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원에 가는 오후에 도서관에서 아이의 필독서 6권과 내가 읽고 싶은 책 2권을 빌린다. 무거운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마트에 들러서 저녁 식사를 위한 장을 본다. 요즘엔 보통 온라인 배송을 하기 때문에 마트에서 사는 것은 정말 신선하고 저렴해서 지금 사지 않으면 손해 보는 느낌이 드는 품목들이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오이, 고추, 파프리카 등이 색도 곱고 가격도 좋다. 유통기한이 여유가 있음에도 30% 세일 중인 어묵도 집어 들고, 유통기한 임박한 1리터 우유 두 묶음도 50% 세일이라면 (집에 우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장바구니에 넣는다. 조금 무겁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떠먹는 요거트 묶음(4+4)도 챙긴다. 계산을 마친 묵직한 장바구니를 들고 (이미 8권의 책가방을 든 상태로) 십오 분쯤 뚜벅뚜벅 걸어오면 집이다.
(오전에는 욕실을 포함한 집안 청소와 빨래 정리를 끝냈고 곧 밥과 찌개, 두세 가지 반찬 준비를 할 것이고 가족들 식사가 끝난 후 가볍게 설거지만 하면 되니 오늘 가사는 수월한 편이다.)
집에 와서 채소들을 씻고 손질하여 냉장고에 넣어둔다. 가장 좋아하는 캡슐 커피를 얼음 가득한 컵에 내려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든다. 커피 향이 주는 여유에 편안한 기운을 느낄 때, 친구(워킹 맘)에게 전화가 온다.
"야, 뭐 해?"
"커피 마시며 놀고 있지."
"아이고, 전업 주부 팔자 좋네."
"그렇지, 내 팔자가 최고지."
내 살아온 삶의 반 이상을 함께 한 친구라 악의가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할 수 있는 대화다.
전업주부가 될 줄은 나도 몰랐다. 그건 어렸을 때 생각한 나의 미래 중 어떤 선택지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남편과 자식들의 삼시 세끼를 챙기고 옷을 빨아 입히고 잠자리를 정돈하는 엄마를 보고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를 다짐하며 나의 일을 찾았다. 결혼을 한 이후에도 일은 놓지 않았지만 아이가 생긴 이후 '앞으로 일을 할 수 없겠구나'라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때 직업군을 선택해야 하는 항목이 있다. 그중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전업주부뿐이었다. 능동적으로 선택하지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지만 되어버린 직업 ‘그것’을 클릭할 때 서운함과 억울함이 생긴 적도 있었다. 아마도 전업주부를 노는 사람 취급하는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을 나도 갖고 있었던 듯하다. 출산 이전의 삶은 잊힌 채 부정당하고 오직 주부로만 정의 내려진 삶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남들이 뭐라 부르든 신경 쓰이지 않는다. 집에서 논다고 하든, 팔자 좋다고 하든 상관하지 않고 나의 하루를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어디에 정성을 들이고 사는지는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아이는 내 도움의 손길을 조금 덜어내면서 성장하고 있다. 그간 전업주부로 아이에게 집중했다면 이제 그 중심을 다시 나로 옮기는 중이다. 지금은 많은 책을 읽고 위로받으며 숨을 고르고 있다. 숨을 고르는데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 내 삶을 살아갈 것이다.
"오늘 하루도 잘 놀았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돈을 주어야 구하는 세상에 살면서
정작 자신이 수행한 일
곧 가사에 대해서는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이들......
무보수로 행하는 자신의 일을
‘일’이라 말하지 못하는 이들이
딛고 선 공간은
자본이 점거한 세상에서 동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세상,
‘사랑’과 ‘헌신’의 이름으로 꾸며져 있지만
화려한 치장을 들추면
소외감과 황량함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영혼들이
숨 가쁘게 일상을 이어가는
외딴섬이었다.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정아은 글