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오가는 도서관 게시판에 눈길이 가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매일 새롭게 시작하는 삶을 위한 인문학 수업'을 1주에 한번, 5주간 진행한다고 했다. 스스로를 나름 인문학적인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고, 강의 주제도 재미있어 보여 주저 없이 수강 신청을 했다.
강의가 있는 날, 오늘 옷차림은 운동할 때 늘 입던 편안한 티셔츠와 트레이닝 팬츠가 아니다. 예쁜 패턴이 들어간 블라우스에 검정 롱스커트를 선택한다. 노트, 필통, 텀블러가 들어있는 가벼운 나일론 가방을 메고 거울을 본다. 단정하고 지적인 분위기가 낯설어 보이면서도 만족스럽다. 마음은 벌써 도서관으로 향한다.
처음 만난 선생님은 인상이 참 좋고 목소리도 좋았다. 차분하면서도 집중력 있게 강의를 잘 이끌어주셨다. 수업은 강의를 신청하기 전에 살펴본 커리큘럼 대로, 자신의 인생을 뒤돌아보고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면서 '나의 인생 앨범'을 만드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런데 내가 문제였다. '인생'이란 단어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강의를 신청했던 거다. 앉아계신 수강생의 연령대가 평균 70세로 보였다. 인생을 이야기하고 남기고 싶어 하는 부모님 세대를 위한 강의였던 거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나를 설명하는 것. 일면식도 없는 30여 명의 사람들 앞에서 내가 어디서 태어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어디이며, 내 인생 최고의 음식은 무엇이고, 내 인생 최고의 인물은 누구였는지 등을 발표하는 것.
강사님은 앉아있는 순서대로 수강생에게 마이크를 건넸고 수강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것도 사람들을 바라보며 발표를 해야 했다. 나 같은 내향적인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수업 방식이었으나 발표자들은 마치 토크쇼에 초대된 연예인처럼 여유 있는 미소를 보이며 자기 자신에 대해 막힘없이 말씀하셨다.
그 순간 나의 스마트워치는 스트레스 지수가 매우 높다는 경고를 보내왔다. (올해 1월부터 착용한 스마트 워치에서 이런 알람을 보내온 건 5월에 딸아이가 영어학원에서 레벨테스트를 봤을 때가 처음이었고 오늘이 두 번째다. 하루에 2만보를 걸었던 날도 아니고, 남편과 언쟁을 벌이던 때도 아니고 학부모 총회 때도 아니었다. 지금 이 강의실에서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작고 까만 시계 그것 하나뿐이었다. 정말 스마트하다.)
학교나 회사에 다닐 때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거나 무대에 서는 것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주목받는 것을 적극적으로 즐기지는 않았지만 나서야 할 자리에서 주저하거나 빼기보다는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는 편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밖에서 활동하는 시간과 기회가 줄면서 사회적 관계 맺기 기능이 퇴보한 듯하다. 좋아하는 활동은 산책, 독서 등 혼자인 경우가 많았다. 요가나 악기도 단체로 배우긴 하지만 단체 속에 보장되는 익명성을 좋아했다. 그것이 편안했다. 그런 편안함이 익숙해지면서 본래 가지고 있던 내향적인 성격이 더 굳어진 것이라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나'를 드러내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내가 나를 모르는데 앞으로 남은 네 번의 수업을 감당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오늘의 질문들이 당황스러웠던 이유는 인생 최고의 장소, 최고의 인물, 최고의 음식이라는 질문이 다소 예민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물론 강사님은 최고의 장소로 화려한 어느 곳, 최고의 음식으로 값비싼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이야기가 담긴 장소, 추억하고 싶은 사람, 기억에 남는 밥상 등의 사연 있는 이야기를 돌아보게 할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최애, 최고라는 단어의 무게에 짓눌려 노트에 아무것도 적을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내 차례가 오기 전에 수업은 종료되었다. 자신감 넘치게 들어간 수업이었지만 머리와 마음속 여기저기 물음표를 안고 강의실을 나왔다. 인생을 논하기에 난 아직 한참 부족한 나이다. 30년 후쯤 이곳에 다시 앉아 나의 인생을 뒤돌아 볼 이런 수업을 들으러 오리라. 그때 망설임 없이 마이크를 잡고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타인의 삶을 공감해 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어있고싶다.
도서관을 나오며 손에 들고 있던 양산을 마이크 삼아 혼자 중얼거린다.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을 때 가족들과 서울 식물원 주변 공원에서 산책을 해요. 갈 때마다 바뀌는 공원의 꽃, 풀, 구름, 바람을 느껴요. 넓은 들판에서 아이는 줄넘기를 하고 전 돗자리에 앉아 깊은숨을 쉬어요. 그림 같은 풍경의 주인공처럼 앉아있고 싶은데 벌레들이 많아서 호들갑 떨며 일어나서는 편의점 앞 야외 테이블로 가요. 바람이 느껴지고 지천에 풀과 꽃이 있는 야외식당이지요. 거기서 가족들이 각자 좋아하는 사발면을 골라요. 아이는 튀김우동 남편은 참깨 라면, 저는 신라면. 그리고 한 젓가락 씩 뺏어 먹으며 '내 것이 더 맛있네. 두 젓가락은 못 주네.' 하며 진심으로 화를 내지요.
더워진 요즘, 반찬 만들기가 보통 귀찮은 게 아니에요. 여름이 되니 엄마가 해주신 반찬이 더 생각나네요. 엄마는 새벽같이 일어나 반찬을 만들고 우리들 아침을 먹이며 도시락을 싸 주셨어요. 예전에는 야간 자율학습을 하느라 저녁 도시락까지 준비해야 해서 엄마는 언니와 동생 제 것까지 5개의 도시락을 만드셨어요. 밥보다 반찬을 좋아하는 저를 위해 밥통보다 큰 반찬통에 두부조림, 콩나물 무침, 분홍소시지 전, 무말랭이 등을 가득 넣어주셨어요. 밥 위에는 계란프라이가 항상 올라와있어요. 어느 날은 밥과 계란 사이 치즈까지 추가해 주셨지요. 살이 안 찔 수 없었겠지요? 그 시절이 내 인생 최고의 밥상이네요.
내 인생 최고의 인물이 누구냐고요? 이 질문이 가장 당황스럽네요. 순번을 매기며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어요. 만나는 사람 한 명 한 명 소중하게 생각해요. 내 주변의 몇 안 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살아왔어요. 깊은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연락하는 이가 몇 없지만 그들과 항상 깊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뻔한 대답이지만 제가 아는 모든 분들이 최고라고 말하고 싶네요.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얼거리며 답하다 보니 하루하루를 최고로 살진 않았지만 그 평범한 일상들이 모여 지금의 긍정적인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질문이든 정답은 없지만 답은 찾을 수 있다.
혼자만의 발표를 30년 후의 수강생들과 나눌 수 있을까? 나의 답변은 30년 후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