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일 때쯤(90년대 초반) 처음으로 집에 컴퓨터가 생겼다. 대기업에 다니셨던 작은 아버지가 회사에서 남는 컴퓨터를 집으로 보내주셨다. ms-dos인지 컴퓨터 언어인지를 공부해 보라고 하셨던 것 같다. 묵직한 본체 위에 커다랗고 두꺼운 모니터가 올려져 있는 투박한 기계였다.
그 기계에서 나는 테트리스를 알게 됐다. 다양하고 네모난 조각들을 틈새 없이 배열하여 칸을 채워 없애는, 누구나 알고 있는 그 게임이다. 뭔가 하나에 빠지면 끝을 보는 성격임을 그때 알았다.
공부한 후에 틈틈이 게임을 했고 공들인 시간만큼 레벨은 금세 올라갔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칠판 뒤로 색색의 테트리스 조각들이 칸을 채우는 장면이 상상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었고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에서 테트리스 조각들이 쏟아져 내렸다.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결국 마지막 단계까지 모든 칸을 없애 게임을 끝냈다. 게임이 끝나면 게임 화면의 닫힌 창문이 활짝 열리고 누군가가 나와서 피리인지 나팔을 불며 춤을 추었던 것 같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다시는 그 게임을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방학 때 언니가 만화책 <슬램덩크> 시리즈를 빌려왔다. 평상시 만화책을 즐기지 않았지만 우연히 접한 그 만화책의 스토리와 인물, 농구에 푹 빠져 여러 차례 읽고 또 읽어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30여 년 전 '덕후'라는 말이 있었다면 난 만화책 <슬램덩크>의 진정한 덕후였다. 강백호, 서태웅, 송태섭, 정대만, 채치수 등 만화적 인물은 이상민, 우지원, 서장훈, 문경은, 현주엽 등 현실 인물로 이어져 '농구'라는 스포츠에도 열광했다.
프로농구(KBA) 이전에 했던 농구대잔치 경기를 잠실 학생운동장까지 찾아가서 관람했다. 학교에서는 농구를 좋아하는 학생들끼리 연대팬과 고대팬으로 나뉘어 '누가 더 잘하네, 누가 더 멋있네'로 우리끼리 말싸움 대잔치를 하기도 했다.
작년에 영화 <슬램덩크>가 개봉되었을 때 30여 년 전의 추억과 열정이 되살아나면서 가슴속에서 무언가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또다시 n차 관람에 빠지게 될까 봐 영화관을 애써 찾지 않았다.
(힘들고 지친 미래의 어느 날, <슬램덩크>가 날 위로해 주고 응원해 줄 것임을 알기에 아껴두고 있다.)
중학교 때 맛을 들인 새우깡은 그 당시 한 봉지에 백 원이었다. 아이도 어른도 자꾸만 손이 가고, 언제든지 어디서나 맛있고, 누구든지 즐기는 그 새우깡을 난 심하게 즐겼다. 하루에 한 봉지 혹은 두 봉지씩 먹었다. 감히 1일 1 깡의 원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슈퍼마켓에 가면 으레 주인아주머니가 새우깡을 사러 온 지 알고 내어 주셨다. 하도 많이 먹다 보니 새 기름에 튀긴 새우깡과 몇 번 튀겨진 기름의 새우깡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새 기름에 튀긴 새우깡을 먹는 날은 운수 좋은 날이다.
광고, 협찬 아닙니다.
그쯤 나의 인생 목표는 '농심'으로 시집가는 거였다. 농심에 취직하는 다소 현실감 있는 목표를 잡고 공부했어야 하는데, 드라마처럼 평범한 여주인공이 재벌가의 눈에 띄어 사랑을 이루는 터무니없는 꿈을 꿨다. 나의 꿈은 돈이 아니고 재벌집 막내아들의 연인도 아니고 새우깡 공장에서 새 기름에 튀겨 나온 새우깡을 먹어 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중고등학생 때 과자 간식을 오로지 새우깡으로 채운 나는 대학 입학 후 다이어트에 돌입했고 과감히 새우깡과 작별을 했다. 지금도 가끔은 손이 가지만 그때처럼 1일 1 깡이 아닌 1달 1 깡 정도로 즐긴다.
이런저런 일들이 계기가 되었는지 무엇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에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일부러 무엇이든 '적당히' 좋아했다. 나름 혼자서 밀당을 하고 있던 것이다.
재미있는 일이 생기거나 좋은 사람이 생겨도 내 일상이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 (물론 딸아이는 예외, 11년째 홀릭 중) 무언가에 지나치게 몰두해서 내 열정과 시간을 투자하느냐 평범한 일상의 평화로움을 지키느냐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미련하게도 그 밀당을 지켜내려고 '재미'를 놓치고 살고 있었다.
몰두하지 않고 무언가를 즐길 수 있을까? 내 열정을 쏟아내지 않고 잘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빠져야 하는데 빠지는 게 두려워 겁내고 있다는 건 이미 그것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이렇게 저렇게 머리로 계산하며 이 줄을 밀까 당길까 하는 쪽이 이미 하수인 거다. 벌써 빠져있는 것이다.
만보 걷기를 하는 내내 '어떤 글을 쓸까?'를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쓸 거리는 생각나지 않지만 쓰고 싶은 마음은 크고 이것저것 생각하며 걷는 시간은 즐겁다.
글쓰기와의 밀당이 시작된 걸까?
테트리스
슬램덩크
새우깡
다음은 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