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다. 사자가 사냥을 시작했다. 배고픔은 먹이를 쫓는 집요한 동기가 되어 오직 사냥감을 찾아 뛰게 만든다. 토끼다. 사자는 오늘 저녁 사냥감을 비교적 쉬운 놈으로 고른다. 아무리 달아나 봤자 토끼는 사자의 뜀박질을 당해낼 수 없고, 밀림을 벗어날 수 없다.
토끼가 사자의 먹이가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토끼는 아침에 신선한 풀과 즙이 많은 당근을 실컷 먹고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저녁에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될 줄은 짐작도 못했다.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당할 뿐이다. 이럴 땐 있는 힘껏 도망가야 한다.
사냥하려는 사자에게 토끼는 ‘왜 하필 나를 골랐냐고,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이러냐?’고 사정하지 않는다. 할 필요 없다. 사자가 토끼의 이야기에 설득되거나, 토끼가 꾀를 내어 도망가는 건 말 그대로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는다.
몇 번 얘기를 나눈 후에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겉모습이 험악하다든가 눈빛이 사납다든가 그런 게 아니다. 멀쩡한 차림에 상냥한 얼굴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웃는 얼굴 뒤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추고 언제든 나를 궁지로 몰 수 있다. 그저 자신의 안위와 기분에 따라 누구든 물어버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무리다. 그것도 웃으면서. 그것을 지켜본 주변 이들은 하나 둘 그에게 복종하기 시작한다. 맞서 싸울 수 없다면 그 방법도 나쁘지 않다. 나는 자비 없는 그들의 눈에 띄지 않게 멀리 도망치기로 한다. 그건 생존을 위한 동물적 감각이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들과 생명의 고귀함에 대해 논하며 살생이 없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설득하는 건 정말 개 풀 뜯어먹는 소리다. 그들은 사냥하는 동물이다. 어울릴 수 없는 무리다. 세상은 밀림이다. 보통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끼리 어울린다 해도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이 함께 살 수밖에 없다. 난 육식동물을 설득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비겁하다고 하지 말아라.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 내 새끼를 보살펴야 한다.
두렵기에 맞서지 말고,
작디작은 내 자존감을 위해 복종하지 않고,
그저 도망가자.
최선을 다해...
그게 밀림의 생존 법칙이다.
내 삶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