬운 예를 들어 보겠다. <나-너>의 관계의 대표적인 사례가 일반적으로 모임을 들 수가 있다. 그 모임에서 오늘 ‘A’라는 식당에서 정기 월례회를 갖는다고 가정하자. 4명씩 앉는 테이블은 여섯 개 정도 차지하는 약 삼십 명 정도가 모이는 모임이라 상상해 보자. 여섯 개 테이블 중에 두 개의 테이블에 의전을 위해 지정석으로 따로 마련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보이는 명찰이 있어서 내 좌석에 앉는 것과 유사하다. 행사에 따라서는 때로는 명찰이 있기도 하다. 보통 회장과 소수의 임원진과 초대 귀빈이 메인 좌석을 일반적으로 차지한다. 수백 명이 모이는 행사도 아니고 기껏해야 이십여 명 만나는 모임에서도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봉사클럽으로 잘 알려진 L, R 클럽도 필자의 경험으로는 똑같다.
같은 테이블 좌석에 앉은 VIP 회원들은 인간관계에서 볼 때 그 순간은 연대가 강할 수 있다. 또한 일반 회원은 술로 소맥을 마시는데 위스키를 마신다면 더욱더 그럴 것이다. 이 연대는 지속가능할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임에서 의전이란 형식으로 깍듯한 대우를 한다는 의미는 ‘너’를 최고의 ‘영원한 당신’으로 대우한다는 뜻이다. 보통 이런 인간관계가 행복한 관계라고 말한다. 내가 최고로 신뢰하는 ‘너’는 내가 믿는 종교의 부처님, 하느님과 같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 착석하면 대접받는 듯 보이고 기분이 좋은 것이다. 반대로 메인 좌석에 앉지 못한 사람들을 대하는 시선은 it 즉 ‘사물’인 것이다. 딱 그 모임에 주관자가 <나-그것>의 관계에서 나를 사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세계를 향해서 보통 이중적 태도를 보이게 된다. 어떤 때는 신(神)처럼 대우하다가 돌변해서 사물로 취급을 하기도 한다. 오늘 모임에서 찬조 또는 협찬을 하면 그 순간 신처럼 대우받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를 조건과 조건, 사물과 사물 사이의 문제 같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러다가도 어떤 이벤트로 인해서 인간관계가 충돌하게 되면 두 사람의 관점은 <나-그것> 관계로 변하는 것이다.
<나-너>의 관계에서 ‘나’는 ‘너’로 인해 비로소 ‘내’가 된다. ‘내’가 되면서 ‘나’는 ‘너’라고 말한다. 그래서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다. 특히 타자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격적인 부분이다. 나와 너 사이의 긴밀한 상호 인격 관계에서 우리는 인격으로서의 자신을 깨달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을 하나의 인격으로서 만나게 된다.(부버 『나와 너』 18쪽)
일반적으로 ‘나’와 너의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 우선순위로 볼 때 가정, 회사, 모임 순서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참된 삶이 아닐 때라 판단되면 부부는 헤어지게 된다.
자 오늘부터 실천해 보자. 가정에서 ‘나’의 배우자에게 인격적인 존재로 대우한다.
“당신(배우자)을 ‘영원한 당신’으로 부르겠습니다. 또한 내가 믿고 있는 종교의 신처럼 모시겠습니다.”
”당신(직장)을 내가 믿고 있는 종교의 신처럼 모시겠습니다. “
“당신(모임)을 내가 믿고 있는 종교의 신처럼 모시겠습니다.”
끝으로 부버가 서술하지 않은 ‘돈’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본다.
인간관계에서 ‘돈’은 <나-너> 행복한 관계를 만들기도 하지만 <나-그것>으로 이끌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후자가 훨씬 더 많다.
“돈을 버는 것은 참 어렵다. 지키는 것은 더욱 어렵다. 거기다 돈을 제대로 쓰는 것은 정말 어렵다 “
이런 격언을 우리는 많이 꽤나 많이 듣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 품격은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건강한 인간관계가 행복을 이끌어 준다.
"부버의 <나-너>의 관계와 가장 잘 부합하는 시 김춘수의 꽃"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마틴루버
#한나아렌트
#인간관계
#행복
#불행
#철학
#철학자
#김춘수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