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했던 말 중 가장 용감했던 말은 뭐니?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찰리 맥커시 글/상상의 힘

by 바람


"엄마가 진짜 좋아할 만한 책이야. 처음부터 안 읽어도 되고 어디서부터 시작해도 상관없어. 음악을 들으면서 읽는 책이야. 엄마 꼭 읽어봐."

딸아이가 대뜸 학교에서 빌려온 책을 내게 건네주고 유튜브에서 책과 함께 들을 수 있는 음악을 골라준다. 신기하게도 음악의 제목과 책 제목이 똑같다. 거기다 이국적이고 특이한 음악이 참 매력 있어서 책을 펼쳤다.


어떤 설명도 없이 표지에는 악보가 그려져 있다. 이 악보가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인가 보다.

어머 참신한데?


작가는 언제 어디를 펼쳐 읽어도 괜찮은 책을 만들고 싶다고 머리말에서 안내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페이지 표시가 없다. 딸아이 말처럼 한 편의 이야기로 연결되지만 언제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무리 없이 읽힌다. 한 페이지씩 읽고 생각하기 참 좋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삶이 가능해?

비교를 통해 좌절하고 분노만 하고 있다면 분명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겠지만 긍정적인 긴장과 자극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적당한 비교도 나쁘지 않다.


어렸을 때는 이런 뻔한 충고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좀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살피며 인정할 부분과 노력할 부분을 달리 받아들인다. 타고난 미모나 재능, 재산, 환경을 비교하며 좌절하기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미래를 계획해 나간다면 어제보다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20대 때는 학교나 직장 친구, 동료, 선후배에게 과한 친절을 베푼 적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고 난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얻었지만 제일 중요한 '나'에게 친절하지 않았기에 10대에도 겪지 않았던 늦은 사춘기로 20대를 방황하며 보냈다.


지금은 충분히 나를 아끼고 나를 받아들이고 나의 못난 구석도 인정하고 이해한다. 나이가 주는 여유로움인지,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인지, 책이 주는 마음의 평화인지는 몰라도 유연하고도 견고한 지금이 좋다.




잠을 청하지 못하고 이불킥하며 일어날 때는 화날 때가 아니라 얼굴이 화끈할 정도로 부끄러울 때다.

그때 그렇게 행동하지 말걸.

그렇게 말하지 말걸.

좀 더 참을 걸.

그냥 넘어갈걸.




회사에 다닐 때 자신의 신체적인 단점을 당당하게 말하는 후배가 참 멋져 보였다. 그 뒤로 사람과 친해지면 스스럼없이 나의 단점을 이야기했다.

"내가 머리숱이 없어서"

"내가 허리가 길어서"

"내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데 멋져 보이기는커녕 사람들은 단점만 기억했다. 멋져 보이려는 의도를 갖고 이야기하는 것이 멋없는 것이었다.


'머리숱이 지금보다 많고 다리가 길고 똑똑한 머리를 가졌다면?'을 아주 가끔 상상하긴 하지.




마음이 힘든 날은 두 시간 정도 빨리 걸으면서 몸을 힘들게 한다. 처음 한 시간은 마음을 돌보고 그다음 한 시간은 몸이 힘들어져서 마음이 아픈 걸 잠시 잊게 한다. 두 시간이 지나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꿀맛 같은'은 임팩트가 부족해) 휴식을 취할 때는 희한하게 마음 아픈 게 조금은 누그러져있다. 몸과 맘은 통한다.




딸이 있어서 나는 진짜 '으른'이 되었고, 조건 없이 주는 사랑이 있다는 걸, 나 자신을 희생하면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그 사랑이 너무 커 혹여나 아이에게 부담이 될까, 이 모든 사랑을 덤덤하게 표현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은 나의 일부를 전부인양 저마다 다르게 말한다. 좋건 나쁘건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되 그들의 평가로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 글에 '라이킷'(♥) 수치가 오르면 희희희(喜喜喜) 하긴 해.




지금의 나 - 지방 2kg + 책 2 만권의 지혜 + 로또 1장 = 충분한 나?




결국 사랑이다. 세상을 살게 하는 힘. 세상을 살아나가는 이유. 남편이 잦은 야근으로 몸이 고되고 힘들어도 그다음 날 새벽 묵묵히 출근하는 이유. 내 몸이 아프더라도 아이가 아프면 수퍼 파워가 생겨 아이를 돌보는 이유. 내가 딸에게 물려주어야 할 단 하나의 유산. 사랑.





11살 딸아이가 가장 인상 깊었다는 페이지 번호 없는 페이지. '도와줘'는 용기 없을 때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얼마나 이루고 싶으면 '도와줘'라고 했겠냐며 감동받았다는 부분이란다.


내가 살면서 했던 말 중 가장 용감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며칠 동안 생각해내려 해도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연봉 협상 때 상무님께

"5%는 안될까요?"


임신 중 역아에 임신성 혈소판 감소증이라 제왕절개를 해야만 한다는 의사 선생님께

"자연 분만은 안 되나요?"


해외여행 중 기념품 가게에서

"플리즈 디스카운트 플리즈"


생신상을 기대하시는 시어머님께

"어머님, 이번엔 외식하러 나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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